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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후반기의 노년을 준비하는 그리스도인 태도
아버지와 어머니들이여 그대들의 일이 아무리 과중할지라도 그대들의 가족을, 하나님의 제단 앞에 모으는 일에 실패하지 말라. 거룩한 천사들이, 그대들의 가정을 지켜주도록 기도하라. 그대들의 사랑하는 자녀에게, 유혹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매일 괴로운 일들이 젊은이들과, 노년층들의 길을 에워싸고 있다. 인내와 사랑과 기쁨으로 생애하기 원하는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끊임없이 도움을 받을 때에만, 우리는 자아를 이길 수 있다.(YHH 65.5)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업힌]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사46:3,4)(YHH 208.2)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재림신도의 회집에 모여 왔다.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여러 가지 동기에서, 각기 재림에 대한 교리를 듣고자 갈망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종들이 그들의 신앙의 이유를 설명하는 동안, 반대의 정신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으셨다. 때때로 사용되는 도구는 연약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분의 진리에 권능을 더하셨다. 그런 집회에서는 천사들의 임재를 느낄 수 있었으며, 신자들이 날마다 많이 증가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속히 재림하실 것에 대한 증거가 반복 설명될 때에, 많은 군중들은 숨소리를 죽이고, 그 엄숙한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하늘과 땅이 가까워진 것처럼 느껴졌다. 하나님의 권능을 청년과 중년과, 노년들이 모두 느끼게 되었다. 사람들은 입으로 찬송하면서 자기 집으로 돌아갔고, 그 기쁜 소리는 조용한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그런 회집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그 감명 깊은 광경을 영원히 잊을 수 없었다.(GC 369.3)
그대는 어버이를 가장 행복하게 해드릴 방법을 연구하지 않고, 이런 목적으로 자신의 소원과 낙을 희생하지도 않는다. 그들이 살아야 얼마나 더 사시겠는가? 그대가 그들이 무덤으로 가는 길을 평탄케 해드린다 하더라도, 그들의 생애는 근심과 문제로 가득 찰 것이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이것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다. 그것은 어려서나 젊어서나 중년이 되어서나, 노년이 되어서나 구속력이 있다.
자녀들이 부모를 거역할 구실을, 얻을 수 있을 때는 없다. 이 엄숙한 의무는 모든 아들딸에게 구속력이 있으며 주께서 신실한 자에게 주시는 땅에서, 그들의 수를 누리는 조건 중에 하나이다. 이것은 그냥 지나칠 정도로, 무가치한 주제가 아니다.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약속은 순종을 조건으로 한다. 그대가 순종한다면 그대의 하나님 여호와가, 그대에게 준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그대가 만일 불순종하면, 그대는 그 땅에서 생명이 길지 못할 것이다.(2T 80.1)
이 명령을 받을 때에, ‘아브라함’의 나이는 120세였다. 그는 그의 세대에서도 노인으로 간주되었다. 그는 젊은 시절에는 어려운 일도 견디고, 위험한 일도 용감하게 밀고 나갈 만큼 굳센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청춘의 열정도 사라져 버렸다. 무덤을 향하여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옮겨 놓는 노년에는, 낙담케 할 곤란과 고통도 성년의 활력이 왕성할 때에는, 용감하게 맞이할 수 있다. 그러나 노령의 짐이 그를 짓눌러서 그가 걱정과 수고에서 쉬기를 바랄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가장 혹독한 시험이었던, 그분의 마지막 시험을 보류하셨다.(PP 147.3)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므로, 그분의 말씀을 순종해야만 하였다. ‘아브라함’은 노인이었으나 그것이 그를 의무에서‘ 벗어나게 하지는 않았다. 그는 믿음의 지팡이를 붙잡고, 말 못할 고통 속에서 장미 빛 혈색의 건강미를 띤 아름다운 젊은 아들의 손을 이끌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위하여 나아갔다. 이 위대한 늙은 부조는 인간이었다. 그의 정열과 애착은 우리와 동일했다. 그는 노년기의 위안이요 또한, 주님의 약속이 주어진 그 아들을 사랑하였다.(4T 144.3)
그대의 나이가 그대를 거룩한 명령을, 순종하는 것에서 면제해 주지 않는다. ‘아브라함’은 노년에 혹독한 시험을 당했다. 주님의 말씀은 이 늙은 노인에게 무섭고 지나치게 보였으나, 그는 결코 그 정당성을 의심하지 않았고 순종하기를 주저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이 늙고 연약하므로 그의 생애의 기쁨이 되는 그 아들을, 희생할 수 없다고 간원할 수도 있었다. 그는 이 명령이 그의 아들에 대하여 하신 약속과 상치된다고, 주께 상기시켜 드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순종은 한 마디의 불평이나, 비난도 없는 것이었다. 하나님을 믿는 그의 신뢰는, 절대적인 것이었다.(4T 253.1)
나는 우리 학교에 있는 학생들에게 육류나 비 건강 적이라고 알려져 있는, 식품들을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시를 받았다. 자극적인 욕망을 일으키는 데 도움이 되는, 어떤 것도 식탁 위에 놓여 져서는 안 된다. 나는 노년과 청년과 장년에게 호소하는 바이다. 그대들에게 해로운 것들에 대한 식욕을 부인하고, 희생으로 주님을 섬겨라.(9T 157.1)
정신적 활동으로 건강하게 됨—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파견된 종들이, 훌륭한 전도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그와 같이 되려면, 그들은 부지런한 학생이 되어야 한다.... 열성 있는 습관 즉 하늘의 것을 굳게 붙들므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들로서의 직임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정신적 활동으로 건강하게 될 것이며, 이것은 게으로고, 무질서하고, 훈련받지 못한 마음보다 더 낫다. 나이가 들면서 목회자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뇌를 사용하였다면, 노년에 풍성한 열매를 맺었을 것이다.(2MCP 399.3)
최근의 기억이 빨리 사라짐— 하나님의 사업을 하는 연로한 사람은 주변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들에 관하여 마음이 멍해지는 것을 발견할지 모른다. 그리고 최근 행한 일들이 기억에서, 곧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어린 시절의 장면과 행위를 항상 자각하고 있다. 오, 청년들이 타락시키는 생각으로부터 마음을 순결하고 정결하게 지키고, 영혼을 더럽히는 온갖 행습들로부터 보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기를 바라노라. 왜냐하면 청년들의 순결과 불 순결은 노년기에 회고될 것이기 때문이다.(2MCP 748.2)
특성들은 노년기에 더욱 강렬해짐— 나는 ‘다윗’이 늙어서 자기를 버리지 말라고 주님께 간구할 때, 무엇 때문에 그가 그렇게 간곡한 기도를 드리게 되었는지를 보았다. 그는 주변의 노인들 대부분이 행복하지 못한 것과, 특히 나이가 더해 감에 따라, 불행한 품성의 특성들이 더해 감을 보았다. 천성적으로 편협하고 탐욕적이면 사람들은 나이가 많아지면서, 그 특성이 가장 불쾌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들이 질투심이 많고 변덕스럽고 조급하다면, 나이가 들면 더욱더 그러해진다.(2MCP 748.3)
자신의 노년기를 위한 ‘다윗’의 기도— ‘다윗’은 어떤 사람들의 생애가 혈기왕성한 장년기에는 의로웠지만 나이가 듦에 따라, 자제력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보이는 일을 목격했다. 사단이 들어와서 그들의 지배함으로, 그들을 불안하고 불만스럽게 만들었다. 그는 나이 든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버림받고, 원수들의 조롱과 비난거리가 되는 것을 보았다.(2MCP 749.1) ‘다윗’은 큰 충격을 받고, 그가 연로할 때를 바라보고 낙담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시고 그가 목격해 온 다른 노인들처럼, 그도 불행해지고 주님의 원수들의 조롱거리로 남게 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이런 부담을 안고 그는, 열렬하게 기도를 드린다. “나를 늙은 때에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한 때에 떠나지 마소서.” “하나님이여 나를 어려서부터 교훈하셨으므로, 내가 지금까지 주의 기사를 전하였나이다.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수가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시71: 9,17,18). ‘다윗’은 노년기에 따르는 악에서 보호를 받아야 할 필요를 느꼈다.(2MCP 749.2)
노년층과 청년들이 초청을 받게 되며, 주님께서는 청중들의 심령을 감동시키신다. 이런 방법에 의하여 비유 가운데 기록된 바와 같이, 잔치에 나오라는 초청이 모든 영혼에게 이르게 된다. 저들의 간증에 의하면 어떤 자들은 12년, 14년 혹은 16년 동안 교회에 나오지 않다가, 회개하고 믿기로 작정하였다고 한다. 신자들도 깊은 감명을 받게 되며 설교와 성경의 말씀을 해설하는 것을, 놀라운 마음으로 듣게 된다. 또한 사교적인 집회에서도 매번 유효적절한 것을 배울 수 있게 된다.(Ev 150.6)
진리를 기다림— 사역자들이 많은 노년층들 가운데 안식일 진리와 기타 모든 진리를 전하는데, 별로 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알 수 없다. 그들은 감격한 어조로 말한다. “바로 이것을 위하여, 우리는 기도하여 왔습니다. 우리는 성직자들이 설명하지 않았고 우리에게 설명할 수도 없는 문제들이, 성경에 많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볼 때 우리는 빛과 진리 가운데서, 오직 즐거워할 뿐이다. 저들의 기쁨은 충만한 듯이 보인다.(Ev 446.3)
예수님을 위하여 무거운 짐을 진 자들— 우리 자매들과 청년들과 중년 급에 속하는 자들과 노년층에 속하는 자들은. 이 시대를 위한 마지막 사업의 일익(一翼:한 가지의 직분과 소임)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사업을 수행함으로, 저들 자신에게 가장 고상한 가치가 있는 경험을 얻게 될 것이다. 저들은 자신에 대한 생각을 잊어버리고, 은혜 가운데서 자라나게 될 것이다. 이런 방향으로 정신을 훈련시키므로 저들은 예수님을 위하여, 무거운 짐을 지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Ev 468.1)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육체적 운동으로 도움을 얻지 못하므로, 심한 정신적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능력은 저하되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생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보다 적극적인 활동이다. 이것은 머리가 희끗희끗해 진 노년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아직 젊은 충에 있는 사람들도 같은 상태가 되어, 정신적으로 쇠약해져 있다. 그들은 짜여 진 설교강목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강목의 한계를 벗어나면, 그들의 설교는 공명 감을 잃어버리게 된다.(Ev 661.3)
일선에서 봉사하도록 부름 받은 젊은이들— 노년기에 있는 사람들은 신중하게 처신하고 성장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젊은 사람들에게, 일선에서 직접 일할 모든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젊은이들의 능력을 사용하고, 그들 각자의 일감을 맡아 일선으로 보내기에 믿음직한 젊은 사람들을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을 그들의 수치로 여겨서는 안 된다. 연장자들은 젊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재능을, 계발하도록 권장해 주어야 한다.(Ev 685.2)
백성들이 점령한 곳에 정착한 지 여러 해가 흘렀고, 지금까지 ‘이스라엘’에게 심판을 초래했던 동일한 악들이 이미 나타나 보였다. ‘여호수아’는 노년의 연약성이 그에게 조금씩 다가오는 것을 느끼면서, 백성의 장래에 대해 심히 염려했다. 백성들이 다시 한 번 그의 주변에 모였을 때에 그는, 아버지가 나타내는 관심보다 훨씬 더 큰 관심을 가지고 그들에게 연설했다.... ‘가나안’ 족속들은 정복했지만, 여전히 그들은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그 땅의 상당 부분을 점유하고 있었으며,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안주하지 말고, 이 우상숭배 하는 민족들을 철저하게 쫓아내라는, 주님의 명령을 잊지 말도록 훈계했다.... (CTr 139.3)
‘사가랴’는 ‘아브라함’이 약속하신 분께서 미쁘시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그의 노년에 어떻게 한 아들이 주어졌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연로한 제사장은, 잠시 인간의 연약성에 그의 생각을 돌렸다. 그는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시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의 이 불신은 천사가 그 귀한 기별을 전하였을 때에,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8)라고 대답한 ‘나사렛’의 처녀 ‘마리아’의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과 얼마나 대조적인가!(DA 98.2)
최초의 역사가인 ‘모세’는 세계역사 초기의 사회생활과, 개인적인 생활에 대하여 아주 분명한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눈멀고, 귀머거리가 되고, 저능아가 된 아기가 탄생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가 없다. 영아기와 유년기 또는 청년기에, 자연사로 죽었다는 하나의 실례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창세기’에 사망자의 기사는 다음과 같다. “아담이 ... 구백 삼십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셋은 ... 그가 구백 십이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창5:4-8).
다른 사람들에 대한 기록은, “그가 장수한 노년이 되어 수한이 차서 죽었더라”(창25:8)고 말한다. 자식이 아버지보다 먼저 죽는 일은 참으로 드물었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건, 즉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 죽었더라”(창11:28)는 사건은 기록해 둘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아담’으로부터 ‘노아’에 이르기까지 거의 예외 없이, 약 일천 년을 살았다. 그 후로부터 평균 수한(壽限:타고난 생애의 수명)이 감소되고 있다.(CD 117.3)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분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다. 이 계명은 유년기와 청년기와 장년기와 노년기, 누구에게나 적용된다. 자녀들이 그들 부모를 공경하는 일에서, 면제되는 인생의 기간이란 없다. 이 엄숙한 의무는 모든 아들딸을 망라하며 주께서 신실한 자들에게 주실 땅에서, 장수함을 누리는 한 가지 조건이기도 하다. 이것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없는 문제가 아니요, 매우 중대한 문제다. 그 약속은 순종을 조건으로 하고 있다. 그대가 순종하면 그대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대에게 주시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그대가 순종하지 아니하면 그대는, 그 땅에서 장수하지 못할 것이다.(AH 292.3)
연약한 점을 용납하라— 노쇠하여진 어머니, 더욱이 노년기가 되면 따라다니는 연약한 성질로 화하게 된 어머니에 대해서, 증오심을 품는 자녀에 관한 생각을 하면 특히 무서운 생각이 든다. 자녀들은 이런 어머니를 얼마나 참을성 있게, 얼마나 상냥하게 견디어야 할 것인가! 정신을 교란시키지 아니할 친절한 말을 하여야 할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결코 불친절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환경에 처해서도 부모를 소홀히 하는 일이 없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20:12)는 명령에 유의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레19:32)고 말씀하셨다....(AH 362.3)
자신이 서명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서명하도록 권함— 청년과 중년과 노년들이 다 같이 하여야 할, 사업이 여기에 전개되어 있다. 절제서약서가 제시되거든 곧 서명하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대의 모든 힘을, 부절제의 악을 대항하는 일에 사용하겠다고 결심하라.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개혁사업을 하고자 하는 자들을 격려하라.(Te 198.1)
우리는 이 때에 하나님의 사업을 하는데 있어서, 부주의하거나 등한할 수 없다. 우리에게 닥쳐올 경험들을 위해서 준비되기를 바랄진대, 우리는 날마다 간절히 주님을 찾아야 한다. 우리의 심령은 모든 우월감을 벗어던져야 하고, 진리의 산 원칙이 그 속에 심어져야 한다. 청년과 노년, 그리고 장년을 막론하고 모두 그리스도의 품성에 나타난, 미덕들을 실천하여야 한다. 주님의 사업에 쓰일 만한 귀한 그릇들이 되도록 그들은 날마다 영적 발전을 이룩하여야 한다.(3TT 425.1)
청년 남녀들에 의해 획득될 수 있는 가치 있는 지식의 결과는 거의 평가될 수 없지만, 높은 표준에 도달하기 위하여 그들은 사단이 마음속에 밀어 넣는 더러운 사상들에게서, 문을 닫고 그의 유혹들에 굴복하기를 거절해야 한다. 청년들은 금으로 살 수 없는 그들이 성취하도록 계획하신 모든 것에 대한, 순결하고 강력한 목적을 품고 획득해야 한다. 마음은 사상의 올바른 주제들을 명상하도록, 훈련 되어야 한다. 그들은 성경을 배워야 하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지도방침으로 정하신, 거룩한 규범들을 일상생애에 실천해야 한다.
하나님의 봉사에 오랫동안 헌신해 온 자는 그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에 관하여, 그의 마음에 허전함을 발견할 수 있고 최근의 상황이 기억에서 곧 사라질 수도 있으나, 그의 마음은 그의 유년시절의 장면이나 모습을 회상할 수 있을 것이다. 오, 청년들이 사상의 더러움으로부터 마음을 지키고 정결하고 깨끗하게 되는 것과, 모든 더러운 관습으로부터 영혼을 보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청년들의 순결과 불순함은, 노년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SD 78.4)
어린이 각자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이, 의무이며 특권이다.... 어린이들이 예수님께 모든 영적 은혜를 구하고 그들의 모든 복잡한 문제들과, 시련들을 구세주께 갖고 가는 것을 주께서는 기뻐하신다. 왜냐하면 그분은 어린이들과 청년들을 어떻게 도우실지를 아시기 때문이며, 그분 자신이 유년시절에 어린이들과 청년들에게 밀려오는, 모든 시험과 실망과 고통들을 먼저 당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장년들이나 노년들에게처럼, 유년과 청년들에게도 많이 주어졌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실 때마다 유년과 청년들은 그분께 탄원하고, 하나님께서 독생자이신 예수님의 인간으로서의 필요를 아시고 그분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필요한 모든 것을 구할 때 예수님께 행하셨던 것처럼, 우리 유년들과 청년들도 그들의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역사하시도록 간청하라. 아버지께서 더욱 성숙한 경험을 한 자들을 위하여 마련하신 모든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유년과 청년들을 위하여도 마련해 놓으셨다.(SD 128.3)
생애의 매일, 매시간, 유년에서부터 청년, 청년에서부터 중년, 또 노년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생애 역사는 마치 미술가의 광택 나는 ‘팔레트’가, 모델의 모습을 비취듯이 하늘 책에 빠짐없이 기록된다. 우리의 생애역사는 매일, 매시간, 인간 대리자가 필히 이용해야 할 이점들을 제공해 주고 있다. 우리는 주님에 대해 무관심하게 일함으로써, 한 순간이라도 놓칠 여유가 없다. 우리는 성실하고 정당하며 정결하고 흠 없는 사업으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수 있도록 받은바 재능을, 충실하게 사용하여야 한다. 그분께서는 모자라는 것은, 아무것도 받으시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의 이 세상사업은 하늘에서 통용되는 고상한 원칙들을 드러내어야 한다.(UL 291.6)
노년에 악을 따르지 않도록 경계해야 함(시92:13-15)— ‘다윗’은 늙어서 버림받지 않도록 해 달라고 주께 간구하였다. 그러면 왜 그가 그렇게 기도하였는가? 그는 그의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노인들이 행복하지 못한 것을 보았다. 그 이유는 그들의 품성 가운데 있는 불행한 성벽들이, 나이와 함께 자라났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들이 선천적으로 폐쇄적, 탐욕적인 성격이라면 불행스럽게도 그들은 대부분 연륜이 성숙 단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격은 그대로이다. 만약 그들이 질투심이 많고, 화내기 쉽고, 조급한 성격이라면 나이가 많아지면 더욱 그렇다.(3BC 1148.4)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여, 위하여 채색 옷을 지었더니”(창37:3)(CTr 91.1) 연로하여 눈이 어두운 ‘야곱’은 젊은이들이 온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형체를 알아보고 “이들이 누구냐”(창48:8)고 물었다. 그들이 그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고 그는 덧붙여 “그들을 이끌어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창48:9)고 말하였다. 그들이 가까이 나아왔을 때에 ‘야곱’은 그들을 안고 입을 맞추고 축복하기 위하여 그의 손을 엄숙히 그들의 머리위에 얹고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창48:15,16)소서 하고 기도하였다.
이제는 자기를 의지하는 정신도 인간의 능력이나 교활한 꾀를 의지하는 마음도 없었다. 하나님만이 그의 보존자이셨고 후원자이셨다. 과거의 불행한 세월에 대한 불평도 없었다. 그러한 시련과 슬픔들은 이제 더 이상 “그를 해하는 것들”로 간주되지 않았다. 그의 인생의 순례 행로 내내 그와 함께 계셨던 하나님의 은혜와 자애만이 기억에 떠올랐다.(PP 234.4) 축복은 끝났다. ‘야곱’은 그의 아들에게 보증을 주었다.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리라.”(창48: 21). 장차 올 세대들을 위하여 속박과 슬픔의 긴 세월 동안 그의 신앙에 대한 이 같은 증거를 남겨 주었다.(PP 235.1)
‘야곱’은 여기서 하나님과, 약정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주께서는 이미 그에게 번영을 약속하셨으며 이 맹세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의 보증에 대한 감사로, 그의 마음에서 넘쳐 나온 것이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요구하신 것들을 시인해야 한다고 느꼈으며, 또 자신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은총의 특별한 표에 보답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와 같이 우리에게 내려주신 모든 축복은 우리에게 모든 긍휼을 베푸신 분에게 보답하기를 요구한다.
때때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지난 생애를 회고하며 시련 중에 붙드시고, 모든 것이 어둡고 험악하게 보일 때에 그의 앞에 길을 열어 주시고, 힘이 쇠할 때에 그를 소생시킨 하나님의 귀중한 구원을 감사함으로 회상하여야 한다. 그는 그 모두를 하늘 천사들의, 돌봄의 증거로 인식하여야 한다. 이 헤아릴 수 없는 축복들을 고려하여 그는 종종 겸허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시116:12)라고 자문(自問:자신에게 물어봄)해 보아야 한다.(PP 187.3)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에, 많은 이적들을 행하셨다. 이런 이적에서 그는 몸과 영에 고통당하는 자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실 수 있는지를 보여주셨다. 그는 그에게 제공되는 모든 기회들을 선용하시고,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을 섬기셨다. 그는 그분의 유년시절에서 조차, 청년과 노년들에게 위로하시고 친절을 베푸셨다. 그는 모든 어린이들이 무엇을 위해 힘써야 할지에 관하여 본을 보이셨다. 그의 말과 행동 속에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부드러운 동정이 나타나 있었다. 그의 우정은 낙담한 사람들과 우울해 하는 사람들에게, 아픔을 진정시켜 주고 치료해 주는 유향과 같았다.(SD 151.2)
사도 ‘요한’은 그의 노년에도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었으며, 백성들은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을 완고하게 거절하는 것에 대해, 반박이 되는 그의 증거를 듣는 데 싫증이 났다. 그들은 만일 그들이 회개하고 그분을 믿으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힘을 주시는 그분을 거절했다. 그들은 그들의 마음의 평안을 매우 소란스럽게 하는, 사도‘요한’의 간증을 없애 버린다면 아주 편안해 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를 이 바위섬으로 쫓아 버렸다.(2SAT 215.1)
노년의 ‘요한’이 유배형 선고를 받은 것은 사단이 하나님을 위한, 충성된 증인들에 대해서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인, 세찬 박해와 캄캄한 어둠의 때였다. 그는 믿음 안에 있는 동무들과 분리되었고, 복음사업을 위해 일하지 못하도록 차단되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임재(臨齋:임하여 교제하심)로부터는 분리되지 않았다. 그가 유배된 황량한 장소가, 그에게는 하늘의 문이 되었다.
그는 “주의 날[안식일]— 하나님께서 복 주시고 그분의 것으로 구별하신 거룩한 날— 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내가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하여, 몸을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계1:10~13)계셨다고 말한다....(CTr 3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