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미래시학 여름호 제44호 시2편-[성 바실리아 성당],[붉은 광장]
성 바실리아 성당
김윤자
정지된 예술이다. 혼의 꽃이다.
이백여 년 동안, 러시아를 점령하던
몽골의 칸을 항복시킨
전승의 넋이 거대한 꽃송이로 피어올라
붉은 광장에 앉았으니
인간에 대하여, 오감에 대하여
마비시키는 괴력이다.
양파 모양의 꽃지붕들
사방 어느 곳에서 보아도 동일한 모습으로
시공을 초월한 환상의 분무
이 건물을 탄생시킨
이탈리아의 두 건축가를, 더 이상 이와 같은
성당을 짓지 못하도록 눈을 뽑아버렸으니
환생한 두 눈들이, 지금껏
예술의 지존으로 저 첨탑 위에 서린 걸까
이반 대제가 두 생명과 바꿀 만큼
눈과, 가슴과, 두뇌가
저 속에 녹아들었으니, 러시아 역사의 자존일까
전흔의 고리를 끊으려는 저 아픈 꽃등
성 바실리아 성당-미래시학 2023년 여름호 제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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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광장
김윤자
러시아에서, 가장 서 보고 싶었던 곳
소련을 보고자, 공산당을 만나고자
단일 이념으로 붉게 채색 되었겠지
육신도, 정신도
그런데 그곳에 들어섰을 때
정작 붉어지는 것은 우리의 눈이고, 발이다.
잘못 인식된 기억들이
회로를 발기발기 끊어버리고
툭툭 튀어나오는 새로운 열림의 장
러시아어의 아름다운 광장이 잘못 번역되어
붉은 광장이 되었을 뿐
그곳에 붉은 소련도 없고, 붉은 공산당도 없다.
레닌의 묘, 건물 하나가
붉은 단장으로 광장 끝에 서 있을 뿐
바실리아 성당, 클레믈린 궁
굼 백화점, 구원의 성 교회가
거대한 직사각형의 광장을 에워싸며
세련된 빛으로, 혼돈의 역사를 지운다.
붉은 광장-미래시학 2023년 여름호 제4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