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산鄕 시론>
◇ 장흥 남쪽 도내산향(徒內山鄕)은 어디에?
ㆍ옛 장흥의 6개 향(鄕)에 속하던 '도내산鄕'은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장흥읍지, 대동지지> 등에 나오며, 府 남쪽35리에 있다했다. '어산鄕 府南15리, 천관산 府南52리'를 감안하면, 어산鄕과 천관산의 중간에 있을 터인데, 그간에 위치 불명이었다. 먼저 도내산鄕 어원은 어떠한가?
徒內山은 그 訓을 소리로 읽은 소리글자로 여겨진다. '무리徒, 내內, 뫼(미)山'을 '물내뫼, 무너미'로 받을 수 있다. '무너미(넘이)' 사례는 전국적으로 빈번하며 '수유리(水踰里 무너미)'가 대표적인데, 견해가 엇갈린다.
1)說, 물이 山을 넘어가는 고개, 물이 넘쳐나는 고개로 보는 견해
2)說, 물(水)이 山을 넘을 수는 없고, '뫼(몰,물,山)를 넘어가는 고개'로 보는 견해
3)說, 물을 피해 건너며 山을 넘어가는 고개로 보는 절충적 견해.
마침 徒內山과 유사한 사례도 있다. 음성 평곡 군월치(群越峙)로 '무리群 넘을越'을 소리로 받으면 '무넘이'가 된다. 또 梅南도 '매(뫼)너미'에 해당한다. 신라 고어에 山을 뜻하는 '무레(물)'가 있었다. 그렇다면 천관산에 이르기 전에 '도내산, 무(물)너미' 흔적을 찾을 수 있는가? 관산 '水南(남송1구)'이 그곳으로 水南이 곧 '물남, 무너미'이다.
<읍지 정묘지,1747>에 水南은 없으나 이웃 石南洞은 나온다. <호구총수, 1789>에는 '석남, 차월(車越)'이 나오는데, '차(수레車)월' 역시 '수레(수리), 水넘이'로 무넘이형 고개이다. <조선지지,1911>에 '水南里,水南坪', '수남리後 가학치'라 나오는데, 실제 부용산쪽으로 넘는 '가학치(멍에재)' 고개가 水南 뒤편에 있다.
장흥府 읍치소에서 '고읍, 대흥'에 이르는 옛길은 '자울재~봉황, 부용산~石南(오도치), 水南(가학치)'으로 통했다. ('솔치' 신작로는 일제기에 개설된 것.)
한편 고읍 傍村 치소는 천관산 東록 고지대이고, 水南 쪽 평지와는 구별되는 것이니, 분명 水南 石南 쪽에 펼쳐진 분지에 독자적 생활권역이 있었을 것.(방촌은 下道, 수남 석남은 上道에 속한다)
여기서 <정묘지>에 '石南村 고적(古跡)'으로 기록된' 석남 고현(石南 古縣)'이 주목된다. 현 石南 마을은 성산2구로 죽교천 상류 분지 쪽에 있다. 장흥 <마을유래지>는 石南洞을 '오차縣' 첫 치소로 보고, '오도峙 돌무지, 입석2기, 사기점 도요지'를 언급한다.(기록에 남은 '府 남쪽35리 요랑所'와도 병치될 수 있다. 石南의 石은 '독골'의 독(石,甕)에도 연유되고, 성산 聖子는 '사기匠 成者'였을 것)
이제 필자 試論을 마무리한다. 徒內山鄕의 徒內山 어원은 '무너미(水南)'에서 유래했으며, 남면방 용산 지역과 南北으로 상통하는 넘이고개를 둔, 그 지역의 지형적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도내산鄕 위치는 천관산을 건너편으로 마주 보고 전개된, 죽교천 분지 안쪽의 '남송~성산' 일대이고, 그 중심지는 石南 마을로 판단한다. 그 인근 回山마을은 '도내산'의 '도내'를 '돌回'로 다시 받은 것일 수 있다.
출처: 박형상 변호사 제공
도내산향이 어디인지요?
장흥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갑니다.
상당히 지역의 역사와 한자의 해석에 조예가 깊은 내용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