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도해 보이는 미실이 사실은 완전 난봉꾼랍니다. 한 집안의 아버지와 아들 둘, 손자와 정을 나눴으니 난봉꾼 말고는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더군다나, 이 4명뿐만 아니라 남편 세종공을 비롯해서 사다함공, 설원랑도 있습니다. 즉, 남편과 정인을 합치면, 총 7명이나 됩니다. 그래서 저는 사전을 찾아 도대체 난봉꾼의 뜻을 찾고자 합니다. 허랑방탕한 짓을 일삼는 사람을 난봉꾼이라 합니다. 서양식으로 ‘플레이보이’, 모계 사회에선 ‘플레이걸’ 정도로 부르면 족합니다.
다른 말로 지난 날, 행세하는 집 자손으로 허랑 방탕한 사람을 가리켜 '파락호(破落戶)'라고 했답니다. '팔난봉'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쓰입니다. 그런데 요런 정도로 저를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난봉나다’라는 동사를 찾아 봅니다. ‘허랑방탕한 짓을 하다’의 ‘난봉나다(難捧 -)’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들은 이야기는 너무 이와 다르기 때문에 민간에 전하는 이야기인가 봅니다. 난(蘭)과 벌(蜂)의 관련지어 벌이 난의 향기를 맡고 미친 듯이 난의 봉심을 쑤셔대, 씨를 퍼뜨린다는 이야기는 근거는 없어도 아주 재미있는 결합입니다.
오뉴월에 산에 난을 찾아 떠났으니 그것도 서울에서 남쪽으로 서너 시간 족히 걸려 미친 듯이 산속을 향했으니 저야말로 난봉난 사람이죠. 고창 선운사는 유년시절을 부안에서 태반을 보냈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고 단지 미당의 시 ’“ 선운사 골짜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오히려)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를 기억한지라 여러 번 가 본 느낌이 들 터였습니다. 동백꽃의 핏빛 꽃잎과, 이미 꽃다운 시절을, 술집작부로 다 보내, 시든 젊음을 붙들고, 산골짜기에 처박혀, 어쩌지 못하는 운명에, 육자배기 가락에, 술상 두드리며, 한을 뽑아대는 목소리만, 내 머릿속에 빙빙 돌 뿐이었습니다.
깔끔하게 생태공원이다 새단장한 길을 따라 사람들 시선을 피하여 산기슭에서 도시락을 깝니다. 똑같은 반찬이어도 어디에서 먹느냐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김치 하나로 다 해치웁니다. 마음은 벌써 산속에 가있습니다. 그런데 도립공원이라 뭇사람의 시선이 여간 두려운 게 아닙니다. 따라서 마치 도둑고양이처럼 샛길로 접어들어 나무와 남를 비집고 난 탐색에 접어듭니다. 빽빽한 나무들 제끼고 들어가면 갈수록 왜 고창이 복분자의 고장인지 실감합니다. 앞길을 가로막는 태반이 산딸기 넝쿨이고 길을 뚫으려면 장단지, 팔뚝이 아려와도 의연하게 마치 처녀길을 내듯이 들어갑니다. 아뿔사 내가 들어온 산에 난이 있을 턱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생태보존이 잘된 터라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 헷갈릴 정도 울울창창한 속에 난이 자랄 리 있겠습니까?
퍼드득! 저는 놀라 비탈길에 미끄러집니다. 저는 살기 위해 손가락을 갈쿠리 삼아 풀포기라도 잡기 위해 용을 씁니다. 웬 까투리 한 마리가 날 살려라 하늘로 치솟습니다. 도둑이 제 발 저려 꿩보다 내가 놀랬는데 이제 저는 꿩보다 못한 새가슴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한심한 놈이라 여기며 꿩이 솟았던 자리를 보니 둥지 안에 세 개의 알이 메추리알처럼 햇볕에 반짝입니다. 그런데 미끄러지면서 산신령이 제게 난 하나를 선물했나 봅니다. 뿌리는 굵고 줄기는 하나인데 목대가 실하고 잎장은 몇 가닥 되지 않습니다. 옆을 보니 무릎까지 닿는 그야말로 엄청나게 우람한 난 한포기가 마치 왕처럼 유유자적 있습니다. 작은 것은 묻어 버리고 대물(잎길이;55센티,넓이2.2센티;현재 꽃대2대 달았음)을 나뭇가지로 흙을 파내며 건져냅니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큰놈은 영락없는 민출이고 남겨놓은 놈은 생강근 단엽인 것 같습니다.
산의 해는 짧아서 다섯 시만 되어도 이제 갈 채비를 합니다. 터벅터벅 큰길로 내려오다 차잎이며 시냇물소리며 새소리에 정신을 빼앗겨 애라 모르겠다 상경을 포기하고 민박집을 찾습니다. 산속에서의 밤은 무섭습니다. 조용하기 때문에 겁이 납니다. 그래서 자주 뒤척거려 밤하늘의 별을 헤아려 보며 이백의 ‘춘야도리원서’ 첫구절을 떠올려 봅니다.
“대저 천지는 만물의 숙소요, 세월은 영원히 쉬지 않고 천지의 사이를 지나가는 나그네와 같다” 때는 늦어 동백은 지어버렸고 쉰목소리 작부의 타령도 부엉이소리에 묻혀 사라졌구나! 선운사에서 어둠을 흔들며 종소리가 가깝게 들려옵니다. 그러나 난봉난 마음을 달랠 수 없습니다.
2009.5월 고창 선운산 산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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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디서든 꿩을 보면 놀라지요~~남겨놓은 생강근 단엽....항시 놓친 넘이 아깝지요~~~
저보다 꿩이 놀랐을까 민망해 서둘러 하산했지요. 제 욕심 때문에 가택침입(?)해 버렸으니 이일 어찌 하겠습니까?
대낮에도 퍼드득 날아가면 깜짝 놀랩니다 ㅎㅎㅎ
긴장문의 난담 감명깊게 읽고 갑니다
키득키득 저도 퍼드득 날아오를때 얄구진 소리낼때 잘 놀랩니다 헤헤~
산채담을 참 재미지게도 쓰셨네요. 난봉난 노을님^^ 즐거운 글과 산행기 자주 좀 부탁드립니다.
또보네요...잘보고갑니다,,
난담이 구수하니 야사 같이 재미있습니다.
여러가지 난담을 가벼운 발걸음으로 더듬어보게되는 글입니다. 고맙습니다.
재미있는 산채기..글솜씨가 예사롭지 않군요. 근데 아침에도 노을이 지나요? ^&^
원래 닉네임'노을'인데 '저녁노을''아침노을'로 쓰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노을'을 좋아하나봐요. 아침노을은 날이 맑을 전조이고, 저녁노을은 날이 흐릴 전조를 나타낸답니다.
아하~ 그렇게 쓰는군요. 하여간 저도 노을을 참 좋아합니다. 둘다~ ^^;
그러게요..재밋게 읽수 갑니다..ㅎㅎㅎ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쉰 목소리 작부의 타령도 부엉이소리에 묻혀 사라졌구나!!! ....세상사 덧없고 무상함이려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