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망이 깎던 노인>전문 해설
작가 윤오영이 40년 전에 경험한 이야기를 40년 후에 쓴 것이다. 이 작품의 전문중 총 분량의 85%가 40년 전의 이야기이고 아래 마지막 부분이 이 작품을 쓸 때 이야기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북어자반을 뜯고 있었다. 전에 더덕북어를 방망이로 쿵쿵 두들겨서 먹던 생각이 난다. 방망이 구경한지도 참 오래다.요새는 다듬이질하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만호도의성(萬戶禱衣聲)"이니"위군추야도의성"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40년 전 방망이 깎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우선 작가가 40년 전에, 다시 찾아간 노인을 만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아래 문장에서 표현된 도연명의 시구가 새어 나왔다는 표현이 진실일까부터 생각해 보자.
『맞은편 동대문의 지붕 추녀를 바라다보았다.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추녀 끝으로 흰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아,그때 그 노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방망이 깎다가 우연히 추녀끝의 구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채국동리하(採菊東離下)다가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 도연명의 시구가 새어나왔다.』
새간난지 얼마되지 않은 시절이야기이고 아내에게 방망이를 선물해주었다고 하고 있으니, 인터넷 나무 위키의 다음 설명을 참고 하면 1934년 쯤의 사건이고 윤오영이 27세 전후에 체험한 이야기가 되며 윤오영이 충분히 이 한시에 대한 깊은 의미를 공감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1974년발표된윤오영(1907-1976)의수필. '한국 수필 75인집'(한국수필가협회 편, 범우사, 1974년)에 수록되어 있으며, 1977년범우사에서 '방망이 깎던 노인'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다시 출판되었다. 40여년 전이라고 하였으니 1930년대 중반쯤이 배경이다. 윤오영은 양정고보를 졸업하고 보성고등학교에서 국어와 한문을 가르친 지식인이었다. 1930년대 중반 27세 전후의 신혼 시절에도 당시 지식인으로서 깊은 한학적 소양을 갖추고 있었으며, 평소 동양 고전과 한시에 해박했다. ."
따라서 < "채국동리하(採菊東離下)다가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 도연명의 시구가 새어나왔다.>는 이 표현은 시간상 허구를 집어 넣은 게 아니라는 유추가 된다. 그러면 왜 현장을 다시 찾은 그때 윤오영의 머리 속에서 도연명의 이 시구가 떠올랐을까를 추리해 봐야 한다. 그걸 추리하려면 이 시 전문을 알아야 한다. 인터넷의 도움을 받아 전문을 옮겨 적는다. 동진(東晉)시대의 위대한 시인 도연명(陶淵明)의 대표작인 <음주(飮酒) 20수 중 제5수>의 전반부와 전문, 그리고 번역문이다. 도연명이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과 벗 삼아 살아가는 전원생활의 여유와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경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명시라는 평이 붙은 한시다.
『 원문 (漢詩)
結廬在人境(결려재인경)
而無車馬喧(이무거마훤)
問君何能爾(문군하능이)
心遠地自偏(심원지지편)
採菊東籬下(채국동리하)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山氣日夕佳(산기일석가)
飛鳥相與還(비조상여환)
此中有眞意(차중유진의)
欲辨已忘言(욕변이망언)
속세의 사람 사는 곳에 초가를 짓고 살건만,
수레와 말을 타고 찾아오는 시끄러움이 없네.
그대에게 묻노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마음이 속세를 떠나니 사는 곳조차 절로 한적해진 탓이라네.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꺾어 따다가,
문득 고개 들어 여유롭게 남산을 바라보네.
산의 기운은 저녁노을 속에 더욱 아름답고,
날아가는 새들은 서로 무리지어 함께 돌아가네.
이윽고 이 가운데 참된 뜻이 있음을 깨달으나,
말로 표현하려 하니 이미 할 말을 잊었네.』
이 시에서 초장의 두 구절 結廬在人境(결려재인경) 而無車馬喧(이무거마훤)과 종장의 두 구절 此中有眞意(차중유진의) 欲辨已忘言(욕변이망언)이 "방방이 깎던 노인"의 삶을 대하는 자세와 그대로 일치한다. 그래서 40년 전 그 현장에서 윤오영의 머리 속에서 “채국동리하 유연견 남산”이란 시구가 떠 오른 것이다. 허구가 아닐 뿐더러 글 답지 않은 글에다가 한문 고사성어를 턱 하니 가져다 붙인 장삼이사의 차용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채국동리하 유연견남산”이란 시구 속에는, 속세의 조급한 성화나 젊은이들의 시건방진 잔소리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자신만의 호흡과 정성으로 일에 몰입하는 노인의 초탈하고 의젓한 자세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당시 현장의 윤오영은 당장 그 깊은 의미를 헤아리지 못한 채 섣불리 노인을 재촉하고 돌아섰지만, 아내와 주고 받은 이야기를 통해 시간이 흐를수록 노인의 그 거룩한 태도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던진 철없는 핀잔에도 흔들림 없던 노인의 의젓함 앞에서, 자신의 조급함이 얼마나 부끄러웠던가. 바로 그 깊은 울림과 미안함 때문에 일주일 뒤 다시 노인을 찾아가 진심으로 사과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 과정이야말로 이 수필이 가진 찬란한 진정성이며, 글 답지 않은 글에 유명한 문구를 턱 하니 가져다 붙이는 장삼이사의 차용과는 차원이 다른 울림을 주는 것이다.
그다음 마지막 이 글을 쓰면서 작가가 차용한 "만호도의성(萬戶禱衣聲)"이니 "위군추야도의성(爲君秋夜擣衣聲)"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는 이 문장을 살펴 본다. 이 문장은 40년 후 이 글을 쓸때 작가의 소회다. "만호도의성(萬戶搗衣聲)"은 당나라의 대시인 이백(李白)의 악부시 《자야오가(子夜吳歌)》 4수 중 [추가(秋歌)]의 전문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가을밤 장안의 달빛 아래 울려 퍼지는 다듬이질 소리를 통해, 변방에 원정 나간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의 애틋한 마음을 낭만적이면서도 애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자야오가(子夜吳歌)는 오나라 지역의 전통민요 가락과 옛 여인 '자야'의 애틋한 정서를 바탕으로 시인들이 새롭게 지어 부른 악부시 장르다. 인터넷 도움을 받아 원문을 기재한다.
『 원문 (漢詩) - 자야오가(子夜吳歌) · 추(秋)
長安一片月(장안일편월)
萬戶擣衣聲(만호도의성)
秋風吹不盡(추풍취부진)
總是玉關情(총시옥관정)
何日平胡虜(하일평호로)
良人罷遠征(량인파원정)
번역문 (現代語譯)
장안성 위에는 한 조각 밝은 달이 떠 있고,
집집마다 겨울옷을 짓는 다듬이질 소리 들려오네.
가을바람 그치지 않고 불어올 때면,
마음은 온통 옥관(변방)에 계신 님을 향하는구나.
어느 날에야 오랑캐를 평정하고,
우리 낭군님 먼 원정을 끝내고 돌아오실꼬?』
" 임을 생각하며 가을밤에 내는 다듬이질 소리“의 서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 윤오영이, 며느리가 북어자반을 뜯고 있는 것을 보고 방망이의 서정이 생각 난 것이다. 아내와 얽힌 방망이의 아련한 추억에 더하여 옛사람들의 다듬이 방망이에 얽힌 애절한 서정을 현대인 며느리가 알까하는 작가의 마음이 묻어 있는 것이다. 그건 이 글 전체가 말하고자 하는 방망이 하나에도 혼신의 마음을 담아내던 그런 삶의 정성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필요하다는 작가 윤오영의 사상인 것이다. 방망이 하나 깎는 일에도 이렇게 많은 퇴고를 하여 작품을 만들 듯이 하는 옛 사람들의 성심(일을 대하는 정성)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글을 보고 후학들은 아무렇게나 남의 유명한 문장을 척 가져다가 붙이고 수필이라고 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필자의 아파트 현관에는 어머니가 쓰시던 다듬이 돌과 방망이 두 개가 모셔져 있다. 가을이 깊어지면 이불 홑청에다 풀을 먹이고 밤새 다듬이질하던 소리가 온 동네에서 들렸다. 두 사람이 마주 보고 두드리면 ”다닥 다닥“ 장단도 참 잘 맞았다. 마음을 무겁게 하고 방망이로 다듬질해야 한다는 생각을 날고 들면서 지니고 싶었던 내 마음도 거기 담겨 있는 것이다. (사족: 문학은 삶과 사상이 육화될 때 비로소 진정한 향기를 낸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