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신약의 교회는
초실절을 지킬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는 복음적인 성경 해석의 기본입니다.
구약의 3대 절기는 유월절, 곧 무교절이요,
무교절 이후 50일쨰 되는 초실절, 곧 칠칠절, 신약의 오순절이요,
7월 15일에 드리는 초막절 곧 장막절이며, 수장절입니다.
장막의 수장절을 추수감사주일로 지키고 초실의 칠칠절을 맥추 감사주일로 지키는 한국 교회는
초실절에 담긴 복음을 이단처럼 버렸습니다.
초실절의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신약 교회,
즉 예수의 하나님 나라가 탄생하였는데 이것은 옛 언약의 새 언약 성취입니다.
초실절을 맥추 감사주일로 지키는 한국 교회는
기독교 무속 신앙을 추구하는 어중이떠중이 신학과 신앙의 정체성을 가졌습니다.
가을 추수 후 미국의 청교도 신앙을 본받아 추수 감사주일로 지키다가
7월 첫째 주일에 성경의 맥추 감사절도 있으니까 추수와 연동하여 맥주 감사절을 지키기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 복음이 떠났다는 탄식은
올바른 성경에 대한 복음적 이해의 선포를 잃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에 대한 무속적인 이해는
초실절, 곧 칠칠절의 성령 강림의 무속적 이해로 맥추절을 지키게 된 것 같습니다.
어떤 교회는 오순절이 맥추절, 곧 칠칠절인데
성령 강림 주일과 맥주절을 따로 지키는 교회도 있습니다.
참으로 성경에 대한 복음적인 이해를 잃어 버리고 종교 놀음하는 한국 교회의 정체성은
절기 신앙에 대한 사이비 유사 기독교의 진면목을 가졌습니다.
이스라엘의 삼대 절기 가운데 하나인 초실의 칠칠절은
유월절의 무교절과 초막절의 수장절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을 갖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삼대 절기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유월절의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속죄의 구원을 예표하였고
무교절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은 초실절의 첫 열매와 함께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인
그리스도 부활의 첫 열매를 예표하였습니다.
초막의 장막절은 과거적 광야에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은 것을 광야생활을 기념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하나님의 장막에 거하는 성도의 삶을 예표하였습니다.
요한 계시록은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는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신약의 교회가 유월절을 지키지 않는 것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되신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신약의 교회가 무교절의 초실절을 지키지 않는 것은
첫 열매의 감사가 그리스도 예수의 첫 부활의 열매로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가 되었기 떄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신약의 교회가 초막의 장막절을 지키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장막에 거하는 주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교절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드린 것으로 시작된 첫 열매의 초실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처음 익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영원히 완성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그림자를 좇는 신앙은
도올 김용옥이 비판한 유사 기독교의 서낭당 종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옛 언약으로서의 구약은 새 안약으로서의 신약으로
우리 주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완성되었고 온전하여졌습니다.
이것을 믿는 신앙이 기독 신앙이요
이것을 믿는 종교가 성경의 기독교입니다.
참으로 삼대 절기를 완성하여 온전히 이룬 성경의 그리스도를 감사하는 신앙을 버리고.....
초실절을 맥추 감사주일로 지키는 물질의 감사를 위한 절기 신앙은 듣보잡 신앙이요,
이현령 비현령 신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바알을 여호와로 섬겼듯이
오늘날 신본과 인본, 기복과 무속 신앙이 혼잡된 유사 기독교의 사이비성을 한국 교회는
그 정체성으로 가졌습니다.
이 처럼 한국 교회의 절기 신앙은 절기의 중심 주제를 잃어 버리고.....
감사의 헌금을 거둬 들이는데 혈안이 되어 복을 짓고 복을 받는 무속 신앙으로 타락하였습니다.
성경의 기독 신앙이 세속의 부귀와 영화를 누리데 악용되어
물질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물질만능주의의 배금사상이 참된 복음 신앙을 병들게 하였습니다.
물질의 감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넘어설 때
개인의 신앙은 물론 교회는 사이비 신앙의 올무에 빠져들 수 밖에 없습니다.
기독 신앙이 세속의 감사로 변질되면......
인본주의적 무속 신앙이 됩니다.
성경에 없는 교회력에 의한 맥추 감사절과 추수 감사절은
세속의 감사를 강조하여 구속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아주 병들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바알 신앙은
옛 이스라엘 백성의 타락한 신앙일뿐만 아니라 오늘날 타락한 기독교 신앙이 되었습니다.
본질을 잃어 버리고 주변이 중심이 될 때.......
하나님의 구원은 역사적 심판으로 나타났습니다.
무교절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드리고 또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라는 본질을
옛 이스라엘 백성들은 풍요와 번영의 바알 신앙으로 변질시키고 스스로 타락하여
마침내 그 중심된 예루살렘과 성전이 무너지는 심판을 받았습니다.
맥추 감사 주일에 비춰든 바알 신앙은
부활의 첫 열매로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가 되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감사를 잃어 버린
풍요와 번영을 구하는 바알 제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현령 비현령 신앙의 결국은
하나님의 장막에서 영원히 거하는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라"는
언약의 복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무교절에 드린 보리 이삭의 한 단과
49일이 지나서 밀의 첫 열매를 드리는 초실절을
풍요와 번영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알 신앙으로 숭배하여
무교절과 초실절의 본질을 훼손하고 완전히 잃어 버렸습니다.
또한 유월절의 희생을 잃어 버리고...
사사 시대로부터 요시야의 종교 개혁 때까지 가나안 땅에서 유월절 절기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초막절의 행사로
실로암에서 물을 길어 제단에 붓는 메마른 모습을 보시면서 탄식하였습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고 하였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성취하여 오순절 성령의 강림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성령의 샘을 갖게 되었습니다.
본질을 잃어 버리고 형식적이고, 메마른 초막절로 하나님의 뜻을 받들었던 유대인의 모습은
거룩한 시온을 잃어 버린 흩어진 양떼의 유리하는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유월절의 무교절과 초실의 칠칠절과 초막의 장막절의 본질을 영원히 완성하여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믿는 모든 자에게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언약을 영원히 이루었습니다.
성경의 기독 신앙으로 온전히 회복하여
사이비 유사 기독교에서 벗어나 참된 성경의 기독교를 영원히 새롭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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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성경의 본질적인 말씀을 복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한국 교회의 성도는
아마도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무도 이렇게 설교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맥추 감사주일은 성경의 맥추절이 아니며
추수 감사주일은 성경의 초막절, 곧 수장절이 아니라고 설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참으로 구약의 삼대 절기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영원히 성취하였는데
그것을 믿는 기독 신앙은 인본주의 무속 신앙에 함몰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