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루트
의미와 혼돈(Meaning and Chaos)
선함(goodness), 친절(kindness), 이타심(selflessness)과 물질적 성공(material success)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선함이 건강과 번영으로 이어지는 것일까요?
인류의 의미 탐구에서 핵심을 이루는 이 질문은 유대교 가르침에서 자주 논의됩니다.
토라는 이 주제에 대해 확고한 선언을 제시합니다. “너희가 나의 규례를 따를지니, 내가 제때에 비를 내려 주리니 땅이 소산을 내고 나무가 열매를 맺으리라... 너희는 그 땅에서 안전하게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않고 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너희가 심은 곡식은 헛되이 될 것이니, 너희의 원수들이 그것을 먹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쫓아오지 않는데도 너희는 도망치게 될 것이다..." (레위기 26장).
말하자면 몇 획의 붓질로 이 구절들은 두 가지 그림을 그려냅니다. 하나는 ‘구원(Redemption)’, 즉 국가적·개인적 온전함(wholeness)이며, 다른 하나는 갈루트(‘exile: 유배’)—분열(fragmentation)과 갈등(conflict)입니다.
첫 번째 그림인 ‘구원’은 삶의 영적(spiritual) 측면과 물질적(physical)측면이 하나 되는 상태를 묘사한다. 선한 행위는 물질 세계에 선한 결과를 낳습니다. 육체와 영혼은 존재의 모든 차원에서 조화(harmony)를 이룹니다. 백성은 하나님을 섬기므로 농작물이 자라고 평화가 깃듭니다. 삶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두 번째 그림, 즉 갈루트(גלות, 유배)의 모습은 형벌로서 찾아옵니다. 그러나 갈루트의 상태는 단순히 형벌과 고통이 아니라 혼돈(chaos) 그 자체입니다. 갈루트는 영과 물질의 분리(separation of spirit from matter)입니다.
갈루트(גלות)의 상황에서는 개인이나 공동체의 선함이 당장 물질적인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농작물이 자라기도 하고, 때로는 자라지 않기도 합니다. 설령 자라더라도, 때로는 적에게 빼앗기기도 합니다. 끊임없는 불확실성(uncertainty)이 존재합니다. 갈루트는 물질과 영, 육체와 영혼 사이의 단절입니다. 선한 사람들은 끔찍한 질병과 고통에 시달릴 수 있지만, 악한 자들은 종종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더 깊은 차원에서 보면, 갈루트의 상태에서도 개인의 행동과 그 뒤따르는 사건들 사이에는 관계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 마음이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무한한 하나님의 논리에 의해 지배됩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영적 영역, 즉 영혼의 세계를 고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존재 속에서 펼쳐져야만 하는 특정 과정들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온전한 영적 전경이 우리에게 열려 있다면, 우리는 실제로 각 개별 행동에 대한 정확한 보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 눈앞에 보이는 물리적 세계에서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더 깊은 실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한 걸음 전진한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레위기서에 기술된 ‘훈계(Rebuke)’에서 그토록 혹독하게 묘사된 갈루트(גלות, 유배)의 세상, 즉 홀로코스트가 일어날 수 있었던 세상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그 어둠 너머에 또 다른 삶의 방식, 즉 구원의 세상이 기다리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훈계(Rebuke)'의 마지막 구절에서 토라는 구원이 우리가 있어야 할 상태이며, 우리가 돌아갈 곳임을 약속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혼과 육체, 영과 물질, 하나님과 존재가 하나가 되어 통합된 그 상태에 우리의 실생활이 도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토라를 지키는 모든 행보는 그 구원의 영역을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오게 합니다.
By Tali Loewenth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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