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리라.”(창세 3, 19)
짚이나 나뭇가지를 태우면 마지막에 재가 남는다. 그 재를 모아 밭에 뿌리면 거름이 되어 작물이 잘 자라게 된다. 그것은 마지막까지 재로 남아서 남에게 희생함으로써 역할을 다한다. 또 재(齋)는 종교적 의식을 치르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부정(不淨)한 일을 멀리함을 뜻하기도 한다.
옛 유다인들은 궂은일이 생기면 재를 뒤집어쓰기도 했었다.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란 나는 할머니께서 정화수를 떠 놓고 한지(韓紙)를 태워 검게 탄 종이(재)를 하늘에 올리면서 천지신명에게 간구하며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모습을 봤었다. 하늘을 향해 재를 올리고 머리에 재를 뒤집어쓴다는 것은 구원에 대한 참회의 의미가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베타니아에서 나귀를 타고 산을 넘어 겟세마니로 내려와 키드론 계곡을 통과하여 동문으로 들어갔다. 군중들은 마중하면서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서 흔들며 환호했다. 당시에 무화과나무나 종려나무가 흔했는가 보다. 종려나무는 곧게 뻗어 아름다움으로 영광과 기쁨, 승리를 상징한다.
언젠가 이스라엘 순례 때에 요르단강을 거처 예리코에 갔었다. 거기에서 성경에 나오는 돌무화과나무를 만났다. 세관장 자케오가 그곳을 지나가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다는 그 나무였다. 또 그곳에는 종려나무가 많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대추야자 나무라고 부른다. 그 나무는 야자수와 비슷하고 열매는 대추와 비슷하게 생겨서 그렇게 부르는가 싶었다. 그 열매를 사서 순례객과 함께 나누어 먹었더니 달콤한 맛이었다.
오늘의 재의 의미는 참회이다. 사순 시기는 재를 머리에 올리는 예식으로부터 시작된다. 예수의 십자가 고통과 수난, 부활 즉 우리의 부활을 맞이하기 위해서 참회하여 자기를 죽이고 극기하면서 생명의 부활을 꿈꾸며 준비한다. 사순은 40일로 자신을 비우고 낮추며 몸과 마음을 깨끗이 정화하는 의미이다.
우리 지방에는 종려(대추야자)나무가 귀하기 때문에 편백나무나 측백나무 가지를 꺾어서 성지주일에 축성하여 가정에서 십자가에 걸어두었다가 다시 모아서 불에 태워 재를 만들고 사제가 축성하여 ‘재의 수요일’에 머리에 얹는다. 사순 기간에는 경건한 마음으로 단식과 금육, 극기와 자선을 하면서 자신의 부활을 꿈꾸며 준비한다.
사순 시기는 미사성제 때에 사제들은 보라색의 제의를 입으며, 제대 위에 밝힌 초도 보라색이다. 자신을 죽이는 참회와 맞이할 부활의 기쁨과 평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은 미사 중에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 예식은 준성사로 미사 중이 아니라도 신자들에게나 예비 신자에게도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