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餘滴
곽 흥 렬
황수탕黃水湯은 허물어져 가는 곳집이다. 그 앞에 서자 느닷없이 이 생각이 떠오른 것은 어인 까닭일까.
막 두려움을 알기 시작한 여남은 살 어린 시절, 마을 언저리에 자리하고 있던 곳집과 맞닥뜨렸을 때의 야릇한 전율감이 불현듯 되살아난다. 정적靜寂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스산한 풍경, 지난날의 흥성했었던 분위기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절기는 아직 시월 중순께이건만 으스스 한기가 돈다. 비단 날씨 때문만은 아니리라.
달랑 건물 한 채가 쓸쓸히 서 있다. 아니 기울어져 가는 중이다. 건물이라고 부르기엔 이미 한계치를 넘어서 버린, 초라하기 짝이 없는 형상이다. 얼기설기 블록을 쌓아 올리고 그 위에다 어설프게 골기와를 얹었다. 세월의 지층이 켜켜이 내려앉은 광경이 당집같이 을씨년스럽다. 기왓장에는 날아든 홀씨에서 돋아난 이름 모를 잡풀들이 무성하고, 골 사이사이로 퍼런 이끼가 융단처럼 뒤덮여 있다. 처음 세워졌을 때는 이 구조물도 나름대론 제법 번듯하였으리라.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이 몰골을 이리 흉하게 만들어 놓았다. 누구를 원망하랴. 거역할 수 없는 조화주의 서늘한 질서가 휑하니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사람들이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고샅길 담장은 간단없는 비바람에 무너져 내려앉고, 무성하게 자라난 풀과 나무들에 파묻혀 흔적조차 가늠하기가 힘이 든다. 변한다, 변한다 해도 어찌 이렇게까지 참혹할 수가 있단 말인가. 후유, 가는 한숨 한 줄기가 절로 새어 나온다. 불현듯 상념의 발걸음은 허공을 거닐며 아득한 저 언덕 너머의 기억을 더듬는다.
그러니까 내 나이 열대여섯 살 학창 시절, 아버지의 소싯적 위장병이 도져 당신과 함께 한때 부지런히 이곳을 들랑거렸던 적이 있다. 돌이켜 보니 그새 서른 몇 해의 세월이 흘러갔다. 그 세월이 탕 주변의 정경을 몰라보게 바꾸어 놓고 말았다. 변하지 않은 모습이란 그예 아무것도 없다. 우물의 비를 가리기 위해 지은 예의 간이 구조물은 물론이고, 탕의 개발 과정이며 유의사항을 전하는 표지판과 팻말, 바가지를 걸어두던 음수대飮水臺, 이 모든 것이 세월의 무게에 눌려 삭아 내리는 중이다. 하얀 바탕색의 함석판에 새겨진 검정 페인트 글씨가, 군데군데 떨어져 나간 채로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나그네를 맞는다.
○ 공중도덕을 지킵시다. ○ 토하실 분은 우측 산으로 올라가세요. ○ 사용하신 휴지는 휴지통에 버려 주세요. |
바른편 산으로 시선을 옮긴다. 눈대중으로도 오십 도는 넉넉히 되어 보일 듯한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쉽사리 사람의 접근을 허락할 성싶지가 않다, 그것도 몸마저 온전치 못한 환자들에게는.
주렁주렁 엮인 의문부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달려든다. 표지판의 내용으로 미루어보건대 예전엔 저렇게 가풀막지진 않았던 것일까. 저곳에 살평상 몇 개는 놓여 있었을까. 정녕 그 시절에도 요사이처럼 휴지를 사용했었던가. 했다면 질적인 수준은 어느 정도였을까. 이런 부질없는 상념들이 보푸라기 일 듯 일어난다.
인기척에 놀라 가라앉아 있던 고요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자신들끼리 모여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다 낯선 이방인의 침입에 당황하여 벌떡 일어서는 고요, 잔잔한 호수에 이는 파문과도 같이 발자국 소리가 산골의 정적을 흔들어 놓는다.
길게 기린 목을 하고서 우물 안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철 성분이 많아 시뻘겋게 녹이 슨 물빛, 표면이 온통 번들번들한 기름띠로 뒤덮여 있다. 마치 지방질이 엉겨 붙은, 싸늘하게 식어버린 고깃국 같다. 곁의 음수대에 걸린 반쯤 깨진 바가지 하나를 들고 탕 속의 물을 휘휘 저어 본다. 똘똘 엉기어 있던 기름기가 자석처럼 바가지 표면에 와르르 달라붙는다.
고질이 된 위장병을 다스릴 심산으로 욕심껏 약수를 들이켜고는 반사적으로 솟구치는 메스꺼움을 참지 못하여 울컥울컥 구역질을 해대었을 고통의 잔상들이, 환영인 양 일시에 나타났다가는 사라진다. 그들은 그예 다 어디로 갔을까. 마음 한 자락이 못내 우울해 온다.
입에 풀칠하기도 힘에 겨워 보릿고개로 허기가 졌던 지난 시절, 변변한 약물치료야 언감생심이었으리라. 오로지 육신의 병을 고쳐보겠다는 일념으로 멀리 서울에서, 부산에서, 광주에서, 심지어 제주도에서까지 불원천리 이 첩첩산중을 물어물어 찾아온 사람 사람들, 어디 교통 사정인들 그리 수월했을라고. 그들은 황수탕 물을 먹고 소망하던 대로 몸이 나아졌을까. 되찾은 건강으로, 그들 가운데 지금쯤은 몇몇이나 이승에 살아남아 생의 축복을 누리고 있을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모여들었을 그 절박했던 사연들을 헤아려 본다.
한때는 입소문을 타고 이곳을 찾는 이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었다. 그리하여 약수탕이 그 주인에게는 적잖은 경제적 도움이 되었던 모양이다. 거기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매일같이 쓸고 닦으며 탕 주변과 그리로 이어진 고샅길을, 갖은 정성을 기울여 돌보았단다. 하지만 세월의 물살을 어찌 이곳인들 비켜 갈 수 있었을까. 약수탕의 시세도 세월 따라 떠내려가 일을 접은 지 하마나 오 년여가 되었다고 했다.
포병객抱病客들을 맞이하기 위해 쏟았던 주인 부부의 노고의 흔적은 이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지난날의 영화는 바람처럼 훌훌 날아가 버리고 적막만이 그 자리를 대신 지키고 있다. 한 시절 사람이 그리 끓었음을 무엇이 들어 증명해 줄 것인가.
“불과 오 년 남짓 사이에 어찌 이렇게나 황폐해져 버렸지요?”
탄식 섞어 던지는 나의 물음에 안주인 노파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글쎄 말도 말아요. 사람의 훈김이 얼마나 무서운지, 한 일 년만 제대로 안 돌보면 금세 보도 못한다오.”
노파의 쓸쓸한 대답 속에는 아스라이 전해져 오는 세월의 냄새가 묻어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 하는 노파의 모습과 사그라져 가는 탕의 정경이 자꾸 겹쳐 보인다.
생각에 잠긴 채 탕 주위를 돌아서 나오려니 ‘툭, 투둑’ 알밤 떨어지는 소리가 산골의 정적을 가른다. 문득 올려다본 눈길, 밤나무의 잎사귀 사이사이로 청잣빛 하늘이 시리도록 투명하다. 그 정경이 가을볕에 누렇게 물들어 가는 지상의 생명체들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순간 영속적인 것과 유한한 것, 존재함과 부재함, 가고 머무름, 이런 것들의 의미가 저릿한 아픔으로 다가와 가슴에 파문을 일으킨다.
탕 바로 옆의 골짜기에서는 석간수 가는 줄기가 권태에 잠긴 듯 졸졸거린다. 께끄름한 마음에 주저주저하다 용기를 내어 한 모금 들이켜 본다. 혀끝으로 전해져 오는 시금털털하면서도 알싸한 풍미, 예전 그때만은 못하지만 그렇다고 아직도 그냥 순전한 맹물 맛은 아니다. 곁에는 폭삭 삭아내려 흔적조차 희미한 앉은뱅이 살평상 하나가 반쯤 얼굴을 가리고서 비스듬히 누워 있다. 사람들은 병마를 이겨내려는 욕심에 양껏 약숫물을 들이켜고는 이 살평상에 둘러앉거나 아니면 드러누워 치받치는 메스꺼움을 눈깔사탕 한두 알로 달래었으리라. 그 일그러졌을 표정들이 상금도 눈앞에 선하다.
인적 끊긴 허허한 공간을, 기울어져 가는 건물만이 외로이 지키고 서 있다. 장차 건물마저 허물어지고 나면 누가 이 약수탕을 지킬 것인가. 사람들은 죄 떠나고 켜켜이 내려앉은 먼지가 대신 나그네를 맞는다. 작은 기척에도 놀라 풀썩풀썩 일어서는 먼지, 겁 많은 먼지가 잔뜩 움츠러든 마음에 오히려 푸근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세상천지의 형상 가진 존재들 가운데 그 무엇이 세월의 힘 앞에 영원히 꺾이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나무도, 풀도, 바위도, 건물도 그리고 우리의 육신마저도……. 거친 시간의 여울에 떠밀려 퇴락해 가는 황수탕의 여윈 모습에서 새삼 조화주의 말 없는 가르침 하나를 붙든다.
내려오는 길, 두고 떠나기 아쉬운 마음에 자꾸만 뒤를 돌아다본다. 서산마루에 석양이 서성이고 있다.
<곽흥렬 약력>
경북 고령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산과 들의 품에 안겨 자라다, 큰 고기는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는 부모님의 지론에 떠밀리다시피 어린 시절 대처로 떠나 줄곧 서른여섯 해를 살았다.
경북대학교 국문학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스무 남은 해 동안 대구 심인고, 경상고 등에서 국어 선생으로 학생들을 가르쳐 오다 2008년 늦은 가을 고향의 흙냄새, 풀냄새가 그리워 낙향하였다.
1991년《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문단에 나와 『가슴으로 주운 언어들』, 『빼빼장구의 자기 위안』,『빛깔 연한 꽃이 향기가 짙다』, 『우시장의 오후』, 『칠팔월에 내린 눈』 등의 수필집과 수필 선집 『여자와 함께 장 보는 남자』, 산문집 『에세이로 풀어낸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 세태비평집 『사랑은 있어도 사랑이 없다』, 수필 쓰기 지침서 『곽흥렬의 명품수필 쓰기를 위한 길라잡이』, 『수필 쓰기의 모든 것』, 서평집 『곽흥렬의 수필 깊이 읽기』, 제자들과의 공동수필집 『한 그루 나무, 서른 송이 꽃들』을 내었다.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코스미안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2012년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창작기금을 수여 받았다. 한국문인협회, 대구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영남수필문학회 회원이다.
후학들을 기르는 데도 힘을 기울여, 경주 동리목월 문예창작대학과 대구문화방송 부설 문화강좌, 육군3사관학교 그리고 경북 청도도서관 등에서 수필 창작 강의를 하면서 매일신문, 부산일보, 전북일보 등의 신춘문예와 평사리문학대상, 신라문학대상, 시흥문학상, 천강문학상, 공무원문예대전 등의 유수한 공모전에 많은 제자들을 당선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현재 고령신문 사외 집필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필생의 업으로 삼고 서른 해 넘는 세월 동안 수필 창작에 열정을 쏟아오고 있다.
*e-mail: kwak-pogok@hanmail.net
첫댓글 흔적의 잔상넘어엔
인생의 깊이가 깊은골짜기로 남아있는듯 합니다 ,,
스크린이 넘겨가듯
한컷 두컷,,,,
불멸의 흔적도 세월앞엔 무릎꿇고
남겨진 흔적만이 손 을 내미는듯 어서오라고 ,,,,
좋은글속 감성에 함께 물들여 봅니다
감사합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다고 합니다.
흐르는 세월과 달라지는 문화와
변화의 물결이
황수탕이 그 자리에 남아 있을 지언정
사람의 발이 닿지 않은 곳에
무슨 손길이 있길 바라겠습니까.
내려오는 길,
서산마루에 석양이 서성일 뿐이겠지요.
기억에도 희미한, 어린 시절의 곳간 이야기
오래만에 떠올려 주시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