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에 이기는 것 만이 야구가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팀이라 해도, 10경기 중 3경기는 진다. 반대로 아무리 못하는 팀이라도 10경기 중 3경기는 이긴다. 축구에서는 가끔 지지 않는 팀이 나오긴 하지만, 야구에서는 그런 것이 불가능하다. 지는 것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라는 것이다. 지는 것이 경기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할 때, 어떻게 질 것이냐? 라는 질문은 생각보다 복잡한 맥락 속에 놓이게 된다. 오늘 야구는 오늘로 끝나지만, 그것은 동시에 144경기 중 한 경기다. 프로야구 시즌을 치루면서 각각의 경기는 그 전의 경기와 그 다음의 경기와 유기적 연결고리를 갖는다. 불펜진의 소요, 부상선수, 팀 컨디션, 선발로테이션, 작전과 전력파악 등.
어떻게 질 것이냐. 이것은 모든 팀이 반드시 가져야 할 물음이다. 패배에 대한 각 팀의 해석에 따라 그 팀의 기초 역량이 변한다. 지난 해 한화 경기의 가장 큰 문제는 질 때 너무 크게 진다는 것이었다. 추격이란 없고, 미리 시합을 포기하며, 말하기 민망할 점수차이로 크게 져버리는 것. 이렇게 큰 점수차이로 질 때 생기는 여러가지 문제 중 가장 큰 것은 선수 육성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결론이 난 상황에서, 그저 공을 던지고 치는 기계적인 운동만 하는 선수에게 성장이라는 것이 가능이나 하겠는가. 1군의 긴장을 경험하는 것과 배팅볼을 던지고 치는 수준 차이. 지금까지 한화의 어린 선수들이 제대로 성장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들은 1군에 와도 패배감을 제외하면 배팅볼을 던지고 치는 것 이상의 경험을 할 수 없었던 것에 있다.
지금 한화의 경기는 이기든 지든 재미있다. 이길 때는 우리 팀이 이기니까 재미있다. 질 때도, 적은 점수차이로 지고 있으면 역전이 가능하다는 생각 때문에 즐겁다. 큰 점수차이로 지고 있을 때면, 어린 선수들이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재미있다. 지난 롯데와의 1차전에서 가장 즐거웠던 장면은 후반부에 주현상, 이시찬, 강경학 등 나이어린 야수들이 경쾌한 발걸음으로 그라운드를 누비던 모습이었다. 심지어 이들은 경기를 역전까지 시키며, 후반부에 올 시즌 가장 드라마틱한 경기 (결국 패배했지만)를 이끌어내는 주역이 되었다. 투수 중에서는 지는 경기조차 재미있게 만드는 선수가 바로 김민우다.
어제 경기는 불혹의 이승엽이 노익장을 과시한 경기였다. 박정진의 공에 쓰리런 홈런을 때리며 승부를 결정지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한 그의 기량은 인간적인 존경을 갖게 한다. 그는 과연 한국의 4번타자다. 박정진이 내려간 후, 싱글벙글 웃으며 김민우가 올라왔다. 그는 한국을 대표한 옛 4번타자의 관록에도 전혀 기죽지 않고, 깔끔하게 그를 잡아냈다. 내가 흥미로운 것은 김민우가 올라온 시점이었다. 비록 7회였지만, 3점차의 점수는 따라잡을 수 있을 만한 점수다. 그야말로 추격이 필요한 상황. 완전히 끝난 경기의 뒤처리로 김민우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경기의 긴장감이 여전한 상황에서 김민우를 올린 것이다. 결국 김민우는 2점을 추가 실점하며, 시합을 마쳤다. 아직 그는 더 배워야 할 것이 많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1군의 긴장감이 팽팽한 곳에서, 프로로써 자양분을 조금씩 흡수하며 한 걸음씩 차분히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 김민우는 선배들에 비해 운이 좋다. 그리고 그의 운이 우리 한화의 복덩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경기 후반부, 3점의 점수차. 이 점수 차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김성근 감독님은 이 점수차이를 신인선수에게 투자했다. 질 가능성이 훨씬 높지만, 아직 승부를 포기하기에 이른 정도의 경기를 김민우가 막아주길 바랬을 것이다. 어제 김민우는 이점수를 지켜내지 못했다. 그가 현재 자신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인지하기를 바란다. 더 성장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차분하게 한 걸음씩 프로로써. 몸과 공을 만들어가길 바란다. 그는 이제 훨씬 더 다양한 상황,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한 대국에서 적을 상대하게 될 것이다. 그에게 투자는 전혀 아깝지 않다. 그가 바로 2년 후 한화의 에이스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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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요즘 우리 신인선수들 자라는 모습 보면 참 든든하단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가 유창식, 이태양과 에이스 경쟁을 하는 날을 기다리게 되네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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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우 선수는 정이 많이 갑니다. 시선도 많이 가구요. 생글생글 웃지만, 투쟁심은 또 어지간 한 것 같더군요. 빈볼 사건을 겪고도 동요없는 부분이 좋았습니다.
나키는 예전에 만화가 우라사와 나오키를 아주 좋아했는데, 나오키에서 가운데 글자를 빼고 씁니다. 예전부터 종종 사용한 닉네임이에요.
김민우와 더불어 동기 김범수,최영환,황영국,조지훈도 기대만큼 쑥쑥 자라줬으면 좋겠습니다ㅎㅎ
네. 최영환 선수가 빨리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네요. 선수들마다 성장속도도 다르고, 전성기도 각기 다르니. 느긋하게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 한화도 지금보다 내일을 더 기대할 수 있게 되었네요.
경기 후기 기다렸습니다 ㅎㅎ;;;;
빈볼 사태로 저도 타격을 좀 받았더랬죠. ;;; 그래도 역시 야구 하는게 좋네요. ^^
한화의 미래를 책임질 신인선수들의 활약을 기대합니다,,
이기는 경기에서는 우리의 현재를 보고, 지는 경기에서는 우리의 미래를 보네요. 신인선수들의 활약을 기대합니다. ^^
민우군이랑 동문이기도 하지만 그걸 떠나서라도 관심이 많이 가더라구요. ^^ 시범경기 때 양상문 감독의 보크 항의후 바로 또 견제하는 모습에 매료되더라구요. ㅋㅋ 정말 내일이 기대되는 친구인 것 같습니다. 창식군도 잘 던져주고 있고 젊은 선수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네요. ^^ 글 잘 읽었습니다.
씩씩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신인은 참 오랫만인 것 같습니다. 요즘 선수들 보면, 무엇보다 건강이 제일 걱정되더군요. 오랫동안 좋은 공 던지는 모습 보고 싶네요. 앞으로 15년은 더 보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