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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보도를 ‘더러운 정치 공작질’이라며
가해자 부모 매도 안 된다는 충정은 '기우'
‘한동훈’이라고 커밍아웃한 곳은 바로 국힘
윤근혁 '교육언론 창' 취재본부장
뜻밖의 일이 생겼네요. 전혀 예상하지 않았거든요. 그 일은 지난 4일 밤에 벌어졌습니다. 다음은 국민의힘 중앙선대위 공보단 논평 내용입니다.
“사전 투표 전날인 오늘(4일, 강민정 의원이 보도자료를 낸 때는 4일이 아닌 3일 오전 7시 30분입니다.) 민주당 강민정 의원은 ‘고위공직자의 자녀가 학폭에 연루되었는데, 학교 측이 은폐·축소 처리했다’는 취지로 뜬금없는 허위 보도자료를 내고, ‘오마이뉴스’가 이를 익명으로 보도했다.”
학폭 보도가 ‘더러운 정치 공작질’로 둔갑
이어 국민의힘은 “(한동훈 비대위원장 아들의) 학폭 자체가 없었고, 명백한 허위사실임을 분명히 밝힌다”면서 “민주당 강민정 의원, 조국혁신당 황운하 의원, ‘오마이뉴스’ 기자 등을 허위 사실 유포에 따른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더러운 정치 공작질”이라고 몰아세우기도 했습니다.
국민의힘은 다음 날인 5일에는 “대검찰청에 강민정·황운하 국회의원, 오마이뉴스 윤혁근 기자(윤근혁 기자의 오기로 보입니다.) 등을 고발한다”면서 “강민정 의원은 인터넷매체 '오마이뉴스' 윤근혁 기자와 공모하여,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의 아들이 학폭에 연루된 사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2차례에 걸쳐 한동훈 위원장 및 아들에 대한 허위사실을 공표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고발에 대해 제가 앞에서 뜻밖이라 표현한 까닭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국민의힘이 난데없이 ‘한동훈 비대위원장 아들의 학폭 자체가 없었다’고 자백하고 나선 것이고요, 또 다른 하나는 “허위 사실 유포를 통해 더러운 정치 공작질을 했다”는 주장을 하고 나섰다는 것입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국민의힘이 고발 명부에 이름을 올린 ‘오마이뉴스 기자’는 바로 접니다. 저는 교육전문인터넷신문인 ‘교육언론 [창]’에서 취재본부장을 맡고 있는데요. ‘교육언론 [창]’이 ‘오마이뉴스’와 기사 제휴를 맺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 ‘교육언론 [창]’에 배치된 기사와 거의 같은 기사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는데, 이 내용을 국민의힘이 문제삼은 것입니다.
국민의힘 논평 내용 중에 “고위 공직자의 자녀가 학폭에 연루되었는데, 학교 측이 은폐·축소 처리했다’는 취지로 보도자료를 내고, ‘오마이뉴스’가 이를 익명으로 보도했다”는 내용은 맞습니다. 국힘! 그래서요?
국민의힘이 문제 삼은 지난 4월 3일자 교육언론 [창] 기사.
국민의힘이 문제 삼은 기사는 지난 3일자 ☞<경찰도 출동한 학폭 신고, 전담회의도 안 해… “은폐 의혹”> 보도인데요. 국민의힘 주장대로 이 기사엔 2023년 5월 24일 경찰까지 출동한 강남 D중의 학폭 신고사건에 가해 관련 학생의 부모가 ‘고위 공직자란 증언이 있다’는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이는 강민정 의원실에 제보한 복수의 인사, 공적 기관 관계자, 강남 D중 학폭 담당부장 등의 말을 종합한 결과입니다.
‘학폭 가해자’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매도 당해서는 안 된다는 ‘충정’
하지만 이 기사에 그 가해 관련 학생의 부모 이름을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국민의힘 말대로 ‘익명으로 보도’한 것입니다. 부모를 폭로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강남 D중의 학폭 신고 사건에 대한 은폐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기사의 목적을 말해주는 리드 내용입니다.
<서울 강남에 있는 한 공립중학교가 경찰까지 출동한 학교폭력(학폭) 신고 사태에 대해 학폭 처리 지침과 달리 학폭 신고 접수대장에 정식 기재하지도 않았고, 학폭 전담기구 회의도 열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3일, 국회 교육위 강민정 의원실은 ‘교육언론 [창]’에 “복수의 제보에 따르면 가해 관련 학생 아버지는 당시 현 정부의 고위 공직자였고, 국내 최대 로펌 변호사인 어머니는 이 학교 운영위원이었다”면서 “학교 측이 은폐·축소 처리한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강민정 의원은 보도자료를 내어…>
국민의힘이 문제 삼은 기사엔 다음과 같은 내용도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의 부모가 어떤 역할을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드러난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식의 잘못된 행동만으로 부모를 무조건 비판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위 기사 내용은 사족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굳이 넣지 않아도 되는 말이었죠. 하지만 ‘학폭 가해자’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그 당사자가 누구이든 매도되는 일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충정’을 보여주고자 기사에 일부러 넣었던 것입니다.
‘한동훈’ 이름 외치며 ‘갑툭튀’한 곳은 바로 국민의힘
그런데 뜬금없이 ‘한동훈’이란 이름 석자를 외치며 나선 곳은 바로 국민의힘입니다. 이 보도자료를 내는데 한동훈 위원장도 간여했다면, 한 위원장도 뜬금없는 행동을 한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걸 시쳇말로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라고 하죠.
강 의원 보도자료나 제 기사 어디에도 ‘한동훈’의 ‘한’자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보도자료에서 “강민정 의원은 인터넷매체 '오마이뉴스' 윤근혁 기자와 공모하여,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의 아들이 학폭에 연루된 사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2차례에 걸쳐 한동훈 위원장 및 아들에 대한 허위사실을 공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불성설입니다.
“강민정 의원이 윤근혁 기자와 공모했다”는 주장도 말이 되지 않습니다. 해당 기사 대부분은 강민정 의원이 낸 지난 3일자 보도자료를 담는 수준이었습니다. 국회 교육위 소속 의원이 수백 명의 기자에게 보낸 보도자료를 기사로 보도한 것인데, 이게 무슨 공모입니까?
새로운 사실을 하나 밝히자면 강 의원이 지난 3일에 보도자료를 낸 까닭은 사전투표일에 맞춘 것은 아닙니다. 강 의원은 서울시교육청 등에 강남 D중 자료를 올해 초부터 요구했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서울시교육청이 답변 시간을 질질 끌면서 지난 2일 오후에야 관련 자료를 보냈고, 강 의원실은 하루 뒤인 3일에 보도자료를 낸 것입니다.
솔직한 펜은 칼·몽둥이 보다 힘이 세다는 믿음으로…
상당수의 ‘민완(민첩하고 영리한) 기자’는 특정 사건에 대해 의원실과 공조하기도 합니다. 기자가 기관에 요구할 자료 내용을 의원실에 부탁하고, 의원실이 이를 수행하는 것이 보통이죠. 이것은 수십 년째 이어온 기자업계 관행입니다. 그런데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번 강 의원실의 강남 D중 관련 자료 요구 내용은 제가 단 한 건도 미리 부탁한 게 없습니다. 제가 ‘민완 기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런데 이런 저를 놓고 공모라니, 혀를 찰 노릇입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4일 광진구 자양동에서 지원유세 중 김병민 광진구갑 후보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은 보도자료에서 “허위 사실 유포를 통해 더러운 정치 공작질을 했다”고 주장했는데 이런 주장을 하려면 강 의원 보도자료와 기사 내용에서 무엇이 허위 사실인지 밝혀야 합니다. 게다가 ‘더러운 정치 공작질’이라니요? 교육기자가 학폭 신고 사건을 부적절하게 처리한 학교에 대해 비판하는 교육기사를 쓴 게 ‘더러운 공작질’로 보입니까?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부처가 보이는 법이고, 공작을 업으로 삼는 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공작질만 보이는 게 아닐까요?
결국 위 기사는 이른바 ‘긍정적인 피드백 효과’를 얻었습니다. 보도를 전후해 서울시교육청이 강남 D중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강남 D중이 학폭 지침을 미숙지”한 사실이 확인돼 학교의 잘못으로 판명난 것이죠. 기자로선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은 것입니다.
물론 국민의힘으로부터 고발을 당한 저로선 골치 아프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검찰정부’라는 곳에서 칼자루를 쥔 정부여당이 ‘허위 사실 유포, 더러운 정치공작질’이라면서 겁박하고 나서니, 겁도 납니다.
국민의힘 관련 인사들은 2021년에도 기자에게 겁박을 한 전력이 있습니다. 김건희 ‘여사’의 한림대학교 출강 ‘허위 이력’ 의혹 기사 단독 보도에 대해서인데요. 당시 윤석열 대통령 예비후보 선대위는 “적절한 후속 조치가 없을 경우 법적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하지만 이 보도는 적확하고 정확한 보도였다는 게 곧 드러났고, 당시 선대위는 더 이상 으르렁거리지 않았습니다.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을 ‘대파’한 영국의 웰링턴 장군은 다음처럼 말했다고 하죠.
“무서운 것을 무섭지 않다고 하는 것이 용기가 아니다. 무서워도 해야 할 일을 반드시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진짜 용기이다.”
교육기자인 저는 검찰 권력이 겁을 줘서 무섭더라도, 우짜든동 교육기사를 양심에 따라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솔직한 펜은 몽둥이나 칼보다 힘이 세다고 생각하기에….
출처 : 사전투표 첫 날, 국힘에 고발당했습니다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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