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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
계시록은 어떤 책인가? (계 1:1-3)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말씀 드리기 전에 심을철 목사님이 작사하신 요한계시록 대지가를 소개합니다.
(곡 270장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밧모섬 축복의 주의날, 요한이 묵시를 받았네, 읽고듣고 행하는 자는, 주앞에 복있는 자로다'
(후렴) 주님이 오신다. 흰예복 입고주 맞으라. 주님이 오신다 등불을 켜들고 맞으라.
계시록 강해는 먼저 사역자들에게 무장시켜 각 강단에서 전파해야 할 말씀이기 때문에 대중에게는 절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ㄱ목사님이 교역자들이 많은 자리이기 때문에 계시록을 하라 하셔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준비해 보았습니다. 계시록강해는 약 250회 5년간에 걸쳐 했는데 오늘은 계시록이 무엇인지 단 한 번으로 줄여서 전체적으로 말씀드리려고 하는데 기술적으로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한국교회 목사님들은 계시록에 관심이 많습니다. 계시록강해서만 1000권이 훨씬 넘게 나왔다고 합니다. 그만큼 논쟁이 크다는 말이기도 해서 부담감도 없지 않습니다. 부탁드리는 것은 좀 딱딱하거나 다소 공격적일지 모르지만 잘 들어 주시고 잠시라도 자신의 주장이나 관념은 내려놓으시고 베뢰아 교인들처럼 과연 그러한가 하고 성경을 상고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계시록 해석에서 중요한 점은 1. 복의 책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자꾸 복이 있다 복이 있다고 하니까 복 있나 보다 하고 별로 복되지 않았다면 아직 계시록의 알밤을 까먹어 보지 못한 것입니다.
복이 무엇일까요? 계시록에 7복이 나오는데 모두 신령한 복입니다. 예수 믿어 구원 받는 것이 복이고, 행실의 두루마기를 빨아 하나님이 온전히 함께 하시는 것이 복입니다. 이런 구체적인 가르침과 복이 자기 교훈이 아니라 계시록 해석에서 나오지 못한다면 계시록을 더 봐야 합니다.
2. 인봉된 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계22:10에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언제부터? 2000년 전 요한이 계시를 받던 초대교회 때부터입니다. 그런데 혹자는 ‘이제까지 열리지 않던 계시록이 말세 핵무기가 등장함으로 비로소 해석되게 되었다’식 따위로 말하는데 잘못된 해석입니다. 초대교인들이 핵무기나 바코드를 어찌 압니까? 현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과학이 악용된다면 거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계시록은 초대교인들도 다 알 수 있는 말씀이고 모든 시대에 다 알 수 있는 말씀, 그 안에서 해석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3. 반드시 속히 될 일입니다(1절). 이 속히 될 일이 무엇이냐에 따라 계시록이 어떤 책인지 결정짓습니다. 속히 될 일이 다가올 세속적 역사일까요? 인간이 타락할 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이 급하셨던 일이 무엇입니까? 죄인의 구원과 성도들의 구원의 완성입니다. 빌1:6에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했습니다. 사9:7에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구속사입니다. 온전한 믿음 안에 세우지 못하고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서에 불과하다면 성경이 정경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계시록에 다가가려면 우리의 관념이 바뀌어져야 합니다.
4. 재림에 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계22:7에 “내가 속히 오리니”(계22:7) 그런데 여기 “오리니” (에르코마이)는 원문상 현재형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은 장차도 오시지만 현재에 임하실 주님을 강조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운동이고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입니다. ‘먼 하늘 이상한 구름만 떠도 행여나 내 주님 오시는가 해’ 하는 갈망도 좋지만 지금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예수님께도 관심 가져야 합니다. 계시록이 성령운동의 교본이 되지 못한다면 아직 해석되지 못한 것입니다.
5. 더해서도 안 되고 빼서도 안 됩니다. 더하면 기록된 재앙들을 더하실 것이라. 기록된 재앙이란 기록된 문자 그대로의 재앙을 가리킵니다. 계시록 설교 들으면서 ‘왜 우리가 이 시대에 태어났나 큰 일 났다’는 두려움을 느낀다면 계시록을 문자 그대로 보고 인간의 상상을 더했기 때문입니다. 교훈은 문자해석도 가능하지만 상징이나 비유는 그것이 의미하는 대로 해석해야합니다. 자의로 해석하지 말아야 합니다.
반대로 한 마디라도 제하면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여기에 계시록이 어떤 책인지 중요한 힌트가 숨어 있는데 그 내용 하나하나가 천국복음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에 계시록의 힌트와 해석의 힌트가 들어 있습니다. 계시록은 비유와 상징으로 어떤 것을 다각도로 묘사하는데 묘사만 하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르쳐 주지 않기 때문에 그 자료를 힌트 삼아 스므고개하듯이 해석해야 합니다. 이 때 99가지가 맞아도 한 가지라도 부합하지 않으면 그것은 정답이 아닙니다.
계시록은 모든 시대에 주어진 책이고, 기괴한 표현이 많지만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성경에서 한 번씩은 묘사했던 것들이고, 따라서 세상 사람들에게만 비밀이지 성경을 안 사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 계시록입니다. 그렇지 않고 육신적 상상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여전히 인봉된 책으로 남게 된 것입니다.
서론에서 해야 할 말씀이 많지만 생략하고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계시록이 뭐냐? 계시록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성화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온전하게 되잖아요. 이처럼 예수님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먼저 우리 영혼이 구원 받고 더 잘 모셔 들이면 더 온전하게 되고 또 장차 재림하시면 우리 육체까지도 영광의 형체로 변화하게 됩니다.
지금 하나님의 관심은 죄인이 회개하여 구원 받는 것과 나아가 성도들이 구원의 완성인 성화와 영화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 1장부터 마지막장까지 곳곳에 그리스도의 재림과 아울러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성화의 복음이 다각도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읽고 듣고 행하는 자가 복이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계시록 1장부터 22장까지 간단히 터치하면서 무엇을 말씀하신지 넘어가고자 합니다.
계시록의 내용을 분해하면 1:1-8은 머리말입니다. 요한이 받은 계시와 축복과 인사가 나타나 있는데 단순히 축도와 인사가 아닙니다. 그 수식하는 내용 속에 계시록이 무엇인지 그 내용과 목적과 주제가 암시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도 나타나는데 거기에도 계시록이 어떤 책인지 힌트가 나타나 있습니다.
1장은 좀 자세히 하고 나머지는 간단히 짚고만 넘어가겠습니다. 1장만 해도 복음의 냄새가 물씬물씬 나고 있습니다. 1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1절)는 말씀도 막1:1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하신 말씀을 연상시키고, 계시란 말도 그렇습니다. “계시”란 ‘숨은 것을 드러내다’는 뜻인데 롬16:25에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이제는 나타내신바” 된 예수님에게 이미 쓰였던 말씀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계시의 전달과정을 보여주는데 예수 안에 주셨다는 것 형태가 늘 쓰인 복음의 형식입니다. 예수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셨습니다. “반드시 속히 될 일” 성경에 절대성을 부여하는 사건은 오직 구원의 사역밖에는 없습니다. 여로보암2세가 아무리 나라를 부강하게 했어도 성경의 세속사의 관심은 몇 줄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속히 하실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온전케 하시는 일입니다. 이런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속히 오리니”(계22:7) 여기 “오리니” (에르코마이)는 원문상 현재형입니다. 복음의 시제는 현재형입니다. 현재 왜 오십니까? 은혜 주시려고, 그래서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라. 지금 주님을 믿음과 사랑으로 더 영화롭게 모셔 들임으로 더 온전하게 되고 재림의 주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2절은 계시록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보여줍니다. 계시록이 다른 성경과 같이 복음을 담은 성경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3절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계시록이 다른 성경과 같이 예수를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은혜가 되고 복이 됩니다. 이 복음의 진수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때가 가까움이라" 는 말씀도 막1:15에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신 말씀이 연상되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복음서의 양식이 계시록에 수없이 엿보입니다. 1-3절만 봐도 계시록이 어떤 책인지 우리에게 풍겨주고 있습니다.
4-5절은 요한의 축복인데 삼위일체 언급 속에도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복음으로 담겨있습니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 무엇하시기 위해서? 구원하시고 온전케 하시기 위해서.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 일곱 영도 온전케 하시는 성령이라는 의미입니다.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즉 예수를 주로 높일 때 땅에 속한 사람은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변화되고 은혜와 평강이 임합니다.
5-6절은 영광을 예수님께 돌리는 내용인데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시고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아 주심 등 모두 구속사적인 내용입니다. 어느 한 군데 복음 아닌 곳이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이 이루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감사 찬양할 것밖에 없습니다.
7-8절에는 오심에 대한 말씀입니다. 왜 오십니까? 하늘에 속한 사람 만드시기 위하여, 살전4:17에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알고 보면 재림만이 아니라 예수 영접하는 순간부터 우리 영이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됩니다.
9-20절까지는 요한의 간증입니다. 주의 날에 성령으로 입신되어 나팔소리 같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을 보았는데 나팔도 복음의 상징이려니와 그 모습 하나 하나가 우리 죄를 사하시고 온전케 하시는 대제사장이요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2장과 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교회를 온전케 하시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 교회의 영적 수준에 맞게 온전케 하시는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7교회의 장단점을 지적하시며 잘한 교회는 더 잘하도록, 못한 교회는 돌이켜 회개하라 말씀하십니다. 회개하라. 온전하라. 성화를 강조하고 계십니다.
4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4장은 천상의 예배의 모습인데, 단순히 천상예배를 넘어 구속사역의 본부로서 하나님의 사랑과 의지와 은혜와, 네생물을 통해서 보여주듯 섭리와 환경, 그리고 24장로의 찬양에서 구원은 오직 예수 공로이며,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주셨음을 믿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신득의의 진리와 그것을 믿음으로 누리는 방법이 정확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5장은 책과 인봉을 떼시기에 합당하신 어린 양 예수에 대한 말씀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메시아가 오신다 정도의 성경을 희미하게만 알아서 마치 인봉한 책과 같았습니다. 이걸 해석하지 못하면 인류에게 불행입니다. 그래서 요한이 크게 울었습니다. 그러나 구속사의 주인되신 어린양 예수께서 다 떼십니다. 어린양은 대속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 성경은 곧 내게 대하여 하신 말씀이라” 하신 것처럼 예수로 해석하고 구속사로 해석할 때 성경이 열린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고후3:14에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그랬습니다. 계시록도 예수에 관한 책입니다. 이상하게 접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6장은 뭘까요? 일곱인을 떼시는 장면으로 예수님을 통하여 예수로 해석함으로 성경이 열리는 장면입니다. 두려운 재앙들이 많이 나타나는데 성경의 진리가 열리면 무지와 불신에게는 재앙이 되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시 10재앙이 임하여 애굽과 그 신에게 재앙이 된 것과 같은 표현입니다. 선지서에 나타난 초림 성령강림 재림의 예언도 전쟁의 배경으로 주어집니다.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라 했습니다. 악에게는 재앙이 되기 때문입니다.
7장에는 144,000이 나오고 인치는 사건이 나타납니다. 인봉을 떼셔서 성경이 열리니 예수를 알고 예수를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유대인들은 성경을 읽어도 예수가 메시아인 줄 모릅니다. 신약은 인정하지 않고 구약에서 메시아 장을 다 빼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열려 예수를 알게 되면 유대인들이 예수 믿어 하나님의 것으로 인침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12지파가 나오는데 유대인을 의미할 뿐 아니라 넓게는 예수가 구주이심을 받는 모든 만인에게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그래서 7:9에 능히 셀 수 없는 흰옷 입은 무리가 나타납니다.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이라 해서 연단을 통해서 예수 믿게 되는 것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 연단은 이방인 그리스도인에게도 동일하게 있는 필수적인 성화의 방편입니다.
8장부터는 나팔재앙이 나타납니다. 나팔은 복음나팔입니다. 일곱 인으로 성경이 열렸으니 다음은 그 복음이 전파되어야겠지요? 그래서 순서가 나팔재앙입니다. 누구의 말대로 동일한 사건의 반복이 아닙니다. 이렇게 계시록이 복음의 주제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 복음의 나팔이 울려 퍼질 때도 역시 두려운 사건들이 많이 나타나는데 불신앙 완악함 죄악 세상 마귀 등에게 재앙이 내려지는 장면을 그렇게 묘사한 것입니다. 우리 속의 악이 심판을 받습니다.
9장에는 황충재앙이 나타납니다. 말씀을 받았지만 복음을 확실히 모르거나 복음에 확실히 서지 못한 율법적 심령이 당하는 고통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리고 9:13의 유브라데 네 천사는 오순절과 같은 성령부흥운동을 말씀한 것입니다. 언젠가 이걸로 설교로 한 적이 있었는데 계시록에 성령의 대부흥운동이 빠질 리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계시록이 부흥운동의 교과서가 될 수 있습니다.
10장의 작은 책은 복음전도자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땅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려면 주의 종들이 진리로 변화되고 손 안에 집히듯 진리를 파악해야 하고 먹어버리듯 완전히 소화해서 전달해야 합니다. 발음도 좋아야 하고 음향도 좋아야 합니다. 전달이 안 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 다음 11장에 두 증인이 나오는데 능력 받은 주의 종들을 의미할 뿐 아니라 구원을 각인에게 적용시키시는 성령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고 예수와 함께 하늘에 앉히시는 성령의 그 은혜를 오묘하게 서술한 것입니다.
12장에서 해를 옷 입은 여자는 무엇일까요? 영광스러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힌트만 드리고 넘어갑니다. 13장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은 무엇일까요? 인간 육체의 비밀입니다. 육체는 짐승과 같아요. 그럼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무엇일까요? 세상과 그 정욕입니다.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을 부추기듯이 세상이 육체를 부추겨 욕망에 빠지게 합니다. 틀림없는 진리입니다.
14장에는 승리의 144,000, 세 천사의 공중복음,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 예수 안에서 무너진 세상, 세상이 주는 영적 고통, 주 안에서 죽은 자의 행복, 그리고 두 종류의 추수가 나옵니다. 패역한 세상에서 벗어나 천국의 알곡이 되고 온전해지라는 것입니다.
15장의 유리 바닷가에서 부르는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와 7대접재앙의 준비인데 대접이 무엇일까요? 고난입니다.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징계의 연단입니다. 인재앙과 나팔재앙으로 말씀을 주셨지만 믿고 순종하지 않으면 연단을 주실 수밖에 없습니다. 택하신 자를 고난으로 온전케 하시는 징계를 시사하는 말씀입니다.
16장부터는 대접재앙이 전개되는데 괴물 같은 우리 악이 변화되는 과정입니다. 17장은 세상을 의미하는 큰 음녀가 심판을 받고, 세상이 심판을 받으니 사망도 심판을 받아 두려움이 없어지고, 육체까지 영성이 들어가 세상 따르지 않고 열심을 다해 신앙을 돕는 신앙의 성숙이 이뤄지고, 18장은 세상을 의미하는 바벨론이 무너지고, 이렇게 우리 안에서 세상이 사라지니까 무슨 일이 생깁니까?
19장에 어린 양의 혼인잔치가 열립니다. 세상을 말끔히 제거하고 하나님만 사랑해 보세요. 그 때부터는 가슴이 부푼 영적 신혼이 시작됩니다. 이 혼인잔치는 역사의 종말에도 있겠지만 지금도 믿는 우리에게도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우리는 만왕의 왕 예수님을 대장으로 모신 하늘의 백마 탄 군대로서 승리자가 됩니다.
20장에서는 천년왕국, 문자적으로 오리라고 믿지만 무천년설로 보면 예수 안에서 성령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킵니다. 21장에는 새 하늘과 새 땅, 장차 나타날 천국이지만 또한 새 예루살렘이 어린 양의 신부라는 점에서 성도의 변화된 영혼과 육체를 가리킨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22장은 재림의 약속과 아울러, 책을 인봉하지 말라. 두루마기를 빨아라 즉 계시록의 주제인 성화에 대해서 마지막까지 짚어주십니다. 그리고 성령과 신부의 초청 등 계시록의 총 결론이라 할 수 있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역자 여러분!
여러분이 배워야 양들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계시록은 교역자들에게 먼저 전하고 싶습니다. 계시록에 이렇게 많은 복음의 힌트가 나와 있는 것 이제 아셨죠. 계시록이 어떤 책인가만 알아도 계시록을 함부로 해석하는 일이 없으리라 믿습니다. 벧후3:16에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했던 것처럼 계시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계시록이야말로 교훈과 비유와 상징으로 묘사된 예수의 복음이요, 신앙훈련서요, 성경을 총망라한 종합판이라는 믿음 가지고 계시록을 통해 더욱 온전한 믿음을 이루어 나가는 복된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