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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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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7년 발생한 KAL858기 폭파사고의 범인 김현희는 체포 후 자필로 기록한 진술서에서 “공작원을 최고의 명예로 생각해 7년6개월 동안 공작원 교육을 받았고 수령님의 위신을 지키기 위해 KAL기 폭파 후 자살을 기도했다”고 밝혔다고 일간스포츠가 8일자로 보도했다.
일간스포츠에 따르면, 김현희는 자신이 공작원이 된 것은 자신과 부모님의 뜻이 아닌 당의 일방적인 명령이었다고 밝혔으며, 공작원을 최고의 영예로 생각해 7년6개월 동안 산 속에서 홀로 외롭게 지내면서 그리고 긴 세월 참고 견디기 어려운 고된 훈련과 육체적 훈련을 받으면서 자신의 청춘도, 생명도 다바쳤다고 말했다.
김현희는 “공작원으로 선발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여받은 혁명 과업이 ‘KAL기를 폭파하라’란 임무였다”며 “KAL기를 폭파한 후 바레인 공항에서 경찰에 붙잡혔을 때 독약 앰프를 깨물고 자살을 기도했는데 이는 위대한 수령과 지도자 동지의 권위와 위신을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그는 KAL기 사건에 대해 모든 것을 털어놓았던 것에 대해 “대한민국에 첫발을 디딘 후 보고 들었던 것이 북한에서 말한 것과 다른 것이고 그때 내가 큰 죄를 지은 것을 깨달았고, 죄책감이 생겨났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만일 영혼이 있다면, 이 세상에선 죄만 짓고, 죽은 후 영혼으로라도 반성하며 선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자필서에서 김현희는 혁명적 인간이 된 이유를 북한세뇌교육에서 찾았다. “아버지가 쿠바 주재 북조선 대사관에서 근무했던 관계로 어릴 때부터 쿠바에서 살았다. 그때 처음 배운 말이 사탕과 간식을 받아들고는 김일성 초상화를 향해 ‘아버지 수령님 고맙습니다’는 인사말이었으며, 우리말과 글을 익히기 전에도 ‘김일성은 민족의 태양’, ‘남조선은 미제의 식민지 앞잡이다’는 교육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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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희 자필진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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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같은 세뇌교육으로 “아버지와 같이 쿠바 해안에서 놀 때 해안 저편에 있는 미제의 땅으로 흘러가면 어쩌나 하고 어린 가슴을 조이며 겁에 질려 했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될 정도로 미국에 대한 증오심을 갖게 되었다”고 전했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그는 어릴 때 김일성에 대한 추억에 대해서도 “텔레비를 통해 김일성을 보거나 목소리를 들으면 흠모의 정과 감격의 눈물이 저절로 흘렀고, 1호행사(김일성이 참석하는 행사)에 참석, 김일성의 모습을 보게 되면 다른 참석자들과 같이 발을 구르며 열광했으며 집에 돌아와서도 오랫동안 그 모습이 눈에서 떠나지 않기를 바랬다”고 밝혔다고 신문은 전했다.
KAL858기 폭파사건은 1987년 11월29일 바그다드에서 서울로 가던 대한항공 858편 보잉 707기가 미얀마 근해에서 북한공작원에 의해 공중폭파된 사건이다.
사고기는 이라크의 바그다드를 출발해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아부다비에 기착한 후, 다시 방콕에 기착하기 위해 비행하던 중이었으며, 기내에는 중동에서 귀국하던 해외근로자가 대부분인 한국승객 93명과 외국승객 2명, 승무원 20명 등 115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수사 역량을 총동원한 정부는 이 사건이 김현희(일본명 마유미)가 일본인으로 위장한 북한대남공작원 김승일과 함께 술로 위장한 액체폭발물(PLX·시한장치가 돼 있었음)을 기내에 두고 내려 858기를 폭파시켰다고 공식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