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구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또한 안보관광지인 제 4땅굴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북한이 남침용으로 파놓은 땅굴은 파주 1,3 땅굴과 철원의 2땅굴 그리고 양구의
4땅굴까지 네곳뿐이다. 물론 비공식적으로는 이 숫자보다 많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땅굴들이 지금도 군사분계선 근처에 존재하거나 파고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북한이 아마 세계에서 땅파는데는 두더지 못지 않은 재주를 지녔으리라 생각해본다.
땅굴아니면 바다밑으로 침투하는 그 암흑본능을 언제쯤 멈출 수 있을지는 그들만이 알겠지.
오늘 방문한 곳은 1990년에 발견된 4땅굴.
인근 을지전망대가 있는 가칠봉의 바로 아래 지하 깊숙한 곳에 있다. 이곳 4땅굴을 발견하고
땅굴을 탐지하면서 탐지견이 군인장병 15명을 살렸다고 한다. 북한이 땅굴이 발각되면서 설치해놓은
지뢰로 인해 먼저 들어간 탐지견이 고귀한 희생을 했다. 탐지견의 목숨이 아깝지만 만약 군인들이
희생당했다면 대단히 큰 사건이었을 것이다.
제 4땅굴이 지금까지 발견된 땅굴중에서 가장 갱도가 넓다거나 긴것은 아니지만 북한이 파놓은 땅굴로
들어가는 입구가 마치 둥근 터널과 같이 넓어서 눈에 띄는 모습이다. 입구에서 남한이 북한의 땅굴까지
만들어놓은 지하갱도를 따라 300여m 정도를 가면 북한이 뚫어놓은 땅굴로 들어가는 둥근 캐노피가
씌워진 전동모노레일을 타고 더이상 갈수없는 남방한계선까지 같다가 다시 뒤로 역주행해서 되돌아오는
조금은 심심한 코스이다. 파주의 제3땅굴이나 철원의 2땅굴에 비하면 좀 단순하고 볼거리가 없는 듯하다.
땅굴로 들어가는 길 입구에는 전적비와 구식전투기, 장갑차 등이 있는 넓은 안보공원이 있다.
물론 이곳도 민통선 안쪽에 있기에 양구통일관에서 출입허가를 받아야 한다.
다른 땅굴에 출입하기 위해선 안전모가 필수인데 이곳은 안전모를 쓸 필요가 없다.
이곳은 전동차로 들어가니 그런 불편은 없다. 이곳은 가칠봉 을지전망대 지하 군사분계선을 넘어
약 1,028m 지점까지 파고 들어온 곳에 있다. 땅굴 입구까지 DMZ에서 1km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이다.
너비 1.7m에 높이 1.7m 지하 145m 깊이에 길이는 무려 2km에 이른다. 이땅굴로 인해 북한의 남침야욕과
서부나 중부전선뿐이 아닌 동부전선까지 남침용 땅굴을 파왔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땅굴 입구를 지나 지금의 터널을 뚫는 드릴쉽같은 거대한 기계로 둥근 땅굴 연결용 진입갱도를 만들어
놓았는데 길이가 300여m에 이른다. 입구에서 아래로 이런 터널을 걸어가면 좁은 북한의 남침용 땅굴과 만난다. 땅굴이라 그런지 일년 연중 일정한 온도가 유지되어 겨울에는 훈훈하고 여름에는 선선하다고 한다.
땅굴에 들어서자 기분 나쁜 습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는 듯하다. 커다란 터널을 지나면 북한이 뚫어놓은
땅굴로 들어가는 모노레일이 기다린다. 한명씩 타는 이런 전동차를 타고 금새 종착지에 다다른다.
지하 150여m 지점에 이렇게나 거대한 땅굴을 판 북한의 집념과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지금도 남침의 야욕을 불태우고 있는 북한은 조금 더 평화로운 방법으로 하루바삐 나서길 기대해 보지만
쉽지는 않겠지. 전동차가 출발한지 몇분도 안되어 안내하는 병사가 설명해주는 곳에 이르러
잠시 땅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내 다시 왔던곳으로 뒤를보며 이동한다. 역방향으로 어두침침한
땅굴을 달려가는 기분이 묘하다. 이곳이 한계선이라서 더 이상 운행할 수 없단다.
땅굴을 둘러보고 나오니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어 땅굴을 보고 온 여행객의
마음을 감상에 젖게 만든다. 가을도 얼마 안된것 같은데, 벌써 단풍을 떨어뜨리는 강풍과 함께 온 가을비라니.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다.
땅굴로 들어가는 입구 왼편에 늠늠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독일산 쉐퍼트인 대위 헌트.
땅굴 소탕작전 당시 탐사견으로 투입되었다가 북한군의 수중지뢰를 밟고 작렬하게 전사했다.
그의 희생으로 작전에 투입되었던 분대규모의 병력들이 무사히 빠져나와 생명을 구한 공으로
이렇게 입구에 그를 기리는 동상과 추모비를 세우고, 군견으로는 소위란 높은 계급을 추서받았다.
물론 외국에서도 이런 사례가 비일 비재하지만 어둠속에서 동료였던 병사들을 뒤로 한채 산화한
그는 열군인 못지 않은 용맹과 희생정신의 본보기로 기억된다. 그리고 훈장까지 받은 견이니까.
개만도 못한 사람들이 많은 시대 이런 충견한테 가르침을 받아야겠다.
양구를 지키고 있는 21사단 백두산부대의 안보전시관이 4땅굴 옆에 자리하고 있다.
땅굴만 봤으면 아쉬움이 남겠지만 이런 전시관이 있어 그나마 작은 위안을 삼는다.
한바퀴 돌아보는데 20여분이면 족하니 꼭 둘러보길 바란다.
이곳 4땅굴과 함께 양구지역의 치열했던 전쟁의 생생했던 기록들을 담고 있다.
전쟁중에 습득한 적의 살상장비인 포탄과 지뢰등이 전시실 내에 녹이 슨채 놓여있다.
이런 무기들이 치열했던 전장에서 얼마나 많은 소중한 생명을 죽게 만들었을지.
6.25 전쟁시 국군과 북한군이 사용했던 군수품과 무기류가 한곳에 전시돼있어 서로를 비교해 볼 수 있다.
지금이야 이런 총과 무기들이 박물관에나 있겠지만 당시만 해도 전력적으로 한참 열세에 있던 한국이었으니.
양구지역의 펀치볼을 비롯해, 가칠봉, 도솔산, 크리스마스고지 등의 치열했던
6.25전쟁의 격전지에서의 전투사를 설명과 자료로 보여주고 있다.
전시관 한켠에는 북한의 대남도발의 역사에 대해 판넬을 이용해 보여준다.
육해공 어느곳이나 북한은 다양한 방법으로 도발을 해왔다. 최근에는 남침에 유리한 해상으로 넘어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평화로운 지금이지만 호시탐탐 남침야욕을 불태우는 우리나라는 세계유일의
분단군가로 남아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통일의 길을 아직 멀고 먼 첩첩산중처럼 보인다.
파주의 1땅굴에서 가장 최근 발견된 양구의 4땅굴까지 휴전선 전역 155마일에 걸쳐
확인, 미확인 땅굴이 지하 깊은곳 도처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재래식장비와 폭탄을
이용해 비밀스럽게 땅굴을 파고 있을지도 모를일이다.
최전방 북녁땅이 한눈에 보이는 비무장지대 철책에는 지금도 부릅뜬 눈으로 강건하게 경계를 서고 있는
대한의 남아들이 서있다. 이곳에는 양구지역의 전투지역과 안보관광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모형도 있다.
모형 뒤로는 철책 앞쪽 군사분계선을 쳐다보며 근무하는 병사가 보인다.
양구의 평온하던 마을이 비극의 전쟁의 역사의 한가운데로 기록됐던 펀치볼의 대형 사진이 한쪽에 걸려있다.
어서 빨리 이곳 해안면 펀치볼이 안보관광지가 아닌 통일된 조국의 만남의 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제 4땅굴이 발견된지 이제 20여년이 지났다.
더 이상은 이런 땅굴이 발견되어 국민의 불안함이 커지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