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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 여행1 - 친꿰테레에서 피사에 도착해 아르노 강을 건너 사탑에 이르다!
5월 16일 아침에 이탈리아 서북부 리구리아 해안 의 5개 예쁜 해변 마을 친 꿰테레
의 첫 마을인 몬테로소 마을에서 기차를 타고는 다섯 번째 마을인
리오 마조레 Rio Maggiore 에 내려서는 마나롤라 로 가는 예쁜 해변길을 산책 합니다.
그러고는 우린 리오마조레 역 에서 12시 51분 로컬 기차를 타고는 동쪽으로
달려서 불과 6분만에 라 스페치아 La Spezia Centrale 역에 내립니다.
영어 잘하는(?) 처남 에게 피사 로 가는 ES 와 EC, IC 기차 중에 각기 예약 필수 여부 를
물어보랬더니 피사행 시간표 만 적어왔네요? 역무원이 영어를 못한다기 보다도 인간은
선입견 을 갖고 있으니“피사”라는 말만 듣고는 "기차 시간" 을 물어보는줄 알았나 보네요?
13시 07분 유로스타 ES 기차는 13시 50분에 피사 PISA 에 도착하지만 유레일 패스 가
있어도 좌석 예약 을 해야 하는지라 13시 41분에 출발하는 로컬 기차 를 타기로 합니다.
이 도시 라 스페치아 La Spezia 는 시간이 없어 그냥 거쳐갈 수 밖에
없다만.... 육지로 깊이 들어온 만에 자리한 항구 도시 입니다!
서기 827년 북아프리카 튀니지의 사라센 해적 들은 비잔틴 영토인 시칠리아를 침공 하더니
2년 후에는 치비타베키아에 상륙 해서는 로마로 진격해 성베드로 성당을 약탈 합니다.
그 20년 후에 이슬람 해적 들은 당시 루니 라고 불리웠던 바로 이 도시
라 스페치아 에 상륙해 "도시를 폐허" 로 만든 후에는......
친꿰테레를 거쳐 제노바와 남프랑스 해안 까지 휩쓴 역사를 떠올려 봅니다!
기차는 곧 내륙으로 들어가 들판을 달리는데.... 건너편 서양 처녀애
덩치 둘 은 둘이서 4인석을 차지 하는 것도 모자라 큰 배낭 은
다른 좌석에다 놓았으니....... 무려 5인석 을 차지하고도 태연하네요?
저기 빈 좌석에 작은 배낭이 내것 이고 큰 배낭이 저 서양 처녀 들 것인 데....
우리 부부가 여행을 자주 다니면서 는 것 이 바로 배낭 무게가 준 것 입니다.
배낭 여행의 성패 는 배낭 무게를 줄이는 것 이니...... 이번 여행에서도 9일간
2개국을 여행 하는 처남 부부의 가방이 23일간 6개국을 여행 하며
전기남비와 쌀에다가 부식 까지 챙긴 우리 부부의 가방 보다 2배는 컸으니 말이지요?
이윽고 기차는 피사 시내로 접어들어 작은 역에 한번 서고는 다음 역에
정차하니.... 바로 중앙역인 피사 Pisa Centrale 역에서 내립니다.
그런데 기차 안에서 부터 뭔가 빠트린게 있는 것 같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내리면서 제복 입은 차장 을 보니 아차!
우리 유레일 플렉시 패스 에 "오늘 날자" 를 기록하지 않았었네요?
오늘 아침에 친꿰테레 몬테로소 에서 가까운 리오 마조레 까지 로컬기차 를 탄지라
소홀히 한 것이.... 라 스페치아에서 피사 오는 기차를 타면서도 "날자" 를
적을 생각을 못하고 무심히 넘겨버린 것이라!!! 까딱했으면 큰 벌금 을 물뻔 했네요?
피사역 구내에 있는 옛날 도시국가 시절의 전투도 그림을 구경하고는 광장으로 나가
시원하게 물을 뿜는 분수 를 지나 왼쪽 골목길에서 우리가 예약한 호텔 을 발견합니다.
여기 Via Gramsci 14 번지의 라 파체 호텔 La Pace Hotel Pisa 은 70실짜리 3성급
호텔로 트래블에서 예약 했는데.... 더불룸이 세금 및 아침 포함해 66유로 입니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호텔내 로비나 벽 에 여러 종류의 그림 들이 수없이
걸려 있어서..... 마치 화랑 에라도 온 것 같은 착각 을 일으킵니다.
바닥 에는 피사 가 옛날 중세 시대에 이탈리아의 4대 무역항 이었던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는 양... 캬라벨 범선 이 새겨진 모자이크 도 보이네요?
친꿰테레 를 구경하고 오느라 시간은 벌써 오후 로 접어 들었으니 배낭을 방에 던져
놓고 샤워만 하고는 우리 일행은 미라꼴리 (기적의 광장)에 세워진 두오모며
세례당과 사탑 을 보러... 시내 지도 를 들고는 걸어서 북쪽 아르노 강 으로 향합니다.
만일 피렌체에서 피사에 당일치기 관광 이라면..... 기차역 안의 매점 에서
120분 유효한 1.5 유로 짜리 버스 티켓 을 사서는....
역 광장에서 노랑색 버스 를 타면 10분 가량 걸려 산타마리아 문 앞에 내립니다.
지금 이탈리아 해군기 를 보자면 왼쪽 상단에 베네치아 오른쪽에는 제노바
그리고 왼쪽 하단에는 아말피 상징이 그려져 있고......
오른쪽 에는 "피사" 가 새겨진 것은 옛날에 "4대 해양국" 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슬람 사라센 해적 들이 서기 652년에 시칠리아 섬의 시라쿠사
를 습격한 이래 이탈리아 반도를 약탈 하다가....
서기 829년에는 이탈리아 중부 치비타베키아에 상륙해 로마를 위협 했습니다!
그 20년 후에는 스페인 출신 무슬림 인 베르베르족은 피사 북부
해안에 상륙했는 데, 이 해적들에 대항하면서
피사의 해군력 도 성장해서는 해운 무역국 으로 번영하게 됩니다!
피사 는 해군력의 성장 을 바탕으로 1051년에는 코르시카섬 을 차지하고
1063년에는 이슬람 사라센의 근거지인 시칠리아의 수도 팔레르모 를
습격해서는 약탈한 황금 으로 기적의 광장 에 두오모 를 세웠던 것이지요?
피사 대성당과 피사의 사탑 등은 다른 나라를 습격해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죽인 피묻은
손으로 약탈한 황금 으로 건설되었는데 과연 하나님은 이런 강도질을 반겨 하실른지?
1차 십자군은 항복하면 살려준다는 약속을 저버리고 예루살렘성에서 사람은 물론 이고
네발달린 짐승 까지 모두 죽여 피바다 를 이루었는데 더렵혀진 성지를 피로써 정화 했다나요?
그후 1087년에는 기독교 나라들은 북아프리카의 튀니지 내륙에 건설된 이슬람
사라센의 수도 카이루안 을 습격해서 잡혀있던 기독교도 노예를 구출
하는 작전에 참가하니..... 300척으로 구성된 선단은 로마와 아말피,
제노바 가 참여했는데 그중에서도 피사는 가장 많은 선단 을 참여시켰던 것입니다?
제1차 십자군 이 터키 를 지나 악천고투 끝에 안티오키아를 함락하고 팔레스티나
로 진입하자...... 1099년에 피사 는 가장 빨리 120척의 선단 을
팔레스티나로 파견 하여 십자군의 보급품을 수송 하고 "무역 기지" 를 건설합니다.
제노바 는 이듬해에야 움직여 150척 을 파견하니, 베네치아 도 200척을 파견해
서로 팔레스티나 에서의 "무역 거점" 을 두고 치열하게 다투게 됩니다.
1차 십자군이 험한 육로 로 간데 비해 1190년에 왕들의 3차 십자군 은 배를 이용
하는데..... 당시 제노바 는 프랑스군의 기사 650명과 그 종자 1,300명
및 말 1,300필과 식량 8개월치 수송 등으로 은화 6천 마르크 라는 거액을 챙깁니다.
프랑스왕 필립 은 당시 영국왕 리차드 와 프랑스 동부 베즐레 에서 만나 남하
했는데.... 영국군은 지브롤터로 해서 지중해로 돌아온 자국 함대를
마르세이유에서 승선 했지만 프랑스는 제노바 수군 을 더 신뢰했던 것이지요!
그보다 앞서 신성로마 황제 프리드리히 는 10만 대군을 이끌고 남동진하여.....
터키 로 들어가면서 사라센의 왕 살라딘 에서 편지를 보내
제노바와 베네치아 그리고 피사의 함대 가 자신과 함께 간다고 과시했던 것이라!
우리 일행 4명은 피사역앞 호텔 을 출발하여 걷기 시작한지 10여분만에
피렌체 를 지나 하류인 피사 를 관통하는 아르노강 에 도착 합니다.
넓은 아르노강에는 카약 을 타는 사람들이 보이는 데.... 과거 4대
해운국 중에 하나였던 피사에서 항구가 보이지 않고
해안선이 도시에서 서쪽으로 10km 나 떨어진 것이 매우 의아하네요?
한때 지중해를 제패한 피사의 항구 는 피렌체에 점령된 후에도 기능을
계속했으나.... 아르노강에 홍수 가 져서는 토사(Silt) 가
엄청 떠내려 오고 수로도 바뀌어 "항구가 육지로" 되니 쇠퇴한 것입니다!
이는 터키 반도 서부 해안에 있는 도시 에페소스 를 연상시키는데? 한 때 클레오파트라 와
안토니우 가 다정스레 거닐기도 했던 유서 깊은 항구는 홍수로 인해 토사가 떠내려와
강 하구가 막히자 항구로서의 기능을 상실 하고 습지에 말레리아가 창궐해 망했던 것이라!!!
또 로마의 외항 이었던 좋은 항구 오스티아 도 테베레 강의 토사 로
인해 여러차례 복구에도 그 기능을 상실 하자....
로마제국 은 북쪽에 따로 치비타베키아 항 을 새로 개발했던 것이지요?
피사항 도 제노바와 루카, 피렌체등과의 오랜 전쟁 으로 아르노강의 홍수로 인한 퇴적물 을
제때에 복구하지 못함으로써 항구가 내륙으로 바뀌어 쇠퇴 했던 사실을 떠올려 봅니다.
항구를 복구하는데는 돈과 인력에 시간이 드는데 도시들과 전쟁하느라 때를 놓친 것이지요?
나폴리 남쪽 아말피가 몰락 한후 피사 는 제노바, 베네치아 와 더불어 동방 해상무역의
3대 해운국 으로 오늘날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항해 지도" 는 1207년에 피사인 이
제작한 "카르타 피사나" 인데... 5대 해운국은 라구사(두브로브니크) 까지 포함 됩니다.
이탈리아 4대 해운국 에서 아말피가 탈락한 것은 1131년에 시칠리아 왕국 의
로제르 2세에게 아말피가 정복 을 당해 자치를 잃은후 1135년과
1137년 피사 함대 에게 철저히 약탈당하고 파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말피 는 848년 사라센 함대를 격파한 해군력 으로 동방무역 에 나섰으며 1099년 이웃
살레르노 사람인 제라르도 사쏘 가 예루살렘에 설림한 구호기사단 결성에 재정적
도움을 주었으니 성 요한 기사단 으로 성장했으며 이후 아라비아 상인에 의해 중국
에서 전해진 나침판 을 유럽에서 개량한 것은 1302년 아말피의 상인 이었던 것이지요!
1204년 제4차 십자군전쟁시 베네치아 가 프랑스 기사들과 함께 콘스탄티노플을 함락 하여
비잔틴을 멸하고 라틴제국 을 세워 무역을 독차지 했을때도 불과 2년 후에는
피사 는 외교력을 발휘해 다시 콘스탄티노플에 진출하고 흑해 무역 에 동참했던 것입니다!
아르노 강 을 건너 광장에 이탈리아 독립영웅 가리발디의 동상 이 서 있는 문을
지나 Via Roma 거리를 걷다가 거리의 악사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는... 습관적으로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동전 을 던져 줍니다.
그러고는 모퉁이를 도니 거기에 일부 허물어진 오랜 성벽 을 보는 데......
한 구간은 회색 돌 이고 다른 구간은 붉은 벽돌 이라!
그럼 예루살렘성 통곡의 벽 처럼 여기도 서로 건축 시기가 다른 모양이네요?
성곽 을 끼고 왼쪽으로 난 좁은 도로 를 따라가는데...... 피렌체 처럼 여기도 흑인 행상
들이 줄지어 서서...... 관광객을 상대로 손목시계등 잡동사니를 파는 것을 봅니다.
저런걸 누가 사는 사람들이 있을라나 하는 의아한 생각이 드는데,
유럽에 온지 얼마 안되는 흑인 들이야 제대로 된
직장을 잡을수 없으니...... 밥이나 먹는지 주제넘는 걱정 을 합니다.
즐거운 유럽여행! 함께 나누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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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길잡이★유럽 배낭여행
(http://cafe.daum.net/bpgu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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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보고갑니다
세상일이 생각한데로는 아름다운 천지에요
멋지네요
저게 무느지지 않고 버티는게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