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무기와 미래 전쟁 - 진화 강요받는 견인포병
최첨단 무기 등장과 전쟁환경 급변
크고 무겁고 기동성 제한…가치 급락
많은 운용 인력·느린 발사 속도 약점
미 육군, 전력 완전 도태 계획도 검토
UGV 등과 결합 전투체계 획득 노력
M777 155㎜ 경량곡사포를 사격 중인 미 육군 포병. 출처=미 국방성 홈페이지
누가 뭐라 해도 포병은 전투의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전력상수(戰力常數) 중 하나다. 하지만 최첨단 무기의 등장과 전쟁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포병, 특히 그중에서도 견인포병의 미래에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미 육군 미래사령부의 제임스 레이니(James Rainey) 사령관은 최근 공개석상에서 ‘견인포는 효용을 다했으며 미 육군 내에서 빠르게 도태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으로 견인포병 관련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위협받는 견인포병의 미래
튼튼한 차체, 사거리 연장탄, 명중률 향상 등을 통해 활로를 찾고 있는 자주포병과 달리 발전 가능성에 한계가 명확한 견인포병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대포의 방열에서부터 장전, 발사 후 재장전 및 진지전환까지 일련의 과정을 모두 장병 노동력에 의존해야만 하는 견인포병은 자동화가 가능한 자주포에 비해 속도가 느리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물론 포탄과 장약의 장전과 발사를 자동화하거나 대포 자체에 엔진을 장착해 자력 주행이 가능한 견인포도 등장하고 있지만, 자주포에 비하면 완벽한 대안이라고 하기 어렵다.
여기에 더해 탐색 범위가 확장되고 저렴한 비용으로 장거리 표적을 타격하는 방법이 끊임없이 등장하면서 완벽한 은폐·엄폐에도 불구하고 공격하는 순간 위치가 폭로될 수밖에 없는 포병의 생존 역시 갈수록 취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견인포병조차 신속한 포진지 전환을 강요받고 있으며, 과거와 같이 견인포병을 포진지 한 곳에 고정 배치하는 것은 적에게 손쉬운 먹잇감을 내주는 것과 같다. 굳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사례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이제 현대 전쟁에서 배회폭탄(Loitering munition), 자폭드론과 같은 스마트 무기의 사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 지 오래다. 여기에 더해 첨단기술 확산으로 중동의 테러리스트도 어렵지 않게 장난감 드론에 사제폭발물을 장착한 다음 정부군 혹은 유엔 평화유지군(PKO)을 공격하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미군 사령관의 충격적 발언
이러한 시대 변화로 인해 미 육군은 가까운 미래에 견인포병 전력을 완전히 도태시킨다는 극단적인 계획까지 검토 중이다.
지난 3월 27일, 레이니 사령관은 미 육군 글로벌 포스 심포지엄(U.S. Army’s Global Symposium)에서 미 육군 내에서 견인포병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포병의 자주화는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며, 이러한 시대 변화에 맞춰 미 육군 역시 다종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한 ‘포병의 자주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포 존재 가치 자체는 변함없으며 개인적인 견해라는 전제에도 불구하고 그의 발언은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그의 견해가 원정작전에 특화한 미 육군의 특징일 뿐이며 견인포병의 역할과 중요성은 절대 변함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전문가들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예로 들며 “견인포병의 암울한 미래는 이미 현실의 악몽이며 자주화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견인포병의 도태와 자주포병의 확대는 그동안 미 육군 미래사령부가 수행한 다양한 연구와 실험을 통해 검증된,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맞다며 레이니 사령관의 발언에 동의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견인포병은 그 특성상 운용에 다수의 병력을 필요로 한다는 문제가 있으며, 이것은 견인포병의 취약점 중 하나다. 미 육군 M777 155㎜ 경량곡사포의 경우 7+1명의 포병이 필요하다. 출처=미 국방성 홈페이지
알 수 없는 포병의 미래
포병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군사전문가와 육군 내부에서조차도 포병의 미래와 발전 방향에 대해 다양한 주장이 서로 대립하는 상황이다.
미 육군의 경우 지난 3월 8일, M1299 아이언 선더(Iron Thunder) 자주포 개발계획으로 알려진 ERCA(Extended Range Cannon Artillery)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ERCA는 현재 38㎞ 수준에 불과한 155㎜ M109 자주포의 최대 사거리를 70㎞ 이상으로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2019년부터 진행된 미 육군의 숙원 사업 중 하나였지만 포신의 내구성 문제로 중단됐다.
일부 전문가는 미 육군의 ERCA 중단 배경에 대해 “내구성 문제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며 그 이면에는 포병의 역할과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미 육군은 원거리 표적을 타격하는 데 대포의 순수한 화력과 사거리에 의존한 과거와 달리 다종다양한 지대지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현재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이것은 대포를 활용한 타격을 고집할 명분이 약해지고 있으며 적의 반격 시간 역시 점점 짧아지면서 크고, 무겁고, 기동성이 제한되는 견인포병의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는 추세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대포의 가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적진 후방의 탄약고, 군수품 보급창고, 지휘소 등 적군 전략시설을 타격하는 데 MLRS와 같은 지대지미사일 혹은 로켓무기는 자주포, 견인포와 비교하면 분명한 효과 우위가 있다. 하지만 소대급 이하의 근접전투에서 대전차미사일과 보병용 로켓무기는 화력 과잉이며 대포, 박격포처럼 화력을 집중하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
약점을 극복하라
사전적 의미의 견인포병은 자체적인 기동 능력이 없으며 이동에 차량 또는 인력이 필요한 ‘바퀴 달린 대포를 운용하는 포병’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견인 곡사포나 평사포, 견인식 박격포 등을 운용하는 병력을 지칭할 때 사용하며 ‘대포의 역사가 곧 견인포병의 역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대포는 미사일이나 로켓에 비해 분명한 장점이 있다. 그리고 견인포병은 비교적 저렴한 예산으로 육군이 보유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전력 중 하나다.
하지만 시대는 견인포병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전쟁환경 변화로 인해 견인포병은 급격한 자주화(혹은 기동화)를 요구받고 있으며,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으로 인식되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155㎜ 견인포는 자주포로 완전히 대체될 것이며, 견인포병의 존재 여부에 따라 강대국과 약소국을 구분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견인포병은 자주포병에 비해 획득 및 운용유지비용이 적게 들고 여전히 육군 포병 화력의 절대다수를 구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운용인력과 느린 발사 속도가 약점으로 지적되기 때문이다. 또한 대포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미래에 포병의 범주는 대포는 물론 지대지미사일과 로켓, 그리고 광선무기까지 광범위한 무기체계를 포함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견인포병의 진화는 선택 아닌 필수
레이니 사령관은 앞으로 미 육군이 견인포병의 비중을 줄이는 한편 장갑차, 무인지상차량(UGV·Unmanned Ground Vehicle) 등과 결합한 완전 자동화한 포병 전투체계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발이 중단된 M1299 아이언 선더 자주포의 미래에 대해서도 시험평가를 통해 미 육군의 전력 증강을 위한 올바른 접근법이 아니었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그는 “2023년 미 육군 미래사령부가 진행한 24개의 차세대 무기체계 개발 및 획득 계획 중 유일하게 ERCA만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포와 박격포는 여전히 미 육군의 중요한 타격 수단 중 하나이며, 포병의 사거리 연장 역시 변함없이 추진될 것이라고 확인했다.
실제로 중단된 ERCA는 기존 155㎜ 자주포와 곡사포에서 운용 가능한, 차세대 155㎜ 사거리 연장 탄약을 개발하는 쪽으로 재검토되고 있다. 그의 발언은 ‘보다 현대화되고, 향상된 기동성을 갖춘, 자율적인 포병 전투체계 획득을 추구하는 미 육군의 미래전략’과도 일맥상통한다.
견인포병의 진화를 추구하는 미 육군의 미래전략은 다수의 견인포병 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하며 관심을 두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