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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 3 - 피사의 대성당과 세례당에 사탑을 보고 마르게리타 피자를 맛보다!
5월 16일 이탈리아 리구리아해안의 5개 마을 친퀘테레 의 리오마조레 에서 기차를 타고
라 스페치아 역에서 환승해 피사 Pisa 에 도착해서는 호텔에 체크인후 거리를
걸어 아르노 강 을 건너서 눈 앞에 오래된 성벽 을 지나 피사의 사탑 과 대성당 을 봅니다.
피사 Pisa 는 1119년 부터 15년간이나 북쪽 해운 강국인 제노바와 전투를 벌이면서도
남쪽으로는 역시 해운 강국인 아말피를 약탈 하고 시칠리아왕
로저의 군대를 격퇴 하며 독일황제의 지원하에 나폴리 인근 지배권 을 확보하게 됩니다.
피사의 급격한 팽창 에 위협을 느낀 교황 과 노르만 왕국 및 제노바와 피렌체
연합군이 결성되어 1165년 롬바르디아 전투 에서 피사에 승리한 후
제노바 가 남이탈리아 이권을 차지하니 다급해진 피사는 베네치아 와 협력합니다.
피사와 제노바 진영이 서로 대치하는 중에 1187년 10월에 성도 예루살렘이 이슬람의 손에
떨어졌다는 비보를 접하자... 기독교 세계는 서로 휴전 을 하고 제3차 십자군 에 나섭니다.
무슬림 인 살라딘의 사라센군 에 의해 지중해 연안의 십자군 도시들이 함락
당하자 사라센의 포위 공격을 간신히 버틴 레바논의 티루스 에서
1189년 8월에 남쪽 아코 (이스라엘 최북단)를 탈환하려는 십자군이 출발 합니다.
이슬람이 점령한 아코 를 기독교군대가 재탈환 하려는 전투에서 바다쪽에서 보급을
담당하고 함대로 공격한 세력은 제노바와 베네치아 그리고 피사 였는데.....
이슬람군이 아코항 입구에 쳐놓은 쇠사슬을 끊기 위해 3척의 범선을 모아 일제히
돛대를 올리고 항구로 돌격해 들어간 최선봉은 그중에도 "피사의 해군" 이었던 것이지요?
50년이 흘러 독일 프리드리히 황제의 6차 십자군도 끝난 1238년에 교황 그레고리
9세 가 제노바와 베네치아 를 끌어들여 신성로마(독일) 황제를 파문 에
처하자..... 3년후 기벨린 Ghibelline ( 황제파 ) 당인 피사 는
구엘프 Guelf ( 교황파 ) 당인 제노바 함대를 공격해 25척의 갤리선을 파괴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피사의 전성기는 저물어 1284년 멜로리아섬 전투 에서
제노바에 대패 하니 사르데냐와 코르시카 섬을 잃고 6년후에
제노바는 공격을 재개해 피사항을 철저히 파괴 하고 소금으로 덮습니다.
이는 마치 예전에 로마의 스키피오군 이 카르타고를 함락한 후 다시는 부흥하지 말라고
카르타고 시가지며 성벽을 파괴한후 주민은 노예로 팔고 도시는 소금을 뿌렸던
고사 를 답습함이라.... 해전에서는 패했지만 상업적으로 건재 했던 피사 는
1315년에 몬테카티니 전투 에서 나폴리와 피렌체 연합군을 격파 하고 재기 합니다!
1343년에는 피사대학 을 설립하여 학문의 중심지로 발돋움하는 데,
이후 루카 및 피렌체와의 전투 가 끊이지 않다가
1406년에는 피렌체의 총공격 으로 피사가 함락 되어 속국 으로 전락합니다.
이후 1494년에 프랑스군의 이탈리아 침입 시에 기회를 틈타 궐기해
독립을 회복 했으나.... 내분과 피렌체의 집요한 공격 을
견디지 못하고 드디어 1509년에 재정복 되어 피렌체 에 속하게 됩니다.
피렌체 는 오랜 숙적 피사를 점령한 이후 1569년에는 토스카나 대공국
으로 발전하는데.... 그럼에도 피사는 문예의 중심지
로서 번창하여 갈릴레이 도 이곳 피사 대학 에서 공부하였다고 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나 미켈란젤로 가 피렌체를 위해 공성 무기 등을
제작한 것은... 피사를 공격 한 1509년의 2차 전투 때 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 때 번영의 흔적 은 여기 기적의 광장 에 대성당과 사탑 이며 세례당과 캄포산토
공동묘지 등..... 유명한 역사적 건축물 들이 화려한 과거를 웅변하고 있나 봅니다.
피사 대성당 을 나와 바로 맞은편에 있는 왕관 인지 아님 투구 인지
그런 모습을 닮은 백색의 건물인 세례당 으로 들어
가는데 꼭대기의 세레 요한의 동상 을 포함하면 사탑 보다 더 높습니다.
1153년에 디오티살비 가 건축을 시작하여 준공 까지 무려 200년 이나 걸렸다는데 아랫부분
은 둥근 아치가 연속되는 로마네스크식 이고 윗부분은 개방형 아치의 고딕식 입니다!
피렌체 에도 대성당 두오모 바로 앞에 세레당 이 있는데 거긴 거리도 가까울뿐더러
포장된 돌 바닥 이었는 데.... 여긴 잔디 광장 이라 좀더 푸근한 마음이 듭니다.
세례당 은 외벽을 우아한 기둥 으로 두른 둥근 건축물로 4개의 문 중에서도 피사노 파
의 화려한 조각 으로 장식한 두오모쪽으로 난 문 이 특히나 아름답다고 합니다.
입장을 하니 내부는 원통형 인 데, 어두운 실내 는 시간이 좀 지나니 눈에
들어오는데.... 천장은 둥근 것이 마치 하늘을 상징 하는 듯 합니다.
중앙에는 자그만 제단 이 있는 데... 세례 받는 이가 저 위로
올라가는 것인지 궁금하지만 딱히 잘 알 수는 없네요?
세례당 ( Baptistery , 洗禮堂 ) 은 이탈리아어 로는
Battistero 인데 원래는 냉수욕탕 을 뜻한다고 합니다.
4세기 부터는 기독교 세례용의 물웅덩이 이자.....
세례성사 가 행해지는 건물을 의미한다네요.
초기 기독교의 세례 는 성인에 대한 침수 세례 였기 때문에........
큰 물통 을 갖추었고, 성당에서 독립된 별도의 건물로 만들어졌습니다.
외형은 팔각형 으로서 내부에는 평방을 받치는 여덟개의 원주가 원 을 이루며,
또 둥근 천장 을 받치는 여덟 개의 대리석 원주 가 줄을 지어 들어서 있습니다.
우리 일행은 벽에 난 문 으로 위로 올라가니
저마치 아래로 세레당 바닥 이 보이는 것이......
마치 로마의 바디칸 성당 에서 엘리베이터 를 타고 올라
다시 내부로 들어가서는 내려다본 모습 이 연상됩니다.
그런데 피사인 들이 유럽에 끼친 참으로 유익한 일 이 있으니.....
"1,2,3,4,5,6,7,8,9,0" 를 "아라비아 숫자" 라고 하는 데,
서기 1200 년경 피사인 이 동방 페니키아에서 배워서는 유럽에 소개 했습니다.
12세기 말에 베네치아에서 복식부기 가 퍼지면서.... 아라비아 숫자는 종전의
로마숫자 I II III IV V VI VII VIII IX X L C D M V 를 대신하였던 것이라?
예를 들어 10,739 를 로마자 로 적으면 XDCCXXXIX 이니 엄청 불편하지요?
그러나 가톨릭 교회 에서는 이교도인 이슬람을 믿는 자들이 사용 하는.....
악마의 숫자 라고 결사적으로 막았으나 퍼지는걸 어찌하랴? 아라비아
숫자의 가장 큰 장점은 무(無) 를 뜻하는 "0" 의 발견이니 인도인 들의 지혜일러나?
피사 보다 더 빨리 동방으로 진출한 해양 도시국가는 나폴리 남쪽의 아말피 인 데...
아말피의 상인 마우로 는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이슬람
교도의 땅 예루살렘 에 순례자를 위한 병원 을 세웠으니 후일 성 요한 기사단 입니다!
성 요한 기사단 은 템플기사단 과 함께 팔레스타인과 예루살렘 왕국 을 지켰으며
13세기에 십자군이 패퇴 후에도 키프로스 를 거쳐 후일.....
로도스와 몰타 에서 이슬람의 서진을 저지해 유럽을 지켰던 방파제 였던 것이지요!
하지만 아말피 는 1131년에 시칠리아와 나폴리를 장악한 노르만인에게 점령 되고
1135년에는 피사의 함대 가 두차례나 아말피를 습격해 약탈 을 하니
4대 해운국에서 탈락한 것이라! 그래도 나침판 을 개량한게 아말피 사람들 인 데!!!
세례당 을 나와 대성당 을 지나 사탑 앞에 이르니 역시나 기념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은데.... 소곤소곤 얘기 하는 잘 차려 입은 일본 여성들
옆으로는 특히나 제스추어 가 큰 중국인 들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 옵니다.
사탑 외부 기둥 이며 장식이 예쁘다는 생각이 드는 중에 온갖 포즈를 취하며 사진 찍으며
행복해 하는 관광객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 사람들은 여기 사탑과 대성당이 탐욕스러운
침략자들이 남의 나라를 침략해 약탈한 피묻은 손으로 건설한걸 알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침략은 나쁜 일이라고 손가락질을 하는데 피사 함대는 1063년에 이슬람
사라센의 근거지 시칠리아의 수도 팔레르모 를 습격해서는 무고한 시민들을 살해 하고
도시를 약탈한 황금 으로 기적의 광장 에 두오모와 사탑 을 세웠는데 유럽 사람들은
이러한 침략 해적질과 그 약탈물로 지어진 성당과 탑을 부끄러워 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관광 마차 를 스쳐지나 산타마리아 문 을 나와서 다시 시가지 로 접어드니 각국어로
인쇄된 관광 책자 가 진열된 가게를 지나...... 붉은색 시티 투어버스 를 봅니다.
거기에 해설 리시버 를 뜻하는 8개국 국기 가 보이는데 리버풀의 비틀즈센터와
에든버러의 고성에서 흔히 보았던 것 처럼.... 쳐다볼 것도 없이
영어, 불어, 독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일본어에 중국어 라.....
그래도 혹시나 싶어 가까이 다가가 국기를 자세히 살펴보니
역시나 8개국은 어김없네요?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쓴웃음을 지으며 돌아서서.... 다시 남쪽으로 길을 걷습니다.
코끼리 투어 차 를 지나 시장하기도 하여 자그만 레스토랑 에서 내놓은 탁자에
앉아 케밥과 피자 한판 을 시키는데, 아는 것이 마르게리타 피자 라....
이번 여행에서 피자 는 스위스의 루가노 호수 리포르마 광장 의 레스토랑
에서 먹어 보고는 이제서야 2번째로 맛보는 것인 데.....
그 외에는 예전에 베로나 에 도착해서 밤에 원형 경기장 아레나 에서
오페라 아이다 를 보기 전에 기다리면서 가장 맛있게 먹은 기억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피자 는 원래 나폴리 지방 에서 유래한 음식이라...... 나폴리식 은
토핑을 듬뿍 얹어 두꺼운 우리나라 피자 와는 달리 아주 얇고 작습니다.
이탈리아 피자는 얇은 반죽 위에 치즈나 소세지, 햄을 살짝 깔아 놓았으니
마치 토핑이 없는 듯이 보이는데.... 나폴리산 토마토 로
만든 시고도 달콤한 소스 에 신선한 모짜렐라 치즈 가 맛을 낸다나요?
맛있는 피자 의 비결은... 첫째가 신선한 재료 로 자연주의를 상징하는 것이요,
둘째가 반죽으로 물, 소금, 효모 및 밀가루 4가지 만으로 반죽하는데,
어떤 효모 를 쓰느냐 여부와 또 장작불로 돌화덕에 구워야 제대로 맛이 난답니다.
밀가루 반죽 을 둥근 막대기나 손바닥으로 눌러 둥글게 펴고는....
그 위에 몇가지 재료 를 올려놓은 다음 올리브유 를 바르고
화덕에서 굽는데..... 화덕도 베수비오 화산의 돌 을 사용한답니다.
화덕을 벌통 모양 으로 만들어 사용하면 적절한 온도 유지가 가능해
불의 에술가 로 칭송 받는다고도 합니다!!!
얇은 토핑 위에 소스를 가볍게 친 나폴리 피자는 바삭바삭하고 맛있습니다.
이탈리아의 피제리아 는 도제식 으로 기술을 전수하는 엄격한 장인정신 을
유지하는 전통적인 아날로그 방식 인 데 비해.....
미국식(우리나라식) 은 재료나 굽는 방식이 이탈리아 식과는 다르기 때문에...
도우와 토핑이 얇으면 불조절 하기가 어려워 타버리니 두껍게 하는 때문에 담백한
맛을 낼수 없으니....... 토핑을 매우 두껍게 하고 피클과 콜라 로 맛을
얼버무리는 것인데 우리나라에도 화덕에 장작불로 은근하게 굽는 피자집 이 있을라나?
1870년대에 어느날 이 도시 피사 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 가 상연된다는
소식을 듣고 이웃 도시 루카의 한 청년 이 걸어서 구경을 왔다고 합니다.
감명을 받은 청년은 후일 "토스카", "라 보엠" 및 "나비부인" 을 작곡한 풋치니 입니다!
즐거운 유럽여행! 함께 나누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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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길잡이★유럽 배낭여행
(http://cafe.daum.net/bpgu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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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피자
되게 맛없더라
하아...... 마르가리타가 말이지요?
풍성하고 넉넉한 토핑을 엊어주는
한국산 피자에 비하면.... 단촐하고
담백하며 먹을게 없지요?
하지만 토핑이 얇은데다가.....
돌 화덕에서 장작불로 구워내니
바삭바삭한 맛은 있지요?
피사에 가보고싶습니다 특히 피사의사탑이 가고싶음
처음엔 기이하게 보입니다!
저 엄청 기울어진 사탑은.......
난 얇고 가벼운 느낌이 들고
구수한 피자 맛이 생각나네요
그렇지요? 배고픈 사람에게야
두껍고 다양한 토핑이 있는
한국식 피자가 더 좋겠지만......
얇아도 바삭바삭한 이탈리아 피자가
식감에 있어서 더 좋다는 사람도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