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안창에 사는 지인의 소개로 조그만 터밭을 얻어 놨다고 한번 보러 오라고 해서
집을 나섰다. 집에서 미리 경전철 시간표를 확인하고 출발 20분전에 나선 것이다.
3일과 8일이 안창 장날이라는데 마침 장날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빽빽히 들어차
앉을 자리가 없었다. 나이가 든 탓인지 전철이나 버스를 타면 먼저 앉을 자리부터 살핀다.
안창역에 도착하여 전화를 했더니 차를 가지고 나오는 데 장날이어서 차가 막힌다고 조금
기다리라고 했다. 잠시후 역 앞에서 만나서 함께 식사를 하러 갔다. 안창 장이 유명하다고 해서
구경도 할겸 장터 안으로 들어갔다. 농산물,해산물,잡화등 옛날 시골 장 냄새가 물씬 났다.
가다보니 1시가 훨씬 넘었는데도 소머리국밥,선지국밥집 앞에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었다.
예전부터 식당에는 사람들이 벅적벅적해야 맛이 있는 집이다. 나란히 있는 식당도 한집은 잘
되고 한 집은 파리를 날린다면 반드시 맛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맛에 대한 신뢰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돈벌이에 대한 욕심보다는 음식을 최고로 만들겠다는 지극한 정성과
손님에 대한 친절이 입소문을 내기 때문이다.충무 할매김밥이나 영천 소머리국밥 등이 좋은 예다.
우리도 장터 국밥을 먹겠다고 길게 늘어선 사람들 뒤에 섰다가 2시가 넘어서야 겨우 자리를 잡았다.
소모리국밥(1만원)과 선지국밥(9천원)을 시켰다. 나는 선지국밥을 시키고 집사람은 소머리국밥을
시켰는데 둘 다 간이 조금 짭잘하고 국물이 진했다. 영천에서 소머리 국밥을 먹어봤다는 어떤 남정네는
소머리를 사흘간 가마솥에서 고와서 우려내어 그 국물에 밥을 넣고 거섭을 넣어 국밥을 끓인다고 했다.
식사를 마치고 지인의 차를 타고 아파트가 늘어선 동네로 갔다. 지인의 아파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야산 초입에 조그만 텃밭이 있었다. 터밭 한켠에는 매실나무가 여남무 그루 서 있는데 손을 보지 않은 것
같았다. 주인이 같은 교회에 다니는데 일 할 사람이 없다고 지인더러 가꾸어 먹을 수 있으면 텃밭으로
쓰라고 내어주더라는 것이었다.
지인이 작업을 하겠다고 차량 뒷 트렁크에 괭이, 삽, 낫, 쇠스랑을 준비해 와 땅을 파고 골을 내었다.
손바닥만한 땅이지만 채소를 심어 반찬을 해 먹을 수 있는 땅이 있으면 얼마나 좋은가.
내가 어릴 때 6.25사변으로 몸채가 불타 버린 텃밭에 고추,가지,소풀, 열무,감자,옥수수,딸기,배추,무우
등을 씨를 뿌려 가꾸었는데 금세 금세 커서 참으로 재미가 있었다.
묵혀 놓았던 땅인지 잡초들이 말라 있고 더러는 새파란 잎들도 보였다. 오래된 폐 비닐돌도 땅 속에
묻혀 있는 것을 괭이와 쇠스랑으로 팠다. 봄이 되어야 씨를 뿌릴 텐데 우선 땅을 파서 경작한다는 표시를
해야 했다. 삽으로 골을 내고 두둑을 쳤다. 오랫만에 삽질을 해 보니 몇번 하지 않아 온 삭신이 쑤셔 왔다.
지금 농촌인구도 고령화 되어 노인들만이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물론 옛날과는 달리 농삿일도 기계화가
됐다고는 하지만 잔일까지는 손으로 해야 할 것인데 텃밭도 제대로 가꿀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