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판에 글자 한 자를 새긴 후, 향을 피우고 절을 세 번하고 다시 한 자를 새기고 향을 피우고 삼배 올리기를 반복해서 탄생한 것이 팔만대장경이라니. 목판의 수가 81,258판에 글자가 5,200만 자 정도가 새겨져 있다는데 도대체 절은 몇 번이나 했겠어요? 무슨 간절함이 있었기에 이런 정성을 쏟게 했을까요?
팔만대장경이라는 고려 대장경은 1236년에 제작하기 시작하여 1251년에 완성되었는데 장장 16년의 세월이 소요되었습니다. 현존하는 세계의 대장경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일 뿐만 아니라 내용도 가장 완벽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기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은 물론이고 국보 제3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나무는 멀리 지리산에서 강화도까지 바닷길로 운반했는데 대부분 자작나무나 산벚나무를 골라 벌목을 했습니다. 또 3년 동안 바닷물에 담가두었다가 큰 가마솥에 넣어 쪘고 그늘에서 말린 후 판을 만들었습니다. 목판이 뒤틀리지 않게 판 양쪽 끝에 각목을 붙인 후, 네 모퉁이 귀는 구리로 장식했고 글자를 새긴 목판에 옻칠을 입혀서 보관되었습니다. 이렇게 정성을 들였기에 763년이 지난 지금도 인쇄를 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만큼 상태가 좋다고 합니다.
글자 한 자에도 지극정성이 들어있는 목판에는 도대체 무슨 내용들이 담겨있을까요? 간단하게 말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인 경전을 집대성한 것인데, 석가모니가 일생 동안 설법한 경전과 계율, 그리고 그 내용들에 대해 후대의 사람들이 첨부한 논서, 주석서, 이론서들을 정리하고 가다듬은 내용들입니다. 그 당시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각 지역에 존재하던 경전들을 집대성하고 가다듬어 제작되었기에 학술적으로도 놀라워서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대장경 원본의 역할을 하며 오늘 날까지 전래된 것이니 어느 특정한 종교를 떠나 과히 우리 선조들의 독보적인 문화유산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내용과 규모와 정성, 이 모두가 하늘도 놀라고 신이 감동할만한데 이런 힘이 도대체 어디에서 생겨났을까요?
당시 고려는 거듭된 전쟁으로 참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993년 거란과의 전쟁이 시작된 이래로 3차에 걸쳐서 전쟁이 거듭되었는데 25년이 지난 1018년에야 끝이 났습니다. 이 전쟁으로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는 결국 회복되지 못하고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으니 전쟁 당사국이었던 고려의 타격인들 오죽했으며 또 백성들이 겪어야 했던 삶의 피폐함은 어땠을까요?
그런데 재앙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몽고와의 전쟁이 뒤따랐는데 거란과의 전쟁이 끝난 고작 13년 뒤였습니다. 결국 고려는 몽고에 쫓겨서 수도를 강화도로 옮겨야 했고 그때부터 길고 긴 몽고와의 전쟁이 이어졌습니다. 몽고는 29년 동안 6차에 걸쳐서 고려를 침입했으니 역사 이래 그때만큼 최악의 시기가 또 있었겠어요?
대부분의 문화유산이 섬세하며 아름답고 화려하며 웅장한 겉모습을 가진 것임에 비교하면 팔만대장경은 아주 특별합니다. 학술적인 의미를 떠나서 간절함과 지극정성이 고스란히 담겨져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특별한 문화유산이 탄생되었던 시대적인 배경도 특별했습니다. 거듭된 전쟁으로 인해 평화로움을 찾아볼 수 없었던 시대의 참담한 생활상, 그런 사회적인 분위기에서 어느 누구도 사치와 허영과 탐욕이 자리할 틈은 없었을 것입니다. 전쟁에 시달린 백성들의 마음속에는 밥이나 굶지 않고 그냥 소박하고 평화롭게 살고 싶다는 단순한 소망이 담겨있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팔만대장경은 겨울의 추위 속에서 피어나는 설화 같은 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쟁의 핍박 속에서 갖게 되는 간절함이 정성으로 피어난 아름답고 찬란한 꽃 말입니다.
국가적인 큰일만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어릴 때 가끔씩 어머님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습니다. 그 당시 시골 동네에는 공동우물이 몇 군데 있었고 마을 사람들은 그 우물을 길어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는 날에 어머님은 새벽 일찍 일어나서 다른 사람의 발길이 닿기 전에 우물의 물을 떠왔습니다. 그런 찬물에 머리를 감았고 또 그 물 한 대접을 정성스럽게 받쳐놓고 기도를 올렸습니다. 입시 때나 자식들에게 뭔가 특별한 일이 있을 때면 그렇게 말입니다. 자식의 생일 때에도 정성으로 차린 음식상 앞에서 기도가 먼저였는데 그때도 맑은 물 한 그릇은 빠지지 않고 옆에 놓여 있었습니다.
특별한 날에 놓여있었던 물 한 대접, 그것은 그냥 물이었습니다. 맹물 말입니다. 그런데도 물 한 그릇은 조금 특별했는데 그렇게 깨끗하고 신성스러운 물이기도 했습니다. 간절함과 정성이 담겨있기에 그렇지 않았겠어요? 그래서 저를 성장시킨 것은 그 어떤 것도 아닌 물 한 그릇과 함께 어머님의 정성과 간절함이 담긴 기도였다고 말입니다.
이제 11월도 끝나가고 12월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한 해도 이렇게 대미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이맘때쯤 다른 해에는 산속이 온통 얼음으로 꽁꽁 얼어붙었을 텐데 올해는 포근해서 얼음이 얼지 않고 아침에도 서리 보기가 힘들었습니다. 겨울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가 오히려 걱정스럽습니다. 더워야 여름다운 것이고 추워야 겨울다운 법인데 춥지 않은 겨울은 좋은 것이 아니라 이상한 것입니다.
12월이 다가오고 한 해도 저물고 있으니 문득 송년회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를 했고 대화 도중에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언제 기회가 되어 친구의 사주풀이를 해봤기에 햇살이 화창한 봄날과 같은 복 많은 친구였습니다. 물론 실제로도 좋은 직장에 다니면서 좋은 집에서 가족이 모두 단란하게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덕담을 했더니 친구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친구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그래? 참 이상하네. 난 내 삶이 침울하고 힘든 때가 대부분이라 생각되는데
이 사주, 다른 사람 거 아니야?"
그런 친구의 말을 듣고 다시 사주명식을 살펴봤습니다.
丁 酉(년)
丁 未(월)
丁 未(일)
壬 寅(시)
조후는 갑(甲)목이고 보후보좌는
임경(壬,庚)입니다. 또 명궁의 천간이 정(丁)화인데 사주명식의 천간이 명궁 정(丁)화 세 개와 조후보좌 임(壬)수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 하나만 봐도 플러스알파가 되는 것으로 흐린 날 없이 햇살 화창한 봄날이라는 것입니다.
친구의 사주와 같이 사주명식에 조후나 명궁이 들면 평생이 햇살 화창한 봄날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서는 조후나 명궁이 사주명식에 들지 않고 대운이나 해운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평상시 조금 어렵게 살다가도 그런 대운이나 해운에는 봄날같이 포근하고 햇살 화창한 시기를 보내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사주명식으로 아주 간단하게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내게도 좋았던 시기가 있었기에 그때를 돌아봤습니다. 시의원에 출마했다가 떨어지기도 했는데 당선이 되었다 해도 크게 만족하지는 못 했을 것입니다. 그때의 내 시선은 국회의원에 맞추어져 있었거든요. 그렇게 운이 좋았던 시기에도 성취와 좌절을 겪으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지금과 다르다면 돈도 조금 여유로웠고 제법 권한도 누리며 살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시절이었기에 조금 여유로운 돈에 권한까지 쥐고 살았지만, 더 큰 욕망에 사로잡혀 골치를 썩히며 스스로를 힘들게 하며 살았던 시기였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친구의 대답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남들의 눈에 어느 한가지 빠진 것 없이 부럽게 살고 있는 사람도 실제로는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소중함과 고마움을 모른 채 살아가는 법입니다. 더 크고 더 화려한 것을 바라보너라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모습이 바로 운이 좋은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조금만 내려놓을 수 있었다면 자신이 가진 것들로 아쉬움 없이 조금은 여유롭게 평화로움을 즐기며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요즘의 산골은 아주 단조롭습니다. 잎이 떨어진 나목들 사이로 군데군데 소나무와 잣나무가 서 있는 모습이 전부입니다. 그 속을 살아가는 내 모습도 단조롭긴 마찬가지입니다. 손에 쥔 권한도 없고 그렇다고 가진 돈도 없습니다. 한마음 돌려먹으면 비참해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평화로운 삶을 한가롭고 여유롭게 즐기고 있습니다. 더구나 건강한 몸으로 활기차게 또 더없이 맑고 상쾌하게 말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기만 한다면 운이 좋고 나쁨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더욱이 운이 안 좋다는 것도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법정 스님은 한때 해인사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그때 어떤 아주머니가 팔만대장경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장경각을 가르치니 "빨래판 같은 그것이냐"고 하더랍니다. 글자 한 자마다 향을 사르고 삼배를 했던 세상에 없는 간절함과 정성이 담긴 대장경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면 한낱 빨래판이 될 수 있었습니다.
고려 시대, 거란과의 전쟁이 시작되면서부터 50년 사이에 10회에 걸쳐서 거란과 몽고가 잇따라 침략을 했습니다. 나라는 온통 평화가 깨어지고 전쟁의 암울함만 존재하던 그 시기에 만들어진 특별한 문화유산이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결코 탄생될 수 없는 그런 소중하고 가치 있는 문화유산 말입니다. 그것은 문화유산이 아니라 고려 시대 선조들의 간절한 정성과 기도 그 자체였습니다.
나는 오늘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내 삶에서 가장 간절하고 정성 어린 것은 무엇이냐고 말입니다. 아직까지 없었다면 간절함과 지극정성으로 만들어 갈 그 무엇을 찾아보라고 말입니다.
산골의 계곡에는 맑은 개울물이 오늘도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습니다. 때로는 지나가던 고라니도 목을 축이고 날아가던 새도 잠시 날개를 접고 갈증을 달래기도 할 것입니다. 어느 날인가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그런 계곡물 한 대접을 받쳐놓고 기도를 올리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쩌면 내 삶에서 피어날 꽃은 운이 좋고 화려했던 도시에서가 아니라 이 산골에서 피어나게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오늘은 산골이 조용히 침묵에 들었습니다. 하늘도 비를 뿌리며 고개를 숙이고 숙연하기만 합니다.
월아
첫댓글 문화유산의위대함에 공감이가네요
팔만대장경 겉모습이라도 한번 본적이 있나요? 그렇지않으면 빨래판 같다던 아줌마보다 못한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