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영화제의 정체성을 찾아볼 수 있는 섹션 중의 하나가 회고전이다. 토요일, 벨라 타르 감독(헝가리)의 [불안한 관계]나 알렉산더 클루게(독일) 감독의 [어제와의 이별]을 보고 싶었지만 표를 구하는데 실패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노동절부터 어린이날까지 이어지는 황금의 연휴를 끼고 있어서 보고 싶은 영화표를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영화는 불면의 밤(활극)에서도 상영되었던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이었다. 이 영화는 지난 해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대되었고, 상복 없던 브래드 피트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서부 개척 시대의 전설적 열차갱단 두목이며 서부의 로빈훗으로 불리던 제시 제임스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1881년이 시간적 배경이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를 서부극으로 볼 수는 없다.
서부극은 이제 극장에서 사라졌다. 영화 발생 초창기에 연극과는 다른 영화만의 특성을 강조하는데 결정적 공헌을 했던 서부극은, 허구적 서사구조를 배우들의 연기로 전달한다는 점에서 연극의 하위 장르쯤으로 폄하되던 영화를, 장대한 스케일과 박진감 넘치는 화면의 매력으로 독립적인 매체로 인식시키는데 큰 공헌을 했다.
그러나 [비겁한 로버트 포드....]는 서부극의 고전적 클리세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권선징악적 대결구도도 뚜렷하지 않다. 배경만 서부이지, 실제로는 숭배하던 우상을 살해한 한 남자의 장중한 심리 드라마이다. 제시 제임스는 남북전쟁 이후 특히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남부 사람들의 우상이었다. 전쟁에 승리한 북부 사람들이 은행과 열차산업을 지배하고 있었는데, 제시 제임스는 형 프랑크 제임스와 함께 그들을 농락하며 열차를 털었다. 로버트 포드도 제시 제임스를 우상으로 생각하며 결국 그의 갱단에 합류한 인물이다.
실화를 근거로 만들어진 론 한센의 원작소설을 앤드류 도미닉 감독이 영화화했고, 브래드 피트가 제시 제임스 역을,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그를 숭배하다가 경쟁의식에 사로잡혀 결국 그를 암살하는 비겁한 로버트 포드 역을 커시 에플렉이 맡았다. 커시 에플렉은 벤 에플렉의 동생으로서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 후보로 지목되는 등 이 영화로는 미국 내에서 오히려 브래드 피트보다 더 주목받고 있다.
[비겁한 로버트 포드....]는 3천만 달러의 제작비를 미국 내에서는 1/10 정도 회수하는데 그친 흥행 실패작이다. 그 이유는, 2시간 40분의 런닝타임보다, 권선징악의 뚜렷한 대결구도나 기승전결식의 확실한 서사구조를 갖는 대신, 전설적 갱단 두목 제시 제임스와, 그를 우상으로 생각하고 따르다가 그를 배신하고 암살한 로버트 포드의 심리적 긴장관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음악을 맡은 닉 케이브는 주제곡 [제시 제임스의 발라드]를 직접 부르며 영화의 내적 긴장감을 청각적으로 뛰어나게 형상화한다.
영화제의 미덕은, 상업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진짜 영화들, 즉 인간의 개인적 삶과 세계와의 긴장관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들에게 성찰의 시간을 제공하는 영화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비겁한 로버트 포드...]는 상업적 시스템이 외면한 영화를 관객들에게 되돌려 주는 의미 있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