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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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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게시판 스크랩 을사조약에 얽힌 비밀. 가쓰라-테프트 조약과 엘리스 루즈벨트
로터스 추천 0 조회 251 14.01.23 10:34 댓글 8
게시글 본문내용

http://cafe.daum.net/hanryulove/5Qxi/4393

 

이번에 제가 쓰게 될 글은 1900년대 초반, 을사조약 이전에 있었던 일을 쓰게 되는데요, 너무나도 충격적입니다.

이 글을 보시고 미국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실 지도 정말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제가 쓰게 될 글은 네이버,다음에 있는 사이트들과,mbc서프라이즈바탕으로 씁니다...

↑미국의 26대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의 딸인 엘리스 루즈벨트(Alice Roosevelt)

 

지금으로부터 105년 전인 1905년 9월 19일, 당시 미국에서 영향력 있던 수십명의 정치계 인사들과 아시아 순방길에 올라 일본을 거쳐 필리핀,중국을 방문했던 미국 대통령의 딸 엘리스 루즈벨트가 대한제국을 방문했다. 당시 엘리스는 미국에서 엘리스 공주(Princess Alice)라고 불릴 정도로 사교계의 꽃이었고, 심지어 정치계에서도 영향력이 있을정도로 중요한 인물이었다.

 

심지어 그녀를 위해 특별히 만든 옷감의 종류가 있을정도로, 그녀는 미국에서 연예인같은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아시아 순방당시 일본에서는 천황이 직접 그녀를 알현하였고, 화려한 만찬과 무도회를 열었었다.

필리핀에서도 역시 그녀는 최고의 대접을 받았고, 심지어 중국을 방문했을 때는 당시 최고의 여걸이었던 서태후가 그녀를 직접 만났고, 그녀에게 진귀한 보석과 비단, 심지어 애완견까지 선물하였다고 한다.

 

그런 그녀였기 때문에 당시 대한제국의 고종황제는 일본으로부터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종 역시 그녀를 직접 알현하기로 하였고, 대한제국의 실태를 그녀와 논의하기로 마음을 억었다.

 

↑당시 대한제국행 군함 오하이호 호를 타고 있었던 엘리스 루즈벨트... 인천항에 상륙하였다. 

 

드디어 1905년 9월 19일, 엘리스 일행을 태운 군함 오하이오 호가 제물포 항에 도착하였다...

그들을 위해 고종황제는 여러나라의 국기가 게양 된 특급 열차를 준비하였고, 수많은 대한제국의 관리들과 근위병들이 백성들과 함께 이들을 환영하기 위해 준비하였다.

 

또,그들이 서울을 도착했을때 황실에서는 황실 가마를 배정하였고, 모든 일행들에게도 역시 관청의 가마를 준비하였다.

거기에다, 고종황제는 서울의 모든 주택에 미국의 국기를 게양하였고, 이로써 그들을 맞이할 준비는 되어있었다...

 

 ↑당시 엘리스 루스벨트의 대한제국 방문에 대한 기사를 쓴 프랑스의 신문에 붙여진 그림.

 

마침내 20일, 엘리스는 방문단 일행과 함께 황실을 예방하고 대한제국의 관리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21일, 고종황제는 그들을 위해 가든파티를 열어주었고 그 자리에서 대한제국에 거주하던 미국인들과도 만났다.

22일, 엘리스 일행은 고종황제와 점심을 함께 하고 오후에는 동대문 밖에 있는 황제비(명성황후)의 무덤을 방문하였다.

 

(당시 고종황제가 엘리스일행과 함께 명성황후의 무덤을 방문한 목적은 아무래도 일본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서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나온 명성황후의 무덤은 당시 영휘원(홍릉을 관장하는 구역)으로 불리었지만, 고종황제 승하 이후, 1919년 남양주군 금곡으로 옮겨진 뒤 계속 홍릉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당시 알현 장소였던 명성황후의 무덤인 홍릉. 1919년에 이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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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보면은 형식상으로는 제대로 된 알현이라고 생각을 할수도 있다.

하지만 그 뒤를 보면은 너무나도 충격적인 내용이 도사리고 있다...

 

독일 여성인 엠마 크뢰벨(Emma Kroebel)은 대한제국 황실에서 의전담당으로 당시 엘리스 루스벨트가 대한제국을 방문할 당시 근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1909년에 나온 자신의 자서전"내가 어떻게 조선의 궁정에 들어가게 되었는가(Wie ichan den koreanischen Kaiserhof kam)에서 당시 형식상과는 매우 다를 엘리스의 한국 방문을 기록하였다...

 

 ↑엠마 크뢰벨이 쓴 저서...

 

"우리가 (영휘원에)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먼지의 폭풍이 우리에게 몰아닥쳤고 그 먼지 속으로부터 한 무리의 말을 탄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 무리의 선두에는 위세당당하게 말을 타고 나타난 여성이 있었는데 그녀는 자주색의 긴 승마복을 입었고 그 아래에는 몸에 꼭 맞는 승마용 바지를 반짝거리는 승마용 장화 속에 접어 넣은 것이 얼핏얼핏 보였으며 승마용 채찍을 한 손에 들고 입에는 시가를 물고 있었다.

 

그여성이 바로 미스 엘리스 루즈벨트였다. 전혀 상상하지 않았던 그 모습을 본 우리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자리에 있던 우리 일행이 한국 왕실의 격식에 따라 최대한의 경의를 표했으나 이 "의용기병대의 딸"은 이 모든것이 장난이라고 여기는 듯 했다. 행사를 주관하는 사람으로써 내가 환영의 인사를 건넸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몇마디의 고맙다는 말, 그 뿐이었다. 오히려 그녀는 무덤가에서 무덤을 수호하고 있는 동물들의 조각에 더 많은 관심이 있는 듯 했다"

 

... 여기까지도 엄청난 충격에다가 무례함이 있는데, 그 뒤에는 더 충격적인 내용이 있었습니다...

 

"특히 그녀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큰 코끼리 석상이었는데 그녀는 곁눈으로 흘낏 보더니 재빨리 말에서 내려서 순식간에 그 코끼리 석상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곁에 있던 롱워스(Nicholas Lopngworth)<엘리스의 약혼자>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소리쳤다.

 

이것을 본 우리 일행은 그녀의 그런 망나니 같은 짓에 경악했고 온 몸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그토록 신성한 곳에서 저지른 그와 같은 무례한 짓은 한국의 (외교)역사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정말 중차대한 순간이었는데도 차와 다른 음식이 나오면서 위기의 순간이 지나갔다.

 

그러나 엘리스는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도 모르는 듯 했다. 그 이후로는 어떠한 감사의 인사도 없었고 그녀는 모건 공사부인과 잡담을 나누면서 씩씩하게 샴페인을 마시고 또 다른 음식들을 즐겼다. 그러다가 갑자기 엘리스는 모두에게 말에 오르라고 명령하고는 그녀를 따르는 남자들과 함께 버팔로 빌처럼 말을 타고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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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을 보면 엘리스는 외교를 하러 온 사람으로써는 엄청난 망나니같은 짓을 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심지어 고종이 보는 앞에서 황후인 명성황후의 묘에서 그런 엄청난 짓을 하였습니다...

거기에다가 고종의 목표인 대한제국 실태논의와는 달리 엘리스는 논의와는 아주 동떨어진 말만하고 사라졌습니다...

 

나중에 이 사건은 엠마 크뢰벨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1909년 11월20일 발행된 뉴욕타임스에 실렸고, 한동안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이 된 공화당 의원 롱워스는 이 내용이 전부 다 거짓말이고 엠마 크뢰벨이 당시 다른 사람을 엘리스로 착각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왼쪽의 내용은 롱워스부인이 된 엘리스가 한국에서 저지른 무례함을 보도한 내용이고,오른쪽은 이 기사가 난 바로 다음 날 그녀의 남편인

롱워스가 기사의 내용을 전면 부정하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실이었을까요???

 

여기에 답을 줄 단서가 코넬대학교 도서관에 있었습니다...

1905년 경 당시 사건이 일어날 당시 미국 공사관에서 공사 서기로 근무했던 윌러드 스트레이트(Willard D.straight)라는 사람이 남긴 편지와 수백 장의 사진이 코넬 대학교 도서관에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이 자료는 나중에 한국계 미국인 대학생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는데,'친절하게''루즈벨트양의 한국에서의 사건(Alice Roosevelt at Seoul)'라고 이름이 붙여진 사진이 있었습니다...

 

 

결국 엠마 크뢰벨의 말은 사실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엠마 역시 두려웠던 것일까요???

 

자서전에서 빠트린 내용이 있었습니다...

바로 당시 일행들 대부분이 석상에 앉거나 기대어 찍은 사진이 있다는 것을 쓰지 않은 것입니다...(여기네는 롱워스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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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에서 의문점이 생깁니다...

엘리스는 아시아 순방길에서는 정치적 사회적인 문제를 모두 논의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한국에서는 이런 짓을 하였을까요???

 

여기에도 역시 충격적인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이 있은 지 수십년 뒤 엘리스는 1934년에 자서전 'Crowded Hours'에서 한국에 대해 이렀게 썼습니다...

 

"한국은 원하지 않았으나 속수무책으로 일본의 손아귀 아래 이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슬퍼보였고 낙담한 것 같았다. 그들의 몸에서 힘이라는 힘이 모두 빠져 나간 것 같았다. 거의 모든 장소에 일본 장교들과 병사들, 그리고 상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있어고 절망에 빠진 한국인들과는 대조를 이루었다."

 

...이 내용 이외에도 당시 사건을 언급한 글도 섰다...

"황제와 곤 이어 마지막 황제가 될 그의 아들(순종)은 우리 공사관 곁에 있던 궁전에서 내밀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고 며칠이 지나 그 궁전의 유럽식 건물에서 점심식사를 같이 하였다. 우리는 먼저 2층에 있는 방으로 안내되었고 땅딸막한 황제는 나에게 자신의 팔을 내밀지 않은 대신(손을 내밀에 엘리스가 잡기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나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서둘러서 좁은 계단을 내려가 특히 주목할 것 없고 조그마한 만찬장으로 들어갔다. 음식은 한국식이었는데 황실문장으로 장식된 그릇에 담겨져 있었다. 내가 사용한 그릇들은 식사 후 나에게 선물로 증정되었다. 궁전을 떠날 때 황제와 그의 아들은 각자 나에게 자신들의 사진을 주었다. 그 두 사람은 애처롭고 둔감한 인물들이었으며 황실로써 그들의 존재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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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에서는 당시 무너지고 있던 대한제국을 구하기 위한 고종의 노력이 보이고 있고, 당시의 상황을 잘 나타냅니다.

또, 엘리스가 바라본 한국에 대한 시선이 보이는데요, 엘리스는 분명 순종이 마지막 황제가 될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요???

바로 1905년 당시 엘리스가 아시아 순방을 하고 있었을 때 일본에서 맺어진 조약과 연관이 있습니다.

순방을 갔을 때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신임하는 육군성 장관이 있었는데, 이사람이 바로 루스벨트 다음으로 미국의 대통령이 되는 윌리엄 태프트(William H.Taft)였습니다.

 

1905년 7월, 당시 아시에 순방단의 첫번째 기착지였던 일본에 도착한 태프트는 7월 29일 일본 수상 가쓰라 타로를 만나 비밀 협약을 맺었던 것입니다.

↑ 아시아 순방길 당시 일본에서 윌리엄 테프트가 엘리스 루즈벨트와 나란히 행사장으로 입장하는 모습. 1905년 아시아 순방 기록사진.

 

훗날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알려진 조약이 체결되는 순간이었는데, 당시의 주요내용은 바로 "미국이 일본의 조선지배를 묵인하는 대신에 필리핀에 대한 지배권은 미국에게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것"이었습니다...

 

이 조약은 엘리스의 한국 방문사건이후 체결된 조약에서 발휘되는데요, 이 조약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을사 늑약(흔히 을사 조약이라고 말하지만, 황제가 인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늑약이라 보는 것이 적당합니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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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 듯 대한제국에 대한 권리를 넘겨준줄 모른 채  고종은 순방단을 얼마나 극진히 대접을 했던건가요...

엘리스에게 모욕을 당하면서도 대한제국을 구하려고 한 사람들의 노력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과연 미국은 우리에게 우방인 나라인걸까요...

이것이 바로 강대국들 사이에서 희생된 우리나라의 비극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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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4.01.23 10:35

    첫댓글 엘리스 루즈벨트의 화려한 옷차림이나 언행이 현재 수첩대통을 연상합니다...
    근데 요즈음 '통일은 대박' 이라고 하는건 뭔지 모르겠네요.

  • 14.02.05 00:52

    통일은 대박이라고 2번 그것도 2번째는 다보스 포럼에서 말했습니다. 이말의 뉘앙스는 통일을 할 수 있는지 가능성의 문제는 해결이 되어있다는 전제로 국내와 외국의 동의를 구하고자 설득을 하는 듯 합니다.

  • 14.01.23 19:46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글입니다. 이래서 "국민의 대표"는 심사숙고해 뽑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나라에는 친미주의자가 굉장히 많습니다. 특히 "군부와 정치권, 학계"등에 특히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들은 모든 것을 자주적인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미국의 생각은 어떤가?"를 먼저 생각합니다. 우선해야 해야할 것은 "우리의 입장"이며, 그 다음이 되어야 하는데, 이들은 반대로 합니다. 일본의 재무장 역시 미국의 묵시적인 동의하에 이루진다고 합니다. 미국, 일본, 또는 중국, 러시아이든 우선시할 것은 우리의 입장일진대.........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자주국방입니다. 힘없는 나란 제압당할 수밖에 없지요.

  • 14.01.23 20:44

    가슴속 깊은 곳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누군가에게 농락 당했을 고종황제를 생각하니 말입니다.
    소싯적에 미국은 한국전쟁 당시 우리를 도운 우방이라는 것 빼고는 다른 것은 몰랐습니다.
    성장하면서 역사라는 것에 관심이 생겼고, 자츰 보니 미국은 우리의 우방이 아닌 그저
    자기들 이득을 위해서 우리를 도왔다가 팔았다가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식일 것이 뻔한 미국을 더이상 우방이라는 생각 보다는 우리와
    구체적으로 통일을 이루어야 할 북한과 중국과의 우호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젊은 세대들이 나서서 이 흐름을 서서히 단절 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 14.02.05 00:57

    북한과 중국은 우리의 우방인가요? 모든 나라는 각자 자국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영원한 우방이란 없다는 것만 알고, 현재 국익에 알맞는 외교를 하면 그만인 것입니다. 북한 김씨 정권이 망해야 통일이 되는데 어찌 그들과 우호가 필요하겠습니까?
    또한 중국이 현재 점유하고 있는 고토는 장차 한국이 회복해야할 터인데 그들과 우호를 다진다고 하여 땅을 순순히 내주겠습니까?

  • 14.02.06 22:58

    @스페르츠 중국이 점유하고 있는 우리 땅을 강제로 빼앗을 수 있다고 보십니까?
    그럴 힘이 있다고 해도 이미 그곳에 사는 국민들은 이미 중국인이 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강제로 빼앗아서 그들에게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오히려 친화적으로 그들과
    교류를 할 수 있게 된다면 흡수나 합병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지금식의 우리중심적인
    방식의 접근은 벽을 만들 뿐입니다. 오히려 연방제 처럼 서로 국경을 없애고 자유롭게
    왕래할수 있게 한다면 그들이 우리와 유사점을 알게 되어서 결국 자연적으로 합쳐지게될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 14.02.07 14:22

    @마포대사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대륙조선, 대륙조선 하는데 대륙에 살던 사람을 반도로 다 끌고왔을 리는 없고 지금 대륙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대륙조선인의 후예라는 말이 되는 거 아닙니까? 물론, 그렇다손치더라도 언급하신대로 이미 한족과 융화가 되었다고 보겠지요.
    북한과의 통일 방법론도 마찬가지지만, 연방제를 하면 우리땅을 뺏기지, 우리가 땅을 뺏어올 가능성은 적다고 봅니다.

  • 14.01.29 09:34

    그래도 싸죠. 태프트는 후일 대통령, 대법원장 등 최고 권력을 2번이나 합니다. 다 서방의 계획에 있던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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