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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육체파 여배우 마릴린 먼로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당대의 문호 버나드 쇼에게 청혼을 했더랍니다. “선생님의 지성과 제 미모가 더해지면 완벽한 아이가 나올 것”이라고 유혹합니다. 버나드 쇼가 답합니다. “못생긴 내 얼굴과 당신의 텅 빈 머리를 닮은 아이가 나올 수도 있죠.”
이 일화는 품종개량의 논리와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우수한 두 품종을 붙인다고 꼭 더 좋은 품종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답은 무수한 시행착오입니다. 이것도 붙여보고 저것도 붙여보면서 최상의 조합을 찾는 겁니다. 고단하기도 하려니와 성과도 불확실한 작업입니다. 토종의 우수 품종을 갖는 게 그렇게 어렵습니다. 토종 국화 품종인 ‘백마’에 주목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국화 최초의 토종 대국(大菊)인 데다 품질이 세계 최상급입니다. ‘국화왕국’ 일본을 사로잡고 있는 ‘백마’를 만났습니다.
2007년 10월 도쿄국제꽃박람회는 한국에서 온 국화에 매료됐다. 국화의 종가라는 일본의 국화를 압도하는 풍모에 바이어들은 엄지손가락을 자연스럽게 치켜세웠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감탄이 연이어 흘러나왔다. 바이어들은 그 자리에서 500만달러 규모의 수입의향서를 작성했다. 당시 전체 국화 수출량이 600만달러가 채 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대형사고’를 친 셈이었다. 이 국화의 이름은 ‘백마’다.
백마의 우월함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꽃잎은 ‘순백’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겠다는 듯 곱디곱게 희다. 종전의 흰 국화는 그 옆에서 오히려 탁해 보일 정도다. 둥글게 말아 오른 꽃잎은 우아한 반원을 그린다. 갓 지은 햅쌀밥을 소복하게 담아놓은 조선백자를 연상시킨다. 다른 국화에 비해 큰 풍채는 기개마저 풍긴다. 수명도 길다. 일반 국화에 비해 2~3배 오래 꽃을 피운다. 에어컨 부근처럼 열악한 환경도 꿋꿋하게 견뎌낸다. 팔방미인이 따로 없다.
확대되는 일본 수출 국화 시장
백마는 최초의 국산 대국이다. 수없이 많은 품종의 국화가 있지만 시장에서 상품화된 대국 중에서 우리 품종은 없었다. 신마와 백선 같은 일본에서 개발된 품종을 들여와 길렀다. 하고 많은 품종 가운데 굳이 일본의 것을 재배한 까닭은 일본이 세계 최대의 국화 소비국이라는 사실과 연관이 있다.
일본은 국화를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나라다. 오봉절(8월15일)이나 히간절(추분) 같은 기념일은 물론 평소에도 국화 수요가 많다. 연간 20억 본이 소비되는데 이는 세계 국화 소비량의 30%에 이르는 양이다. 전체 시장 가운데 대국 소비량은 연간 10억 본에 이른다. 세계 최대 시장인 만큼 많은 나라들이 일본 국화 시장에 진출해 경쟁하고 있다. 일본인이 선호하는 일본의 품종을 재배해 일본으로 역수출하는 방식이다.
최대 수출국은 말레이시아다. 2007년 금액 기준으로 전체 수입 국화 시장의 70%를 차지한다. 액수로는 57억엔에 해당한다. 중국과 베트남이 13%, 8%로 그 뒤를 잇는다. 한국의 국화도 일본에 수출된다. 연간 600만달러 수준으로 시장 점유율은 7~8% 내외다. 지리적으로 일본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수출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인건비나 기후 조건 등에서 동남아 국가들에 열세에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일본의 국화 재배 면적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수입 국화의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어서다. 수출하는 입장에서 보면 파이가 커지고 있는 셈이다.
시장은 먹음직스럽게 성장하고 있지만 한국의 몫은 반대로 감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화 수출액이 2004년 927만달러에서 2008년 602달러로 35%나 움츠러들었다.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의 가격 경쟁력을 도무지 따라가지 못하는 게 수출 확대의 걸림돌이다. 그나마 재배하고 싶은 품종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본 당국이 ‘보호품종’으로 지정한 ‘백선’ 같은 품종은 수출길이 닫혀 있는 상태고 보호품종이 아닌 ‘신마’ 정도를 수출하고 있을 뿐이다.
로열티도 지불해야 한다. 품종을 개발한 일본 기업에 한 주에 15~33원의 로열티를 내고 있다. 15원이라고 우습게 볼 게 아니다. 재배 면적이 3300㎡(1000평)인 농가를 예로 들어보자. 국화의 경우 보통 3.3㎡(1평)에 150주를 심는다. 만약 3300㎡(1000평)를 재배한다면 15만 주를 심을 수 있다. 1주당 로열티가 15원이라면 총 로열티는 225만원이 된다. 국화는 연간 3~4기작이 가능하다. 3기작만 해도 연간 로열티가 675만원에 이른다.
상품성 이미 인정 ‘특급 중 특급’
백마는 이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한국 화훼 산업의 신무기다. 국산 품종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이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일본 당국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보호품종으로 정해지지 않기 때문에 마음대로 재배하고 수출할 수 있다. 고유의 품종이므로 말레이시아나 중국, 베트남 등과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 품종을 수출하지 않는 한 우리만 재배할 수 있다. 로열티는 현재의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이 정도면 사실 로열티라고 할 수도 없다. 민간기업이 아닌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품종
이어서 수수료 차원의 로열티만 내면 되는 것이다.
관건은 국산 품종의 어드밴티지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시장이 이 품종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이다. 백마의 잠재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일단 보기에 좋다. 우수한 꽃의 기본적인 강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1송이당 약 300장이나 되는 꽃잎이 만개하면 그 크기가 국그릇만해진다. 대국 중 대국이랄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생육이 뛰어나다. 건강하다는 얘기다. 절화(折花) 상태에서 다른 품종보다 오래 갈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워낙 건강해서 뿌리를 잃고서도 30일 이상 고운 꽃을 피울 수 있다. 생육이 뛰어나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경쟁력이 된다. 생물 상품 경쟁력의 핵심 중 하나인 ‘신선함’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으므로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길다. 절화 후 며칠은 지나야 소비자를 만날 수 있는 수출 상품으로서 이는 엄청난 자산이다.
개화 시기도 절묘하다. 백마의 자연개화 시기는 8~9월이다. 가을이 돼서야 개화하는 다른 품종에 비해 이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시점이 일본 국화 시장의 최성수기라는 사실이다. 국화 소비가 많은 오봉절이나 히간절이 이 무렵에 있다. 최대 성수기에 가장 아름답게 피는 국화인 것이다.
백마의 상품성은 이미 일본 현지에서 인정받은 상태다. ‘특급’의 상품 등급을 받고 있다. 백마를 개발한 임진희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농업연구사는 “일본의 화훼 등급 기준은 꽃의 크기와 전체의 균형미, 잎 크기의 균일성, 무게와 길이 등으로 정해진다”며 “무게는 꽃의 건강미를 체크하는 기준으로 1주당 100g이면 특급에 속하는데 백마는 120g에 이를 정도여서 특급 중 특급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흐뭇해했다.
실제로 백마의 일본 수출은 매년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2007년 1만2652달러에서 2008년 75만9394달러로 불어났고 지난해에는 그 갑절이 넘는 200만달러어치를 수출했다. 수출이 증가하면서 백마 재배 면적도 증가세다. 2007년 16.7ha에서 지난해 35.6ha로 두 배 이상 늘어났고 올해는 60ha까지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연간 1억 본·시장 점유율 10% 목표
수출이 불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2007년 농가 보급 이전, 일본의 도쿄국제꽃박람회에 출품하자마자 500만달러의 수입의향서를 받으며 일찌감치 상품성을 인정받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출량이 의외로 적다. 품종이 개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충분히 보급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초기인 만큼 재배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은 것도 수출 확대에 저해 요인이었다. 수출할 수 있는 최상급의 백마가 충분치 않았던 것이다.
본격적으로 보급을 시작한 지 3년이 지났지만 백마 재배 면적은 전체 국화 재배 면적(720ha)의 5%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임 연구사는 큰 꿈을 꾼다. 연간 10억 본인 일본 대국 시장의 10%를 백마가 점유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만큼 상품 경쟁력에 자신이 있다는 얘기다.
“1억 본은 단순히 시장 점유율 10%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백마가 최상급 상품인 만큼 1억 본은 일본 대국 시장의 최상급 시장을 장악한다는 뜻입니다. 최상급 시장을 장악하면 그 파급효과는 시장 전체에 번질 것입니다. 그럴 힘이 백마에게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Mini Interview
임진희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농업연구사
“백마의 업그레이드는 계속 됩니다”
“백마처럼 늠름하고 기상이 넘치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이름 붙였죠.”
임진희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농업연구사는 백마의 ‘엄마’다. 그의 손에서 백마가 태어났다. 2001년 품종 개량 작업에 착수한 이래 제 시간에 퇴근한 적이 없었다. 이르면 밤 11시가 그의 퇴근시간이었고 연구실에서 아침을 맞은 날도 부지기수였다. 그 와중에 건강도 해쳤지만 멈추지 않았다. 매년 20만 입을 교배하고 이를 추리고 추리는 작업은 집착에 가까운 열정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다.
“몰입해야 합니다. 교배엔 왕도가 없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자의 느낌입니다. 이것과 저것을 더하면 좋은 품종이 되겠다는 느낌이 와야 합니다. 이를 느끼려면 집중해야 합니다. 일을 하다 보면 욕심이 나서 밤을 새우는 날도 적잖았죠.”
백마가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국화이긴 하지만 임 연구사는 아직도 할 일이 많다고 말한다. 개량을 통해 보다 우수한 품종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급한 게 측지를 감소시키는 것이다. 측지는 곁가지를 가리키는데 상품가치를 높이려면 측지를 제거해야 한다. 생육이 좋은 백마는 측지가 많은 편이어서 농가의 애로점이다. 임 연구사의 당면 과제는 측지는 없으면서 생육은 좋은 ‘모순’을 현실화하는 것이다. 백마의 ‘산업화’도 임 연구사의 소망이다. 마치 공산품처럼 규격화된 백마를 대량으로 생산해 농업이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다.
“농업도 산업화돼야 합니다. 규격화된 상품을 만들어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죠. 물론 생물이다 보니 쉽지는 않죠. 그를 위해 작으나마 기여하는 것이 제 미션이라고 생각합니다.”
Mini Interview
국종갑 헤븐FC 사장
“대단지 조성해 일본 시장 장악해야죠”
전라북도 전주시에 소재한 헤븐FC는 백마의 보급을 맡고 있는 회사다. 백마의 발근묘를 농가에 보급하고 재배 컨설팅도 제공한다. 국종갑 헤븐FC 사장은 백마의 보급과 수출 확대를 거의 숙명처럼 여기고 있다. 백마를 처음 본 순간 ‘물건’임을 직감했다는 국 사장은 일본 대국 시장의 10%를 장악할 수 있는 대형 프로젝트를 현실화할 수 있는 ‘계획’이 있다고 강조한다. 99만 평방미터(30만 평) 규모의 수출용 재배단지를 조성하면 하루 30만 본씩 연간 1억 본을 수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농가 단위로 소량 생산하면 수출하기 어렵습니다. 일본 바이어들이 한 번에 보통 몇 십만 본씩 주문하는데 이는 농가 단위로 해결할 수 있는 양이 아닙니다. 안정적으로 물량을 대지 못하니 꽃은 탐이 나도 정작 수출은 잘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가격도 잘 받지 못합니다. 물량 공급이 안정적이면 일본 바이어들은 30%가량의 프리미엄을 얹어주는데 이를 받지 못하는 거죠.”
대형 재배단지는 안정적인 물량 공급과 이를 통한 가격 효과, 체계적인 생산에 의한 원가 절감 등을 통해 백마의 경제적 잠재력을 100% 끌어낼 수 있는 방안이라고 국 사장은 말한다. 소규모의 수출상들에게 백마의 유통을 맡기면 백마의 이미지가 추락할 수도 있다. 이들이 백마의 ‘특급’ 이미지에 누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국 사장의 대단지 구상은 이런 점도 염두에 둔 것이다.
“대단지는 부가가치와 생산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더 많이 투자해 최상급의 상품을 만들고 현재 65~70% 수준인 상품화율도 95%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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