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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탐방기>
젊은 그들, 수행과 기쁨의 등불이 되어
-덕산 한의원 신윤상 님과 산청 本 한의원 서지영 님
<韓醫師 侖尙 氏의 1日> - 그가 지리산에 온 까닭은?
지리산 도보, 국토 순례의 경험-머리보다는 가슴이, 가슴보다 손과 발이
우기(雨期), 장마 빗속에도 백일홍은 어김없이 붉은 꽃을 달고, 또 떨어뜨리며 묵묵히 섰다. 진주에서 덕산行 버스를 타고 지리산의 품으로 더 가까이 들어선다. 하늘은 푸른 본색(本色)을 드러내고, 계곡에서 발원한 물살의 흐름은 빠르고 경쾌하다. 남명 조식 선생이 후학을 양성하던 곳에 세워진 덕천 서원을 지난다.
‘천섬 무게의 큰 종을 보게나/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 내지 않는다네 / 그러나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는/두류산(지금의 智異山)만 하겠는가.’(請看千石鍾 非大無聲 爭似頭流山 天鳴猶不鳴)‘ (남명 선생의 한시)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는다는 山, 다름을 알아(智異) 다양한 것들을 넉넉히 품을 수 있는 山. 천왕봉이 올려다 보이는 덕산은 산청군 시천면의 옛 지명이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의 중요한 거점(접소)이기도 했던 역사의 현장으로 청년 한의사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지난 2003년 1월, 신윤상 님(32)은 예부터 한방과 약초로 유명한 산청에 덕산 한의원을 개원한다. 서울에서 나서 자란 그. 입시 경쟁의 상징인 8학군 출신이며, 수재들이 모인다는 수도권의 한의대를 졸업한 후, 교수 추천으로 공직 한의사로 <보건의료기술연구기획평가단 연구원>이라는 긴 직함으로 첫 직장 생활을 하기도 한다.
그가 지리산으로 오게 된 인연에 대해 묻는다. 그는 2001년 5월부터 8월까지 세 차례의 도보/ 국토 순례의 현장에 있었다. 처음, 인드라망 홈페이지의 개설 작업을 한 이도 그인데, 인드라망과의 인연은 도보 순례 이전부터 깊었다. 5월 보름여의 생명평화, 민족화합을 위한 <지리산 850리 도보 순례>(단장:수경스님)의 기수(旗手)로 서울 토박이인 그는 난생 처음 자연다운 자연을, ‘운명의 지침을’ 바꿔 놓는 생생한 산천과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도보 순례에 자극을 받아 연이어 천리안 영어 동호회가 주관하는<국토순례와 영어와의 만남>(7/2~7/19), <휴전선 평화통일 대행진>(7/27~8/12)에 참가하는 의욕을 보인다.
-환경, 영어, 통일이라는 주제로 벌인 약 50일간의 도보여행에서 머리보다 가슴이, 가슴보다 손과 발이 부지런한 사람이어야겠다는 생각을 줄곧 했었지요.
선배의 소개로 시천면에 내려 왔을 때, 산청은 이미 지리산 순례를 하며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두 발을 딛고 걸었던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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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적이고 전일적인 마을병원의 건립을 희망.
개인과 지역의 건강성을 먼저 확보. 진정한 건강은 전도몽상을 벗어나는 것.
신윤상 님의 하루는 ‘명상-노동-학습’의 틀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하루 중 우주의 기운이 가장 잘 통한다는 인시(寅時, 3-5시)에 일어나는 것을 원칙으로 하려 한다. 4시쯤 일어나 두 시간 정도 참선을 한다. 참선(화두 참구)은 그의 중요한 일상이고, 참선을 비롯한 요가, 기 수련 등 자가 치유력을 강화할 수 있는 자기 수련은 침,뜸, 부황, 탕약 등의 의료 기술, 산청의 청정한 공기, 물, 흙 등의 자연과 무공해 약초와 음식 섭취 등을 통해 본원적인 생명력을 키우는 섭생 등과 함께 향후 10년을 내다보며 계획하고 있는 마을 병원의 핵심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세계보건기구가 정의 내린 건강의 4요소는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 건강이다. 신성, 영성 혹은 불성과 같은 잠재적 에너지, 자생적 치유력을 불러 일으키는 자기 수련이 필요하다. 그는 매 주말마다 천안에 본원이 있는 <세상 만들기(e-sesang.or.kr)> 모임에 참석한다. 방하 출판사에서 나온 『수행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라는 책을 권해 주어 가지고 왔다. 방하(放下)는 협의로는‘욕심을 버린다’,‘번뇌를 내려 놓는다’이지만, 인간을 병들게 하고, 인간 및 사회적 관계의 지형을 왜곡시키는 자기중심적 욕망의 기제로부터의 해방, 총체적 개념으로서의 건강성 회복을 일컫는다. 이 모임은 삶의 방식을 고민하고, 사람의 가치가 살아있는 건전한 생활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지역주민사업, 사회교육, 생활문화, 인간개발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8시부터 12시까지 한의원에 출근해서 환자들을 돌본다. 산청 지역은 아직 의료 혜택의 사각 지대에 해당해 한의원으로의 마을 분들의 발길이 잦다. 갓 내려왔을 때는, 간호사가 낯선 경상도 사투리를 중간에서 통역을 해 준 에피소드도 있었다. 시끌 시끌, 시원 시원한 ‘할매’들. 진료비 대신 정성껏 키운 농작물을 받아 교환하는 시스템, 일종의 지역 통화의 사용을 생각해 본 적도 있지만 아직은 요원한 계획이다. 오후에는 왕진과 입원 환자들의 진료, 밤 시간에는 책을 보고 잠들기 전에 다시 참선 수행으로 하루를 닫는다.
그는 지금 대학원에서 의료 정책 수립,제도, 행정, 의료 관리 등의 예방의학을 전공하고 있다. 93년 그는 한약분쟁의 뜨거운 현장 속에 있었다.
-공부 밖에 몰랐던 고등학교 시절을 마치고 사회를 접한 첫 장면이 머리띠를 두르고 피켓팅을 하는, 데모였었죠.(...)그런 질풍노도와 같은 1년을 보내고 나니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도 있다는 것이 보였어요. 그 적은 바로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정책 리더 그룹의 부재였지요. 그 당시 몸으로 몸소 부딪치고 느낀 바로는 전체 배의 방향을 결정하는 선장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게 졸업 후 제가 예방 의학이라는 과목을 결정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산청에 내려와 아직 진료실 안에서만 지역 환자들을 만나고는 있지만, 지역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작은 바퀴로 인드라망적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 덕산 지역에서 적어도 의료 문제 때문에 이농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그의 작은 바람이다. 우물 안 개구리가 바다를 보았을 때의 놀라움과 경이로움처럼, 인드라망적 세계관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현재는 수많은 가능태들을 품은 준비 기간이나, 개인과 지역의 건강성을 최대화, 극대화하는 것이, 건강한 개인과 개인과의 관계 맺기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 지금 그의 생각이다.
자신과 남을 속이지 않는 깨어있는 삶. 자기가 속지 않는 길은 반야심경에서 표현하고 있듯이 전도몽상에서 벗어나는 것, 금강경에서 말하는 사상(四相)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참된 건강성이라는 것이다. 순간 순간 화두를 놓지 않는 깨어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그는 한의원에서의 하루 일과가 끝나면 거림 계곡의 고요한 선원(禪院)으로 돌아간다.
산청 本 한의원 서지영 님 -그녀가 지리산에 온 이유는?
근본에는 병이 없다. 가슴 떨리는 삶,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아라.
서지영 님(30)은 같은 과 선배인 신윤상 님과의 인연으로 산청읍에 한의원을 개원한 지 이제 석 달여가 되어 간다. 학교를 졸업하고 병원 수련의로 있던 그녀는 2004년 3월, 불교귀농학교 수강을 권유 받았고, 어찌어찌 인연이 되어 송파와 종로를 오가며 수업을 듣게 되었다. 강의하러 오시는 분들의 삶이 농축된, 살아 있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이가 들면 시골에 가 살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이 앞당겨졌다. 그러나 가랑비에 옷 젖듯이 조용히 일어난 변화. 주말이면 강원도며 동해, 영덕, 청송을 여행하듯이 다니며 살 곳을 물색해 보았는데, 먼저 선배가 터를 잡고 있는 곳, 지리산도 있고 교통도 편리한 산청으로 오게 되었다.
-때가 되어서 그리 된 거죠.
졸업을 하고,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고, 주류적 삶을 따라 가느라,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잊고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따라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아 보는 것, 그것이 그녀의 독립이라고 말한다. 온실에서 그대로 옮겨진 것 같은, 그러나 ‘내 뜻대로’ 해 본 것이 산청行이다. 이상과의 괴리, 무엇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 불안, 의식적 조작이 아닌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인 것이다.
고향은 서울이나, 방학이 되면 <집으로>라는 영화를 찍은 충북 영동의 큰집의 자연속에서 마음껏 뛰놀았던 유년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그녀. 메뚜기를 잡고, 고무줄 놀이를 하던 유년의 아련한 느낌이 이 곳 산청의 분위기, 냄새, 아이들의 조잘거림에서 되살아난다. 비록 의료 시스템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여유’가 있는 것이다. 무엇이든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염색도 하고, 옷도 만들고 떡도 손수 만들어 먹고 싶은 사람.
책을 보고 아는 공부도 있으나, 마음에서 마음으로 아는 것이 있다. “아픈 데 쓰다듬어 주고, 가려운 데 긁어 주세요.” 산청의 해동선원의 스님께서 하신 말씀. 산청읍내에는 두 군데 한의원이 고작이라, 지금은 밀려드는 환자에 고단한 처지이나, 마음을 써서’ 침을 놓는다. 외로워서 아픈 이들이라, 자기가 좋아하는 것 제대로 못하고, 상황에 희생되어 살아온 사람들. 믿고 와 주는 마음이 찡하게 느껴지는 사람들. 그들의 아픈 곳을 물어 주고, 일상의 자잘한 고민을 들어주고, 받아 주는 것이 자신의 업이다 싶을 때가 있다.
인드라망이란 원초적으로 있는 자체, 그렇게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무엇이며, 욕심내지 않고, 꽃 필 때 꽃 피고, 떨어질 때 떨어지며 싸우지 않고, 싸우더라도 순간 순간 흘러 가는 것인데, 영양을 독식하는 암세포 자체는 이미 인드라망이 깨어진 상태라고 그녀는 말한다. 세상의 모든 문제들이 유기적으로 살아있는 전체를 단절하는 불안과 거품에서 오는 것이다. 대동각립, 우선은 각자가 바로서야 하며, 따로 또 같이, 나의 삿된 생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전체 속에서 모순됨 없이 가야 하지 않는가라는 것이 인드라망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한 그녀의 대답이다.
불교귀농학교(14기)에서의 서지영 님의 닉네임은 아난다(Ananda)였다. 샨스크리트어로 기쁨과 환희, 지복(至福)을 의미한다. 그녀의 삶속에서 체화된 이야기를 들으며, <아난다 마르가(Ananda marga)> - <지복의 길>이라는 인도명상단체를 떠올렸다. 탄트라 요가, 명상을 통해 자신과 타인,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을 배우고, 건강한 자신을 만들고, 봉사를 통해 밝은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목표인 모임.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탄트라에 가깝다고 스스로를 표현했던 것일까. 때론 언어라는 그릇은 역동적인 삶을 담기에 부족할 때가 있다. 지리산에 내려온 젊은이들,‘따로 또 같이’하나의 등불이 되어 살고 있는 이들. 그들이 그 곳에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희망이고 미래로 보인다.
연착되는 버스를 기다리며 제비의 비행을 한참을 올려다 보다. 산골 물소리를 따라 진주로 오는 길. 그가 혹은 그녀가 지리산에 온 까닭보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보다 더욱 궁금해지는 건, 내가 지리산에 혹은 이 生에 온 까닭은 무엇인가라는 의문. 다시 나에게로 향하는 시선. 나도 하나의 등불이 되어 살고 있는 것인가.
“아난다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는가? 어떻게 비구는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身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느낌들에서 느낌을 관찰하면서[受隨觀] 머문다. …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면서[心隨觀] 머문다. …
법들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 대반열반경, Mahāparinibbāna Sutta, D16.
(에릭사티/짐노페디)
첫댓글 채훈.. 즐거운 인터뷰를 하였네. 또한 건강한 삶의 이야기 .. 고맙게 잘 읽었어 ^^ 또 기다려지는 너의 맛나는 글 ^^
^^ 미류, 어제 그대 꿈을 꾸었네. 출연해 줘서 고마우이 ㅎㅎ <인드라망誌>라고 인드라망 생명 공동체에서 격월로 발간하는 책이 있는데 어찌 어찌 인연이 되어 글을 싣고 있습니다. 마감 시간에 쫓겨서야 겨우 써 내곤 하지만, 아름답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나를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갖지요. 차 한 잔! ^^
참 아릿한 느낌 속에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의 향이 전해져오네요... 사진 음악 다 좋아요...()...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