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8-1610년경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가 중국으로부터 홍차를 가져가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홍차를 마시려면 당연히 여기에 필요로 하는 홍차 다기가 있어야 했으므로 경덕진에서 만들어진 다기들을 가져갔다.
동인도 회사의 선박과 다른 유럽의 무역선들은 주로 광주에 도착하여 교역을 하므로 경덕진의 다기들은 머나먼 광주로 운반되어 수출 되었다.
청대 경덕진에서 만들어지던 채색도자기의 수출이 활발해지면서 채색자기의 주문 양이 증가되자 생산관리의 합리성을 도모하려 경덕진에서 순백자를 가져와 광동에서 채색한 뒤 2차 저온소성 하여 수출하기 시작한다.
초기에는 경덕진의 채색기법이나 색채를 따르지만 점차 주문자들이 요구하는 서양화 그림을 주제로 한 문양들의 주문들이 많아지면서 이전과는 다른 광동만의 색감과 문양을 지닌 광채(廣彩)로 자리가 잡혀갔다.
광채 도자기들은 대부분 유럽 귀족들의 주문품에 치중되어 유럽의 생활 면모가 물씬 풍기는 도자기들의 모습을 지니고 있으며 경덕진의 분채기법에 그 바탕을 두고 있었다.
광채는 경덕진의 경직된 전통적 채색기법에 비해 서양인들의 기호에 따른 자유로운 채색 기법을 구사하였으며 그림에서는 서양화의 유화 같은 느낌을 주는데 광동에서 개발된 안료가 사용되었으며 금채(金彩)를 많이 사용한다.
광채로 만들어진 대부분의 다기들은 녹차를 선호하지 않았던 유럽에서 당시 유행 했었던 홍차를 마시기 위한 홍차다구에 치중되어있다
첫댓글 눈이라도 호강합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