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이전(吏典) 제3조 용인(用人)
4. 좌우별감(左右別監)은 수석의 다음이니, 또한 올바른 인재를 얻어서 모든 정사를 의논해야 한다.
《정요(政要)》에 이렇게 말했다. “좌수는 이방(吏房)과 병방(兵房)의 직무를 관장하고, 좌별감은 호방(戶房)과 예방(禮房)의 직무를 관장하고 우별감은 형방(刑房)과 공방(工房)의 직무를 관장한다.”
상고하건대, 이것은 곧 여러 도에서 통행되는 읍례(邑例)이다.
서도(西道)의 큰 고을에는 또 혹 예방ㆍ병방이란 이름이 있고, 창감(倉監)ㆍ고감(庫監) 등이 있어 인원수가 10명에 이르기도 하니, 6명의 인원을 육방(六房)에 나누어 임명하고는, 좌수는 이방의 우두머리가 되고, 창감(倉監)은 호방을 겸하고, 좌별감은 예방을 맡고, - 속칭 관청별감(官廳別監)이라 한다. - 군창감(軍倉監)은 병방을 겸하고, 우별감은 형방을 맡고, - 속칭 감옥(監獄)이라 한다. - 고감(庫監)은 공방을 겸하게끔 직책을 나누어 주어 각각 맡아 관리하게 한 다음 육방의 문서는 모두 이들의 서명을 받아서 농간질하는 일이 있을 경우 허물을 나누어 지게 하면, 체모가 엄정해서 오늘날과 같이 난잡하지 않을 것이다.
녹봉이 많은 인원을 먹일 수 없는 작은 고을은 이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치현결(治縣訣)》에 이렇게 말했다. “향승(鄕丞)과 향감(鄕監)은 반드시 올바른 인재를 택해야 할 것이니, 현재 향청에 근무하고 있는 자들로 하여금 각각 3명씩을 추천하게 한 다음 그 추천 명단을 향교(鄕校)에 제시하여 권점하게 해서 그 다수 득점자를 취해야 한다.”
《상산록(象山錄)》에 이렇게 말했다. “한 향(鄕) - 우리나라 풍속에는 향을 면(面)이라 한다. - 에 무슨 일이 있으면 반드시 군소(群訴) - 속칭 등장(等狀)이라 한다 - 가 있게 마련이니, 그 속을 가만히 살펴보면 옳은 인재를 얻을 수 있다. 그 모습을 보고 말솜씨를 들으며, 어리석은지 슬기로운지를 분별하고 충성스러운가, 간사한가를 구별한다. 그래서 그 사람의 주소와 성명을 적어 가지고 향원(鄕員)들에게도 물어보고 향교 유생에게도 물어보고 해서 이리저리 확증을 얻으면 그 실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올바른 인재를 얻음에 따라 한 자리를 만들고 그 사람으로 메워 나간다. 이렇게 한 달에 몇 사람씩 쓰게 된다면 반년도 채 못 가서 향청(鄕廳)ㆍ무청(武廳)ㆍ풍헌(風憲)ㆍ전감(田監)이 모두가 다 한 사람도 한 고을의 신망을 가지지 않은 자가 없을 것이다.”
고지주(高智周)는 진사(進士) 출신으로 여러 관직을 거쳐 비현령(費縣令)에 보임되었는데, 승(丞)ㆍ위(尉)들의 녹봉이 박한 것을 염려하여 자기 수입을 골고루 나누어 주니 정치 교화가 잘 행해졌던 것이다.
한황(韓滉)이 오랫동안 양절(兩浙) 지방에 있었는데, 각기 장점을 취하여 여러 보좌관들을 임용하니 올바른 인재를 얻지 못한 적이 없었다. 언젠가 하루는 옛 친구의 아들이 찾아와 뵙는데, 한황은 그 능한 점을 살폈으나 장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연회를 베풀어 주었더니 그는 연회가 끝날 때까지 좌우를 둘러보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창고의 문을 감독하게 하였더니, 그 사람은 종일토록 꼿꼿이 앉아 있었으므로 이졸(吏卒)들 중에 감히 망녕되이 창고에 드나드는 자가 없었다.
그 장점만 취한다면 세상에 버릴 물건이 없을 것이니, 이것이 바로 사람을 쓰는 방법이다.
[주-D001] 좌수는 …… 관장한다 : 이 말은 《임관정요(臨官政要)》부록(附錄) 치군요법(治郡要法) 조에 보이는데, 거기에는 상별감(上別監), 차별감(次別監)으로 되어 있다.
[주-D002] 등장(等狀) : 여러 사람들이 이름을 연달아 쓰고 도장을 찍어서 억울한 사정을 관청에 호소하던 진정서.
[주-D003] 고지주(高智周) : 당(唐)나라 때 진릉(晉陵) 사람으로 수주 자사(壽州刺史)ㆍ어사대부(御史大夫) 등을 거쳐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에 이르렀다. 시호는 정(定)이다. 《唐書 卷106》
[주-D004] 한황(韓滉) : 당나라 때 사람으로 자는 태충(太冲),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이부 원외랑(吏部員外郞)ㆍ호부 시랑(戶部侍郞)ㆍ진해군 절도사(鎭海軍節度使) 등을 거쳐 동중서문하 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에 이르고 진국공(晉國公)에 봉해졌다. 《唐書 卷126》
[주-D005] 양절(兩浙) : 절동(浙東)과 절서(浙西)를 가리킨다.
左右別監。首席之亞也。亦宜得人。評議庶政。
政要云。座首掌吏兵房之務。左別監掌戶禮房之務。右別監掌刑工房之務。
〇案此卽諸路通行之邑例也。西路大邑。又或有禮房兵房之名。而倉監庫監。或至十員。宜以六員。分差六房。座首爲吏房。首倉監兼戶房。左別監爲禮房。俗謂之官廳別監。 軍倉監兼兵房。右別監爲刑房。俗謂之監獄。 庫監兼工房。分授職掌。使各照管。六房文簿。皆令受暑。凡有作奸。使之分過。則體貌森整。不如今之亂雜矣。小縣之俸。不能養多員者。不可爲此。治縣訣云。鄕丞,鄕監。必當擇人。令時仕在廳者。各薦三人。乃以薦記出示。鄕校使之圈點。取其尤者。
〇象山錄云。一鄕有事。東俗鄕爲面。 必有群訴。俗所云等狀。 陰察其中。可以得人。親其狀貌。聽其言論。別其愚慧。辨其忠詐。於是錄其鄕里。記其姓名。以問鄕員。以問校儒。參伍印證。可得其實。隨作一窠。以此塡差。月用數人。未及半歲。鄕廳武廳。風憲田監。無一而非一縣之望者也。
高智周擧進士。累補費縣。念丞尉俸薄。以己所入。均分之。政化大行。
韓滉久在兩浙。所辟羣佐。各隨其長。無不得人。嘗有故人子謁之。滉考其能。一無所長。然與之宴。竟席未嘗左右視。因使監庫門。其人終日危坐。吏卒無敢妄出入者。
〇取其所長。則世無棄物。此用人之法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