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래읍성 : 옛 시간으로의 여행
일시 : 2019년 10월7일 월요일
가는길 : 경산역 - 경부선 - 구포역 - 도시철도 3호선 구포역 - 미남역(도시철도 4호선으로 환승) - 수안역.
산행코스 : 수안역 동래읍성 임진왜란 역사관 - 동래만세거리 - 독진대아문 - 동래부동헌 - 동래시장 - 송공단 - 장관청 - 동래구청 - 동래향교 - 동래읍성 서장대 - 북문 - 장영실과학동산 - 동래읍성역사관 - 복천박물관 - 복천동고분군(야외전시장) - 북문 - 마안산 북장대 - 3,1독립운동기념탑 - 인생문 - 망월산 동장대 - 군관청 - 충렬사 - 동래고 항일운동기념탑 - 박차정의사 생가.
올해 2019년,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된지가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해서 100년 전의 시간속으로 부산 동래구로 갑니다.
부산 동래구 도시철도 4호선 수안역에 내리면 임진전란도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수안역 내 대합실로 오르면, 역사 내 "동래읍성 임진왜란역사관"이 있는데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역사 건립 과정에서 확인된 동래읍성지의 남문 부근 해자에서 출토된 인골, 갑옷과 무기 등을 전시하는 곳입니다.
수안역을 나온 걸음은 100년 전 3.1운동 울분의 함성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동래 만세거리를 지나 동래시장으로 향합니다.
부산에서 1919년 3월11일 일신여학교 학생들이 독립 만세운동을 벌인 데 이어 동래지역을 비롯한 전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동래 만세거리의 중심에는 수안치안센터가 동래관광안내센터를 겸하고 있습니다.
수안치안센터 앞 이정표 : 송공단100m, 복천동고분군1km, 동래읍성역사관1.2km - 동래부동헌87km
수안치안센터 오른쪽으로는 독진대아문과 동래부동헌이 있습니다.
독진대아문은 조선 후기 동래부의 군사적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건물입니다.
조선 후기에 동래부는 일본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국방과 외교적으로 중요한 곳이였습니다.
때문에 다른 고을에 비해 관아의 수도 많았고 규모도 컸습니다.
동래부동헌은 조선시대 수령의 집무공간 이였습니다.
동래는 일본과 최접경지로서 한반도 제일의 관병이자 전략요충지로 중시된 만큼 일찍부터 읍성과 관아가 설치되었습니다.
걸음은 동래시장을 지나 임진왜란 때 동래성 전투에서 순절한 동래부사 송상현(1551~1592)과 임란공신을 기리는 송공단에 이릅니다.
오늘 마침, 작은 건물 송공단에는 송상현 427주년 추념제를 동래시장 번영회에서 열고 있었습니다.
송공단을 둘러본 걸음은 동래구청 가는길의 수안교회 옆에 자리한 장관청을 둘러봅니다.
동래 장관청은 조선 후기 동래부 청사 건물의 하나로 이 곳 군장관들이 일을 하던 곳입니다.
동래 장관청을 둘러본 걸음은 "동래읍성 역사축제"를 준비하는 동래구청을 지납니다.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동래는 2000여 년 전 독로국 또는 거칠산국으로 기록이 확인되며 조선시대 동래부로 승격되었습니다.
항도 부산의 중앙내륙에 위치한 동래는 부산의 근원지이자 임진왜란의 최대 격전지이며
조상의 얼과 체취가 살아 숨쉬는 유서깊은 역사와 충절의 고장입니다.
이어, 명륜교차로를 지난 걸음은 동래향교를 지나 동래향교 뒷쪽의 동래읍성으로 올라갑니다.
동래향교는 1392년(태조원년)에 교육진흥책으로 전국에 향교를 세울 때 건립되었습니다.
복천 아이파크 아파트 입구를 지나 동래읍성으로 올라갑니다.
동래읍성지는 조선시대 동래부 행정 중심지를 둘러싸고 있던 읍성의 터 입니다.
동래읍성 오름길은 읍성의 서장대를 지납니다.
서장대 : 동래향교300m - 북문330m, 북장대610m
서장대를 지난 동래읍성은 아래 북문 뒤로 마안산(148.8m) 북장대와 멀리 부산 해운대 장산(634m)을 봅니다.
동래읍성 북문 아래로는 복천박물관, 장영실과학동산이 가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부산 해운대 장산(634m), 복천박물관, 장영실과학동산, 동래읍성역사관, 복천동고분군 뒤로는 망월산 동장대를 봅니다.
장영실과학동산을 둘러보며 동래읍성 북문을 봅니다.
장영실과학동산 아래의 동래읍성역사관으로 가 보지만, 월요일은 휴관이라 견학을 하지 못하고 복천박물관으로 내려갑니다.
복천박물관과 복천동고분군(야외전시관)을 연결하는 다리에서 복천박물관 역시 월요일은 휴관이라 복천동고분군으로 향합니다.
걸음은 가야의 흔적을 찾아 복천동고분군 야외전시관으로 향합니다.
유리온실 같은 야외전시관 안에는 대형고분 발굴 당시의 모습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제법 긴 복천동고분군을 한바퀴 돌아봅니다.
복천동고분군은 단일고분으로는 갑옷과 투구가 가장 많이 나온 유적이랍니다.
복천동고분을 돌아 나오며 야외전시관 뒤로 마안산(148.8m) 북장대를 봅니다.
출토된 철제 갑옷에 새 모양의 장식이나 깃털로 어께 부위를 장식하기도 했다고 하니 미적 감각도 뛰어났을 것 같습니다.
복천동고분군을 지나며 오른쪽으로 부산 해운대 장산(634m)과 복천동 위로 동래읍성 동장대가 있는 망월산을 봅니다.
왼쪽으로는 동래읍성 북문과 동래읍성역사관 - 복천박물관이 바로 옆에 있습니다.
걸음은 다시 동래읍성 북문으로 오르며 복천박물관 안의 칠두령쉼터에서 잠시 쉬어갑니다.
칠두령은 본래의 주술적 의미와 권위적 가치보다 조형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약간은 미래 지향적인 구성을 택했다고 합니다.
복천동의 역사적 가치와 출토물의 주류를 이루는 철기와 토기의 느낌을 담고자 하였답니다.
다시, 동래읍성 북문에 오른 걸음은 마안산(148.8m) 북장대로 오르며 북문 앞의 큼직한 비석인 내주축성비를 봅니다.
내주축성비는 1731년(영조7)에 동래부사 정연섭이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동래읍성을
대대적으로 수축한 사실을 기념하기 위하여 1735년에 건립하였답니다.
북문을 지난 걸음은 동래읍성을 따라 마안산(148.8m) 북장대로 오릅니다.
산은 낮지만 북장대 오름길에는 가파른 "백세의 계단"이 있습니다.
잠시 급한 오름길은 왜적과 끝까지 싸운 동래부사 송상헌의 생애를 느끼게 하는 사방 전망이 좋은 동래읍성 북장대에 이릅니다.
마안산 북장대 : 북문290m, 서장대620m, 동래읍성역사관390m - 부산3.1독립운동기념탑150m, 인생문480m, 동장대890m
마안산 북장대에서 건너편의 낮은 산인 망월산 동장대 뒤로 부산 황련산(427.6m) - 금련산(403m)을 봅니다.
마안산(148.8m) 북장대에서 편백나무 데크계단을 내려가 부산3.1독립운동 기념탑으로 향합니다.
데크계단을 내려선 갈림길에 멋진 편백나무 숲길이 있어 잠시 걸어봅니다.
다시 잠시 오른 걸음은 부산3.1독립운동 기념탑에서 경건한 묵념을 합니다.
부산3.1독립운동 기념탑은 1919년에 동래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일본에 맞서 일어났던 3.1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탑입니다.
부산3.1일독립운동 기념탑 오른쪽으로 편백나무숲 데크길을 따라 인생문으로 내려갑니다.
내림길! 울창한 소나무숲길은 천불암 앞에서 임도로 내려갑니다.
임도로 내려온 걸음은 새로이 조성한 인생문으로 올라 망월산 동장대로 향합니다.
인생문의 전설은 임진왜란 때 이 문을 통해 피난 간 사람은 모두 목숨을 건져 "사람을 살린 문"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문 : 부산3.1독립운동기념탑1.2km - 복천박물관400m, 복천동고분군400m - 동장대600m
인생문에 올라, 가벼운 점심시간을 보내며 천불암을 봅니다.
걸음은 인생문을 걸어보며 인생문 뒤로 가야할 망월산 동장대를 봅니다.
동네를 가르는 낮은 능선길을 따라 망월산 동장대로 향합니다.
낮은 능선의 데크계단에 올라, 지나온 복천동고분군과 동래읍성, 마안산(148.8m) 북장대를 봅니다.
또한, 능선 상의 넓은 주차장과 잠시 숲이 울창한 능선을 지나고 철망 울타리가 쳐진 문으로 들어섭니다.
철망 문 앞의 숲속의 쉼터가 있는 산불초소 갈림길에서 오른쪽 망월산 동장대로 올라갑니다.
이어 걸음은 동래읍성 망월산 동장대에 이릅니다.
망월산 동장대를 둘러보고 다시 산불초소 갈림길로 되돌아온 걸음은 고즈녁한 군관청에 이릅니다.
군관청은 조선시대 동래부 청사 건물의 하나로 군관들의 집무소 였습니다.
군관청을 지난 걸음은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내려가 충렬사로 향합니다.
내림길은 부산 망월산 좋은 터에 자리잡은 충렬사 본전으로 향합니다.
충렬사 본전은 임진왜란 당시 부산 지방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왜적과 싸우다 순국한 선열을 모신 사당입니다.
부산 지역에서 전사한 선열 23명과 동래부, 부산진, 다대진, 및 부산포 해전에서 전사한
무명용사 들의 위패 4위, 의병 62명의 위패를 모신 충렬사 본당입니다.
충렬사 본전에서 경건한 묵념을 드리고 충렬사 아래를 봅니다.
부산 동래구 충렬사에는 본전, 의결각, 소죽당, 기념관, 의중지 들이 있습니다.
충렬사 본전을 내려서며 의열각을 봅니다.
의열각은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싸우다 순국한 의녀들을 모신 사당입니다.
동래성 전투에서 왜적과 기왓장으로 싸웠던 무명의 두 의녀와 당시의 동래부사 송상현 공과 부산첨사 정발장군을 따라
순절한 금섬, 애향 두 열녀 등 모두 네 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습니다.
충렬사를 내려선 걸음은 충렬사 아래의 의중지에서 "의" 를 중시했던 옛 선인들을 생각해 봅니다.
1592년 4월14일 부산진성을 무너뜨린 왜군 2만 명은 다음 날 동래성으로 치달았습니다.
동래부사 송상현을 중심으로 읍민이 결사 항전했지만 중과부적. 동래성 전투에서 3,000명 넘게 숨졌습니다.
내려온 충렬사를 봅니다. 숙연해지는 가슴을 안고 동래고등학교로 향합니다.
충렬사 입구 : 동래구청1.5km, 동래읍성지2.4km, 동래부동헌1.3km, 박차정의사 생가0.7km - 부산동래패총1.2km
충렬사의 뭉클한 마음은 부산 동래고등학교 교정 안에 있는 "항일운동 기념탑" 앞에서 더욱 업 됩니다.
부산에는 만세운동 기념물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시대상의 수탈, 항거의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 많습니다.
이어진 걸음은 동래고등학교 맞은편의 독립운동가 박차정의사 생가를 방문하며 약5시간의 옛 시간으로의 여행을 마칩니다.
의열단 등에서 활동한 두 오빠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독립운동에 투신한 박차정의사는 중국으로 망명해 의열단 단장 김원봉과
결혼하며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나섰는데 전투 중 입은 부상이 악화해 34세이던 1944년 중국에서 순국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여성의 몸으로 국내 뿐 아니라 중국 곤륜관 전투에도 직접 참전하는 등
일생을 항일운동에 헌신하신 박차정의사의 생가가 있었던 곳으로 2005년 7월 복원하여 개방 하였답니다.
아담한 크기의 기와집에는 1995년 추서 받은 건국훈장 독립장과 국가보훈처의 2006년 5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 기념 명판 등 박 의사의 업적과 일생을 보여주는 전시물이 갖춰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