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시키와라시 - 2
적갈색 벽돌담이 빗물을 머금어 조금 칙칙해졌다. 위쪽 벽돌은 완전히 젖어
들었고, 중간 부분에 마른색이 조금 남아있다. 가느다란 가랑비지만 창문을
열면 비냄새가 물씬 흘러 들어오리라.
문득 새 생각이 났다. 공원에 있는 비둘기와 까마귀, 구슬을 박아넣은 것처
럼 동그랗기만 한 동공(瞳孔).
이 정도 비는 그냥 맞고 있을까. 네 갈래로 갈라진 발가락으로 보도블록을
디디며 어쩔줄 몰라하고 있을까. 그런쪽으로는 무지하다. 비오는 거리에서
비둘기를 본 듯도 하고.
하지만 나는 -옆자리에 놓인 우산을 바라봤다- 비를 맞지 않아도 된다. 조
금 행복한 건지 모른다.
부엌 식탁에 앉아있는 것은 키친이란 소설을 좋아해서도 아니고 그저 가끔
씩 거실이 부담스러워서이다. 너무 넓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과하게 푹신
한 여덟 개의 소파 중 어디에 앉아도 나는 너무 작고 거실은 너무 조용하다.
모두 여행을 떠난 다른사람의 집을 봐주러 온 기분이 든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집이 넓어졌다.
부엌은 거실의 반대편에 있다. 짧은 복도와 홀을 사이에 두고 동쪽 끝은 부
엌, 서쪽은 거실이 자리하고 있다. 그 때문일 것이다. 오전에는 굳이 조명을
켜지 않아도 부엌이 더 밝으니까 부엌으로 오는 것이다. 아침의 집안은 조금
어둡다.
벽시계를 흘끗 올려다보고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었다. 친척 아주머니가 가
져다주신 가지절임과 우엉깨소금무침 등이 보인다. 그것들을 가만히 외면하
고 탄산음료 페트병을 꺼낸다. 하지만 다음에 아주머니가 방문할 때까지 어
떻게든 그것들을 조금은 줄여두어야 한다. 인정상.
우유맛이 나는 탄산음료에 물을 좀 타 마시면서 배에 손을 댔다. 교복 블라
우스 아래 만져지는 배가 조금 차가워, 오랜만에 아침을 먹기로 했다.
메뉴는 별로 바뀌지 않았다. 얇은 토스트, 반숙달걀, 과일 약간.
엄마가 억지로 권해서 마셨던 녹황색 채소주스는 빠졌다.
텅 빈 가옥 한 귀퉁이, 반짝거리는 스테인리스 싱크대 옆에서 나를 위해,
내가 먹기위해 만드는 프라이는 굉장히 부질없었다. 또는 서글펐다. 요리란
건 남이 먹을것을 만드는 것인가 보다.
노른자 옆구리가 터졌다. 기름 냄새가 나서 창문을 조금 연다. 엄마도 그랬
다. 한겨울에도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곤 해, 난 “후드 있잖아, 후드 틀어”
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 “갑갑하잖아, 창문 안 열면”하는 대답이 돌아왔
다. 뭐가 갑갑하단 거야, 하고 생각했지만 나도 이렇게 창문을 열게 된다.
비스킷마냥 바삭해질 때까지 구운 내 취향의 토스트에 블루베리잼을 조금
펴 바른다. 엄마가 살아계실 때는 특제 후르츠허니타르타르소스를 쓰곤 했
다. 엄마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가져온 특제소스는, 곡류처럼 담백하고 복숭
아 맛이 났었다.
혼자 묵묵히 먹는 일에 집중하면서 자꾸 시계를 본다. 금속 포크가 접시에
닿는 소리. 유리컵을 식탁에 내려놓는 소리.
대로에서 벗어나있는 집에는 거리의 소음이 도달하지 않는다. 무소음 벽시
계의 긴 바늘이 한 칸 움직였다. 한 칸은 6도다.
아침식사는 맛있었다. 슈퍼에서 산 블루베리잼도 맛있었다. 하지만 너무 달
았다.
#플랫폼, 전철
항상 비슷한 승차위치에서 전철을 기다린다. 전철에서 내렸을 때 학교로 통
하는 출구로 곧장 빠져나갈 수 있는 자리다.
출근시간 조금 전이지만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시내방향으로 향하는 전철
이 복잡해지는 건 앞으로 두 정거장쯤 후부터이다. 안내방송이 끝나고 전철
이 출발하기를 기다려, 옆구리에 끼고 있는 가방에서 문고본을 꺼냈다. [일
곱의 검은 꿈]. 5번째 이야기 읽을 차례다.
두어 페이지 넘기다가 작게 숨을 내쉬고 책을 덮었다. 잠을 적게 자서 그런
지(아마 그럴 테지만) 자꾸 글자를 헛읽게 된다. 꽤 아끼는 책인데 스토리만
대충 파악하고 끝내버리긴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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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역시..글이 디테일한데요...음..근데...앞으로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지...^^;;; 감이 안오네요...호호...
사실은.. 사실은... 저도 어떻게 전개시켜야 될지 감이 안와요ㅠ_ㅠ.. 대충 줄거리는 잡아놨는데 어떻게 풀어가야 할 지 잘 모르겠다고나 할까요.. 그래도 어떻게든.. 어떻게든 되겠죠!! 호호.. 기프트숍님 감사드려요^^
특히..마음에 드는 부분은 끝부분이랑, 블루베리 잼이 나오는, 하지만 너무 달았다...!!!!! 일상을 이야기 하는 것 같으면서도 주인공의 심리묘사를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요!!!!<-아닌가,-_-;;<-ㅌㅌㅌ /ㅁ/ 우어어, 사와지리 님 같은 글 분위기를 좋아해 버렸어요! /ㅂ/ //아아, 키친! 그거 요시모토 바나나 님의 소설 아닌가요? 처녀작이었던가, 저도 요시모토 바나나 님 소설 좋아한답니다아. >ㅁ<
사실.. 블루베리 잼으로 할까, 그레이프프푸트 잼으로 할까, 아니면 그냥 딸기잼으로 할까 망설였답니다.. 근데, 딸기잼은 너무 흔하고, 그래이프프루트 잼은 '후르츠허니타르타르소스'라는 단어와 '후르츠(프루트)'라는 말이 겹쳐서 쓰기가 망설여졌어요.. 그래서 블루베리 잼으로 낙찰!! // 요시모토 바나나님의 '티티새'는 읽고또읽을만큼 좋아한답니다. 불륜과남미 빼고 요시모토 님의 소설은 저도 좋아해요. '몸은 모든것을 알고있다'라든지 '암리타'도 좋아하구요.. >ㅁ< //라즈페님 감사드립니다!!
전 너무 단걸 좋아합니다. 허허허- '잠을 적게 자서 그런지 자꾸 글자를 헛읽게 된다. 꽤 아끼는 책인데 스토리만 대충 파악하고 끝내버리긴 싫었다.'이부분..완전 동감됩니다아..ㅠㅠ!! 저는 거의 매일 졸리기때문에 늘 이런 마음을 가진다는..ㅠㅠ!! 크흑..글로 읽으니..상당히..슬픈상태인거군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