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1> 그들은 왜 가스전에 갔을까?
리얼 버라이어티 정치 풍자극
지난 1월 5일 방영된 무한도전의 새해 특집은 수많은 언론들로부터 진부하고 소재가 고갈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래서 이번에 방영된 무한도전은 전편의 부진을 만회하고 어떻게 시청자들에게 빅-재미를 선사할 것인가에 여론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연예계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6명의 MC들이, 그것도 매회 30%에 달하는 시청율을 자랑하는 무한도전에서 정치 풍자극이 펼쳐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비판의 신랄함과 강도에 있어서 근래 어떤 정치 코미디보다 단연 앞서 있다는 점에서 이번 에피소드는 무한도전 역사상, 아니 대한민국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획기적인 사건이라 평가될 수 있다.
아마 평범한 시청자들이라면 관계자들의 안내를 받으며 다소 생소한 동해 가스전을 소개받는 과정에서 멤버들의 재치있는 입담과 몸개그를 기대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1시간 가량 이루어진 그 과정은 과감하게 생략된 채 다소 뜬금없이 2008 무한도전 반장선거의 장이 펼쳐졌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무한도전 팀은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망망대해 위의 가스전을 방문했던 것일까? 단순히 동해에서 떠오르는 새해의 첫 태양을 전달하기 위해서였을까? 그러나 그마저 구름에 가려 결국 CG로 처리되고 말지 않았나.
왜 가스전인가?
그러나 김태호 피디가 정치 풍자극을 펼치기 위해 의도적으로 가스전을 촬영지로 선택했다면 그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보여진다. 바다 위에 세워진 가스전은 섬이 아니면서 섬의 구실 하고, 땅이 아니면서 땅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장소(Topos)이면서 장소가 아니다(U-topia). 무한도전이 버라이어티쇼와 리얼리티쇼 사이, 현실과 쇼오락 사이의 첨예한 긴장 속에 서 웃음을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이라면 가스전이야말로 무한도전의 무대를 상징한다. 또한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1516> 이래 섬은 현실로부터 동떨어진 유토피아의 장소이면서 현실의 추악한 정치세계를 비판적으로 고찰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왔다는 점에서 섬이면서 섬이 아닌 가스전은 정치적 알레고리의 무대이다.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1726)의 천공의 섬 라퓨타,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1954)의 무인도,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1976)의 소록도 등은 이러한 전통의 대표적인 예들이다.(김태호 피디는 정말 천재가 아닐까?)
정치 코미디의 대가 박명수
굿판이 만들어졌으니, 이제 그 굿판을 신명나게 만들어줄 주연이 필요하고 무한도전 6인방 중에서 박명수 만큼 그 역할을 탁월하게 수행할 수 있는 인물도 없어 보인다. 박명수는 이미 <달력특집>(무한도전 82회, 12/15)에서 유재석, 박명수, 하하 팀과 정준하, 정형돈, 노홍철의 팀명을 정하는 과정에서 BBK팀과 BBQ팀으로 나눌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실제로 이명박 태통령 당선자가 유세장에서 "요새 나 때문에 BBQ가 뜬다더라"는 농담을 한 적이 있는데, 박명수는 이를 재빠르게 코미디의 소재로 차용한 것이다. 또한 그가 낡은 개그, 썩은 개그는 물러나야 한다고 말할 때, 그는 정동영을 패러디하고 있다. 사실 박명수는 이회창의 성대 모사로 정치 풍자 개그를 선보인 적도 있었고, 의외로 정치와 개그를 접목시키려고 노력해온 코미디언들 중 하나이다.
박명수의 호통과 비난은 그가 허술하기 짝이 없는 아버지이자 하찮은 형이라는 점에서 김구라에 비해 보다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에 비해 풍채도 좋고 의외로 지적인 개그를 펼치는 김구라의 독설은 그에 비해 못난 인물로 평가받는 사람에게 향할 경우 쓴웃음을 유발하게 한다. 그가 웃음의 쾌감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그보다 권위적이고 힘 있는 인물들에게 독설을 뿜어야겠지만 공중파로의 커밍아웃 이후 그의 행보는 오히려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실제로 얼마전 라디오 스타에서 이승철에게 보여준 태도가 그렇다) 반면에 박명수는 거의 레전드급 에피소드라 불리는 이경규와 벌였던 비난 배틀이 보여주듯 고하를 막론하고 비난과 호통을 퍼붓는다. 그러나 그가 쥐고 있는 패가 뻥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에, 그의 비난이 악의가 없는 연기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모두 웃어 넘기게 된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박명수가 반장선거에서 기호 1번이 아닌 2번으로 등장하면서도 무한도전의 고유명수답게 제일 먼저 연설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건 박명수란 이름의 아나그램(Anagram)인 "수명박"이 교묘하게 이명박 당선자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IQ 450을 주장하고 무한도전 세트를 판문점으로 옮기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하하는 누구나 손쉽게 허경영 후보를 떠올리게 하고, 또 자막 역시 하본좌라고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무한도전의 반장선거는 아무리 현실 정치를 떠올리게 하더라도 쇼 버라이어티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유재석이 쉰 목소리로 무한재석교의 교주로서 자신의 정당성을 호소하고, 정준하가 제작진들에게 파카 제공을 공약으로 내걸고, 정형돈이 어처구니 없는 선거송을 부를 때 실제 정치를 흉내내고 모방하고 있지만 그 차이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카메라 앵글이 수시로 선거유세가 이루어지는 내부 공간 여기저기에 흩어져서 웃으면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무한도전 제작진들의 모습을 비추는 까닭 역시 이건 무한도전 내의 반장선거일 뿐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키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무한도전은 리얼 버라이어티 쇼이지 하드코어한 정치 코미디를 지향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유난히 빛났던 자막들
무한도전의 재치있는 자막 사용은 익히 알려져있던 것이지만 이번 에피소드만큼 그 사용이 빛났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박명수가 자신의 친구 이야기를 꺼내며 태안 운운했을 때, 그 밑에 사용된 <어쩌라고요?>라는 자막은 직접적으로 박명수의 발화내용을 지시하지만 동시에 그 동안 무한도전은 왜 기름 유출사고가 발생한 태안을 방문해서 봉사활동을 하지 않는냐고 비난을 해왔던 여론을 향하고 있다. 자막의 언어가 쇼 프로라는 허구의 세계와 실제 현실의 세계를 교묘하게 동시에 지칭하면서 그 지시대상들 간의 차이를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묘한 쾌감을 가져다 준다.
특히 개인적으로 짜릿할 정도의 웃음과 쾌감을 주었던 자막은 <내가 하면 하찮은(창조적) 모방>이란 자막과 <무한도전 못 잡아 먹어 난리인 요즘 박명수의 시대?>란 자막이다. 인터넷 언론이 무한도전의 표절 사실을 지적하며 비난을 가했던 데 비해, 동시간대의 경쟁 프로그램에게는 <창조적 모방>이란 찬사를 아끼지 않는 기사를 썼던 사실에 대한 무한도전 측의 비아냥거리는 답변인 셈이다. 아마 이 두 자막들 만으로도 속으로 뜨끔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을까 한다.
그리고 자막의 중의적인 언어는 만년 2인자 박명수가 반장으로 당선된 이후에도 날카롭다 못해 불안감을 느낄 정도로 신랄하게 사용된다. <근데 왠지 불안불안하다>, <이변! 지지율에 비해 저조했던 득표율!>, <허무하게 .... 새 시대는 이렇게 오나?> 등과 같은 자막들은 신문 표제로 뽑아서 실제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이번 선거 결과를 잘 반영하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대담하기 짝이 없는 자막들을 과감하게 사용한 김태호 피디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komoidia라는 그리스 어원에서 파생한 코미디는 전통적으로 풍자와 비판 정신으로 무장하고 있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하는 장르이다. 무한도전이라는 대단한 프로그램을 연출하면서 당대의 거물급 연예인들을 휘하에 두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 정도의 배짱과 도전 정신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무한도전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한 무한도전이 식상해졌다고 비판하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나는 김태호 피디의 이와 같이 날선 비판적 현실인식에서 이 프로그램의 미래는 아직까지 닫혀 있지 않다고 본다.
여느 오락프로그램이 그러하듯 시청자들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안일하게 제작할 수도 있었음에도, 날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비난 속에서도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정치 풍자극을 제작할 수 있는 용기와 실험정신은 김태호 피디가 연말 시상식장에서 자신은 죽을 각오를 하고 코미디 프로를 제작하고 있다는 말이 결코 빈 말이 아니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그의 정신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꺽이지 않는 한, 그와 한 몸이 되어 일사분란하게 제 역할을 다 해주고 있는 출연자들이 있는 한, 무한한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무한도전!
미주) 방영이 끝나면 2,30 내로 올라오는 기사들도, 다른 프로그램 홍보해주기 바쁜 기사들도 무한도전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과 의미를 정리해주지 못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시청자의 입장에서 감히 무한도전 리뷰를 해봤습니다.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란 제목은 제가 전문적인 글쟁이가 아니기 때문이고 또 시청자 게시판을 둘러보고 휘갈겨 쓰는 기사들과는 달리 발로 뛰며 쓰려고 노력한다는 의도에서 붙여 보았습니다. 무한도전을 아끼고 사랑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이게 다 사실이라면 정말 태호피디 생각했던것 보다 훨씬 대단한 분이시군요!!!
무도에서 정치풍자개그를 할줄이야 달력특집에서 BBK BBQ할때 그냥 넘어갔었는데
이렇게 아예 대놓고 하시다니.. 저는 솔직히 정치풍자개그인건 프로그램 다 보고
어떤 분이 글 쓰셔서 알았는데 이런 저를 부끄럽게 하는 태호피디네요
몸조심하세요 태호피디~ 뭐 독재정치시절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
첫댓글 "정형돈이 어처구니 없는 선거송을 부를 때" 이것만 빼고 정말 글 잘쓰시네요ㅋ 어처구니 없다니요~ 전 빵빵 터지는데.. ㅋㅋ 화이팅 ㅋ
이글 완전 빵빵 터지는데여~!!ㅋㅋㅋ 제발 무한도전좀 가만 놔뒀음 좋겠어여..!!! 뭐 어쩌라구ㅡㅡ^ㅋㅋ
teo 피디는 천재? '왜 가스전인가' 이부분.. 공감가네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가요대제전이 생방이구요..^^ 새해특집 1편에 보면 이건 12월달 몇일이던가 미리 찍은거라고 날짜 나와요..^^
아 ㅋㅋ 감사해요
와우~! 이분이야 말로 진짜 천재입니다. 저는 그런 정치풍자 개그나 자막들 그냥 웃어넘거갓는뎁.. 대단하시네요~^^
무척 공감가는 글입니다... 팬의 입장에선 전혀 생각도 못했지만... 무한도전에 대해 비방하고 뜬금없이 비하만 했던 사람들에겐 정말 뜨끔하지 않을수 없던 글이었네요...
진짜 무도 까는 사람들 요즘 넘 많아서 슬퍼요 ㅠㅠㅠ
이건;;;...너무 오바인것 같은데;;;;...무도를 좀 가볍게 봐 줬으면...
ㅋ 정말 그런지 안그런지는 모르지만 선거 부분에서 나온 멤버들의 공약이나 자막들은 왠지 공감이 가네요 ㅎ
난 정치풍자인지 먼지도 모르고..그냥 재미있게 봤는데.. ^^
역시 천재 피디 프로그램이 인기가 많은건 당연한거죠 거기다 맴버들도 한명한면 자세히보면 천재죠
글 참 잘 쓰신것 같아요,, 저도 보면서 그냥 지나간 것도 있고 궁금했던 부분도 있었는데 다 풀렸어요^^ 무한도전 보면 그냥 웃고 지나갔던 부분도 나중에 보면 다 뜻이 있고 이유가 있는 내용이 많아요..
♡
무도보면서 그냥 흘려보냈는데 정말 공감가시게 잘쓰셨네여.지금까지 특집아이템들이 의미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들이 드네요..태호피디 똑똑하시네요..^^
저도 완전공감이에요!! 정치풍자라는 게 딱 보이더라구요. 와 정말 잘쓰셨네요.
정말 유난히 빛났던 자막에 기립 찬사를 보냅니다. 보면서 내내 감동했다는.. 이건 오로지 궁핍했던 시절을 꿋꿋하게 스탭과 출연자들이 지금까지 무단한 노력으로 이뤄낸 '오늘'의 힘이기에 이런 자막과 연출의 힘이 생기거라본다. 요즘 저급 정치풍자코미디보다 훨씬 강하고 재미있었다.
정치풍자다 아니다 말도 많았던 에피소드죠. 의도가 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전 분명 정치풍자라고 생각하거든요. 며칠 몇주를 고민하면서 만드는 프로그램인데 아무 의도 없이 우연히 만들어질 수는 없는 내용이었죠. 그냥 선거철이니까 그런 상황을 이용해서 한번 웃겨보자일 수도 있고, MBC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당선자에게 정면으로 비판의 날을 세운 것일 수도 있구요. 군사독재 시절은 아니지만 몸조심 좀 해야할 거 같기는 합니다. 웬지 이번엔 말 함부로 하면 당할 거 같은 기분이 드는건 저뿐인가요? 그러나 수백만 무한도전 팬들도 가만있지는 않을테니 용기를 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