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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3주일설교 누가복음12:1-12(아주 작은 것의 소중함)
본문: 누가복음12:1-12
제목: 아주 작은 것의 소중함
오늘은 누가복음12:1-12의 말씀을 가지고
“아주 작은 것의 소중함”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무엇입니까?
“아주 작은 것의 소중함”
사람에게는 겉이 있고 속이 있습니다.
하지만 겉은 보여서 알수 있지만
속은 보이지 않아서 모릅니다.
그래서 속담에도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겉만 보이는 것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그래서 매일같이 자신의 얼굴을 어떤지
거울을 보고 살핍니다.
세수를 하고 수염을 깎고 화장을 합니다.
하지만 내 마음이 어떤지
살펴보고 있습니까?
내 마음에 어둠의 원인은 무엇인지?
내 마음에 오물덩어리는 무엇이 있고 얼마나 많은지?
내 마음에 상처는 잘 낫고 있는지?
잘 살펴보고 있습니까?
살펴보기 보다는 무시하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 마음의 오물을 청소하거나 상처를 치유하기 보다는
모른 척 무시하며 살지는 않습니까?
그 마음의 돌덩어리들을 치우기보다는
묻어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마음이 보이는
혼자 있는 시간을 싫어합니다.
마음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를 싫어합니다.
내 마음을 보여주는 어떤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부부로 살면서도
친구라고 하면서도
오랫동안 직장동료이면서도
그렇게 살아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살아도
별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렇게 산다고 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으며
겉만 잘 꾸미고 겉의 말만 하고 살아도
그런 겉으로 하는 말에 사람들이 감동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살아도 될까요?
그렇게 사는 우리에게 주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요?
1.위선을 조심하라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의
속이 더럽고 추악하고 탐욕이 가득하다고
그 속을 드러내며 저주를 하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겠다고 수 만 명이 모여 들었습니다.
얼마나 많이 모였는지 서로 밟힐 지경이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사람들이 모여 들었을까요?
당시 바리새인이나 율법 교사들을 향해
예수님처럼 혹독하게 저주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누가 감히 바리새인들이나 율법 교사들에게
그들의 문제점을 말할 수 있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당시 존경받는 사람들이었고
그러한 사실에 대해서 누가 아니라고
반기를 들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그렇게 강력하게
그들의 치부를 드러내며
그들의 잘못을 매섭게 꾸짖고
더 나가 저주까지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소문이 퍼졌고
그 소문을 듣고 싸움 구경을 하기 위해서
모여 들었습니다.
구경 중에 최고는 싸움 구경이라고 했죠!
당대 최고의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들과
떠돌이 교사였던 예수님과 싸움은
사람들이 볼 만한 구경이라고 여기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서울 대 출신의 유명 대학의 교수님들과
초등학교도 제대로 안 나온 시골 떠돌이 선생과의
싸움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싸움의 승자는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들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말씀하시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회당의 높은 자리에 앉았고
장터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사를 받는 자신들이었습니다.
그런 자신들을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듣는 속에서 말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화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일반 사람들을 잘못된 곳으로 이끄는
다른 사람들에게 짐을 지우는
다른 사람을 부정하게 만드는 그런 자들이라고
예수님은 혹독하게 그들을 몰아붙였고 저주를 하였습니다.
그것을 듣는 그들의 속이 얼마나 부글부글 끓었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었고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였기에
다음에 보자는 식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을 보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닌다.
“너희는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1절)
지금까지 보여준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보았다면
그런 그들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사람들이 말씀을 따라 가는 것은 어렵습니다.
말씀을 따른 다고 하는 것은
내 생각을 버려야 하고
내가 바라보는 것을 버려야 하고
내 뜻을 버려야 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 일이 쉽습니까?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물이 아래로 흐르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위로 흐른다는 것은
강력한 힘을 쓰지 않으면 그럴 수 없습니다.
말씀을 따르는 일은 아래로 흐르는 일이 아니고
하늘 뜻을 따라 위로 올라가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일 어렵기에 위선적으로 살려고 합니다.
그 길이 바른 길인지 알지만
그렇게 살기는 어렵기 때문에
위선적으로 살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위선적으로 살기는 쉽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감추고 안 그런 척 하면서 살기는 쉽습니다.
그러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모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겉으로 거룩하게 보이고
겉으로 하나님의 자녀처럼 보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예배 참석 잘하고
말씀을 읽고 잘 듣는 모습을 보이고
순종적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면
사람들은 그렇게 보아줍니다.
하지만 정상적인 가족이라면 가족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진정한 친구면 속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동료나 이웃은 속일 수 있습니다.
좀 멀리 있는 사람들은 쉽게 속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덮어둔 것이라고 해도
벗겨지지 않을 것이 없다고 하십니다.
덮어둔 것은 반드시 벗겨지는 날이 있습니다.
숨겨놓았던 것은 벗겨지게 되어 있습니다.
숨긴 것이라고 해도 알려지지 않을 것은 없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마음속에 추악한 것을 숨겨둔다고 해도
그것은 벗겨지는 날이 있다고 하십니다.
아무리 우리의 추악하고 탐욕스러운 것을 감춘다고 해도 그것은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어두운 곳에서 한 말을 사람들이
밝은 데서 들을 것이라고 합니다.
아무도 듣지 않는다고 내 추악한 마음으로
행한 일이 숨겨지지 않고
모든 사람이 듣는데서 들려질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왜 함부로 말하고
욕심껏 행동하고 추악한 말을 하게 될까요?
그것은 다른 사람이 듣지 않고
다른 사람이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는 말 모두가
다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어찌 말만 그럴까요?
우리가 품고 있는 탐욕과 악독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어찌 사람들이 그것을 숨기고
거룩한 사람들처럼 살 수 있을까요?
잠시 잠깐일 뿐입니다.
탐욕 있는 사람은 그 욕심이 말과 행동에 나타나고
악독이 있는 사람도 역시 그의 말과 행동에 나타납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먼저 나타날 것이고
이웃에게 그 다음 나타날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모든 사람이 다 알게 될 것입니다.
역사가 그것을 보여주며
사회가 그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위선을 경계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위선을 가지고 살면 그것은 화를 당하는 일이 되고
위선을 따라 살면 그 모든 것이
폭로될 날이 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2.두려워해야 할 분은 두려워해야 한다.
왜 사람들이 위선적인 생활을 하게 될까요?
왜 바리새인들은 위선적인 생활을 하게 되어서
예수님께로부터 그런 무서운 저주를 받게 된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을
속속들이 들여다 보고 계시다는 것을 알았다면
어떻게 그들이 그렇게 행할 수가 있었을까요?
그들이 두려워 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사람들의 평판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존경이나
대우를 받지 못 할까봐 하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멀리 보였고 사람들은 가까이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바르게 한 것이 아니고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한 것이 아니고
그들에게 잘 보이려고만 행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속여 잘 보이려고만 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친절해야 하고
우리는 사람들에게 예절바르게 행해야 하고
우리는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대해야 합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이 사람들에게 잘 보이는 것은
속이는 행위였고 그것을 통해서
존경만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존경을 받는 것도 좋은 것입니다.
나에게 마땅히 존경할 모습이 있어서
사람들이 나를 존경한다면 좋습니다.
물론 그것도 하나님 보다
내 자신이 더 높아진다면 조심해야 합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이 행한 일들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존경을 받고 높은 자리에 앉기 위해서
사람들을 속였습니다.
자신의 속은 악독과 탐욕이 가득하면서
사람들에게 거룩한 것처럼
존경받을 대상처럼 행동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시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멀리 있었고 단지 사람들만 보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이 그렇게 행한 것은
하나님을 모르거나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버리시고 다윗을 택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다윗은 사울에 비해 외모가 뛰어나지 않았으며
전쟁을 잘하지 않았으며
그 어떤 부분에서도 잘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새의 아들 중에서 다윗을 택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새의 다른 아들은
눈으로 보기에 훌륭한 자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같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눈에 익숙한 것을 좋은 것이라고 여깁니다.
눈에 익숙한 것을 아름답다, 선하다, 향기롭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 나라가 좋고 내 고향이 좋고
내 가족이 좋고 내 친구가 좋습니다.
사람은 익숙한 것이 습관이 되고 중독이 되어
그것으로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보십니다.
그 사람의 감정, 감각, 진심을 보십니다.
곧 그 사람의 진심을 보십니다.
그러나 이새의 다른 아들에게서는
진심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순결하고, 즉흥적이고, 진실하고,
매순간이 처음인 긍정적인 어린아이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어린아이의 모습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기준에 맞는 사람이었습니다.
마음이 맑은 사람이었고 진심이 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마음은 보이지 않지만
남들이 보지 않으니 무시해도 될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진심을 중요하게 여기고
실천하는 사람은 천국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런 마음을 예수님은
겨자씨 한 알의 믿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작고 사소한 그 마음 그 사랑 그 헌신을 열심히
겸손하게 행하는 삶의 태도가
바로 천국의 삶을 살아가는 태도가 됩니다.
그래서 미국의 최고 건축가 중에 하나인
미스 반데어 로에는
“신은 사소한 것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사소한 것을 무시하지 않고
행할 때 위대한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마음에 있는 사소한 생각 그 마음 그 기쁨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무시하지 않고 행할 때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마음의 진심을 가지고 행하는 자들은
겨자씨 한 알과 같습니다.
겨자 한 알이 싹이 나고 자라서
커나란 관목이 되어 새가 날아오고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됩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세상을 눈으로 보아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보아야 합니다.
시인 홍사성은
그의 시 “심안”에서
“사람은 눈을 감아야 잘 보이지요”라고 하였습니다.
눈으로 보면 겉모양이 보이고
눈으로 보면 그의 가진 것이 보이고
눈으로 보면 그의 과거와 현재가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보았다고 해서 잘 보는 것이 아닙니다.
눈을 감고 그의 중심 마음을 보아야 잘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 따라 산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는 내 중심을 보고
그것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바리새인처럼
보이는 겉모양을 큰 것으로 보고
그것을 꾸미려하고 그것에 집중하고
그것을 위해서 행동할 것이 아닙니다.
누구에도 보이지 않아 사소하게 보이는
내 안에 있는 것, 겨자씨들을 깨끗이 하고 소중히 여기어
그것을 바르고 선하게 자라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그것을 귀하게 보시며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실 것입니다.
사소한 것 그래서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것을
어떻게 소중하게 여길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그것을 위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누구라고 말씀하십니까?
친구라고 말씀하십니다.
친구는 소중하기에 꼭해야 할 말은 합니다.
듣기 싫다고 해도 친구에게는
사랑하기에 말할 것은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진정 두려워해야할 존재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그가 아무리 대단한 권력자라고 해도
그가 죽일 수 있는 것은 우리 육신 밖에 없다고 합니다.
우리를 죽인 뒤에 지옥에 던질 권세를 가진 분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권력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죽음과 같은 공포와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우리의 목숨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눈에 보이는 힘있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 눈에 보이는 육신과 보이지 영까지
지옥에 던지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시장에서 팔리는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도
다 보고 계시며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매일 수 십 개씩 빠지고 나는
우리의 머리카락까지도
세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신데
눈에 보이는 것에 의해서 움직이고
눈에 보이는 것만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것을 두려워서 행동을 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3.예수님을 시인하는 삶을 살자!
그러면 우리에게 어떻게 살라고 하십니까?
예수님을 시인하는, 인정하는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예수님은 시인하면
예수님도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 사람을
그 사람을 시인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다른 사람의 이목이 두려워서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힘이나 돈이 두려워서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용서받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용서받을 없는 것들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지 못합니다.
성령은 어디에 역사합니까?
성령은 마음에 역사합니다.
성령은 우리 마음에 말씀합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실 때 그 누구도 모르지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나는 압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아 모르지만
내 속에서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는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사소한 것으로 여기겠지만
그렇게 하면 예수님께 용서를 받지 못합니다.
그런 삶은 예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 삶이 되며
천국을 이룰 수 없는 삶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천사들 앞에
우리를 인정하지 않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천사들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보호와 은혜를 받지 못하게 됩니다.
세상에서 우리에게 두려운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통치자나 권력자들에게
끌려가는 두려운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막막할 것입니다.
그들 앞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를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강한 권력의 사람들에 의해
두렵겠지만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께서
우리가 말해야 할 것을 가르쳐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결국 보이는 것들이 아무리 판을 치고
우리의 삶을 다 집어 삼킬 것 같아도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기에
살 수 있고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귀하게 여길 것은 무엇입니까?
보이는 것입니까?
보이지 않는 것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보이지 않는 여러분의 마음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보이지 않지만 말씀하시는
성령님께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또한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아 드러나지 않는
내 믿음, 내 사랑, 내 바램, 내 기쁨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까?
그것들을 중요하게 여겨 잘 자라 열매가 되기를 위해서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쪼잔 하게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느냐고 말하며 무시하며 살지는 않습니까?
큰 것 보이는 것,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지
내 마음에 있는 그 사소한 것에
관심을 가지느냐고 말하지는 않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돈이 얼마나 있는지,
공부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어떤 집, 어떤 옷, 어떤 차를 타고 있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도 보지 않는
여러분의 마음 중심을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성령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그 중심에 성령을 통해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삶에 우리가 머무는 곳에
임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눈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무엇에 관심을 가지며 살고 있습니까?
예수를 믿고 산다면
진정 우리의 관심은
그분이 바라보는 곳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친구요 제자라면
진정 그분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사소하다고 하는
여러분 마음에 있는 하나님이 주신
겨자씨만한 믿음을 중요하게 여기시길 바랍니다.
겨자씨만한 사랑을 중요하게 여기시길 바랍니다.
겨자씨만한 기쁨을 중요하게 여기시길 바랍니다.
겨자씨만한 헌신을 중요하게 여기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자랄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고 키워 나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