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에 여수에서 열린 생활체육대축전에 처음으로 참가를 하고 2010년 부산에 이어 3번째로 이 대회의 출전선수가 되어 속초로 올라간다.
금요일 10:00에 전주를 출발한 45인승 대형버스엔 유관장님과 나 단둘이만 타 있다.
북쪽으로 올라갔다가 동쪽으로 넘어가야될 버스가 서쪽으로 가는데 대아와 군산에서 각각 선수들을 태워야 된다고...
서해안고속도로를 시작으로 여러번 방향과 노선을 바꿔가며 기나긴 항해 끝에 속초에 도착하니 출발한지 7시간이 지난 오후 5시를 가리킨다.
바로 이어지는 개막식에선 기다림의 미학을 또다시...3시간.
늦은저녁을 먹고 숙소에서 내일 경기를 위한 채비를 갖춘다.
이번 대회에선 800과 1500을 참가하게 되었는데 별다른 의미를 담은건 아니고 단거리는 부상의 위험이 있을 것 같아서 그렇고 도로경기는 전망이 없어서...
숙소에선 여섯명이 자게 되었는데 작은방에선 버스기사님과 박회장님, 거실엔 정구형님, 유관장님, 그리고 진안의 임연택선수와 나. 사람이 많다보니 아무래도 불편함이 있지만 그래도 음주가무로 밤을 지세는 것보단 낫다.
토요일 아침을 먹고 경기장까지 걸어서 이동을 한 다음 스텐드 한켠에 자리를 잡고 시간대 별로 치뤄지는 경기에 맞춰 움직인다.
이번에는 선수로만 뛰는 것이기에 여타의 관리는 유관장님과 정구형님이 모두 알아서 챙기고 있다.
나는 오로지 내 준비만 하면 되기에 몸은 편하다. 물론 선수 입장에서 갖는 부담이야...쩝!
이번 대축전부터는 달라진 게 있는데 기존의 부문별 나이 구분이 5세에서 10세 단위로 바뀐 것.
그러니까 30대, 40대, 50대 이런식으로 된 것인데 40대의 맨 꼭데기에서 입상을 하기란... 참 어렵죠!
더군다나 800까지 예선전을 치루는 것으로 경기운영을 바꿔놨다.
(1500은 결승에서 타임레이스로)
세상에 400까진 세퍼레이트로 자기 레인에서 뛰니까 인원이 많을 경우엔 예선을 한다고 치더라도 800은 그럴 필요도 없는데...더군다나 800을 어떻게 두 번씩이나 레이스를 치루냐고요...
800예선이 11시에 있는데 그 전에 소집을 하면서 보니 내가 속한 조에선 나를 포함해 넷이 소집등록을 했고 다른조에선 3명이 등록을 했다.
융통성이 있는 운영진 같으면 이 일곱명을 모두 본선에 올려놓고 레인을 배정하면 될텐데 굳이 정해진대로 다 해야된단다.
원칙 좋아하는데...사람은 죽을 맛!
속초의 기온이 어찌된 일인지 전주보다도 5℃나 높아 한낮이 되기도 전에 30℃에 육박하고 최고기온은 31℃대까지 치솟았는데 그나마 다행인지 바람이 어마어마하게 불어대는 통에 공기의 순환이라도 잘 되서 한결 낫다.
100, 200은 바람의 방향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데 800이야 뭐 뺑뺑 도는 것이라...
다른 경기가 벌어지고 있는 동안에 워밍업을 하고 스트레칭을 하며 기나긴 시간을 기다린 끝에 800m M40 제1조의 예선이 시작된다.
그런데...이런 황당한...!
아까 소집등록을 했던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기권을 했다.
그런데도 더 놀라운 사실은 혼자서도 예선레이스를 해야 한다는...
6레인에서 혼자 관중들의 시선을 받으며 달리는 게 얼마나 부담스럽고 퍽퍽한 일인지...
결과는 2:35가 나왔고 랩타임은 1'12"와 1'23"가 나왔으니 첫바퀴를 제대로 뛰고 두번째는 맥빠짐 현상이 그대로 나타났다는 반증이 된다.
2조의 경기가 당연히 분석 대상인데 여기서도 소집에 응한 사람 중 달랑 둘만 레이스를 한다.
서울주자가 조1위인데 2:45 (1'22", 1'22")가 나왔으니 나보다는 10초나 까지는 기록으로 안심을 할 수도 있다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M50의 예선레이스 또한 모니터링 대상인데 여기선 2:38 (1'20", 1'17")이 나왔다.
얼핏 생각하면 '혼자서 달린놈이 경합을 벌인 사람들 보다도 좋은 기록이니까 안심이다'고 하겠지만 두번째 바퀴의 랩타임이 엄청 중요한데 여기선 내가 제일 꼴찌라는 엄연한 데이터가 있으니...
14:30분으로 예정된 결승레이스를 놓고 머릿속이 자꾸 복잡해진다.
점심을 인근 식당에서 막국수로 가볍게 해결하고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와 결승을 준비하는데 바람은 다소 약해지고 기온은 최고치로 오른데다 햇살까지 강하게 비치기 때문에 몸 풀다가 쓰러질 판.
오전에 달렸던 것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다시 또 워밍업부터 스트레칭까지 코스를 밟다보니...
경기가 매끄럽게 진행이 되지 못하고 계속 지연이 되다보니 나의 결승레이스는 4시가 다 되어서야 시작된다.
내가 3레인, 서울 4레인, 부산 5레인을 받았는데 일단 레인배정은 좋다.
상대적으로 뒤에서 출발을 하니 다른 선수들의 움직임을 보고 초반 페이스를 안배 할 수가 있으니...
전에 일본에서 800을 우승할땐 바깥레인을 받는 바람에 초반부터 치고 나갈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보니 첫바퀴 랩타임이 1'08"로 기록되었고 막판에 체력안배가 잘 된 누군가가 치고 나갔더라면 자칫 오리알이 될 뻔도 했었다.
그러기에 아까 예선전의 데이터 분석이 그렇게 중요했던 것.
적어도 초반엔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을 파악을 해서 맞춰놓고 판단이 선 뒤에 나가는 것으로~
2코너 이후 백스트레치에 들어서며 오픈으로 바뀌고 3코너 회전구간이 시작될 때까지 늦출 수 있는한 모든 것을 억제하며 두 주자의 사이에서 움직였는데 홈스트레치가 시작되는 4코너에서 드디어 판단이 선다.
스텐드의 관객들은 300미터를 뒤섞여 달렸던 선수들이 드디어 갈라서기 시작하니 박수와 함성이 터져나온다.
이후로 점점 뒷사람들과의 거리를 벌려가며 달리는 느낌인데 뒤돌아 볼 수는 없지만 호흡이나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으로 봐선 사정권 밖에 있는 것 같다.
두번째 바퀴에서 한단계 더 속도를 올려 기분 좋게 피니쉬라인을 지나친다.
해냈어!
기록은 아까와 비슷하지만 랩타임은 확연히 역순으로 바뀌었다.
2:34(1'19", 1'15")
나중에 시상식에서 서울주자가 나에게 풀코스 기록을 묻길래 2시간56분이라고 대답했더니 헛웃음을 친다.
처음엔 '역시나 섭3주자니까 내가 상대할 사람이 아니었구나!' 뭐 그런줄 알았는데 정반대로 자신의 기록은 2시간45분대란다.
그러니까 한참 하수에게 어이없이 졌으니 그것도 촌놈한테...ㅎㅎ
만일에 랩타임 분석이 없었더라면 결과는 어찌되었을지...휴!
시상식을 하고 난 뒤 박회장님과 정구형님, 유관장님까지 넷이서 여기저기 돌면서 기념촬영을 하고나니 이미 6시가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1500은 시작도 안했다.
다른사람들 일정이 다 끝났고 군산시청 사람들은 진즉 버스편으로 관광을 나섰으니 우리도 얼른 철수를 해서 저녁일정을 하자고 더 뛰고 싶은 것은 내일 도로경기때 충분히 채울 수 있으니 ... 그러죠 뭐!
아직도 달궈진 그대로 이글거리는 경기장을 뒤로 하고 숙소로 걸어가는데 기분은 구름을 밟고 날아가는 듯 가볍기만 하다.
살다보면 이렇게 기쁜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