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곡 동명면을 지난 우리의 느림보 리무진이 가뿐 숨을 몰아 쉬며, 구비 구비 우리 선조들의 한과 애환이 서린 한티 고개를
향해 끝이 없어 보이는 질주를 이어 가더니만 마침내 신묘한 제2 석굴암이 있는 군위 부계면이 멀리 내려다 보이는 한티 휴게소에
그 무거운 짐을 내려다 놓는다.
내 고향땅 안동을 비롯하여 한티재 혹은 한티고개라는 지명을 쓰는 지방은 무수히 많은데 이 한티란 말의 어원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이는 거의 없다.
본디 영,재 그리고 고개는 같은 말인데 그중에서 영은 죽령,조령,추풍령 그리고 배후령 처럼 비교적 교통량이 많은 군사요충지의
고개를 말하고, 약초꾼들이나 겨우 통행하는 오솔길 정도가 나 있고 고갯마루에 자그만 안부가 있는 고개는 현이나 치로 불린다.
현은 해발고도가 비교적 낮은 구릉 정도를 뜻하는데 서울의 아현,논현 그리고 남현이 대표적인 예다. 남현은
사당동에서 과천으로 넘어 가는 지금의 남태령 고개의 옛 지명이다. 치는
해발고도가 비교적 높아 고개마루에 근접하면 등산로의 깔딱고개 처럼 그 경사가 몹시 가파른, 예를 들면 지리산의 정령치,
덕유산의 팔량치 그리고 동학 농민군이 관병과 치열한 접전을 벌렸던 공주의 우금치가 있다. 그리고
영 보다 더 교통량이 많은 요충지는 관이라 불리우는데 문경새재의 주흘관,조곡관 그리고 조령관의 웅장한 위용을 보면 대충
관이란 말의 의미를 금방 느낄 수가 있다.
한티재의 티를 터의 방언이란 분도 있고 우금치의 치가 티로 변형된 발음이란 분도 있으며, 한 즉 찬물이 많이 솟아 나거나
고개턱을 올라 서면 찬바람이 심하게 분다고 해서, 이도 아니면 일대의 전망이 환하게 티여서 잘 보인다는 뜻 이라고들 하는데
예팬네 블래지어 싸이즈도 제대로 모르는 인간으로선 이쯤 해서 접는 것이 도리인 듯 합니다. 단 한가지
이번 팔공산 산행에서 확실히 느낀 것은 오늘의 산행 들머리인 한티 휴게소와 한티재로 치고 올라 오는 바람은 아직도 약간의
한기를 느낄 정도로 상당히 차웠다는 것이다.
넓은 평야란 의미의 대구는 예전에는 달구벌이라 불리웠는데 달구벌 일대가 오목한 분지 형태이기 때문에 한 때는 여름 기온이
전국에서 가장 높았던 곳이다. 대가리
빡빡 깎고 고딩학교를 이곳 대구에서 다닐 적에 교련복에 군용 A텐트 울러 매고 팔공산 올라 간다고 개폼 잡고는 동화사를 겨우
지난 어느 계곡에서 지천으로 널려 있었던 가재 잡아서, 밤새도록 술이나 퍼 마시던 기억이 전부인 팔공산은 어머님 몸져
누웠을 적에 불공 드리러 관봉 갓바위 부처님 뵈러 몇 번 올라 가 본 것이 고작이다.
명품 느림보 산악회와의 좋은 인연 덕분에 오늘 늦게 나마 팔공산 넉넉한 품에 안겨 볼 기회를 얻음에 다시 한번 더 강 대장님을
비롯한 여타 느림보 벗님들께 감사의 인사 꾸벅 꾸벅 넙죽 넙죽 입니다.
원래 공산이라 불리웠으나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의 군대에게 대패할 적에 신 숭겸,김 낙을 비롯한 여덟 장수가 순국을 하였다
하여 팔공산이라 불리우게 된 이곳 팔공산에선 6.25 전쟁 때는 일거에 서울을 버리고 이곳 대구로 내려 온 국군과 유엔군이
최후의 낙동강 방어선을 펴면서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게 되는데 특히나 인근의 다부동 전투가 유명하다.
팔공산도 다른 명산들 처럼 동화사,은해사,부인사,파계사,송림사,선본사 그리고 군위에 있는 제2석굴암을 비롯하여 무수히 많은
문화재급 사찰들이 즐비한데 세간에 가장 널리 알려진 건 동화사가 아니라 한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 준다는 관봉에 계시는
갓바위 부처님 이신데 입시철이면 말할 것도 없고 일년 내내 기도 드리러 오시는 분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산을 오른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 불교 신도가 가장 많다는, 갓바위 부처님이 남쪽 즉 부산쪽을 향해 앉아 계신다고 하여 드세기로 유명한
부산 자갈치 아지매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찾아 온다고 한다.
소원 성취를 위한 기도란게 들어 보면 유형이 몇 가지 안됩니다.
구져 자식 새끼 좋은 대학 들어 가서 취직 잘 되고, 아니면 남편이란 인간 사업 대박 터져서 쪈 낙낙하게 거머 쥐게 해 달라는 것.
몸져 누우신 어머님 병환 쾌차케 해 달라고 비지땀을 흘리며 관봉 갓바위를 수도 없이 올랐던 이 돌삐란 인간이 어쩜 쌩뚱 맞게
느껴 지는 오늘의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칭찬 쬼 해 주셔요.
한티재에서 파계재로 오르는 순둥이 같은 능선길엔 여태도 진달래가 그 고운 얼굴을 활짝 피우고 있었고 온 산야를 연초록으로
염색을 하고 있는 새순들을 스쳐 지나 가는 팔공산 봄바람이 애써 희롱 하고 있다.
파계재에서 내려다 보이는 파계사는 아홉 갈래의 물줄기를 한 곳으로 모은다고(파) 하여 파계사로 이름 지었는데 속설에 의하면
파계사 앞을 흘러 내리는 계곡 바닥이 층계 형태로 되어 있어 물이 흘러 내릴 적에 파도가 치듯이 찰삭 찰삭 거리는 소리를 내기
때문이라고도 하는데 이씨 조선에서 52년이란 가장 오랜 기간을 임금 자리에 계셨던, 친아들 사도세자를 쌀뒤주에 넣고 굶겨
죽였던 숙종의 아들 영조 대왕의 탄생과 깊은 인연이 있는 절이라고 하는데 북한산에 있는 금선사의 설화에 의하면
정조의 아드님이신 순조의 탄생 설화라고도 한다. 설화의 대충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억불 숭유 정책을 썼던 이씨 조선에서 갖은 부역과 수탈을 면해 볼 요량으로 파계사의 용파 스님은 한양으로 올라 고생 고생 끝에
숙종을 알현하고 부역의 고통을 면해 주는 조건으로 득남 기도를 부탁 받는다. 농산 스님과 힘을 합하여
용파 스님은 수락산 내원암에서 농산 스님은 북한산 금선사 목정굴에서 득남 기도를 올리고 보니 장차 왕이 될 어떤 인연이
있는 분이 도무지 없는 지라 용파 스님이 농산 스님에게 숙종의 아드님으로 환생할 것을 부탁 드리고 오래지 않아 영조 대왕이
태여 나시게 된다. 이후
왕위에 오른 영조는 파계사 원통암 관음보살상의 복장 유물 (불상 뱃속에 넣는 귀한 물건)로 자신이 입던 어의(도포)를 내렸다고
하는데 놀랍게도 1979년에 이 불상을 개금 불사 하느라 복장을 열어 보니 어의가 있더란 것이다. 현재
민속자료 220호 지정 되어 있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영조가 태여 나기 전에 아버님이신 숙종은 그 유명한 장희빈과의 사이에서 왕자 균을 보아 균이 이미
세자로 책봉되어 있었기 때문에 구태여 득남 기도가 필요했는지는 의문이고 조선시대에는 임금을 알현할 수 있는 사람은
사모 관대를 착용한 벼슬아치에 한해 엄격히 국한 되었기 때문에 천민 대우를 받아 도성 즉 한양의 사대문 출입이 금지된
승려가 과연 임금을 알현? 이 또한 의심스러운 점이긴 하다. 다만
영조의 생모가 천한 무수리 출신이였기 때문에 자신의 출생 핸디캡을 커버코져 이러한 신비스런 탄생 설화가 필요치 않았을 까
하는 가정은 상당 부분 납득이 간다. 파계사 입구에 있는
이 사찰을 드나 드는 인간 중에서 에지간한 끝빨이 있는 넘이 아니면 죄다 말에서 내려 걸어 올라 가라는 하마비가 있고 영조의
어의가 복장 유물로 내려 진 점을 보아 영조의 원찰 이였던 건 틀림 없는 사실인 듯 하다.
앞에서 기술한 농산 스님 처럼 다음 생에선 어디에 사는 누구 누구로 태여날 것이란, 다시 말해서 자신의 의지로 몸을 바꾸어
태여 나는 걸 환생이라고 하는데 티벳 불교의 달라이 라마가 대표적인 예다. 허나
우리 같은 중생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번 생에서 자신이 지었던 카르마(업)에 의해 인간,동물 혹은 지옥을
비롯한 여섯 가지 형태로 태여 나는데 이를 말하여 윤회 사상이라고 한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초기 그노시스파 기독교에선 이 윤회 사상을 인정한 바가 있다고 한다.
우리가 삶을 살다 보면 생면 부지의 어떤 사람을 처음으로 만났을 때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느낌을 받거나 꿈에서건 생시건 간에
어떤 장소를 갔는데 언젠가 한번은 와 본 듯한 강한 기운을 받는 경우가 왕 왕 있다. 이를
데자부 (Dejavu) 현상이라고 하는데 불어로 이미 봤다는 의미 라고 한다. 한문으로 하면 기시감이라고 합니껴?
지금은 심한 기온 변화로 인하여 사과 농사를 안동 청송 영주를 거쳐 소백산 너머 충주 지방에서도 많이 하고 있지만 우리
어렸을 적엔 사과하면 대구 능금이 가장 유명 했었다. 그래서
이곳 대구엔 전라도의 순천 처럼 능금을 많이 먹어서 그렇다고들 하는데 좌우간 미인들이 많은 지방이다. 오늘
산행에선 배실 배실 거리는 삥아리 무리들이 오글 거리는 와중에 마치 팔공산 처럼 우뚝히 곰솟아 올라 보이는 한마리
청둥오리가 유난히 내 시선을 끈다.
사눈박이 아주 특이한 고글을 쓰신 이 절세의 대구 능금 미인은 함 중아가 부른 카스바의 여인처럼 어데선 가 본 듯한
한번쯤은 만난 듯한 심한 데자부 현상이 내 숭칙한 가슴 속에서 꿈틀 거린다. 이룬
삼천년 만에 한번 핀다는 우담바라꽃을 지척에 두고 작업을 걸지 않음은 풍각쟁이의 도리가 아니라는 심뽀로 몇 번
깐죽 거리며 족보책을 채 반장도 넘기지 않았는데 이 무신 얄랑궂은 운명의 장난인가? 바위 모퉁이로 돌아 가선
달구똥 같은 눈물을 뚜욱뚝 흘리며 하늘을 우러러 보며 탄식을 한다. 남편 되시는 분이
내 고다꾜 딱 일년 후배 되시는데 이 절세의 미인이 내 친구들 웬만한 놈들의 신상을 깡그리 알고 계신다. 지은 죄가 많은
나 같은 인간은 이쯤 해선 언능 꽁지를 내리는게 상수다. 청둥 오리는 이미 날아 간 파랑새이니 급한 김에 쑥꾹새라도
잡아 묵어야 겠다는 심뽀로 눈까리를 전후좌우로 요란하게 굴리 노라니 흐 흐
지난 사천 와룡산에서 처음으로 함께 산행을 하셨던 산꽃님께서 몸보신에, 아니 회춘에 탁효가 있다는 세 분의 약뼝아리를
인솔하시곤 팔공산이 떠나 가라고 까르르 까르르 거리며 올라 오신다.
염 고문님, 두발로 내외님 그리고 산꽃님과 약삥아리 세분을 모시고 어느 아늑한 안부에서 점심상을 펼쳤는데 눈까리 디비진다.
쐐주 한 꼬뿌를 입에 털어 넣기 바쁘게 노릿 노릿한 족발에 자작 자작하게 끓인 강된장을 듬뿍 뿌린 상추쌈이 난 손꾸락도
까딱 거리지 않았는데 내 주둥이로 마구 밀고 들어 온다. 연이어
황진이 넓적 달구리 처럼 오동통한 파김치를 손으로 돌돌 말더니만 입을 따악 벌리라고 하신다. 손가락 파김치 가리지 않고 함께
쬬옥 쬭 빨아 먹는 그 맛.
내 주제비에 느림보 산악회가 아니면 이룬 왕후장상 같은 대접을 어데 가서 받을 수가 있겠습니껴?
우리 벗님들은 느림보 산행이 있는 화요일은 꼭두 새봌 부텀 오밤중 꺼정 하루 세끼를 함께 하면서 같은 공간 같은 장소에서
까르르 까르르 거리며 쥔종일을 함께 보냅니다. 어느 생에선 가는 잘 모르겠지만
참으로 깊디 깊은 인연이 있었던 가 봅니다. 오늘 하루 팔공산 산행
이리도 소중한 분들과 즐거운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음에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가져 봅니다. 넘 진부한 야기만 늘어 놓았나
고 3 시절 대구 명덕로타리 인근에 있는 독서실에서 콧구녕이나 파면서 졸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았던 친구가 황급히 독서실로
뛰어 들면서 흐 흐 옆 건물에 있는 목욕탕에서 흰 연기가 새어 나온다는 것이다. 후다닥
뛰어 가니 안즉 소방차도 오지 않았는데 목욕탕 입구가 있는 대로에는 사람들이 개떼처럼 몰려 있다.
행여 불이나 끄겠다고 목욕탕으로 뛰어 드는 놈은 한 넘도 업꼬 모든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목욕탕 입구에 둥근 타원을
만들곤 눈까리만 요란하게 굴리고 있다. 사실
그 당시엔 야동 이란게 있나? 플레이 보이란 잡지책 이나마 구경이나 해 봤나? 난 그때 꺼증만 해도 여성들의 신비스럽고
은밀한 부위는 고작 미술책에서 본 보티첼리의 비너스 탄생이란 그림이 전부인지라 홀딱 벗은 여자 나신은 단 한번도
구경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군대 갈 적에도 그 흔한 딱지 한번 몬 떼고 구냥 갔다 와서 취직 하기 바쁘게 지꿈의 웬쑤 가튼 예팬네 만나서 30년 동안
소중히 간직해 온 순결을 아낌 없이 바치긴 했었는데 첫날 밤 난생 처음 해 본 짓꺼리 인지라 어찌나 버벅 거렸는지...
그때 목욕탕에서 뛰쳐 나온 비너스는 코카 콜라 병 처럼 들고 나고가 학실 했었는데 첫날 밤 만난 제 예팬네는 정종병 처럼
민짜로 내리 부풀어 올라서 허리인줄로만 알고 공략을 하다 보면 밑에서 거긴 무릎이야 이 쑥맥아 하면서 돼지 멱 따는 소리를
해 대던 악몽이 지꿈도 눈에 서언 합니다. 요즘은 어떠냐구요?
밤이 무서버서 슬푼 짐승이여 언제나 젊잖은 편 잠만 자는구나 예팬네
샤워 하는 소리 나면 입에 개거품을 물며 쌩기암을 하곤 먼데 산만 쳐다 봅니다. 노 천명
생침을 꼴까닥이고 있는데 내 간절한 기도에 응답이 온다.
와장창 하는 소리와 함께 목욕탕 출입문이 열리는 가 하더니 물에 젖은 머리를 산발한 비너스가 떼 밀리듯이 튀어 나온다.
후라이팬이 뜨거워서 뛰어 내리니 깨스불이 올라 온다고 하는 말 처럼 불길을 피해 살려고 밖으로 뛰쳐 나오니 웬걸
불 보다 더 무서븐 하이에나와 코요테의 잔혹하고 숭칙한 눈길이 비수처럼 온 몸에 꽂히는게 아닌가
으악 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비너스는 마치 불에 덴 사람처럼 이쪽 저쪽으로 길길이 날뛰는데 마땅히 갈 곳이 없다.
마침 옆 건물에 있던 미용실 주인 아줌마가 머리 커트 할 적에 쓰는 허연 보자기를 들고 나와 이 비너스를 감싸 안고는 미용실로
들어 간다.
후일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소방대원들이 불길을 잡으러 목욕탕 내부로 들어 가니 큰 화재는 물론 아니였고 쓰레기통에서 약간의
연기만 올랐을 뿐이였다고 하는데 연기와 물에서 올라 오는 뿌연 수증기를 헤치고 남탕으로 들어 가니 웬 노인네는 그때 까지도
아무런 영문도 모른채 탕 속에서 부달을 처억 늘이곤 신고산이 우르르 쾅 쾅 하고 있더란 것이다.
발끝 부터 머리 꼭대기 까지 찌릿 찌릿 하던 그날의 홀딱쑈를 어찌 차마 잊을 수가.
성주괴공 이란 참으로 묘한 이치가 있습니다.
삼라 만상은 만들어 지면 파괴되어 필히 없어 지곤 또 다시 이런 과정을 끝 없이 되풀이 한다는 겁니다.
팔공산을 다녀 와선 오랜 만에 먼지 쌓인 책장에서 빛 바랜 고다꾜 졸업 앨범을 펼쳐 보았습니다. 앳띈 모습의 어떤 젊은이가
유독 눈에 띄어 한참을 보고 또 보았답니다.
그날의 나도 나이고 지금의 나도 나 이건만 앳띈 그 모습이 어쩜 그리도 낯 설어 보이는지 덧 없는 무삼한 세월이 마냥
야속하게만 느껴 집니다.
분당 탄천변에서 노랑부리 저어새 돌삐 드립니다.
첨언 : 콜라인지 간장인지 꼬옥 찍어 먹어 봐야 아는 이를 우리는 보통 어이구 이 쑥맥(숙맥) 같은 인간아 라고 한다.
콩과 보리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뜻인데, 약삭 빠르지 못하여 약간은 어눌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 우리 주변엔 참으로 많다.
쬬다, 찌질이, 칠뜨기, 팔삭동이, 얼간이, 팔푼이, 맹추, 맹꽁이, 멍청이, 천치, 고문관, 바보, 삼룡이, 모지방, 등신. ...
이런 여러 말들 중에서 안동 지방에서 유독 많이 썼던, 지금 사람들에겐 다소 생소한 언어가 바로 터구란 말이다.
몬가 모자란 듯 하지만 사실은 알면서도 남에게 은근히 속아 주는, 참으로 여유롭고 넉넉한 삶을 살아 가는 사람을 말한다.
고 김 수환 추기경 께서도 자신을 바보라고 표현하는 그림을 그리신 적이 있고, 독립운동가 김 구 선생님도 자신의 아호를
백정과 범부라는 의미의 백범이라고 하였듯이 각박한 삶을 사노라면 가끔은 이 터구 처럼 살고 지풀 때가 왕 왕 있다.
난 터구?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우리 느림보에 처음으로 오셔서 제 옆자리에 앉으셨던 이편님께선 서봉 올라 가기 직전에 다리에
쥐가 나서 주져 앉은 절 참으로 감사하게도 잘 케어를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강 대장님께선 근이완제 약도 주시고요.
|
첫댓글 돌삐님..팔공산 점심시간이 너무 화려해서 황조롱이부터 오스프리,시치미까지..
귀담아 들었을 참수리 강의가 재밌었건만
갑자기 내린 쥐가 강의를 끝맺게 했습니다.
쥐잡는데는 고양이가 제일인데..ㅎㅎ
황조롱이도 특효이구요..ㅎ
팔공산 이야기 재미있었습니다.
다음번엔 퇴계선생과 두향의 이야기를 들려주시와요^^
어느 산행에서 캬 캬 캬 하는 새 울음소리를 들은 강 대장님께서 매가 우는 소린데 하더군요.
초여름 산행을 하노라면 호르딱 벗고 홀딱 벗고 하면서 우는 새가 검은등뻐꾸기 인줄은 대부분 아시지만
매 울음소리를 알아 듣는 이는 거의 없는데 하며 쏙으로 많이 놀랐습니다.
정지 비행의 명수 황조롱이는 매과 말똥가리는 수리과 난 약삥아리를 노리는 솔개과 흐 흐.
관기 두향이 이바구는 지난 청량산 산행기에 약간 언급 했었던 듯 한데 안동 지방에서 퇴계 선생님의
후손인 진성 이씨는 명문 중의 명문 가문 입니다. 청포도란 시를 쓰신 독립운동가 이 육사 선생님을 비롯하여
우리 느림보에도 두 분이 계십니다.
한마루님과 꽃님.
아하그랬구나
감하고 갑니당
참고로 돌삐님은 쥐가 잘나는 분이십지요
북한산을 쬐매만 올라가도 쥐가난다고 벌벌이십니다요
에쉴리? 닉네임과 아주 어울리게 산행 당일날 바람처럼 사라져 버리는 캔슬의 여제이자
전생에 모란 시장에서 뻐 뻥튀기 장수를 하여 떼돈을 벌었던 여사님은 강 대장님의 말씀에 의하면
으 으 음 안 보면 잠시 보고 싶다가 눈까리에 띄는 그 순간 잇빨이 갈린다는 흐 흐.
푸하하하~~ 돌삐님 첨 인사올립니다 ^^
글을 읽다보니.. 존경스러워집니다. ^^* 어찌 그리 글속에 쏘오옥 빠져들게 맛깔스럽게.. 감히
그런 느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너무나도 공감가는 글들이라~ 비스무리한 세대인가요? ^^
암튼 북한산 최고의 능선을 자랑하는 의상릉.. 그곳까지 돌삐님의 이야기가 바람타고 맴~맴~댔습니다.
덕분에 몰랐던 지식과 해학에 경탄과 웃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종종 돌삐님의 글... 구독신청합니다. ^^ 칭찬합니다. ^^
비스므리..아니고 누님되십니다.
돌삐님 누나 여동생 많다 했으니 그중 한누님이 물안개님과 같을것입니다.
말씀 나누다보면 통하는게 많을듯한 두 분..ㅎ
뭐시라~ ㅎㅎ
껏님, 에쉴리 여사님,미소야님 이룬 분들과 거의 갑쨩 수준이고 타잔님이나 강 대장님은 거의
왕누님 급이져. 캬캬.
대가리가 쫴꿈 히끗 히끗 하여 오십대로 보는 분들도 가끔 있기는 합니다만 사실은 이제
불혹을 겨우 넘긴 나이인지라 뺨따구니엔 여태도 솜털이 뽀송 뽀송한 느림보의 구염동이 랍니다.
구엽게 봐 주셔서 넘 감사 합니다. 약 사오년 전에 오랫만에 전철을 탔었는데 흑 흑 어떤 사람 좋은
젊은 분이 자리를 양보 하더만요. 식겁을 하곤 다음 정류장에 내린다면서 사양을 하곤 억지춘양으로
다음 정거장에 내리곤 그 다음 부턴 전철을 타면 의례 경노석 인근에서 얼쩡 거렸는데 며칠 전엔
동네 가게에서 에쉴리님 나이 정도 되는 여자분이 저를 보곤 으흐 어르신 하며 부르더군요
자빠지는 줄 알았습니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