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민족을 자랑하는 우리나라가 국제결혼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국제결혼은 특히 여성들이 시집가기를 꺼려하는 농촌지역에서 두드러지게 이뤄지고 있다. 국내서 결혼을 단념하고 국제결혼을 선택한 농민들과 함께 베트남 현지에서 3박4일간의 결혼 여정을 동행 취재했다.
-버스·가정집에서 비밀 맞선=4월18일 오전 베트남 호찌민시. ㅂ국제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이곳에 도착한 한국인 예비신랑 4명이 맞선을 보기 위해 3개팀으로 나눠 어디론가 출발했다. 집단맞선을 단속하는 베트남 공안(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장소를 여러 곳으로 분산한 것.
30분쯤 후 한국인 노총각 2명을 태운 봉고차가 호찌민시 외곽 한적한 곳에 커튼으로 창문을 가린 채 서있는 버스 옆에 멈췄다. 이어 김형일씨(가명·45·농업·전남 곡성)가 통역관과 함께 버스에 오르자 초조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40여명의 여성들이 눈에 들어온다. 김씨가 통로를 왔다갔다 하면서 마음에 드는 여성을 지목할 때마다 한명씩 앞으로 나와 대기했다. 1차로 4명을 선정해 그 자리에서 곧바로 2차 면접이 시작됐다. 4명의 여성은 다시 2명으로 압축되고,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한 사람이 최종 신부감으로 결정됐다.
이어 봉고차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송인수씨(가명·48·농업·전남 순천)가 신부감을 고르기 위해 같은 버스에 올랐다. 송씨도 통로를 왔다갔다 하면서 1차로 3명을 고르고 다시 최종 신부감으로 한명을 선택했다.
같은 날 오전 호찌민시의 한적한 주택가. 소아마비로 왼쪽 팔다리가 불편한 김충석씨(가명·27·자영업·전남 고흥)가 통역관과 함께 급히 허름한 주택으로 들어섰다. 응접실에 앉자 옆방에서 대기 중이던 여성 5명이 앞에 섰다. 김씨가 마음에 드는 여성이 없어 고개를 흔들자 다시 5명이 들어와 이 중 한명을 지목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해 30명 중에서 1차로 5명을 고르고 다시 2차 맞선을 통해 20살의 한 여성을 신부감으로 최종 선택했다.
재혼인 임휘석씨(가명·56·농업·전북 김제)도 공안의 단속을 피해 맞선장소로 연립주택가의 한 가정집을 택했다. 응접실에 들어서자 미리 연락을 받고 달려온 30대 여성 8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임씨는 재혼인 데다 나이가 많아 색시감 후보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한명을 지목했는데 아이가 있는 것으로 밝혀져 탈락시켰다. 다시 한명을 지목하자 ‘뚜쟁이’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여성을 옆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무엇인가를 조사했다. 잠시 후 이 여성도 낙태 경험이 있어 탈락됐다. 임씨는 3번째 선택한 36세의 한 여성을 신부감으로 최종 결정했다.
임씨는 “한국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처녀를 신부로 맞이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면서 “밤늦게 집에 들어와도 반기는 사람이 없어 세상사는 재미가 없었는데 이제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며 기뻐했다.
-여성에게 퇴짜맞기도=ㄹ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베트남에 온 이영수씨(가명·46·농업·전북 고창)는 1차 맞선에서 예상 밖의 고배를 마셨다. 이씨는 18일 오전 결혼정보회사 사장인 ㄱ씨 등과 함께 베트남 정부가 승인한 호찌민시 여성연맹 국제결혼지원센터에 도착했다. 이씨는 이곳에서 여성연맹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3명의 여성을 두고 한사람씩 차례로 맞선을 본 다음 두번째 여성(33세)을 선택했다. 이 여성이 얼굴도 예쁜 데다 상냥하고 한국말을 잘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잠시 후 통역관과 여성연맹 관계자가 옆방에서 그녀의 의사를 묻고 돌아와 “아가씨가 한국에서 농사를 짓고 홀어머니까지 모셔야 해 싫어한다”고 통보했다. 의외의 반응에 다시 불러 설득했지만 “한국에서 몸이 편찮은 노인을 모시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며 거절했다.
실망 끝에 첫번째 여성에게 의사를 물었지만 이 여성 역시 “이씨와 키 차이가 너무 많이 나고 무섭게 보인다”며 거절했다. 세번째 여성을 이씨가 싫다고 해 성과 없이 끝났다.
건물을 나온 ㄱ사장은 급히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 다시 맞선일정을 잡았다. 이씨는 결국 한 아파트에서 집단 면접을 통해 30세의 여성을 신부감으로 맞이했다.
-서류제출 및 처가방문=첫날 신부감을 고른 5명의 예비 신랑들은 2~3일째에는 베트남 주재 한국영사관에 들러 결혼서류를 제출했다. 또 신부 부모를 직접 만나 혼인승락서에 서명을 받고 처가를 방문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맞선 직후 전화로 신부 부모의 허락을 받은 김형일씨는 이날 예비장모를 직접 만났으나 ‘결혼승락서에 서명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김씨에게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사위가 가난하고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주된 반대 이유였다. 두 모녀가 밖에 나가고 업체 관계자가 급히 다른 맞선을 준비하는 동안 김씨는 안절부절못했다. 잠시 후 모녀가 눈물을 닦으며 돌아왔고 아버지에게 다시 전화로 확인한 결과 결혼을 승낙해 문제는 극적으로 해결됐다. 어머니가 아버지 핑계를 대며 농촌 총각에게 시집가는 것을 반대한 것이다. 이 어머니는 다음날 결혼식 내내 얼굴이 밝지 않았다.
-4일만의 현지 결혼식=4월21일 오후 4시 호찌민 시내의 한 연회장. 신부쪽 축하객 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4쌍의 합동 결혼식이 초청가수와 신랑·신부, 하객들이 음식을 먹고 노래하며 흥이 오른 가운데 2시간만에 막을 내렸다.
식이 끝난 후 김형일씨는 “이렇게 좋은 날이 또 있을지 모르겠다”며 “한국에 가서도 남보란 듯이 잘살겠다”고 말했다.
〈베트남 호찌민=박창희〉
*여성 어떻게 모집하나
한국의 국제결혼 정보업체가 운영하는 베트남 현지 지사는 모두 10여개. 현지 지사에는 뚜쟁이 역할을 하는 큰마담과 작은 마담이 있어 이들이 한국행을 원하는 여성을 물색하고 모집한다.
보통 큰마담 밑에는 작은 마담 5~10명이 활동하고 있다. 작은 마담은 농촌 등지에서 여성을 모집하고, 큰마담은 이들에 대한 관리는 물론 한국 입국시까지 숙식과 한국문화·언어교육 등을 하는 것이 주업무다. 현재 베트남 호찌민시를 중심으로 30~40명의 큰마담이 활동하고 있다. 본인의 자발적 의사 또는 작은 마담의 권유에 의해 국제결혼을 원하는 여성이 하루 30~50명씩 모여들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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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시골총각 베트남에서 합동 결혼식.. 시골총각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