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북 청진시 천마산 광주영웅묘지에 대한 증언 |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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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민군영웅들의 열사묘" 후면 : 전사자들 158명의 명단과 332명의 인민군 영웅 열사들이 잠들고 있다고 기록되어 490명 북한군이 5.18당시 전사한 것을 증명하고 있다 | | 북한 인권운동가 김주호 박사가 발표한 내용의 일단이 2009년 발간된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의 제14번째 증언자에 의해 소개돼 있었다.
증언14. 천마산에 시체도 없이 만들어진 광주 영웅들의 묘지 전 북한농촌관리위원회 부위원장
(전략)
많은 측면에서 남조선사람들이 쉽게 믿고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5.18광주사태에 북한군특수부대들이 대거 침투해서 배후교란작전을 했다는 것은 탈북자들의 말이 아니라 분명하고 정확한 사실입니다. 북한에는 광주사태에 참가했다가 돌아가서 공화국영웅칭호를 받은 사람들이 많이 생존해 있고 제가 살던 곳에는 광주에서 죽고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영웅묘지가 있습니다.
현재 북한 함경북도 소재 청진시 천마산 마루에는 대남작전에 참가하였다가 사망한 전투영웅들의 묘지가 있습니다. 공작 임무를 받고 남조선침투를 위해서 파견되었다가 공해상에서 국군의 공격을 받아서 숨진 특수부대사람들의 묘도 여러 개가 같이 있습니다. 말이 무덤이지 사실은 북한인민들의 사상교양을 위해서 시신도 없이 유품만 넣어서 만들어놓은 빈 무덤입니다.
여기에 있는 묘지 중에 1980년 5월 18일 광주사태 당시에 남조선에 나갔다가 죽은 공화국영웅들의 묘지가 대부분입니다. 묘지 비문에는 ‘여기에 누워있는 동지들은 1980년 5월, 남조선에 파견되어 남조선혁명과 조국통일을 위해서 영웅적으로 싸우다가 산화하였다’는 식으로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해마다 북한인민군명절인 4월 25일이 오면 그곳에서 전투영웅들을 추모하는 국가적인 행사가 많이 열리군 하였습니다.
제가 살았던 청진뿐만이 아니라 황해남도 해주시와 강원도 원산시 부근을 비롯해서 북한지역의 여러 곳에 5.18광주사태에 참가했다가 사망한 영웅들의 묘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북한이 5.18광주사태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무시하지 못할 물적 증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탈북자들이 5.18광주학살의 주범은 대한민국국군이 아니라 북한의 특수부대와 김정일이라고 안타깝게 말하는 것은 이런 근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5.18광주사태에 북한군이 파견돼서 배후교란작전을 하지 않았다면 김정일 정권이 가짜무덤까지 만들어놓고 세상 앞에서 자기들이 테러국가라고 공개적으로 생 쇼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광주사건에 참가했다가 북한으로 돌아간 사람의 말을 간접적으로 들어본 사실이 있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광주사건 당시에 무기를 탈취해서 시민군들에게 나눠주면서 진압군에게 사격을 하라고 하니까 자기들이 왜 총을 쏴서 사람을 죽여야 되는 가고 항의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일부 광주시민들은 오히려 그들의 정체를 의심하면서 어디서 온 사람들이냐고 꼬치꼬치 따지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광주사태에 참가했던 북한특수부대요원들은 광주를 시점으로 남조선 전역에서의 전국적인 무장봉기가 확실하게 전개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해방되었던 광주 시내를 진압군한테 빼앗기고 북한으로부터 철수명령까지 전해들은 그들은 성공하지 못한 작전에 대해서 분통해 하며 피눈물을 뿌렸다고 합니다.
해방이후부터 북한특수부대원들이 남조선에 내려와서 공작한 사실들에 대해서 북한에서는 하나도 숨기지 않고 있는 공개된 비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북한에서 관리위원장을 할 당시에 나의 하급직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관리위원회노동지도원의 동생이 북한인민군 교도지도국(과거의 특수8군단)에서 군사복무를 하였습니다.
그의 부대는 황해북도 곡산군에 본부를 두고 있는 여단 급 규모였습니다. 노동지도원의 동생이 어느 때인가 집에 휴가를 왔었는데 당시 그의 모습은 북한에서는 절대금물이던 장발을 하고 말씨도 북한사람들의 말씨하고는 너무 대조되게 많이 달라보였습니다. 또한 그는 부대에서 고향으로 휴가를 온 사람 같지 않게 군복을 입지 않고 사복차림으로 왔었고 북한에서는 보기 드문 일본제 고급술과 고급담배, 초콜릿과 사탕과자 같은 것을 많이 가지고 와서 리 당 간부들과 마을사람들에게 조금씩 맛보라고 나누어 주었습니다.
동네사람들의 눈에는 노동지도원의 동생이 어릴 적에 보던 모습이 아니라 완전히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린나이에 특수부대에 뽑혀나가서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모두가 생각을 하였습니다. 북한에서는 특수부대에 뽑혀 나가면 영웅 같은 대접을 받게 되어있고 본인과 부모들은 그 동내의 우상과 부러움이 되기도 합니다.
동생이 휴가를 마치고 부대로 돌아간 다음 노동지도원이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는 바람에 나를 비롯해서 관리위원회사무실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의 의문은 풀렸습니다. 노동지도원의 동생은 일본으로 파견되어 나갔다가 유학생 신분으로 남조선에 가서 몇 년 동안 공부를 하고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을 들어보니까 자기 동생이 일본에서 재일교포 신분으로 남조선의 남쪽에 있는 지방대학에 유학생으로 위장침투해서 공부를 하면서 북한임무를 수행했다고 합니다.
나를 비롯해서 주위사람들이 특수부대사람들이 남조선에 침투해서 공작을 하는 것도 아니고 대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고 묻자 노동지도원도 처음에는 이해를 못했었는데 동생의 말에 의하면 1970년대 중반에 김정일이 북한 량강도 지구에 비밀리에 조직되어 있는 534특수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적들과 총으로만 싸우려고 하지 말고 남조선의 진보적인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을 규합해서 유사시에 우군으로 써먹을 수 있도록 만드는 작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북한의 대남작전기관들과 특수부대들에서는 김정일의 지시가 떨어진 다음부터 일본어교육을 집중적으로 실시하였고 일본 조총련을 통해서 위장공작원들을 남조선의 대학교들을 비롯한 남조선사회내부에 대대적으로 파견했다는 것입니다. 노동지도원의 동생도 그런 임무를 받고 재일본조선인 신분으로 대학교에 침투하여 북한에 우호적인 진보성향의 학생들을 규합하고 비밀지하조직을 만들어 3년이 넘게 활동하다가 일본으로 철수해서 일본여자와 결혼하고 현지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에서 파견된 공작원들이 남조선에 내려와서 진행한 사건들에 대해서 알고 있는 대로 다 적으라면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 말고도 얼마든지 더 말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북한에서 여러 사람들을 거치면서 들은 내용보다도 저 자신이 확실하게 알고 있는 문제, 어느 누구의 입을 빌리지 않고 개별적으로 떳떳하고 분명하게 담보할 수 있는 내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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