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에 드린 은으로 성전을 수리함(9-16)
교회에서는 성실하고 믿을 수 있는 직분자를 세워 헌금을 투명하게 관리하고 집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역자 사례도 합리적으로 지불되어야 합니다. 목적 헌금은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헌금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사역자들이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모범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9제사장 여호야다가 한 궤를 가져다가 그것의 뚜껑에 구멍을 뚫어 여호와의 전문 어귀 오른쪽 곧 제단 옆에 두매 여호와의 성전에 가져 오는 모든 은을 다 문을 지키는 제사장들이 그 궤에 넣더라 10이에 그 궤 가운데 은이 많은 것을 보면 왕의 서기와 대제사장이 올라와서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대로 그 은을 계산하여 봉하고
11그 달아본 은을 일하는 자 곧 여호와의 성전을 맡은 자의 손에 넘기면 그들은 또 여호와의 성전을 수리하는 목수와 건축하는 자들에게 주고 12또 미장이와 석수에게 주고 또 여호와의 성전 파손한 데를 수리할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게 하며 그 성전을 수리할 모든 물건을 위하여 쓰게 하였으되
13여호와의 성전에 드린 그 은으로 그 성전의 은 대접이나 불집게나 주발이나 나팔이나 아무 금 그릇이나 은 그릇도 만들지 아니하고 14그 은을 일하는 자에게 주어 그것으로 여호와의 성전을 수리하게 하였으며 15또 그 은을 받아 일꾼에게 주는 사람들과 회계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성실히 일을 하였음이라 16속건제의 은과 속죄제의 은은 여호와의 성전에 드리지 아니하고 제사장에게 돌렸더라 (9-16)
왕이 결정하자 여호야다는 상자를 가져다가 뚜껑에 구멍을 뚫어 제단 곁에 두었다. 성전으로 가져오는 모든 돈을 문 지키는 제사장들이 받아 그 상자에 다 집어넣었습니다. 돈이 모이면 왕의 서기와 대제사장 전에서 받은 그대로 자루에 넣어 묶은 뒤 저울에 달아 계산하였습니다. 그 돈을 그대로 성전 관리하는 사람들에게 주면, 그가 성전을 수리하는 목수들과 건축가들과 미장이와 석수에게 주었고, 또 필요한 물품들을 사는 데 사용하였습니다.
11-13절에서 성전 수리를 위해 모인 돈이 얼마나 꼼꼼하고 적절하게 지출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런 긴 목록은 성전을 수리하는 데 많은 돈과 일꾼들이 필요했다는 것을 말해주며, 동시에 성전이 오랫동안 방치되어 수리할 곳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보여줍니다. 13-14절에서 성전의 돈은 수리 이외의 용도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5절에서는 성전 수리를 맡은 관원에 대한 평가가 나옵니다.
그는 매우 믿을 만하여 맡긴 돈에 대해선 전혀 신경 쓸 일이 없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성전 수리 비용을 주었지만 자신들이 사용하느라 성전 수리를 하지 못한 제사장들의 불성실함과 대조를 이룹니다. 대제사장 여호야다는 여호와를 잘 섬기는 인물이었지만, 일반 제사장들은 여호야다 만큼 여호와를 섬기는 데 성실하지 않았고 나태했던 것입니다. 제사장들의 기강이 흐트러졌기에, 요아스가 대제사장을 직접 불러 이들이 수리하는 것을 못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맡긴 것입니다. 요아스와 여호야다의 종교개혁이 완전하지는 못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일반 제사장들은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회복되면서 점점 제물이 늘고 수입 많아지고 권위도 회복되자 그 번영의 열매에 젖어 정작 자신들이 섬겨야 할 여호와께는 소홀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6절에선 제사장의 몫을 언급하는데, 요아스는 원래 제사장의 몫인 속죄제와 속건제의 은을 제사장 몫으로 돌렸습니다. 제사장들이 지나치게 재물을 취하는 것은 막고, 그 대신 율법이 정하는 적절한 몫을 갖게 한 것입니다.
아람 왕 하사엘에게 공물을 바친 요아스(17-18)
하나님의 사역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우상을 허용하는 이중적인 모습은 없는지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지도자라면 자신의 이중적 신앙으로 인해 공동체가 악영향을 받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적 징계받을 때 쉽게 낙심하지도 말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가볍게 여기지도 말아야 합니다.
17그 때에 아람 왕 하사엘이 올라와서 가드를 쳐서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오고자 하므로 18유다의 왕 요아스가 그의 조상들 유다 왕 여호사밧과 여호람과 아하시야가 구별하여 드린 모든 성물과 자기가 구별하여 드린 성물과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에 있는 금을 다 가져다가 아람 왕 하사엘에게 보냈더니 하사엘이 예루살렘에서 떠나갔더라(17-18)
요아스 때 아람 왕 하사엘이 가드를 점령하고 예루살렘까지 쳐들어오려고 하였다. 이 시기에 앗수르가 아직 남쪽까지 힘을 발휘하지 않았기에 아람의 국력이 가장 강성하였습니다. 따라서 요아스는 하사엘이 예루살렘으로 오지 못하도록 하사엘에게 공물을 바쳤고, 하사엘에게 준 공물은 예루살렘 성전에 있던 여호와의 성물들입니다. 화자가 유다 왕 여호사밧 때부터 요아스 때까지 모아두었던 성물과 금들을 모두 하사엘에게 주었다고 말하는 것을 볼 때 유다가 매우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아스는 이 위기에서 여호와께 부르짖고 도움을 구하기보다는 여호와의 전의 재물을 내주는 손쉬운 방법을 택하였습니다. 요아스가 여호야다의 가르침을 받을 때는 여호와 보시기에 바르게 살았지만, 왕권이 강화되고 여호야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면서부터는 여호와께 대한 신앙도 약해졌던 것입니다,
요아스의 죽음(19-21)
우리를 신앙적으로 이끌어 주는 지도자나 목회자의 영향력을 받지 못할 때 우리는 진정한 믿음의 시험대에 오르게 됩니다. 자신이 스스로 말씀ㅁ을 따라 마음을 지키고 언약에 충성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되지 못하면 사람들의 평가와 요구에 의해 풍랑 가운데 위태로운 배처럼 요동하게 됩니다. 결국 변함없는 언약의 말씀 대신 인간을 의지하는 신앙은 모래 위해 쌓은 성과 같습니다.
19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0요아스의 신복들이 일어나 반역하여 실라로 내려가는 길 가의 밀로 궁에서 그를 죽였고 21그를 쳐서 죽인 신복은 시므앗의 아들 요사갈과 소멜의 아들 여호사바드였더라 그는 다윗 성에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마샤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19-21)
결국 요아스는 자신의 신복들의 반란으로 밀로 궁에서 살해당합니다. 그가 왜 신복들의 반란으로 죽임을 당했는지 알 수 없지만, 말년에 여호와를 온전히 의지하지 않고 여호와의 성전 기명을 하사엘에게 갖습니다.
바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요아스는 반란자의 손에서 살아아 왕이 되었지만, 결국 반란자의 손에 죽는 기구한 삶을 살았다. 요아스의 죽음은 유다의 종교개혁에 한계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오랜 우상숭배와 그릇된 여호와 경배에 대해 종교개혁을 단행하고 성전을 수리하였지만, 산당의 잔존에서 보듯이 이교적인 것이 여전히 유다 땅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었으며, 그것이 결정적인 순간에 영향을 미쳐 여호와를 의지하기보다 돈과 권력이라는 세상적인 방법을 위지하게 만든 것입니다.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왕위에 올라 다윗 왕권은 계속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그치지 않은 것입니다.
스스로 많은 것을 성취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교만이 싹틉니다. 은혜를 망각하고 사람의 힘을 이지할 때 위기가 찾아옵니다. 자신의 업적을 의지할 때 존재와 삶이 위태해집니다. 오늘도 여전히 주 앞에 신실하게 살고 있습니까? 유혹을 이기고 끝까지 신실하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