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3574]李奎報선생-北山雜題[ 북산잡제] 9首
李奎報=초명은 이인저(李仁氐), 자는 춘경(春卿),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 만년(晩年)에는 시 · 거문고 · 술을 좋아해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라고 불렸다.
이하=동국이상국전집 제5권 / 고율시(古律詩) 東國李相國全集卷第五
北山雜題 九首
得道已無事。經律亦蹄筌。
我不作羯麻。山僧且安眠。
巖僧不浪出。溪鳥自閑飛。
日暮松間霧。霏霏欲濕衣。
夢廻山月落。吟久野雲歸。
松石今朝是。風塵昨日非。
岸幘倚靑松。拂琴掃白石。
落瀑截翠微。寒峯界危碧。
我是忘機人。萬物視一類。
山鳥殊未知。見我忽驚起。
無心白駒詩。寓意黑蝶賦。
讀罷南華篇。山中日亭午。
山花發幽谷。欲報山中春。
何曾管開落。多是定中人。
客榻靜無聊。幽人睡正濃。
未聞呼勝力。驚起一聲鍾。
山人不出山。古徑荒苔沒。
應恐紅塵人。欺我綠蘿月。
북산(北山)에서의 잡제(雜題)
이미 도를 얻어 아무 물욕 없으니 / 得道已無事
경장(經藏)과 율장(律藏)도 한 가지 방편일세 / 經律亦蹄筌
나는 갈마를 짓지 않으리니 / 我不作羯磨
산승이여 마음 놓고 자구려 / 山僧且安眠
산승은 좀처럼 나오지 않고 / 巖僧不浪出
계곡에는 새만 한가히 나는데 / 溪鳥自閑飛
해 저물자 소나무 사이에 안개가 내려 / 日暮松間霧
나의 옷을 적셔 주네 / 霏霏欲濕衣
꿈속을 헤매는 사이 산 달은 넘어가고 / 夢迴山月落
오랫동안 읊으니 들 구름 흘러가네 / 吟久野雲歸
조용한 송석 오늘의 옳음이요 / 松石今朝是
시끄런 풍진 어제의 잘못일세 / 風塵昨日非
갓을 비스듬히 쓰고 푸른 소나무 기대고 / 岸幘倚靑松
거문고 안은 채 하얀 바위 소제하는데 / 拂琴掃白石
폭포는 절벽에서 떨어지고 / 落瀑截翠微
봉우리는 하늘가에 닿았네 / 寒峯界危碧
나는 기심(機心)이 없는 사람으로 / 我是忘機人
만물을 모두 하나로 보는데 / 萬物視一類
산새는 이를 알지 못하여 / 山鳥殊未知
나를 보고 놀라 날아가누나 / 見我忽驚起
백구시에 마음이 없고 / 無心白駒詩
흑접부에 뜻을 부쳤네 / 寓意黑蝶賦
남화경을 독파하고 나니 / 讀罷南華篇
산중의 해가 마침 정오일세 / 山中日亭午
산꽃이 그윽한 계곡에 피었으니 / 山花發幽谷
산중의 봄 알리는 것이언만 / 欲報山中春
피고 지는 것 상관하지 않으니 / 何曾管開落
거의 선정(禪定)에 든 사람인가 하네 / 多是定中人
객탑이 고요하여 너무 무료하니 / 客榻靜無聊
한인(閑人)의 졸음 한창일세 / 幽人睡正濃
부르는 소리는 듣지 못하다가 / 未聞呼勝力
한 종소리에 놀라 깨누나 / 驚起一聲鍾
산인이 산에서 나오지 않으니 / 山人不出山
옛길에 묵은 이끼만 끼었구나 / 古徑荒苔沒
이는 세속 사람이 들어와 / 應恐紅塵人
녹라의 달 더럽힐까 해서이네 / 欺我綠蘿月
[주-D001] 경장(經藏)과 율장(律藏) : 불교의 경전을 세 가지로 나눈 삼장(三藏) 중에
두 가지. 경장은 부처가 말한 불법이며,
율장은 불법을 수행하는 자들이 지켜야 할 계율(戒律).
[주-D002] 갈마(羯磨) : 불가의 말로 신(身)ㆍ구(口)ㆍ의(意)에 의하여 지어지는
죄업(罪業)을 말한다.
[주-D003] 조용한……잘못일세 : 풍진에 쫓기던 어제까지의 소행은 잘못이었고
소나무와 돌을 찾아 한가하게 살려는 오늘의 계획은 옳다는 뜻으로,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오늘이 옳고 어제가 잘못임을 깨달았다.
[覺今是而昨非]” 한 말에서 인용된 것이다.
[주-D004] 기심(機心) : 기회를 노리는 마음으로 곧 순수하지 못한 마음을 가리킨다.
[주-D005] 백구시(白駒詩)에……없고 : 백구시는 《시경(詩經)》소아(小雅) 백구(白駒)편
을 말한다. 이 시는 현자(賢者)가 타고 온 흰 망아지가 농장의 농작물을 뜯어먹었다는
핑계로 말을 묶어 놓아 떠나가지 못하게 한다는 내용인데, 곧 제왕(帝王)의 부름에
뜻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주-D006] 흑접부(黑蝶賦)에……부쳤네 : 흑접부는 흑색의 나비를 읊은 부로
남조(南朝) 때의 은사(隱士) 심인사(沈麟士)가 지었다.
그는 여러 사람의 추천을 뿌리치고 늙도록 독서에 힘썼으며,
일찍이 흑접부를 지어 자기의 뜻을 부치었다.
《南史 沈麟士傳》
[주-D007] 녹라(綠蘿)의 달 : 푸른 등라(藤蘿) 사이로 비추는 달빛.
ⓒ 한국고전번역원 | 이재수 (역) | 1980
이하=동문선 제19권 東文選卷之十九 / 五言絶句
北山雜題
欲試山人心。入門先醉奰。
了不見喜慍。始覺眞高士。
高巓不敢上。不是憚躋攀。
恐將山中眼。乍復望人寰。
山花發幽谷。欲報山中春。
何曾管開落。多是定中人。
山人不浪出。古徑蒼苔沒。
應恐紅塵人。欺我綠蘿月。
북산 잡제(北山雜題)
이규보(李奎報)
산에 사는 이 마음을 시험코자 하여 / 欲試山人心
문에 들어 먼저 주정해 보네 / 入門先醉奰
기뻐하고 불평함을 나타내지 않으면 / 了不見喜愠
비로소 알았네 참으로 고사임을 / 始覺眞高士
높은 산꼭대기를 감히 오르지 않는 것은 / 高巓不敢上
오르기 고된 것을 꺼리는 게 아니라 / 不是憚躋攀
산중의 눈에 잠깐 다시 / 恐將山中眼
인환이 바라보일까 두려워함일세 / 乍復望人寰
산꽃이 깊은 골짜기에 피어 / 山花發幽谷
산중의 봄을 알리려 하네만 / 欲報山中春
피고 지는 것을 누가 일찍이 주관하랴 / 何曾管開落
사람은 정 가운데 들 때가 많은 것을 / 多是定中人
산에 사는 사람이 함부로 나들이 않으니 / 山人不浪出
옛 길이 사뭇 푸른 이끼에 파묻혔네 / 古徑蒼苔沒
응당 겁내리라 티끌 세상 사람을 / 應恐紅塵人
나의 녹라월을 침벌할세라 / 欺我綠蘿月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역) | 1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