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산행기) 점봉산서 설악산을 만난다 !
* 글쓴이 : 대간거사(총대장)
* 사진 : 영희누님, 모닥불, 스틸영, 승연, 메대장, 두루
ㅇ산행일시; 2017. 2. 4. 토
ㅇ산행인원: 스틸, 모닥불, 버들, 영희언니, 한계령, 챔프, 소백, 수담, 사계, 상고대, 메아리 대장,
가이버, 두루, 향상, 해마, 해피, 승연, 무불, 대간거사(19명)
ㅇ산행코스; 군량밭-망대암산-점봉산-오색
만약 당신에게 설악산 답설산행 코스를 정하라는 임무가 주어졌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것도 무박
이 아니라 당일이라면? 당신은 곧 선택지가 별로 많지 않다는 것을 곧 알게 될 것이다. 이번 주 내내
메아리 대장과 상고대의 고민이 그러하였을 것이다. 파묻힐 정도의 눈이 쌓인 곳은 설악산을 빼고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일단 “눈과의 전쟁”을 선포한 뒤 설악산을 타겟으로 정하기는 하였으나, 당일
산행으로 의미 있는 궤적을 남길 만한 코스를 잡기가 까다로웠다. 그리하여 서너 개의 대안을 놓고
동서울에서 까지 논의가 이어졌다. 많은 인원의 안전을 보장하고, 적설을 즐길 수 있는 곳은 어디일
까. 제설이 되어 있는 일반코스는 논외인 바, 황철봉이나 화채는 당일로는 시간이 부족하고, 안산은
안전이 보장되지 못한다. 점봉산을 가보기로 한다.
09:02분. 필례약수 부근 군량밭에서 망대암산으로 이어지는 계곡은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한국에서
몇 안되는 편안한 곳이다. 경사가 유순하여 오르막을 간다는 기분이 거의 안들고, 길도 그런대로
편안하게 나있어 부담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계곡 안 풍경은 조용하고, 차분하며, 안정적
이다. 이곳 저곳에 놓인 크고 작은 바위덩어리의 머리 위를 소복이 덮고 있는 눈은 얼마 전 노인봉
에서의 화려함이나, 대룡산의 거친 생동감과 달리 수묵화처럼 담백하고 그윽하다. 시야에 그득히
펼쳐지는 흑백의 담담한 조화가 저절로 사람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 아마 단체가 아니고 혼자
그곳에 있었더라면, 어느 전망 좋은 구석에라도 앉아, 삶의 의미를 반추해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오늘 설악산 대청봉에 오르기로 했다는 우보가 어제 저녁 전해준 정보에 의하면, 관리공단에 전화를
했더니, 중청에서 희운각으로 내려가는 길은 계단난간이 겨우 보일 정도로 눈이 덥혀있다고 했단다.
그렇다면 하고 기대해보지만, 아직은 발목을 넘은 정도. 제발 꼭대기에는 눈이 있기를 바라지만,
작년에는 눈구경도 못했고, 금년에도 지난 번 황철봉이 조금 목을 축여준 이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어
이번에도 속는 게 아닌가 약간 불안했다. 그러나 그것이 기우였다는 것은 곧 밝혀졌다. 능선상에는
최근 3, 4년내 가장 많은 적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묵은 갈증이 상당 부분 풀린 느낌이었다.
우회하는 지능선을 피해 망대암산 직행 능선으로 붙기 위해서는 계곡갈림길 몇 개를 잘 발라내고
조금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규모가 큰 계곡 분기점에서 두 번 쉬어간다. 첫 번은 장비점검차 간단
하게 끝내고, 두 번째는 해피가 특수하게 신경을 써서 공수해온 서산 막걸리와 가이버의 봄동 배추전
, 승연이의 오뎅으로 간단하게 오늘의 먹방을 개시한다. 따뜻하다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바람도 없고
날씨 좋다. 적당한 곳에서 본격적으로 능선에 붙는다. 약 240m를 올려 치며 땀을 내니 비로소 등산하
는 것 같은 기분이다. 좌측지능선과 합류 지점에서 일단 휴식한다. 다들 컨디션 좋다. 속속 도착이다.
이번에도 먹을 것이 지천이다. 향상이 슈크림 빵을 돌리고, 영희언니, 모닥불이 사과를 내놓고, 여기
서 귤이 나오고, 저기서 빵이 나오고 골라가며 먹어야지 주는 대로 받았다간 점심에 지장이 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점봉산 이후에 대하여는 세부계획이 없었다. 적설량을 모르니 일단 오른 다음
에 귀둔리로 내리거나 원점회귀를 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점차 나타나는 적설이 보통이 아니다. 12시
망대암산 약 1km 전방 널찍한 장소에서 점심 먹을 자리를 고르는데도 여러 명이 한참 눈을 치워야
했을 정도다. 난이도를 부여하기 위해 망대암산 오르기 전 다른 지능선으로 내려섰다가 다시 붙으려
는 계획은 자동적으로 취소됐다. 그때 상고대가 절묘한 아이디어를 냈다. 점봉산에서 오색 혹은
단목령쪽으로 계속 진행 하다가 시간보고 왼쪽 오색방향으로 내려서자는 것이었다. 소백님이 속초에
서 문어와 대게 특식으로 저녁을 쏘겠다고 했기 때문에 차의 동선 방향과 지극히 부합되는 계획이라
하겠다.
점심은 버들의 소고기불고기, 소백의 코레스코 오뎅, 가이버의 콩나물만두국, 승연과 상고대의 김치
오뎅라면, 스틸의 소시지볶음 등으로 무엇을 먹어야 할 지 고민일 정도였다. 홍보에 게을리 하면 상
품을 팔기 어렵다. 사계는 자기가 끓이고 있는 오뎅이 평범한 오뎅이 아니라 “부산기장” 오뎅이라는
점과 홍어무침도 그냥 홍어무침이 아니라 “장모님이 싸주신” 무침이라는 것을 역설하고 나서야 다
팔 수가 있었다. 먹어주는 것이 크고 귀한 선심으로 대접을 받게 되었으니, 과연 오지팀에서는 고래
의 모든 인류가 꿈꾸던 태평성대를 성취하고 있는 중이라 하겠다. 오늘도 신마담의 커피로 입가심을
하고 길을 나선다.
일단 해피가 특수러셀로 오후의 포문을 연다. 여기는 누가 지났는지 바람이 흔적을 없애지 못한 곳은
군데군데 러셀 자국이 있다. 다른 곳은 어김없이 무릎 이상까지 빠지지만, 러셀 낌새가 있는 곳은
그렇게 깊게 들어가지 않는다. 살짝 김이 샌다. 망대암산에 가까워지면서 빙빙 돌아간 러셀자취와
결별하고 정상을 향해 직접 무찔러간다. 대박이다. 눈이 내 허벅지까지 덮는다. 수담이 상당한 거리
에 걸쳐 앞장서서 상황을 정리한다. 철쭉인지 뭔지 질기고 강한 관목과 싸움 끝에 망대암산 정산에
오르자, 소경이 눈을 뜨고, 땡중이 득도한 것처럼 돌연 딴 세상이 눈 앞에 펼쳐진다.
가리봉이 첨봉이고, 안산에서 귀때기청, 중청, 대청에 이르는 설악의 라인이 병풍처럼 일목요연하다.
고생이 하나의 과정이라면, 이런 장엄한 순간은 결과에 해당할 것이다.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살까. 철학자와 사제는 엄숙한 얼굴로 저마다 자기의 주인이 될 것을 주문하지
만, 그게 무슨 뜻인지는 그것을 설교하는 사람들도 잘 알고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사람의 본질은
어쩌면 내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외부에, 그의 주변에 있을 지도 모른다. 그의 직업, 그의 가족,
그의 친구 나아가 그의 관심과 취미가 본질이라는 얘기다. 한때 누군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대단한 발견처럼 떠들었지만, 실존은 본질이고 본질은 실존이다. 고려의 정지상은 우리나라 단
하나의 한시(漢詩)라는 송인(送人)으로 역사에 남았고, 심지어 당(唐)나라 시인 조하는 “새벽별 드
문드문 기러기는 북쪽에 한 줄로 날고, 길게 이어지는 피리 소리 한 곡조에 사람은 누각에 기대었구
나(殘星幾點雁橫塞 長笛一聲人倚樓)라는 구절로 기억에 남았다. 오늘 여기에 이 동료들과 함께 서서
장쾌한 조망을 즐기는 사람이 바로 내가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 이름이 남던, 남지 않던,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지 알고 있는 이상 초조하거나 아쉬워할 것은 없다.
망대암산은 좁고 불편하여 단체사진을 찍을 엄두를 못 내고 바로 점봉산을 향해 출발한다. 이번에는
무불이다. 이렇게 깊은 눈속에서는 소위 풍차돌리기 기법으로 러셀을 해야한다. 장시간의 러셀산행
자체가 단체만이 가능한 법. 순번을 바꿔가며 선두를 잡는 것이다. 무불이 한동안 재미를 보고 난 뒤,
가이버가 나선다. 속초시내에 뜨면 그의 막강한 제설실력을 아는 제설차 기사들이 경적을 울려 경의
를 표한다는 전설의 가이버. 바람이 심한 능선이어서 그런지 가이버의 긴 다리가 쑥쑥 들어갈 정도로
눈이 폼나게 쌓여있다. 한동안 가다가 가이버를 불러 세워 잠시 쉬어간다. 그러자 그 사이에 여성
독거미 부대원들이 슬그머니 나선다. 독거미 2호(스틸)가 선두, 독거미 1호가 바로 뒤(영희언니),
3호 버들이 세번 째이다. 시인이자 종군 사진기자인 4호 모닥불과 핸드폰 사진분과 퓰리쳐 상을 노리
는 두루는 풍광을 정리하면서 담아오느라 거의 뒤쪽에 있다. 독거미 2호가 1호에게 바통을 넘기고도
러셀은 한참 계속된다. 드디어 향상의 순서. 독실한 불교신자인 향상(香象)은 불교와 관계가 있는 닉
을 스스로 지었지만, 향상은 또 향상(向上)이기도 한 법. 이렇게 중의적인 뜻을 가진 좋은 닉 덕분인
지 구봉팔문 이래로 일취월장, 괄목상대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마무리는 역시 메대장의 몫이다. 발이 안 빠지는 메대장의 엉덩이를 밀고 힘을 쓴 끝에 점봉산 정상
에 선다. 여기는 오히려 눈이 없다. 오후부터 쌀쌀해진 날씨에 바람도 세차게 불어서 춥지만, 조망
하나는 끝내준다. 설악산은 여전히 손에 잡힐 듯 선명하고, 멀리 방태산, 오대산까지 보이며, 저쪽
단목령 뒤로 이름 모를 산정상에 있는 양양 양수발전소의 저수지도 아주 가깝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넘어갈 뿐 인생에 이렇게 선명한 순간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쉼표와 반성이 필요한 법이다.
단체사진을 찍으려고 모이라 해도 다들 각자 사진 찍느라고 관심 없다. 한참을 기다려 오지 공식
촬영맨 영희언니의 지도하에 인증샷을 남긴다.
이제 하산작업이다. 사계와 챔프, 해마가 순환하여 러셀을 하며 내려선다. 이곳은 눈이 깊으면서도
살짝 얼어서 발이 들어가면, 무너지지 않고 일일이 발을 빼내야 되기 때문에 좀 힘이 든다.
한계령님은 두 번이나 다리가 꼬여서 눈 속에 푹 주저 앉았다고 껄껄댄다. 여기서부터는 준비해 온
지도도 없고, 순전히 기억에 의존해서 내려가는 중이기 때문에 마구잡이로 내리면서도 조심스럽다.
그런대로 잘 가고 있던 셈인데 갑자기 한쪽에서 여기가 아니라고 한다. 오른 쪽에 나타난 잘생긴
능선이 맞다는 얘기다. 요즘 다들 GPS로 무장하였으니, 아무 소리 못하고 솔깃해서 그쪽으로 향한
다. 트레버스 하려는 것이다. 작은 계곡을 건너 맞은 편 능선에 붙으니 응달이라 그런지 눈이 정말
장난이 아니다. 그때 아직 따라 내려오지 않고 있던 승연이가 거기는 진동리로 가고, 아까 그곳이
맞다고 큰 소리로 외친다. 그제서야 휴대폰을 꺼내 확인해보니 그 말이 진리다. 승연이 아니었으면
오지팀 통째로 새될 뻔 한거다.
가이버를 선두로 몇 명이 저쪽으로 붙었지만, 이쪽으로 나를 따라왔던 해피가 “아이고, 내가 왜 총대
장을 따라 왔나”면서 후회막심인 듯한 멘트를 발사한다. 공감이 간다. 눈을 헤치고 다시 오르는 길은
왜 그렇게 낯설고 멀기만 한지. 결국 덤덤하고 밋밋했을 산행에 잊지 못할 추억거리를 만들어준 순수
하고도 원시적인 알바를 끝내고 30여분 만에 원점으로 회귀했다. 후미를 위해 좀 휴식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해마의 건의에도 불구하고, 쉬지 않고 오색갈림길까지 전진한다. 속초까지 이동하기로
되어 있는 일정상 시간이 좀 빠듯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 팀이다. 이내 모두 합류한다. 다
털어먹고 주차장까지 한 큐에 해결하기로 한다. 메대장을 따라 하산이다. 중간쯤 내려가니 눈이 질컥
하게 녹은 부분도 있고, 맨땅이 드러난 곳도 있다. 아래쪽은 춥지 않았다는 얘기다.
드디어 총각 2명과 처녀 1명이 비박 텐트를 쳐놓은 지점을 통과하여 첫 민가를 지나고, 몇 개의 펜션
이나 별장 같은 주택들을 지나 주차장으로 내린다. 중간에 만난 호기심 많은 아저씨가 대청봉에 다녀
오느냐고 묻는다. 점봉산이라 답하고, 안 가보셨냐고 하니, 한번도 안 갔단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5시 15분. 산행시간 8시간 13분. 거리 12.5km. 두메님과 재회한다. 후미를 기다려 소백님이 예약해
놓으신 속초의 음식점으로 향한다. 대게와 문어. 도치알탕. 아마도 오지 역사상 가장 새롭고 참신한
메뉴가 아니었나 싶다. 거금을 쾌척해 주신 소백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혼자 설악산 오색-
대청봉-비선대-설악동 코스를 소화한 우보를 동명항 음식점 앞에서 만나, 함께 밥을 먹고, 같이
서울로 돌아온다.
첫댓글 만족한 산행 뒤에는 언제나 누군가의 많은 노고와 희생이 있었음을..새삼 다시 느껴봅니다.
인원이 많으니 먹을 것이 지천이면서 얘기거리 또한 풍부한 듯하네요
단숨에 써내려간 듯한 산행기가 술술 잘도 읽어지니..이또한 즐거움입니다.
항상 멋진산행 준비하신 모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대청봉에서 오색방향 점봉산과 구름 넘어 방태산을 바라보며 형님과 누님들이 열심히 직무를 수행하는지 감독하였습니다. 감독 결과 A+ ㅋㅋ
산행도 글도 사진도 먹방도 예술입니다.^^
글쓴이에 포함되어 있어 오타인 줄 알았습니다
차려논 밥상에 수저 얹은 느낌!! ㅋㅋ
수려한 글발에 절로 감탄합니다^^
산행 내내 대부분 럿셀하느라 수고 하셨습니다
입춘이 지나 이제 더는 눈을 보지 못할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옵니다 ㅋㅋㅋ
점봉산에 야생화만 봐 온 터라 눈밭은 또 새롭네요^^
부럽고, 멋지고, 모두 대단들 하셔 존경스럽습니다~~~
눈이 쌓인만큼 추억도 쌓이네요, 녹지않는 기억으로
땀나는 행복한 산행이었습니다.^^^
모처럼 시원한 눈밭과 탁트인 조망속에서 보낸 하루였습니다....근래 보기 드문 조망이었죠...글솜씨 역시 끝내주시고.. 러셀하시느라 고생많으셨습니다
장쾌한 사진에 가슴이 달음박질 칩니다. 그러면서 약 30분후 현실적 하부구조를 깨닫고선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또 곧이어 못간 것이 후회되고 곧바로 안도의 한숨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이율배반적인 행위를 반복하게 되네요.
조만간 동참할 수 있도록 열심히 몸만들겠습니다.
정말 그런 조망은 처음이었습니다. 일망무제, 눈이 닿는 모든 곳이 산으로 끝없이 가득한 장관이었습니다. 코스선정에서부터 허벅지 러셀까지 등로를 잘 계획하고 설계해주신 덕분에 안전하면서도 거친 산행을 만끽했습니다. 선배님들께서 잘 배려해주시는 덕분에 마음이 놓이고 걱정이 줄어서 발걸음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국공파와 매같은 동네 민박 주인들 어떻게 따돌리셨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노하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