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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습관 등 생활환경이 다르므로 사람은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한 가지 사회의 현안에 대해 사람 수만큼의 주장이 가능하다. 뜻을 모으고 의사를 결정하려면 다양한 주장이 어느 차원에서 합의가 필요하다. ‘생각이 다르지만 뜻을 하나로 모아야 하는 요구’가 사람에게 던져진 과제이지만 그것은 풀기가 쉽지 않다. 인류사에는 이와 관련해서 다양한 해결 방안이 제시되었다.
사람의 지성이 꽃을 피우기 전에는 사람의 판단을 대신하는 신탁(神託), 신이 대답을 제시하는 계시(啓示) 등이 있었다. 사람의 지성이 발달하자 말솜씨가 이견과 갈등을 조정하는 중요한 해결책으로 등장했다. 이로 인해 말로 싸움을 벌이는 논쟁(論爭)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이 논쟁은 비대칭적 조건에서 일방적으로 진행되기도 하고 대칭적인 조건에서 무한 토론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이러한 지적 분위기에서 중국의 황하 지역에는 녕인(佞人)이, 그리스의 아테네에는 소피스트가 등장했다. 이들은 탁월한 언어 능력으로 상대의 말문을 막아버렸다. 공자는 녕인의 출현을 달갑게 보지 않았다. 공자는 “왜 그랬을까?”
논어 공야장(公冶長)편 5장
- 97번째 원문
• 或 : 혹(或)은 혹은, 있다의 뜻으로 쓰이지만 여기서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어떤 사람을 가리킨다.
• 雍 : 옹(雍)은 염옹의 이름으로 자가 중궁(仲弓)이고 공자보다 29세가 어렸다. 공자는 염옹의 덕행이 뛰어나서 한 나라를 맡아서 운영할 만하다고 말했다.
• 仁 : 인(仁)은 처음에 씩씩하다, 늠름하다의 뜻으로 쓰이다가 공자에 이르러 사람답다, 인간미가 넘치다라는 새로운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 佞 : 녕(佞)은 보통 아첨하다, 부정적인 재능으로 풀이된다. 이것은 후대에 말재주를 싫어하는 사회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공자 당시만 해도 사람들이 갖추려고 했던 언변 능력을 가리킨다. 녕인은 그리스의 소피스트에 견주면 궤변론자라고 할 수 있다.
• 焉 : 언(焉)은 어찌의 뜻으로 의문 부사로 쓰인다.
• 禦 : 어(禦)는 막다, 지키다의 뜻으로 방어(防禦), 어한(禦寒)의 용례로 쓰인다. 남한산성에 가면 사방을 바라보며 지휘하는 곳에 ‘수어장대(守禦將臺)’가 있다.
• 給 : 급(給)은 주다, 넉넉하다, 더하다의 뜻이다. 구(口)와 급(給)이 합친 구급(口給)은 구변(口辯)과 같은 뜻으로 한 번 입을 떼면 그침 없이 말을 늘어놓아 상대의 입을 막아버리는 말재주, 입심을 가리킨다.
• 屢 : 누(屢)는 자주라는 뜻으로 발생 빈도를 나타낸다.
• 憎 : 증(憎)은 미워하다, 미움의 뜻이다.
춘추시대의 새로운 인간, 녕인(佞人)
한자를 들여다보면 ‘녕(佞)’에는 ‘인(仁)’의 요소가 들어가 있다. 형태상으로 보면 ‘佞(녕)’ 자는 ‘仁(인)’ 자에서 생겨났다. 따라서 두 글자는 의미상으로 커다란 차이가 없으리라 예상된다. 공자는 제자 염옹에 대한 어떤 사람의 평가를 듣고서 칠색 팔색을 했다. 두 글자의 의미 차이를 모르면 “공자의 반응이 너무나도 과민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들 만하다.
한자에서 사람을 나타내는 글자는 두 종류가 있다. 첫째로 사람이 앞을 향해 팔다리를 벌리는 있는 모양을 나타내는 큰 대(大) 자가 있고, 둘째로 사람이 무릎을 구부린 모양을 옆에서 바라보는 사람 인(亻) 자가 있다. 예컨대 “큰 대자로 뻗었다”라고 하는데, 이는 사람이 팔다리를 활짝 벌려서 쭉 편 채로 누워 있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렇게 ‘사람’을 가리키는 문자가 만들어지자 사람들은 주위에서 만나는 이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첫째, 인(人) 자 앞에 수식어를 붙였다. 동쪽에 사는 사람은 동인(東人), 집안사람은 가인(家人), 노래 부르는 사람은 가인(歌人), 예쁘게 생긴 사람은 가인(佳人)으로 부르게 되었다. 둘째, 인(亻) 자에 새로운 의미소를 첨가했다. 이것이 바로 임(任)․인(仁)․녕(佞) 자가 생겨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임(任)은 임무(任務), 임직(任職), 보임(補任) 등의 단어로 쓰이면서 무슨 일을 맡아서 처리하다는 뜻이다. 인(仁)은 전쟁에 나가서 도망가지 않고 씩씩하게 싸우거나 평소 훈련을 열심히 하여 늠름하게 보이는 측면을 나타낸다. 녕(佞)은 한 번 입을 열며 청산유수처럼 말이 물 흐르듯 좔좔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의미 차이라면 공자가 굳이 흥분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는 왜 그토록 “언용녕(焉用佞)”이라는 말을 되풀이할 정도로 녕인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을까?
언어는 언어 사용자들에 의해 새로운 뜻으로 쓰일 수 있다. 녕(佞)은 처음에 말솜씨가 뛰어난 사람을 가리키다가 점차로 부정적인 어감을 지니게 되었다. 말 잘하는 사람은 말솜씨를 발휘하여 자신이 바라는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이러한 솜씨가 권력자나 유력자를 상대로 발휘될 때 녕(佞)은 아첨하다, 비위를 맞추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또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은 말 잘하는 사람과 이야기할 때 주눅이 들어 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녕인은 다른 사람의 입을 얼어붙게 만들 정도로 달변가를 가리키게 되었다. 심한 경우 궤변론자나 독설가의 뜻을 나타내기도 했다. 공자 당시에 녕인은 자신의 입장을 설득하기 위해 세상의 진리를 상대적인 것으로 만들었던 그리스의 소피스트를 닮았다. 녕인은 말로 싸움을 하는 논쟁에서 천하무적이었다. 이 때문에 공자는 그들에 대해 전면전을 선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프로타고라스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활약했던 대표적인 소피스트라고 한다면, 등석(鄧析)은 춘추시대 정(鄭)나라에서 양시론(兩是論)를 펼쳤던 대표적인 ‘녕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해 정나라에 홍수가 났는데, 부잣집 사람이 물에 빠져죽었다.([여씨춘추(呂氏春秋)] ‘리위(離謂)’) 가족들은 사자의 시신을 건져서 장례를 치르고자 했다. 마침 강가에 사는 어떤 사람이 시신을 수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족들은 그 집으로 달려가서 시신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강가에 사는 사람은 턱없이 비싼 사례금을 요구했다. 가족들은 등석을 찾아서 문제 해결의 방안을 구했다. 등석은 가족들을 안심시키며 말했다. “당신들이 시신을 찾아가니 않으면 어느 누구도 시신을 찾지 않으니 가만히 있으면 된다.” 사태가 이렇게 진행되자 이번에는 시신을 건진 사람이 등석을 찾아와서 수고비를 많이 받을 수 있는 길을 물었다. 등석은 이번에도 찾아온 사람을 안심시키며 말했다. “부잣집은 시신을 꼭 찾아야 하고, 그렇다면 당신의 집을 다시 올 수밖에 없다.”
등석의 주장에 따르면 “꼭 해야 한다”는 것도 없고 “꼭 해서 안 된다”는 것도 없다. 달리 말하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등석이 양쪽이 모두 괜찮다(좋다)라는 “양가지설(兩可之說)”을 펼쳤다. 이러한 사고는 일종의 기능주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등석은 양가지설에 바탕 해서 정나라 자산(子産)을 번번이 곤란하게 만들자 자산은 등석을 죽여서 그의 입을 닫아버렸다.([열자(列子)] ‘역명(力命)’) 등석은 언어의 힘으로 자산의 입을 막았던 반면 자산은 권력의 힘으로 등석의 입을 막았던 것이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소진(蘇秦)과 장의(張儀)의 종횡가(縱橫家)는 등석의 기능주의 사고를 최대로 발휘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는 등석과 같은 궤변론자들의 존재를 눈에 가시처럼 보았다. 그들은 한 사회의 규범이 얼마나 정당한지 검증의 칼날을 내민다는 점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끝없이 의혹을 제기하여 규범의 권위를 떨어뜨린다는 점에 위험한 인물이 되었다. 특히 규범이 의혹의 대상이 되면 어느 누구도 구체적인 상황에서 윤리적 판단만이 아니라 정책적 판단을 내릴 수 없다. 판단을 내리면 곧바로 또 다른 의혹의 제기가 나와서 논의가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하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등석과 같은 녕인은 누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 안에 빈틈을 찾아내서 공격의 실마리로 삼았다.
공자도 노나라에서 대사구(大司寇)가 된 지 일주일 만에 소정묘(少正卯)를 사형에 처했다. 정나라의 등석처럼 노나라의 소정묘도 정부 정책의 흠집을 찾아내서 행정 행위를 무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공자가 소정묘를 죽였다는 이야기는 [맹자]에 나오지 않고 [순자] 이후의 몇몇 문헌에만 보여서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등석과 소정묘에 맞서서 자산과 공자는 선악(善惡)을 구분하는 세상의 기준을 세우려고 했다. 이 기준에 따라 혼란한 세상을 바로잡아 평화로운 질서를 수립하고자 했다.
우리나라는 미국, 중국 등 다른 나라에 비해 문화, 언어, 관습의 동일성이 높다. 우리는 이를 바탕으로 ‘다민족 국가’와 달리 ‘단일민족 국가’의 특성을 크게 부각시켜왔다. 단일성이 강조되다 보니 우리는 각자의 주장을 끝까지 펼쳐서 더 합리적 사고를 찾기보다 대의(大義)가 정해지면 그것을 믿고 따라야 한다는 사고에 익숙하다. 대의가 침묵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단일민족설은 역사적 사실과 좀 다르다. 조선이 건국될 때 이지란(李之蘭)의 여진족이 참여했다. 이 점을 들어 단일민족설을 달리 바라보는 시각도 제기되기하고 하고 심지어 신화로 보기도 한다1). 아울러 오늘날 농촌과 도시에서 다문화 가정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즉 우리는 같은 특성의 한국인이 아니라 다른 특성의 한국인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의 상황은 공자가 겪었던 ‘다양성의 시대’와 겹치는 측면이 있다. 우리는 사고방식, 가치관과 관련해서 다름을 인정하기보다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 결과 주류의 가치관을 믿는 사람들은 소수의 다른 가치관을 경청하고 그들과 공존하는 길을 찾기보다 종북, 꼴통처럼 ‘불량 국민’으로 낙인찍고 그들을 ‘왕따’ 시키려고 한다. 특히 ‘독설(毒舌)’의 형태로 타자를 공격하고 소수자를 다수로부터 격리시키려고 한다. 이때 말재주는 의사소통을 통해 상호 이해를 넓히는 좋은 능력이 아니라 적대적 공격으로 상호 굴복을 겨냥하는 또 하나의 폭력에 가깝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공자가 왜 화려한 언어 구사 능력을 부정적으로 보는지 그 맥락을 알 수 있다.
우리는 TV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을 보면 자연히 인종, 문화 등에 열린 포용의 관점을 키울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나의 생각이 꼭 맞고 상대가 반드시 틀렸다”라는 독선적인 사고가 아니라 합리적인 결론을 끌어내기 위해 서로의 생각에 깃든 장점과 단점을 구분하고 장점을 교환하는 생각의 흥정이 필요하다. 시장에서 상인이 팔려고 하는 가격에서 얼마를 줄이고, 손님이 살려고 하는 가격에서 얼마를 올려서 흥정이 된다. 결국 흥정은 서로가 기꺼이 손해를 보려는 자세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이성과 진리에는 배타적 주인이 없다. 합리적인 생각을 내놓고 그것을 중심으로 사고를 조직하는 생각의 흥정이 이루어진다면, 독설과 궤변에 쏠린 관심이 줄어들 것이다. 독설은 상대의 말문을 닫게 하므로 통쾌해 보이지만 결코 합의를 끌어낼 수 없다. 반면 흥정은 서로 할 말을 다하고 서로 결론에 만족하므로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
첫댓글 어인구급(禦人口給) : 번뜩이는 말로 사람의 말문을 닫게 하다.
잘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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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공부잘하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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