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 부심' 넘치는 푸조가 신형 디젤 엔진 개발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디젤의 시대는 과연 이렇게 저물까?
유럽 내 최초로 터보 디젤 엔진을 품은 승용차를 출시하고 디젤 경주차로 르망 24시간 내구레이스를 제패한 자동차 회사는 어딜까? 양질의 디젤 엔진을 바탕으로 브랜드 평균 CO2 배출량이 두 번째로 낮은 브랜드는 어딜까? 푸조다. 이 정도면 ‘디젤 부심’이 가득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푸조가 신형 디젤 엔진 개발을 끝내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풍부한 디젤 승용차 라인업이 꾸려진 유럽 내 조만간 단종하겠다는 디젤차들도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디젤의 시대는 과연 이렇게 저물까?
푸조, 디젤 엔진 개발 중단
푸조의 제품개발 총괄인 롤랑 블랑쉐는 “디젤 엔진의 미래를 확신할 수 없다”며 “사라지거나 포기하게 될 디젤 엔진 시장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디젤 엔진 관련 기술 개발은 더 이상 없다”며 신형 디젤 엔진 개발 포기를 선언했다. 현지 시간으로 지난 2일 프레스 데이를 시작으로 막을 올린 2018 파리모터쇼에서 그는 언론을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쟝 필립 임파라토 푸조 CEO 역시 “디젤 엔진을 더 밀어붙이면 실수를 자초하게 될 것”이라며 그의 말에 힘을 실었다.
실제 디젤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유럽의 신차 판매량 중 디젤 모델 비율은 2017년 초까지만 해도 50퍼센트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대략 36퍼센트대로 떨어졌다. 자동차 업계는 내년이면 30퍼센트 미만까지 떨어지리라 예상이고 있다. 푸조의 모기업인 PSA는 2020년대 초중반이면 디젤 신차 판매 비율이 5퍼센트까지 추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면 디젤 시장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다는 게 푸조의 입장이다.
푸조의 디젤 시장 철수는 최근 디젤 포기를 선언한 포르쉐와는 다르다. 포르쉐는 스포츠카 전문 브랜드다. 디젤 엔진에 불법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리콜한 전례도 있다. 반면 푸조는 디젤 승용 시장의 강자로 군림했다. 중소형 승용차 및 SUV 시장에 디젤 모델을 뿌리 깊게 안착시켜 유럽 내 2위 브랜드로 탄탄하게 성장해왔다. 전차종에 SCR이라 불리는 배기가스 저감장치를 사용해 디젤 엔진 배기가스 조작 파문에도 별 탈 없이 잘 견뎌왔다. 그런 푸조가 디젤 시장 철수를 고려하고 있다.
디젤 출입 금지
디젤 시대의 몰락이 가속화된 건 폭스바겐이 벌인 디젤 게이트 때문이지만, 그 전부터 이미 디젤 차량에 대한 규제는 시작되고 있었다. 각국 법원에서도 디젤차 운행 제한은 추진 가능한 정책이란 판단을 내린 바 있다. 디젤차 비중이 높은 독일에서도 일부 도시에 디젤 출입 금지령이 떨어졌다. 함부르크시는 지난 5월 말부터 유로 6 기준을 맞추지 못하는 디젤차의 주요 도심 구간 운행을 금지시켰다. 슈투트가르트도 내년부터 유로 5 미만의 도심 운행을 금지할 예정이다.
독일은 유로 6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노후 디젤차 소유주에게 신차 구입비를 지원하거나 SCR 장착 비용을 보조하기로 결정했다. 약 140만 대 정도가 이에 해당하리라 예상되는데, 이 비용은 자동차 제조사에 청구될 예정이다. 회사별 지원 금액은 서로 다르다. 다만 평균적으로는 한화로 약 700만원 정도다. 만일 140만 대가 모두 신차를 구입한다면 제조사에서 감당해야할 금액은 모두 약 9조8000억원이다. 물론 해당 차종 중 대형 차량은 SCR 장착 비용의 80퍼센트를 정부에서 부담할 예정이다. 그 밖에 SCR 장착을 선호하는 해당 차종 소유주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단지 디젤차를 판매했다는 이유로 제조사가 감당하기엔 적지 않은 예산이다.
점차 강화되는 환경 기준
폭스바겐의 디젤게이트 이후 디젤 엔진에 적용하는 환경 기준은 점차 강화되고 있다. 가장 직접적인 건 인증 사이클 변화다. 지난해 9월까지는 NEDC라는 사이클을 사용했다. 미국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 사이클로 디젤엔진의 배기가스 오염물질 및 연비를 인증 받았다. 그런데 NEDC는 실연비라 부르는 실생활 체감 연비와의 간극이 크다. 48년 전 만들어져 현대인의 자동차 운영 패턴과는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최종 업데이트도 20년 전이다. 최근 일상을 전혀 반영할 수 없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WLTP다. 국제적인 표준 인증 주행 사이클로 연구됐다. UN 산하 유럽경제개발기구를 중심으로 기획 및 개발됐는데 EU 회원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는 물론 한국과 일본, 인도 등 거의 모든 국가가 이 기준으로 NEDC를 대체했다. 다만 미국은 이미 WLTP보다 강화된 기준을 적용하고 있어 굳이 WLTP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WLTP는 NEDC보다 오염물질 배출량과 연비가 15~25퍼센트 악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환경기준은 완화되지 않았다. 완성차 제조사는 이 사이클을 기반으로 유로 6를 맞춰야 한다. 지난 9월부터는 판매되는 모든 디젤차가 WLTP로 유로 6를 준수해야 한다. 때문에 최근 출시되는 디젤차는 기존에 들어가던 배출가스 정화장치에 더해 SCR이라는 장치를 추가로 더 달고 나왔다. 결국 더 많은 비용이 투자된 셈이다. 폭스바겐의 경우 출시한 디젤 모델 다수가 WLTP로 유로 6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이를 위해 투자해야할 금액이 10억 유로, 우리 돈으로 약 1조3000억원 가까이 된다고 한다. 자꾸만 천덕꾸러기가 되는 디젤 엔진에 이렇게까지 투자하는 게 과연 옳을까? 판단하기 쉽지 않은 규모다.
전동화가 답?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디젤 엔진 모델이 점차 단종 수순에 들어가고 있다. 럭셔리 브랜드 최초로 디젤 모델을 내놓은 벤틀리는 벤테이가 디젤 판매를 곧 중단할 예정이다. 기아와 토요타, 혼다, 스바루, 스즈키 등 아시아 브랜드도 유럽 내 활발하게 판매 중이던 디젤을 점차 줄여나가 하이브리드를 포함한 전동화 모델로 완전히 대체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앞서 밝힌 것처럼 푸조도 신형 디젤 엔진 개발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PSA 산하 시트로엥과 DS, 오펠/복스홀도 디젤 모델 판매가 시한부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포르쉐 역시 디젤 모델 판매를 곧 중단할 예정이다.
디젤차는 한때 ‘클린 디젤’이란 명칭까지 사용하며 친환경 모델로 각광 받았다. 하지만 순식간에 사라져야할 퇴물로 취급되는 중이다. 디젤이 친환경 모델로 각광 받았던 만큼 그 빈자리는 전동화 모델로 채워지고 있다. 유럽 브랜드로 디젤에 일가견이 있던 볼보는 2020년까지 모든 라인업을 전동화 모델로 채우겠다고 밝혔다. 하이브리드 강자 토요타도 전동화 모델 판매 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토요타의 경우 2017년 한 해에만 전 세계에 전동화 모델을 152만대 판매했다. 토요타의 전동화 모델 판매 목표는 2030년 550만 대다. 자동차 업계는 2030년 글로벌 전동화 모델 시장이 1000만대 이상으로 확대되리라 예상하고 있다. 그만큼 줄어드는 건 물론 대부분 디젤 시장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