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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구체성에서 삶의 존재론으로
- 이은주 정영자 남현설 김진규의 시를 중심으로
권대근
문학박사, 하북미대 객좌교수
Ⅰ. 로그인
좋은 시는 추상적인 생각을 직접 설명하기보다 사물과 장면을 통해 생각하게 한다.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의 이미지즘은 이러한 시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유효한 출발점이다. 파운드는 시에서 관념을 장황하게 설명하기보다 사물을 직접적으로 제시할 것을 강조했다. 그가 말한 이미지란 단순한 시각적 그림이 아니라 “an intellectual and emotional complex in an instant of time”, 곧 한순간에 지적 정서적 복합체를 만들어내는 이미지다.
에즈라 파운드는 20세기 초 영미 모더니즘 시 운동의 핵심 인물로, 기존의 장식적이고 수사적인 시어를 거부하고 사물 그 자체를 명료하게 드러내는 시적 방법을 제안하였다. 그는 특히 이미지즘 운동을 통해 시는 모호한 감정의 장식이 아니라, ‘사물’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포착하는 언어의 예술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때 핵심 원리가 바로 ‘사물에 대한 직접적 제시’이다. 이는 시인이 대상에 대해 설명하거나 해석하는 대신, 대상 자체를 독자 앞에 즉각적으로 현현시키는 표현 방식을 의미한다. 이 원리는 근대시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중요한 미학적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시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주장하는가’만이 아니다. 어떤 사물을 선택하고, 그것을 어떤 장면 속에 놓으며, 서로 다른 사물 사이에 어떤 관계를 만들어내는가가 중요하다. 이미지가 살아 있으면 관념은 이미지 뒤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반대로 관념이 먼저 나오고 사물이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장식물로 동원되면 시는 산문적 교훈에 가까워질 수 있다. 이 네 편의 시는 모두 자연과 일상적 사물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은주의 「햇빛 속으로」는 개망초와 낡은 의자, 정영자의 「아미산 산책길」은 수국 바다 새 햇살, 남현설의 「기울어진 것들에 대하여」는 넘어져도 살아가는 소나무와 물고기 수초, 김진규의 「시간의 끈」은 버스 정류소 손잡이 차창과 가로수를 대상으로 삼는다.
흥미로운 점은 네 작품이 모두 사물에서 인간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현대시의 분석에서 중요한 것은 흐름이다. 자연을 자연으로만 묘사하지 않고, 사물의 상태에서 인간의 삶을 읽어낸다. 다만 그 이동의 방식은 서로 다르다. 이은주는 ‘틈과 햇빛’을 통해 삶의 회복을 말하고, 정영자는 ‘산책길의 풍경’을 음악적 세계로 확장하며, 남현설은 ‘기울어짐’을 존재의 방식으로 전환하고, 김진규는 ‘버스의 이동’을 시간과 삶의 문제로 끌어올린다. 이 글에서는 네 작품을 구체성, 이미지, 사물과 관념의 관계, 비유와 전이, 리듬과 압축, 결말의 의미 생성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Ⅱ. 클릭
1. 이은주 「햇빛 속으로」, 구체성 시학
이 시는 흔하고 작은 존재인 ‘개망초’를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작품이다. 특히 ‘좁은 틈’에서 시작해 ‘꽃이 피는 자리’, ‘머물 자리’, 나아가 ‘햇빛 한 칸’을 더하는 자리로 공간의 의미를 확장해가는 시적 구조가 돋보인다. 이 작품의 미덕은 ‘희망’이나 ‘생명력’ 같은 추상적 의미를 직접 말하지 않고, 개망초가 햇빛을 끌어모으고 틈을 넓히며 넘어져진 자리까지 자신의 주소로 만들어가는 구체적인 이미지와 언어를 통해 독자가 그 의미를 발견하게 한다는 데 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한 포기의 개망초에서 존재의 능동성과 삶의 회복력을 길어 올리며, ‘틈’을 결핍의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자리로 바꾸어 놓는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개망초’라는 구체적인 사물에서 삶의 의미를 끌어낸다는 점이다.
“산책길 낡은 의자 좁은 틈/ 개망초 한 포기” 첫머리부터 시인은 추상적인 감정을 제시하지 않는다. ‘산책길’, ‘낡은 의자’, ‘좁은 틈’, ‘개망초 한 포기’라는 구체적인 사물과 공간을 차례로 놓는다. 특히 ‘낡은 의자’와 ‘좁은 틈’은 이 시의 핵심적인 이미지다. 개망초는 특별한 꽃이 아니다. 오히려 흔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꽃이다. 그런데 시인은 그 꽃을 통해 존재의 적극적인 힘을 발견한다. “한 줌씩 햇빛을 끌어모아/ 앉을 자리 하나 꽃으로 틈을 넓힌다” 여기에서 ‘햇빛을 끌어모은다’는 표현은 의인화이면서 동시에 존재론적 은유다. 꽃은 햇빛을 받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햇빛을 끌어모으는 능동적 존재가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앉을 자리 하나 꽃으로 틈을 넓힌다”는 구절이다. 처음에는 ‘좁은 틈’이었다. 그러나 개망초는 그 틈을 자신의 생명으로 넓힌다. 이때 틈은 결핍의 공간에서 가능성의 공간으로 변한다. 파운드적 구체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이 부분은 성공적이다. ‘희망’, ‘극복’, ‘생명력’이라는 추상어를 사용하지 않고 꽃과 틈과 햇빛의 관계를 보여줌으로써 그러한 의미를 독자가 스스로 발견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비바람은 수없이 줄기를 흔들어/ 자라는 문법을 꺾어놓지만”이라는 표현도 흥미롭다. 특히 ‘자라는 문법’은 이 작품에서 발견되는 독창적인 언어다. 식물의 생장을 인간의 언어 체계인 ‘문법’으로 전환함으로써, 성장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지만 현실의 바람은 그 규칙을 끊임없이 교란한다는 의미를 만든다. 그리고 시는 한 단계 더 나아간다. “눕혀질 때마다/ 하늘은 더 깊이 몸에 새겨지고/ 일어설 때마다 넘어져진 자리까지/ 제 주소가 된다” 여기서 넘어짐은 실패가 아니라 존재의 좌표가 된다. ‘넘어져진 자리’가 ‘제 주소’가 된다는 발상은 이 시의 핵심적인 발견이다. 상처와 실패의 흔적까지도 존재를 구성하는 장소가 된다는 것이다. 후반부의 “무거운 돌 바깥이던 틈을/ 머물 자리로 바꾸는 일”은 앞의 ‘좁은 틈’과 연결된다. 시의 공간이 좁은 틈 → 꽃이 피는 자리 → 머물 자리로 확장된다. 마지막 부분도 이 시의 주제를 인간에게 직접 확장한다. “아침이면 개망초는 저가보더 먼저/ 햇빛을 들여놓아/ 지나는 산책객들, 각자의 어둠에/햇빛 한 칸 증축한다”
특히 “각자의 어둠에 / 햇빛 한 칸 증축한다”는 표현은 좋다. ‘햇빛’을 물리적 빛에서 타인의 삶에 덧붙여지는 작은 희망의 공간으로 전환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개망초라는 작은 존재에서 인간의 삶에 관한 큰 의미를 끌어낸 시라는 점에서 성취가 있다. ‘틈’, ‘햇빛’, ‘주소’, ‘머물 자리’, ‘증축’이라는 공간적 어휘가 하나의 의미망을 형성한다. 다만 후반부에서 이미 충분히 획득한 의미를 다소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은 조금 더 절제할 여지가 있다. 이 작품의 가장 강력한 부분은 개망초가 말하지 않아도 독자가 그 생명력을 발견하게 만드는 이미지에 있다. 따라서 마지막의 의미 확장은 조금 더 여백을 남겨도 좋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는 구체적 사물에서 이미지, 이미지에서 은유로, 다시 존재론적 의미의 상승 구조가 잘 형성된 작품이다.
2. 정영자 「아미산 산책길」, 음악적 세계
정영자의 「아미산 산책길」은 자연의 풍경을 바라보는 데서 출발해 그 풍경 속에 흐르는 리듬과 울림을 포착하는 작품이다. 이 시에서 자연은 각각 고립된 사물로 존재하지 않고 꽃과 바람, 구름과 바다, 새와 햇살이 서로 어우러지며 하나의 유기적인 세계를 이룬다. 특히 시각적 이미지로 시작한 풍경이 점차 청각적 이미지로 전환되면서 자연 전체가 하나의 음악적 공간으로 변모하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따라서 이 작품의 핵심은 단순히 아름다운 산책길의 풍경을 묘사하는 데 있지 않다. 시인은 자연을 ‘보이는 것’에서 ‘들리는 것’으로 확장하고, 마침내 하나의 선율과 협주곡으로 통합함으로써 풍경에 음악적 생명력을 부여한다.
이 시는 네 작품 가운데 가장 감각적이고 음악적인 작품이다. 이 시는 하나의 사건을 서술하기보다 산책길에서 만나는 자연의 장면들을 연속적으로 펼쳐 보인다. “오솔길 따라 수국이 피어/ 푸른 숨결 머금은 꽃송이들/ 결숲에 물결친다” ‘수국’, ‘푸른 숨결’, ‘꽃송이’, ‘물결’이라는 시각적 이미지가 먼저 등장한다. 이어 바람과 구름, 등산객이 등장하면서 시의 공간이 확대된다. “산허리 감싸 안은 바람은/ 새털구름 품고 스쳐 가고/ 등산객들 어깨 위에 내려앉아/ 더위 식혀 주며 길 따라 흘러간다” 여기서 바람은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니다. ‘감싸 안고’, ‘품고’, ‘내려앉아’, ‘흘러간다’라는 동사를 통해 생명력을 가진 존재로 변한다.
이 작품에서 주목할 것은 자연을 하나의 독립된 사물로 바라보기보다 서로 관계하는 사물들의 세계로 만든다는 점이다. 꽃과 바람, 구름과 등산객, 바다와 모래톱, 새와 하늘이 서로 연결된다. “바다는 물결 따라 모래톱에 지도 그려놓고/ 새들은 그 위에 쉼표를 찍고 품에 든다” 여기서 ‘지도’와 ‘쉼표’는 이 시의 대표적인 은유다. 바다는 모래톱에 지도를 그리고, 새들은 그 위에 쉼표를 찍는다. 자연이 하나의 문장 혹은 악보가 되는 순간이다. 이러한 이미지의 연쇄는 후반부의 음악적 표현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햇살은 은빛 파문 위에 춤추고/ 바람은 물결과 꽃 사이를 오가며/ 보이지 않는 가락을 엮어낸다” ‘햇살-파문-춤’, ‘바람-물결-꽃-가락’의 결합은 시각적 풍경을 청각적 풍경으로 바꾼다. 그리고 마지막에 “파도는 쉬지 않는 숨결로/ 노래를 뛰우고/ 하늘은 눈부신 빛으로 화음을 더해/ 맑은 선율을 협주곡으로 핀다” 자연 전체가 하나의 협주곡으로 완성된다. 즉 이 시의 구조는 산책 → 풍경 → 관계 → 음악 → 협주곡으로 상승한다.
이 작품의 장점은 풍경을 음악으로 번역하는 감각이다. 자연을 보는 것이 곧 듣는 것이 되고, 듣는 것이 다시 하나의 음악적 질서로 통합된다. 다만 파운드의 구체성 이론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후반부의 ‘노래’, ‘화음’, ‘선율’, ‘협주곡’은 앞부분의 구체적인 이미지에 비해 다소 추상적이다. 이미 바다와 새와 햇살과 바람이라는 충분히 강한 이미지가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마지막에서는 음악 용어를 조금 덜 사용하고 구체적인 자연의 장면 하나로 끝냈다면 더욱 여운이 강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이 시는 풍경을 단순한 풍경으로 머물게 하지 않고 하나의 음악적 우주로 변환한다는 점에서 개성이 뚜렷하다.
3. 남현설 「기울어진 것들에 대하여」, 존재의 방식
남현설의 시는 네 작품 가운데 가장 철학적인 사유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시인은 “산비탈엔/ 키운 소나무 한 그루/ 뿌리째 넘어져 살고 있다”라는 강렬한 이미지로 시를 열며, 특히 “넘어져 살고 있다”라는 역설을 통해 ‘기울어짐’의 의미를 전복한다. 넘어짐이 흔히 죽음이나 실패, 좌절을 뜻한다면, 이 작품에서 넘어짐은 오히려 새로운 삶의 방식이 된다. 뿌리째 쓰러진 소나무는 더 이상 곧게 서 있지 않지만, 기울어진 채 생명을 이어간다. 여기서 ‘기울어진 것들’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기운 사물을 넘어, 정상에서 벗어난 존재와 상처 입은 존재, 흔들리고 불완전한 존재를 포괄하는 존재론적 개념으로 확장된다. 결국 이 작품은 ‘바로 서 있음’만을 정상적인 존재 방식으로 간주해온 통념을 흔들며, 기울어짐과 넘어짐 속에서도 지속되는 생의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한다.
남현설의 「기울어진 것들에 대하여」는 네 작품 가운데 가장 철학적인 작품이다. 이 시는 처음부터 강렬한 구체적 이미지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산비탈엔/ 키운 소나무 한 그루/ 뿌리째 넘어져 살고 있다”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넘어져 살고 있다”는 역설적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넘어짐은 죽음이나 실패, 좌절을 의미하지만, 이 작품에서 넘어짐은 오히려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전환된다. 뿌리째 쓰러진 소나무는 더 이상 곧게 서 있는 존재가 아니지만, 그 기울어진 상태에서도 생명을 이어간다. 따라서 제목의 ‘기울어진 것들’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기울어진 사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정상에서 벗어난 존재, 상처 입은 존재, 흔들리는 존재, 불완전한 존재까지 포괄하는 존재론적 개념으로 확장된다. 시인은 이처럼 구체적인 소나무의 형상을 통해 ‘바로 서 있음’만을 정상적인 삶의 조건으로 보는 통념을 흔들고, 기울어짐과 넘어짐 자체를 하나의 존재 방식으로 새롭게 바라본다.
네 작품 가운데 가장 철학적인 작품은 남현설의 「기울어진 것들에 대하여」다. 이 시는 처음부터 강렬한 구체적 이미지로 시작한다. “산비탈엔/ 키운 소나무 한 그루/ 뿌리째 넘어져 살고 있다” 특히 “넘어져 살고 있다”는 역설이 이 시 전체를 지배한다. 일반적으로 넘어짐은 죽음이나 실패를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넘어졌기 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간다. 제목의 ‘기울어진 것들’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기울어진 사물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정상에서 벗어난 존재, 상처 입은 존재, 흔들리는 존재, 불완전한 존재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된다. 소나무의 구체적인 모습도 잘 포착되어 있다.
“껍질마다 묵은 세월이/ 굳은 먼지처럼 들러붙었고/ 솜살 같은 뿌는 휘어졌다” ‘껍질’, ‘먼지’, ‘뿌리’, ‘휘어졌다’는 촉각적이고 시각적인 이미지다. 특히 ‘솜살 같은 뿌리’는 강인한 소나무의 이미지와 부드러운 ‘솜살’이 결합하면서 역설적인 질감을 만들어낸다. 그 뒤에 등장하는 바다와 물, 물고기, 수초는 소나무의 의미를 확장한다. “물은/ 고요한 곡선으로 흐르고/ 물고기는/ 방향을 묻지 않고 헤엄치며/ 수초는/ 허리를 접고도 자란다” 여기서 ‘곡선’, ‘방향’, ‘허리’, ‘자란다’는 모두 기울어짐과 움직임의 이미지다. 그리고 마침내 자연의 이야기에서 인간의 이야기로 전환된다. “비탈져 기울어진 하루를/ 굽은 어깨 삐것이는 무릎으로/ 바람이 나를 흔들고/ 파도가 내 이름을 삼켜도” ‘기울어진 하루’는 작품의 핵심적인 전환점이다. 물리적 공간인 ‘비탈’이 시간의 공간인 ‘하루’로 전이된다. 이것이 이 시의 가장 중요한 은유적 확장이다. 마지막은 매우 단순하다. “소나무는 기울어진 채로 살아 있다./ 나도 그렇다” 이 결말은 설명보다 선언에 가깝다. 소나무의 존재 방식과 화자의 존재 방식을 겹쳐놓는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성취는 ‘기울어짐’을 결핍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으로 재해석했다는 점이다. 완전하게 서 있는 존재만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고 휘어지고 흔들리는 존재도 살아간다는 것이다. 특히 파운드적 구체성의 관점에서 볼 때, ‘삶은 고난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넘어진 소나무, 휘어진 뿌리, 흐르는 물, 허리를 접은 수초를 보여준 뒤 마지막에 “나도 그렇다”라고 연결한 것이 효과적이다. 다만 중후반부에서 인간의 고통을 직접 진술하는 부분은 앞부분의 자연 이미지보다 다소 설명적이다. 이 시의 힘은 오히려 소나무·물고기·수초가 인간보다 먼저 말하고 있다는 데 있다. 따라서 인간의 고통을 조금 더 절제하고 자연의 이미지에 맡긴다면 더욱 높은 시적 긴장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네 작품 중 주제적 집중력과 결말의 응축력이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4. 김진규 「시간의 끈」, 시간의 감각
김진규의 「시간의 끈」은 앞의 세 작품과 달리 자연의 풍경보다 버스라는 도시적 일상과 이동의 공간에서 시간의 감각을 포착한다. 시인은 “버스에 올라타면 생각/ 먼저 줄음이다”라는 다소 낯선 표현으로 독자의 시선을 붙잡으며, 이동하는 몸과 변화하는 의식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드러낸다. 특히 ‘줄음’이라는 표현은 원문의 의도를 확인할 필요가 있지만, 그 낯섦 자체가 이 작품의 독특한 언어 감각을 환기한다. 버스에 몸을 싣고 이동하는 평범한 일상은 이 시에서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생각과 감각, 기억이 느슨해지고 다시 이어지는 시간의 경험으로 전환된다. 이어지는 구체적인 장면들은 이러한 일상의 움직임 속에서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고,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순간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이 시는 앞의 세 작품과 달리 자연보다 도시적 일상과 이동의 공간을 시적 대상으로 삼는다. 첫 구절부터 시간의 역설을 제시한다. “버스에 올라타면 생각/ 먼저 줄음이다” 여기서 ‘줄음’은 오탈자 여부와 별개로 문맥상 ‘졸음’ 또는 ‘줄음’이라는 언어적 특이성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정확한 원문 의도를 확인할 필요가 있지만, ‘버스에 올라타면 생각 먼저 줄음이다’라는 문장은 생각이 줄어드는 것인지, 졸음이 먼저 오는 것인지 의미가 불분명하다. 이어지는 장면은 비교적 구체적이다. 다만 이러한 의미의 모호성은 오히려 버스 안에서 의식이 느슨해지고 시간이 다르게 감각되는 순간을 환기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어지는 구체적인 장면들은 이러한 일상의 이동을 통해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으려는 화자의 시선을 보여준다.
“정류소 지날 때면 벌떡벌떡/ 멈춘 시간/ 한참을 돌고 온 중점/ 어디에서 내릴까” 정류소를 지나가는 버스의 움직임과 ‘멈춘 시간’이라는 역설이 결합된다. 버스는 계속 움직이는데 화자의 시간은 멈춘 듯하다. 물리적 시간과 심리적 시간이 어긋나는 것이다. 후반부에서는 창밖의 풍경이 빠르게 흘러간다. “흔들리는 손잡이/ 열리는 신호 따라 못내/ 바쁜 차창 밖/ 가로수 절긴 떠인 양/줄 지어 달린다” 이 부분에서 ‘손잡이’, ‘신호’, ‘차창’, ‘가로수’는 도시적 삶을 구성하는 구체적인 사물들이다. 특히 가로수가 달리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는 버스 안의 정지와 바깥 풍경의 이동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 작품의 핵심은 바로 이 속도의 이중성이다. 버스는 달리고, 가로수도 달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화자는 그 안에서 ‘어디에서 내릴까’를 생각한다. 결국 이동은 공간적 이동만이 아니라 삶의 시간 속에서 내가 어느 지점에 내려야 하는가라는 실존적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작품은 네 작품 가운데 가장 일상적이고 도시적인 소재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거창한 자연이나 철학적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 버스라는 생활 공간에서 시간의 문제를 발견한 것은 장점이다. 특히 이 시는 파운드의 구체성이라는 관점에서 더욱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시간’, ‘생각’과 같은 추상어보다 손잡이가 흔들리고, 신호가 열리고, 차창 밖 가로수가 달려가는 장면이 훨씬 강한 시적 힘을 갖기 때문이다. 이 시는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의 이동 속에서 시간의 결을 발견하고, 흘러가는 시간과 자신을 이어주는 내면의 감각을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추상적인 시간의 의미를 직접 설명하기보다 버스 안팎의 구체적인 움직임을 더욱 밀도 있게 조직해서 한층 선명한 작품이 되었다.
Ⅲ. 작품을 관통하는 시적 특징
네 편은 서로 다른 소재를 가지고 있지만 공통된 하나의 시적 원리가 있다. 작은 사물에서 큰 의미로나아간다. 이은주는 개망초에서 삶의 회복으로, 정영자는 산책길에서 자연의 협주곡 으로, 남현설은 기울어진 소나무에서 존재의 긍정으로, 김진규는 버스에서 시간과 삶의 이동으로 나아간다. 즉 네 작품 모두 작은 구체적 사물을 삶의 은유로 전환한다. 두 번째, ‘사물 에서 인간’의 이동, 이 네 작품의 시적 구조를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사물에서 이미지로, 다시 관계, 은유, 인간적 의미라는 구조를 띤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시가 관념을 직접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구체성을 거쳐 관념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의인화보다 중요한 것은 ‘관계의 발견’ 이 작품들은 자연물을 사람처럼 표현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개망초는 햇빛을 끌어모으고, 바다는 지도를 그리고, 새는 쉼표를 찍으며, 소나무는 넘어져 살고, 수초는 허리를 접고 자란다. 이러한 표현들은 단순한 의인화라기보다 사물의 새로운 관계를 발견하는 방식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네 작품은 단순한 자연시나 감상시를 넘어선다.
Ⅳ. 로그아웃
- 기울어진 세계에서도 햇빛은 들어온다
결국 「기울어진 것들에 대하여」가 말하는 ‘기울어짐’은 결핍이나 실패의 표지가 아니라 존재가 살아가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뿌리째 넘어졌지만 다시 살아가는 소나무처럼, 상처 입고 흔들리는 존재도 자신의 기울어진 자리에서 새로운 생의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 시가 보여주는 것은 곧바로 서 있는 존재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넘어지고 기울어진 뒤에도 다시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존재의 힘이다. 그러므로 ‘기울어진 것들’은 배제되거나 교정되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계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남현설은 이 시에서 기울어짐을 삶의 결함에서 존재의 조건으로, 넘어짐을 실패에서 생성의 계기로 전환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작품은 한 그루의 소나무를 넘어, 상처와 불완전함을 지닌 우리 모두의 삶을 성찰하게 하는 깊은 존재론적 울림을 획득한다.
네 편의 시를 함께 읽으면 하나의 흥미로운 공통점이 발견된다. 네 작품의 화자들은 모두 완전하고 안정된 세계가 아니라 흔들리고 움직이고 기울어진 세계를 바라본다. 이은주의 개망초는 좁은 틈에서 자란다. 정영자의 자연은 바람과 파도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인다. 남현설의 소나무는 넘어져 있고, 수초는 허리를 굽힌다. 김진규의 화자는 움직이는 버스 안에서 삶의 정류장을 생각한다. 네 편의 시를 함께 놓고 보면, 서로 다른 소재와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공통된 존재론적 감각이 흐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완전하고 안정된 상태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흔들리고 기울어지고 이동하면서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지속해가는 존재에 대한 응시다. 이 네 편의 시는 모두 ‘흔들림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에 관한 시라고도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햇빛 속으로」의 “각자의 어둠에 / 햇빛 한 칸 증축한다”와 「기울어진 것들에 대하여」의 “소나무는 기울어진 채로 살아 있다. / 나도 그렇다”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하면서도 깊이 호응한다.
하나는 어둠 속에 햇빛을 증축하는 존재이고, 다른 하나는 기울어진 채 살아가는 존재다. 정영자의 「아미산 산책길」은 이러한 세계에 음악을 부여하고, 김진규의 「시간의 끈」은 그 세계를 도시의 이동과 시간 속으로 옮겨놓는다. 네 작품이 보여주는 시적 세계는 완벽하게 서 있는 세계가 아니다. 틈이 있고, 흔들림이 있고, 기울어짐이 있고, 지나가는 시간이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불완전함 속에서 꽃은 피고, 바람은 가락이 되고, 소나무는 살아가며, 버스는 다음 정류장을 향해 달린다. 이 점에서 네 편의 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하나의 명제를 공유한다. 삶은 반듯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흔들리고 기울어지고 움직이면서도 자기만의 자리를 만들어가기 때문에 아름답다. 그리고 좋은 시는 그 사실을 설명하지 않는다. 개망초 한 포기, 수국 한 송이, 넘어져 살아가는 소나무 한 그루, 달리는 버스 한 대를 보여준다. 그것이 이 네 작품이 지닌 가장 중요한 시적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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