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요한의 죽음과 예수님
마가복음 6 : 14 – 29
세례 요한은 분봉왕 헤롯이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자기 아내로 삼은 것을 옳지 않다고 책망했습니다. 그로 인해 헤롯은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고, 헤로디아의 사악한 흉계로 인해 참수형으로 죽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이며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한 신약의 최초의 인물입니다. 아론의 자손으로 대제사장 사가랴와 어머니 엘리사벳의 경건한 가문 출신으로, 하나님께서 이름을 ‘요한’이라고 부르라 하셨습니다.(눅1:5-14)
예수님께서도 ‘여자가 낳은 자중에 세례 요한 보다 큰 이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11: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악한 한 여인에 의해 목베임을 당해 죽었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세례 요한의 죽음에 대한 설명이나 변명은 성경 어디에도 말씀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세례 요한의 죽음에 대해서 어떤 말씀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잉태되었으며,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에 가까웠으니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많은 사람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마3:1-17)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고 복음사역을 이끌어 주신 선구자입니다. 사도 요한처럼 백 세를 살면서 많은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고 예수를 믿게 했다면 기독교가 더욱 크게 성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땅에 떨어지지 아니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하면 세례 요한의 죽음은 하나님의 섭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마10:29)
세례 요한이 잡혀 옥에 갇힌 것을 아시고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갈릴리로 물러가셨다는 말씀도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마4:12)
옥에 갇힌 세례 요한도 예수님에 대해 실망하고 두 제자를 예수님께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라고 여쭈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1:2-6) 세례 요한이 예수님으로 인해 실족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의 제자들에게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가서 요한에게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1:5)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마3:3;사40:3)고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광야에서 외친 요한이 선구자로서 사명을 잘했으며, 예수님도 잘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한은 그의 제자들에게 예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는 분’이라고 말했습니다.(마3:11,12)
그리고 이튿날 예수님께서 나아오심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외치며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이심을 가르쳤습니다.(요1:29,30)
문제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받은 제자들에게 있습니다.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들이 다 나아가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막1:4,5)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따르는 자들을 요한의 제자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신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요4:1)는 말씀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보다 더 큰 인기를 끌게 된 예수를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때부터 유대교의 중심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요한의 제자들보다 많다는 것을 시기하며 예수님을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에게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자주 금식을 하며 기도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신다’고 말했습니다.(눅5:33)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요한의 제자들을 크게 높이며 예수님과 제자들을 비난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도 요한에게 가서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라고 말했습니다.(요3:26)
이렇게 말한 요한의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제자들에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말씀하시며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며 자신은 예수님의 길을 열어주는 선구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흥하여야 하겠고 자신은 쇠하여야 한다’고 예수님과 자신의 관계를 제자들에게 올바르게 가르쳐 주었습니다.(요3:28,30)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의 제자들은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라고 말하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시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요한의 세례를 높이 평가하고 예수님의 세례를 평가절하했습니다. 요한이 죽은 후에도 그들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함께 요한의 세례를 주장하며 초대교회를 어지럽게 했습니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에 가장 중심되는 에베소교회에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사람들은 예수에 관한 것을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았다’고 말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행18:24,25)
그들이 고린도에 와서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고 요한의 세례만 안다’고 말했습니다.(행19:1-3) 에베소에서 고린도까지 왔다는 것은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가는 하루 이틀 만에 갈 수 있는 가까운 길이 아닌 먼 길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고린도까지 와서 역시 요한의 세례만 안다고 가르친 것은 오늘의 이단들처럼 대단한 열심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이 죽은 후에도 그들은 요한의 세례를 주장하며 계속 초대교회에 침입하여 구원에 혼란을 주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기독교를 대적하는 이단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미국 풀러신학교 원로 교수인 김세윤 박사는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고 말했습니다. 재세례파와 침례를 고집하는 자들이 기독교를 대적하는 이단으로 세계기독교회사가 말합니다.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 왕이 듣고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일어나니라 하고”(막6:1)란 말씀에서 우리는 그때의 사정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죽은 자도 살리시는 것을 듣고 보면서, 그를 예수라 하지 않고 죽은 요한이 살아났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엘리야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가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고 말했다는 것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시인하지 않으려고 하는 강하게 부정하려고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막6:15)
예수를 강하게 부인하면서 세례 요한의 명성을 높이는 것은 기독교를 헤치고자 하는 이단들의 형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예수님도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요한의 세례를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어서 당시 사람들은 많은 논쟁을 하였다고 말씀했습니다.(히6:2)
성령 충만함을 받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고’ 라고 했을 때 베드로가 그들에게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말했습니다.(행2:38)
세례는 기독교의 중요한 의식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도 세례가 구속사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세례는 기독교에 없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성결 예식입니다.
세례 요한은 그의 제자들에게 ‘나는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예수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신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막1:8) 그리고 ‘예수님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의 제자들은 그들의 스승인 요한의 가르치는 말씀을 무시하고 요한의 물세례만을 중요하게 여기고 성령세례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중생의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요3:3)
물세례가 기독교에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분명한 것은 물세례만으로 구원을 얻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세례를 받고 거듭나야 구원받고 영생하게 됩니다.
성령세례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물세례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구원을 얻을 수 없고 영생도 없습니다. 천주교에는 세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숨이 거두는 사람에게 아무라도 그에게 세례를 준다고 합니다. 살아서 세례를 받지 못한 자에게는 죽은 자에도 성수를 뿌리며 세례의식을 행합니다. 그러나 진리가 아닙니다.
세례 요한의 죽음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상징하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가셔서 복음을 전하신 것은 세례 요한의 선구자로서 할 일을 다 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것도 다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의미를 알지 못하고 자기 맘대로 살다가 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의미를 깨달아 알고 사는 사람은 최고로 행복한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의미를 알지 못하고 사는 것은 최악의 불행입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이 오래 살아서 많은 것을 가르쳤다면 기독교가 크게 성장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칼빈은 오래 살지 못하고 55세(1509-1564)에 죽었습니다. 칼빈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데려 가셨습니다.
세례 요한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의 선구자로서 할 일을 다했기 때문에 갓 서른을 넘은 젊은 나이에 하나님께서 데려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서른 세에 십자가에 달려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그 사명을 다하고 주님의 부름을 받고 영생에 들어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