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추억을 먹고 사는 나이 되었다. 안기부 다니던 노병한 친구는 고집 쎄지만, 귀여운 데도 많았다.
동기 회식 자리에서 식사 메뉴 시들하다고 투덜투덜 불평 하길래, '자네가 식사비 내는 것도 아니고, 남이 쏘는 식사 자리에서 그러면 않된다'고 충고해준 적 있다. 같은 이문동에 살아서 어느 날 둘이 제기역 근처 일식집에서 식사를 했다. 나야 비싼 일식집 가는 스타일 아니지만 그가 가자해서 갔고, 식사비는 내가 냈다. 그날 식사가 맘에 들었던 모양인지, 그후 자주 전화를 했지만, 나는 병한이 페이에 신경을 쓰곤 했다. 그는 페이엔 신경을 별로 않썼기 때문이다.
백두산 갈 때 였다. 북경서 연길로 가다보니 중간에 기차 환승역이 많다. 그때마다 남자들은 찻간에서 짐보따릴 올리고 내리고 했는데, 병환이는 전혀 짐에 손을 대지 않고 부인만 시켰다. 그냥 부인에게 시키는 것이 아니라, 힘든 짐 올리고 내리는 걸 동작 뜨다고 적반하장으로 오히려 화를 내며 부인을 꾸짓곤 했다. 집에선 19세기 양반처럼 방에 요강을 놓고 살았다고 한다. 요강 청소도 물론 부인 손 아니겠는가?
병한이가 욕지도 별장에 초청했다. 안기부 나온지 몇 년 후, 병한이는 해변에 집을 짓고, 산소발생기를 사서 다이빙 하는 친구들에게 팔면 수입 생긴다며 거기 집을 지었다. 지금은 새로운 시설 좋은 팬션이 많아 그렇지 않지만, 그땐 꼭 가보는 곳이 있었다. 부산서 온 두 여인이 만든 지붕이 둥근 하얀 건물이다. 병한이 안내로 거기 가본 친구 꽤 많다. 두번 갔는데, 그때 간 친구는 누구였던지 모르겠다. 한밤에 음주 운전으로 용왕님 전으로 가신 병한이 사고도 지금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첫댓글 노병한친구의 생각이 나는구먼,참으로 좋은 친구였다.그 후손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창구기박사하고도 특히 친했지. 욕지도도 갔었던 것 같아.
욕지도에 병한이가 집지은후 몇번 가서 지내고 왔지.그리고 우리 동기생들 중에 다녀온 친구들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