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또 다른 나]
철인 3종 경기 뛰는 삼성SDS 수석 컨설턴트
이한용(53)
취재·정리=홍원상 기자/조선일보 : 2012.05.30.
1시간 수영→35㎞ 자전거 출근→회사 업무→10㎞ 마라톤
본업은 장비 제어 프로그램 개발, 사회생활 15년만에 건강 적신호… 마라톤 입문 뒤 더 큰 욕심 내
한 번에 '수영·마라톤·사이클링' 트라이애슬론 도전… 48세 때 성공 일흔까지 벅찬 감동 계속 느낄 것
저는 IT(정보기술) 서비스 업체인 삼성SDS 수석 컨설턴트입니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고, 반도체 공장에 설치된 여러 장비를 제어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게 주업무이지요. IT 기업의 특성상 하루 일과는 아침에 출근해서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저녁에 퇴근하는 겁니다. 하지만 직장 밖에서의 생활은 좀 남다릅니다. 일반인에게는 별로 익숙하지 않은 트라이애슬론(Triathlon) 선수로 뛰고 있지요. 이른바 '철인(鐵人) 3종 경기'로 불리는 트라이애슬론은 말 그대로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극한(極限) 스포츠입니다. 수영 3.8㎞, 사이클 180.2㎞, 달리기 42.195㎞로 이뤄진 '킹(King) 코스'를 쉬지 않고 17시간 안에 완주해야 '철인(iron man)'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수영 2㎞와 사이클 90㎞, 마라톤 21㎞를 뛰는 하프(Half) 코스도 있지만, 이 역시 거친 파도와 싸우고 가파른 아스팔트 길을 반나절 넘게 달려야 합니다. 지금까지 제 기록은 킹 코스 3회, 하프 코스 5회 완주(完走)입니다.
13년 전만 해도 제가 '철인'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회사 건물 한두 층을 올라갈 때도 계단보다는 엘리베이터를 먼저 찾았으니까요. 그러던 2001년 어느 날 제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습니다. 1986년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건강관리를 방치해온 탓에 만성피로와 알레르기, 비염 등이 한꺼번에 찾아온 것입니다.
트라이애슬론 대회에 참가한 이한용씨가 수영 경기를 마친 뒤 사이클링에 이어 마라톤 경주를 벌이고 있다(사진 왼쪽부터). 왼쪽 아래 사진은 이씨가 삼성SDS 본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모습. /이한용씨 제공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매일 저녁 집 앞 초등학교 운동장을 달리기로. 처음엔 가빠오는 숨을 참지 못해 운동장 한 바퀴도 제대로 돌지 못했습니다. 그런 제 모습에 저는 더 큰일을 저질렀습니다. 갓 시작한 운동이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되지 않도록 10㎞ 코스 마라톤 대회에 참가 신청서를 낸 것입니다. 그리고 매일 저녁 학교 운동장을 1시간씩 달린 덕분에 2003년 처음으로 풀코스 마라톤 대회를 완주했고 지금까지 총 41회를 달렸습니다. 최고 기록은 3시간 24분입니다.
마라톤을 중간에 포기하지 않은 원동력은 운동을 시작한 뒤로 감기 한 번 앓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체력이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운동도 마약처럼 중독되는 걸까요? 저는 더 큰 욕심을 냈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더 적극적으로 넘어서야 하는 스포츠를 찾아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그런 노력 끝에 지금까지 산악 마라톤 5회, 100㎞ 코스의 울트라마라톤 11회를 완주했습니다. 그러고는 2006년부터 극한 스포츠 중에서도 가장 어렵고 힘들다는 트라이애슬론에 참가하기 위해 훈련에 들어갔습니다.
철인 3종 경기의 매력은 수영과 마라톤, 사이클링을 한 번에 즐긴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훈련도 다양하게 해야 합니다. 경기도 용인이 고향인 저는 수영을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트라이애슬론에 입문한 후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새벽 6시 동네 수영장에 나가 1시간씩 수영 강습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수영을 정식으로 배운 지 1년이 지나자 4㎞를 쉬지 않고 헤엄칠 수 있었습니다. 아침 출근길은 사이클링 훈련 시간입니다. 집이 있는 분당신도시에서 근무지인 삼성전자 화성반도체 공장까지 35㎞를 자전거로 달렸습니다. 그리고 퇴근 후에는 탄천변을 따라 10㎞씩 뛰었지요.
2007년 6월 철인 3종 경기 대회에 처음 출전했습니다. 아침에 출발해 지친 몸을 이끌고 한낮의 무더위와 싸우며 아스팔트 위를 달리던 제가 결승점에 도달했을 때는 이미 해가 어둑어둑 저물 무렵이었습니다. 저는 발걸음 하나하나를 어떻게 내디뎠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체력이 고갈된 상태였습니다. 바로 그때 저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상쾌함을 맛보았습니다. 결승점을 통과하는 순간 그동안 제 몸 안에 쌓여있던 노폐물이 모두 빠져나가고 새로운 것으로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트라이애슬론 선수로 활동하려면 규칙적인 연습과 체력 관리는 필수입니다. 남들은 그런 저에게 '이렇게 힘든 짓을 왜 하느냐'고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그래도 제가 철인 3종 경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이 경기에서만 맛볼 수 있는 벅찬 감동과 희열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이 일흔이 될 때까지 트라이애슬론 경기에 참가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때까지 경기에 출전하려고 평소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고 체력을 관리하다 보면 그만큼 삶 자체도 의욕적이고 활기를 띠게 될 테니까요.
요즘에는 운동과 봉사활동을 접목하려는 계획도 실행에 옮기고 있습니다. 주말에 서울 남산 산책로에서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뛰며 마라톤 연습을 도와주는 것이지요. 이런 생활을 앞으로도 20년 가까이하다 보면 제 체력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생활도 건강해지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