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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할렐루야. 네 오늘도 거룩한 주의 날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또 이렇게 주님의 성전에 나와 예배드리는 우리 귀하신 성도님들 삶과 가정과 일터 가운데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날마다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우리 앞뒤 좌우에 계신 분들과 사랑의 고백, 축복의 인사 나누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사랑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하루를 살면서 수많은 선택 앞에 놓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오로지 나의 몫인 것이죠. 무엇을 먹을까부터 시작해서 오늘 무엇을 입을까 오늘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내가 오늘 말 한마디를 어떻게 할 것인가 누구를 만날 것인가 이러한 모든 것들이 사실은 나의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죠.
그런데 선택할 때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여러분 선택할 때는 무조건 기준이 따라가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의 기준은 이게 선택했을 때 나에게 좋은가라는 거예요. 나에게 좋은가 이걸 항상 우리는 염두에 두고 선택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내가 유리한 것에 선택하게 돼 있고요. 나를 편하게 해주면 그것을 동의하고 따라가게 되는 것이죠. 내가 원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라면 그것은 좋은 선택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렇죠. 내가 원하는 것을 얻었어요. 그러면 야 내가 정말 선택을 잘했구나.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어. 그러면서 자기 자신을 인정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나에게 좋아 보이는 것이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이죠. 달콤한 것 되게 좋아해요. 저도 달콤한 음식을 좋아해요. 달콤한 음식을 계속 먹으면 내게 좋습니다. 선택은 내 몫인데 내가 다른 거 너무 좋아해서 오늘도 먹고 내일도 먹고 그래 참 잘한 선택이야라고 말할 수만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죠. 당장 편하다고 해서 그 길이 반드시 좋은 길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넓은 길 돌아가지만 그 길이 훨씬 더 나에게 도움이 될 수가 있는 것이죠. 반대로 눈앞에 손해 보는 것처럼 보여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선택이 나를 살리는 경우가 있더라는 것이죠. 방금 보기에는 야 이 선택 죽은 선택이야 나한테 유익되지 않아라고 판단했을지언정 그 길을 가보고 나니 그때 내가 잘못 선택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그런 것들이 있죠. 마치 갈림길에 서 있는 것과 같은 것이 우리의 선택입니다. 한쪽 길은 편해 보입니다. 한쪽 길은 좁고 불편해 보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좁은 문 좁은 길과도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길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 이것을 우리는 잘 생각해야 되는데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어느 길이 편한가 이것이 나의 선택의 기준이 아니라 어느 길이 목적지로 가는가를 보는 것. 그것이 지혜로운 사람이죠. 여러분 아무리 편한 길이라 할지라도 방향이 잘못돼 있으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죠. 아무리 좁고 협작한 길일지라도 방향이 바로 돼 있으면 우리가 목적하는 그 목적지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죠.
오늘 우리가 살펴본 성령의 열매 벌써 여섯 번째입니다. 양선 양선이라는 이 단어 헬라어로 아가도시네라는 단어인데 선을 추구하는 것 그것도 있지만 사실 선을 우리의 실제 삶으로 이행하는 것까지 확장시켜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죠. 따라서 양선이라는 것은 저 사람 참 착하네 양수 안 하면 그렇게 생각해요.
저 사람 달란트가 뭔 것 같아요? 저 사람의 성품이 어떤 것 같아요?
저 사람 착해요 양선이 있는 것 같아요.
보통 이런 느낌을 갖게 되는데 여러분 거기에서 이 양선이라는 것을 정말 확장을 시켜야 됩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양선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을 먼저 알고 내가 아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을 선택하며 알았으면 멈추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거죠. 더불어 더 나아가서 그 선한 삶을 행하는 것 까지가 양선의 모습이라는 것이죠. 따라서 여러분 이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알고 선택하고 행하는 것 따라 해 보실까요?
알고 선택하고 행하는 것 알아도 선택을 안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렇죠. 선택은 했지만 행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양선이라는 것은 먼저 바르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바른 길을 잘 선택해서 가는 것까지죠. 그런데 이 역시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물론 결정이라는 건 내가 하지만 여러분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을 때 나무에 생명이 흐르는 것처럼 그래서 그 생명을 통해서 열매가 나타나는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께 붙어 있을 때 예수님의 선하심이 우리 가운데 조금씩 조금씩 흘러들어와서 아는 거죠.
여러분 아무리 성경으로 내가 양손 선한 것이구나.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도 보고 선한 것은 이런 것이다. 아무리 보아도 내 마음 가운데 동의되지 않고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그것은 아무 유익이 없죠. 그러니까 결국에는 내가 예수님께 붙어 있을 때 예수님께서 주시는 은혜 성령으로 말미암아 양선이라는 것이 내가 주님의 기뻐하시는 그 선을 받아서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구나라는 것을 인정하고 따라가는 것. 그래서 여러분 이 양선이라는 것은 주님께서 나에게 공급하시는 선하심이 결국에 우리의 생각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하고 그리고 생각이 바뀌다 보니까 우리의 선택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그 삶을 행하는 자에게 여러분 예수 믿고 우리는 사실 변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다 하는데 굉장히 많이 변하셨어요. 잘 생각해 보십시오. 과거의 나 내가 예수 믿고 나 그리고 예수 믿어가면서 내가 어떻게 점점점점 바뀌고 있는지 내가 느끼지 못할지라도 분명히 바뀌는 것이죠. 조금씩 조금씩 주님의 생명이 내 안에 들어있기 때문에 오늘 본문 에베소서 5장 8절 말씀도 이렇게 말하죠.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 전과 이후를 이야기합니다. 전에는 어둠이었어요. 그런데 주님을 만나고 나니까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이것이 핵심 메시지인 것이죠. 여러분 순서를 잘 기억하십시오. 빛의 자녀들처럼 살면 빛이 될 것이다.
그렇게 말했나요?
내가 열심히 빛의 자녀처럼 살아야지 살아야지 그러면 빛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까?
아니잖아요. 오늘 본문은 이제는 주 안에서 빚이라라는 먼저 신분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주 안에 빛이십니다. 할렐루야 이미 나는 주 안에서 빛이라는 신분을 가졌다는 거예요. 내가 예수를 믿는 것도 기적이고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기적이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 기적을 통해서 내가 예수를 믿는 자녀로서 주 안에서 빛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빛을 비추느냐 아니냐의 문제인 거죠. 빛이 아니라고 부정할 이유는 없는 거예요. 그렇죠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빛의 자녀가 된 것 내가 선하게 살아서 빛의 자녀가 된 것 아니다. 예수님 안에서 빛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그 생명이 우리의 삶에서 빛의 열매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양선도 이번 주에 숙제로 가져가지 마십시오.
이번 주에 내가 양선이라는 거 잘 들었는데 양손 잘 살아야지 숙제로 가져가지 마시고 저와 여러분들의 열매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안에서 아침에 시작할 때 내가 주님의 품 안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가운데 주님 안에서 공급되어지는 힘을 가지고 그래서 여러분 양손의 열매가 맺혀지는 삶. 그러면 양손의 열매를 맺으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첫 번째요. 양선은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을 따르는 것이다.
우리 한번 읽어보실까요? 시작
양선은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을 따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양선의 출발점을 10절에서 우리는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10절 말씀을 또 같이 읽어보실까요? 10절입니다. 시작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 시험하여 보라.
여러분 여기 보니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를 말하지 않고요. 주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가를 묻자는 거죠. 주님이 뭘 기뻐하실까 선택에 앞서서 주님이 뭘 기뻐하실까를 생각하고 시험하라는 것 이것이 바울이 우리에게 제시한 것입니다.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니가 신앙이니까 알아서 하고 싶은 대로 살아라.
사람들이 좋은 것을 선택해라.
그렇게 말하지 않고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라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양선이라는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기록된 시험하여 보라라는 이 표현도 우리가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헬라어로 도키마조라는 이 단어는요. 무엇이 진짜인지 살펴보고 분별하고 확인한다는 뜻이에요.
여러분 가지고 있는 금 있잖아요. 금 진짜입니까?
가지고 있는 것들 진짜 그물 다 갖고 계시죠 그런데 그거 팔 때 가면 그냥 24k네 하고 그냥 받아주나요?
아니요. 다 확인합니다.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그래 한동안 가짜 금 때문에 한참 또 이슈가 있었잖아요. 그렇죠. 확인해야 돼요. 이게 진짜인지 아닌지 그리고 그거에 따라서 가격이 달라지잖아요. 달라지잖아요.
지금 금값이 얼마나 오르지 떨어졌는지 저는 잘 모르겠지만 한창만 오를 때 금 얼마나 소중했습니까?
그 금 꼭 확인해야 된다는 것이죠. 내 생각과 선택을 그냥 믿지 말고 이렇게 했을 때 하나님이 기뻐하실까를 판단하고 확인해 보는 것 믿음 안에서 살펴봐야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 선한 것은 내 마음에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 여러분 우리는 때때로 어떤 일을 판단하고 결정할 때 내 생각에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결정하는 것들이 있죠. 내 생각에는 하나님을 위한 거야 이게 그렇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있는데 중요한 것은 그것이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져야 되는 거죠. 내 생각에는 맞아요. 이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거야라고 말할 수 있지만 하나님 입장에서 판단해 보는 거죠.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실까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그걸 우리는 염두에 두자는 거죠. 내가 분명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선택하는 것인데 하나님은 너 나 안 기뻐 나는 기쁘지 않다니까라고 말하는 것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죠.
사울 왕을 한번 생각해 보실까요?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다 직멸해라 이게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말씀이죠. 그런데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남겼어요. 다 진멸하라고 했는데 남겼어요. 뭘 남겼습니까?
좋아 보이는 양과 소를 남겼어요. 그리고 사무엘이 묻습니다. 이건 도대체 뭡니까라고 물었을 때 사울이 정말 멋진 말을 했어요. 이거 하나님께 제사드릴 겁니다. 예배드리겠다잖아요.
여러분 생각할 때 괜찮지 않아요 좋은 것 가지고 내가 예배드리겠다는데 하나님 앞에 흠 없는 것 다 집멸할지라도 이거는 잘 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면 하나님 기뻐하실 거야. 하나님 좋아하실 거야 누구 생각이에요?
내 생각이죠. 내 생각은 그렇게 판단할 수 있다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했을 때 하나님은 영광 받으실 거야.
그런데 하나님 입장에서 노 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결국 사무엘을 통해서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순종이 뭐보다 낫다고요?
제사보다 낫다 듣는 것이 수량의 기름보다는 그러니까 나는 하나님께 좋게 보이려고 했는데 하나님은 너는 순종하지 않았어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의 문제는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전혀 악해 보이지 않아요. 큰 죄 지은 거 아니잖아요. 살인을 했습니까? 도둑질을 했으니까 십계명에 어긋난 거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의 생각에 좋은 것을 선택한 것이죠. 여러분. 그런데 이것은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쉽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이죠. 이런 걸 우리가 점검해 보자는 거예요. 나는 좋은 뜻으로 했습니다.
이런 표현은 뭐예요?
상대방이 안 좋게 느낄 때 하잖아요. 나는 좋은 뜻으로 했는데 왜 그렇게 됐을까? 내 생각인 것이죠. 다 잘 되라고 한 것입니다. 잘 되기 위해서.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것이고 가정을 위해서 그랬습니다. 교회를 위해서 그랬습니다. 다 누구의 입장입니까?
내 입장에서는 그런데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좋은 뜻이었다고 해서 모든 방법이 선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뜻에서 한 가지 더 내 좋은 뜻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가라고 묻는데 먼저 내가 먼저 좋은 뜻이라는 걸 생각하는 것 자체도 귀한 거예요. 사실 너무 귀한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교회를 위해서 가정을 위해서 누군가를 위해서 내가 좋은 생각 가졌다는 거 칭찬받아야 돼요. 너무 훌륭한 것입니다만 그러나 거기에서 한 단계 더 성숙한 것은 뭐예요?
이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인가라고 묻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 말하기 전에 이 말을 주님이 기뻐하실까 묻는 것이죠. 결정하시기 전에 이 선택 하나님이 기뻐하실까라고 묻는 거예요.
무엇을 시작하기 전에 이것 정말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것인가 양선은요.
내가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내 삶을 맞추는 것 이것이 바로 양선의 첫 번째 기초되는 작업입니다.
여러분 연주회 같은 데 가면은 바이올린 키는 매장이 나와가지고 한번 음을 맞추잖아요. 그렇죠 피아노하고 음을 맞추는 거죠. 저는 사실 그쪽에 잘 모르지만 여러분 피아노하고 음을 맞추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불협화음이 나겠죠. 그래서 기준을 맞춰야 돼요. 기준을 맞춰야 다 그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죠. 그냥 내 귀에 비슷한 음미야라고 해서 켜면 안 된다는 거예요. 격하게 끄덕끄덕하시는 게 발견이 됐습니다. 그렇죠 그 기준에 맞춰야 아름답게 들리는 것이죠. 내 귀가 피아노가 될 수는 없죠.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는 그 기준, 우리의 삶의 기준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따라 합시다.
하나님의 말씀 큰소리로 하나님의 말씀 우리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 그래서 내 생각이 말씀에 맞추어져 있는 거 내 욕심이 벗어나 있지는 않은가 그러면 욕심이 과해지는 거죠. 내 선택이 주님의 마음에 맞춰 있는 그리고 그것을 우리는 언제 가능하다고요?
예수님께 붙어 있을 때 예수님 안에 있을 때 그것입니다. 말씀 안에 거하고 기도하며 주님의 마음을 구할수록 내가 원하는 것보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할 확률이 점점점점 높아지는 거죠.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하루를 시작할 때 막 정신없이 급하게 늦었다 막 이러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과 아침에 새벽에 성전에 나와서 기도하고 하나님 내가 오늘 주님의 안에서 살겠습니다고 시작하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다르죠. 내가 어디에 점점 선택권을 갖고 전에는 내가 좋은 것이 중요했습니다만 점점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나에게 좋아지기 시작해 이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구나. 그래서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이것이 성령께서 맺으시는 양손의 열매다.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께 붙어 있음으로 말미암아 내 기준이 아닌 말씀이 기준이 되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선택하고 순종하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는요. 양선은 어둠 속에서도 선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세상이 다 아니오로 말할 때 말씀이 예라고 하면 우리는 예라고 해야 돼요.
옛날에 그런 광고를 한번 본 적이 아주 오래됐는데 모두가 다 아니요라고 말할 때, 예라고 말할 수 있는 모두가 다 예라고 말할 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모두가 다 어둠을 이야기할 때 나는 빛입니다라고 말하는 거 우리 8절 말씀 한번 읽어보실까요? 8절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여러분 빛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어디일까요?
어두운 곳이죠. 어두운 곳 대낮에 여러분 작은 촛불 켜보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사실 그런데 어두컴컴한 곳에 작은 촛불 하나 켜면요. 굉장한 빛을 바라게 되는 것이죠. 우리의 선함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잘해줄 때 내가 잘하는 거, 그거 다 할 수 있는 거 그렇지 않아요?
나에게 친절한 사람에게 친절한 것 누구나 할 수 있는 겁니다. 모든 사람이 정직할 때 나도 정직한 거 할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양손의 열매는 환경이 어두워질 때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정직하지 않을 때 내가 정직한 것. 그건 필요한 것이죠. 다른 사람이 편법을 사용할 때 나는 바른 길을 선택하는 것. 누군가 나에게 좋지 않은 꼬지 할 때 똑같이 대하지 않는 아무리 보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 옳은 것을 선택하는 이 부부는 우리는 너무나 잘 아는 요셉을 떠올릴 수 있죠.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여러분 요셉은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선택할 수 있었던 거예요. 누군가가 다 열심히 보고 있었다면 선택의 기준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냥 놓으라고 말하면 되는 거예요. 그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아요. 사람의 눈만 생각했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요셉은 말합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범하리다.
내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득죄하릴까 아무도 사람들이 안 볼지라도 지금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십니다
라는 것을 그는 신앙의 고백으로 선포하면서 그의 선택은 노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죠.
여러분 요셉은 그 상황에서 야 내가 이렇게 했다가 혹시 들키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닙니다. 그렇죠. 하나님께 어떻게 죄를 지었습니까라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참 중요한 고백이죠. 왜냐하면 그 기준은 들킬까 말까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이것이 옳은가라는 기준을 세웠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즉 요셉의 기준은 사람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에 내 기준을 맞췄다.
더 놀라운 것은요. 그 선택의 결과라는 거예요. 잘 아시다시피 선택의 결과가 어떻게 됐습니까? 더 좋아졌습니까?
아니요. 아니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했어요. 나 하나님 앞에서 눈앞에서 선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정직하게 선택했더니 결과는 감옥이었단 말이에요. 옳은 선택을 했는데 상황은 더 어려워졌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배우는 것입니다. 선한 선택이 언제나 즉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그리고 여러분 우리는 내가 선한 선택을 했을 때 즉시 좋은 결과가 나지 않으면 뭐예요? 낙심하고 실망한다는 거죠. 내가 잘못 선택했나 보다 그렇게 판단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당장의 좋은 결과로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정직하게 살면 손해 볼 수 있는 것이고요. 바른 말을 하면 오해받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려다 보면 불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사단은 유혹하는 거예요. 거봐 그 선택이 너의 상황을 이렇게 몰고 가잖아 사단이 속삭이는 그리고 우리의 마음 가운데 진짜 그런 마음이 들어요. 주님 내가 주님이 원해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거라고 확신하고 내가 선택했는데 왜 내 삶에 이 문제가 생깁니까라고 질문하는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그런데 여러분 양선은 우리가 유리하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뭐 때문에 선택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그거 하나예요 내 삶이 더 좋아지기를 위해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첫 번째 기준은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위해서 선택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 이후의 것은 하나님께 맡기는 거죠. 당장 좋은 것이 펼쳐질지 아닐지라도 그래도 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나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습니다는 거 씨앗을 뿌렸는데 당장에 여러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여러분 뿌리지 않는 데서는 자라고 생명이 있는 것이죠.
그리고 여러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은 우리의 선택이 한 것이 아니다는 것을 보게 하는 것이죠.
여러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택도 당장 아무 결과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요. 그 선택이 하나님 앞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그래서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보면 말합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낙심하지 말아라. 선을 행할 때 낙심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가 뭘까요?
선을 행할 때 낙심할 이유가 존재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선을 행하래 낙심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한 주 선택의 순간이 찾아올 때 이 질문을 하나 꼭 하면서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나는 비다운 자녀처럼 선택하고 있는가 비다운 자녀처럼 선택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보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는 것 그것을 기억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느냐 사실 중요하죠. 그렇죠. 우리는 다른 사람을 굉장히 의식하고 삽니다. 그런데 그 이상 하나님을 의식하셨으면 좋겠어요. 하나님 보시기에 어떤가? 예수님께 붙어 있는 사람.
여러분 어둠이 있다고 어둠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빛을 비추는 사람 그러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의 삶의 자리, 가정과 일터와 교회, 그 가운데 밝은 빛을 비추시는 빛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 번째는요. 양손은 선한 마음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우리 9절 말씀 한번 읽어보십니다. 시작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여기 보니까 빛의 열매라고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양선을 열매라고 말하죠. 열매의 특징은 결국 뭡니까?
보인다는 것입니다. 안 보이는 열매는 없어요. 보인다는 거예요. 나무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압니까? 열매를 보면 아 이 나무가 생명이 있네라는 걸 알잖아요. 사과나무가 내 안에 사과가 맵고 생명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사과라는 열매로 보여주게 되는 것이죠. 때가 되면 사과가 열리니까 아 이 사과나무는 생명이 있구나라는 것을 우리는 눈으로 보고 아는 것이죠. 열매가 나무를 설명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죠 양선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안에 예수의 생명이 있으면 그 생명은 결국 삶을 통해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좋은 생각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도와줘야겠다 생각이 돕는 자리로 가는 거죠. 전화 한번 해야지라는 생각이 전화를 직접 거는 행동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죠. 내가 정말 이번에는 미안해할 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지 말고 미안하다고 말해야겠다고 했다면 거기서 또 갈등이 되잖아요.
나가 그런 순간들이 참 많은데 그때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감사하다고 해야겠다고 했을 때 그 감사를 표현할 수 있는 삶이 되는 것이죠. 왜냐하면 선한 마음에도 때가 있기 때문에 갈라디아서 6장에 보면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그러면서 이어서 하는 말씀이 뭐예요?
포기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리고 10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기회 있는 대로 이것이 매우 중요하죠. 선한 일에도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기회를 놓치시기 바라라. 나중에 해야 하는데라는 후회가 우리 안에 있을 수 있어요. 그때 할 걸 그때 할 걸 그런 생각들 그래서 여러분 기회가 매우 중요하다.
지난주에 우리 자이라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지지난주 2주 전에 자비 아픈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던 그런 모습 이번 주는 양선인데 양선은 삶의 범위가 좀 넓은 것이죠. 그래서 삶의 모든 자리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선택하고 행하는 것 바라는 일은 저와 여러분들이 가정에서 또 일터에서 사업장에서, 교회에서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에도 여러분, 나는 무엇을 얻을까보다, 내가 여기에서 어떤 선을 행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묻고,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선이 흘러가는 축복의 사람들,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론입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진짜 양선은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을 따르는 것 이것이 첫 번째였고요. 두 번째 양손은 어둠 속에서도 밝게 빛난다라는 것이고, 세 번째 양선은 선한 마음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이번 한 주 동안 바라기는 주님의 은혜가 내 안에 채워지고 성령 충만하여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묻고 알고 선택하고 행하는 복된 한 주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