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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방사능 이전의 창조연대
Creation Dates before Radioactive Dating
I. 지층의 퇴적
II. 뉴턴과 뷔퐁의 지구 냉각속도 계산
III. 켈빈의 지구 냉각속도 계산
1. 열 전달 메커니즘과 켈빈의 계산
2. 켈빈이 간과한 것
3. 잘못된 선입견의 결과
4. 현대적 관점
5. 젊은지구론자들의 문제
IV. 켈빈의 태양 냉각속도 계산
V. 다양한 연대측정
VI. 결론
현대 지질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허튼(James Hutton)은 그의 저서 <지구의 이론>(Theory of the Earth)에서 “...우리는 어떤 시작의 흔적이나 어떤 종말의 가능성도 발견하지 못한다.”고 했다. 과연 우리는 지구에 관한 어떤 시작의 흔적이나 종말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없는가?
오랫동안 지구와 우주의 연대를 측정하려는 시도는 적어도 자연과학적인 측면에서는 큰 진전이 없었다. 하지만 18세기에 들어와 지구나이를 측정하는 자연과학적 방법들이 등장하면서 지구나이에 대한 논의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띠게 되었다. 19세기 후반기에 이르러서는 지구나이를 측정하는 것은 과학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로 등장하였다. 이 논쟁에 처음 참여한 사람들은 바로 물리학자들이었다. 그러므로 본 강에서는 이 논쟁에 처음 참여한 대표적인 몇몇 물리학자들의 얘기를 중심으로 지구나이에 대한 과학적 측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성경을 근거로 지구의 나이를 계산하려는 시도는 어셔의 창조연대 계산 이후에도 서구 사회에서 상당 기간 지속되었다. 하지만 18세기 후반을 지나면서 자연의 여러 가지 증거들을 기초로 지구의 나이를 과학적으로 추정하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지면서 창조연대논쟁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지구의 연대 논쟁에 뛰어든 첫 번째 부류의 사람은 물리학자들이었다. 이들은 지구나 바다, 태양 등의 초기상태를 가정하고 현재의 상태까지 이르는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하여 연대를 계산하였다. 이들은 지구나 태양의 냉각 속도나 바다에 염분이 축적되는 속도로부터 지구의 연대를 추정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이들이 가정한 초기상태나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지구나 바다, 태양의 변화 과정을 정확하게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마다 결과가 많이 달랐다. 이들이 제시한 연대는 대체로 몇 백만 년에서 몇 억 년까지 널리 퍼져 있었다.
지구의 연대를 과학적으로 측정하려고 시도했던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생물학자들과 지질학자들이었다. 이들은 지구상에 살아있는 생물들이나 지표면의 암석들을 자세히 조사한 후 이들이 형성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변해온 과정을 추정하고 이로부터 지구의 연대를 계산하였다. 특히 지질학자들은 퇴적암의 두께와 그 안에 들어 있는 화석들을 근거로 수 십억 년의 지구 연대를 제시했다. 하지만 이들이 제시하는 연대는 대체로 상대적인 연대였다. 어느 지층이 다른 지층보다 오래 되었다고 할 수 있었지만 절대연대는 알 수 없었다.
I. 지층의 퇴적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층과 화석에 대한 상대적 연대측정은 현대 지질학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 지질학자들은 동일과정의 가설 위에서 어떤 지층이 다른 지층보다 오래되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지층누중의 법칙(Law of Superposition))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특별히 뒤바뀐 흔적이 없는 한 아래 지층은 위의 지층보다 오래되었다고 가정한다.
사실 19세기까지만 해도 지질학자들이 지층의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층이 퇴적되는 속도였다. 퇴적된 지층이 쌓이고, 압축작용이 일어나는 속도를 기초로 하여 지층의 연대를 측정하는 것이었다. 지층의 퇴적속도로부터 지구연대를 추정하는 것에 대한 최초의 대표적인 논문으로는 19세기 미국 고생물학자 왈콧(Charles D. Walcott)의 해설논문을 들 수 있다. 그의 논문에 의하면 이렇게 해서 추정한 지구의 연대는 대체로 300만 년에서 최고 60억 년까지 넓은 범위에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넓은 범위에 걸쳐 있는 연대는 비록 절대연대라고 해도 별 의미가 없었다. 사람들은 좀 더 정확한 지구의 연대를 알고 싶었고, 그 첫 번째 시도가 바로 지구의 냉각속도를 이용한 연대측정이었다.
추정자 | 추정시기 | 지구의 추정 연대 (100만년) | 추정근거 |
E. Dubois | ? | >1,000 | 석회암퇴적 |
T.M. Reade | 1879년 | 600 | 석회암퇴적 |
A. Holmes | 1913년 | 320 | 석회암퇴적 |
J. Phillips | 1860년 | 38-96 | 지층퇴적 |
A. Geikie | 1868년 | 100 | 지층퇴적 |
T.H. Huxley | 1869년 | 100 | 지층퇴적 |
S. Haughton | 1871년 | 1,526 | 지층퇴적 |
T.M. Reade | 1876년 | 53-526 | 지층퇴적 |
S. Haughton | 1878년 | >200 | 지층퇴적 |
A. Winchell | 1883년 | 3 | 지층퇴적 |
J. Croll | 1889년 | 72 | 지층퇴적 |
M.A. deLapparent | 1890년 | 67-90 | 지층퇴적 |
H.H. Hutchinson | 1892년 | 600 | 지층퇴적 |
A. Geikie | 1892년 | 73-680 | 지층퇴적 |
W.J. McGee | 1892년 | 15,000 | 지층퇴적 |
A.R. Wallace | 1892년 | 28 | 지층퇴적 |
C.D. Walcott | 1893년 | 35-80[55] | 지층퇴적 |
T.M. Reade | 1893년 | 95 | 지층퇴적 |
T.M. Reade | 1893년 | 100-600 | 지층퇴적 |
W.J. McGee | 1893년 | 10-5,000,000[6,000] | 지층퇴적 |
W.J. McGee | 1893년 | 1,584 | 지층퇴적 |
W. Upham | 1893년 | <100 | 지층퇴적 |
W.J. Sollas | 1895년 | 17 | 지층퇴적 |
J.J. Sederholm | 1897년 | 35-40 | 지층퇴적 |
J.G. Goodchild | 1897년 | 1,408 | 지층퇴적 |
A. Geikie | 1899년 | 100 | 지층퇴적 |
W.J. Sollas | 1900년 | 26.5 | 지층퇴적 |
J. Joly | 1908년 | 80 | 지층퇴적 |
W.J. Sollas | 1909년 | 80 | 지층퇴적 |
A. Holmes | 1911년 | >325 | 지층퇴적 |
A. Holmes | 1913년 | 250-350 | 지층퇴적 |
J. Barrell | 1917년 | 1,250-1,700 | 지층퇴적 |
표 1. 지층의 침식 및 퇴적 속도에 기초한 지구의 연대 추정
II. 뉴턴과 뷔퐁의 지구 냉각속도 계산
화산이나 온천 등을 통해 지구 내부가 매우 뜨겁다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지구의 냉각속도로부터 지구의 연령을 계산하려는 최초의 시도는 유명한 뉴턴(Isaac Newton, 1642-1727)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최초의 지구를 백열상태로 보고 현재와 같은 상태로 식는데 걸리는 시간을 이론적으로 계산하여 5만 년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는 이 시간이 성경의 계보에 기초하여 계산한 6,000년보다 훨씬 길었기 때문에 뭔가 계산에 잘못된 것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뉴턴 다음으로는 프랑스의 뉴턴주의자 뷔퐁(Georges-Louis Leclerc, Comte de Buffon, 1707-1788)이 지구의 냉각속도로부터 지구의 나이를 계산했다. 뷔퐁은 지구는 혜성이 태양 근처를 지나면서 태양의 일부를 떼어 내어 만들어졌으므로 최초의 지구는 태양과 같이 백열상태였으며,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점점 식어져 현재와 같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실제로 다양한 물질로 만들어진 다양한 크기의 구를 백열상태로 만들어 냉각속도를 측정하였다. 백열상태의 구가 손으로 만질 수 있을 정도로 식는 시간을 측정한 후 구의 크기를 지구와 같은 크기로 외삽한 결과 74,832년을 얻었으며, 지구가 현재 상태로부터 얼어붙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93,291년이 걸린다는 결과를 얻었다.
III. 켈빈의 지구 냉각속도 계산
뷔퐁 다음으로는 지구의 냉각속도를 근거로 지구의 나이를 계산한 사람은 영국의 수리물리학자이자 공학자 켈빈 경(Lord Kelvin, 원래 이름은 William Thomson, 1824-1907)이었다. 1862년, 그는 지구가 백열상태의 초기 용융상태로부터 현재와 같은 상태로 냉각되었다고 보고 냉각기간을 계산하였다. 그 결과 그는 지구의 나이는 적어도 2,000만 년은 되었으나 4억 년은 넘지 않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후에 켈빈은 자신이 제시한 지구의 최소 나이보다 조금 더 많은 2,400만 년을 제시했다. 그래서 젊은지구론자 반즈는 켈빈이 주장한 나이라고 하면서 지구의 나이를 2,400만 년이라고 인용했고, 그리고 그 나이를 모리스와 파커도 인용하였다. 하지만 이 나이는 실제로 킹이 처음 발표한 것인데 후에 켈빈이 킹의 연대를 받아들여서 지구 나이의 상한으로 삼은 것이었다.
1. 열 전달 메커니즘과 켈빈의 계산
켈빈은 지구는 뜨거운 마그마 상태로부터 식어서 현재에 이르렀다는, 현대 지질학의 연구 결과와도 부합하는 가정을 했다. 켈빈은 뜨거운 지구가 열을 외부로 발산하여 냉각되는 데는 세 가지 메커니즘이 작용한다고 보았다:
첫째는 복사(輻射, radiation)였다. 태양광이 지구에 비치는 것처럼 전자기파를 통한 열 이동이었다. 둘째는 대류(對流, convection)였다. 이것은 우리가 물을 끓이게 되면 바닥에 있는 뜨거운 물이 위로 올라오고, 차가운 물이 밑으로 내려가는 것을 반복하면서 전체가 뜨거워지는 현상이다. 셋째는 전도(傳導, conduction)였다. 이는 분자들의 열운동을 통해 열에너지가 전달되는 현상이다. 켈빈은 이 세 가지 열전달(heat transport) 메커니즘 중에서 지구의 냉각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것은 바로 열전도라고 보았다.
켈빈은 초기의 온도를 섭씨 3,900도로 잡았는데 이는 실험실에서 암석이 용융되는 온도임이 증명되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온도기울기(temperature gradient)는 1m 당 0.04도로 잡았다. 즉 지구 중심으로 1m 내려갈 때마다 0.04도 온도가 증가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온도구배는 지표면에서 1.5-3km 깊이의 광산이나 깊은 우물에서 깊이에 따라 온도가 변하는 것을 측정하여 결정했다. 그러므로 지구 중심부에서의 온도구배는 순전히 추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켈빈은 암석의 열전도도를 측정해야 했다. 그는 지표면의 암석들을 실험실에 가져와서 열전도도를 측정했다. 하지만 지표면의 암석은 밀도가 2-3g/cm3 정도로서 밀도가 10g/cm3 정도인 지구 중심 물질과는 많이 달랐다. 그러므로 그의 측정에서 암석의 부정확한 열전도도는 또 다른 오차의 원인이 되었다.
켈빈은 이러한 데이터를 기초로 지구의 나이를 계산했는데 결과는 9800만 년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계산에서 여러 가지 불확실한 요소가 있다고 보고 현재와 같이 식어서 단단해지기까지 실제 지구의 나이는 2000만 년에서 4억 년 사이에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켈빈은 1899년 이 연대가 너무 오래된 것으로 생각하여 지구의 연대를 2,000만 년에서 4,000만 년 사이라고 축소, 발표하였다. 켈빈은 지구의 냉각속도로부터 지구의 연대는 길어야 1억 년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그의 측정 및 계산 결과는 종래의 성경의 계보에 기초한 지구연대보다는 훨씬 길었다.
2. 켈빈이 간과한 것
하지만 현대적 관점에서 볼 때 켈빈의 계산결과에서 가장 치명적인 결함은 바로 방사성 원소들이 붕괴하면서 발생하는 열 때문에 지구가 생각보다 훨씬 천천히 식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었다. 사실 켈빈이 지구의 나이를 계산할 때는 아직 현대적인 원자모델도 확실하게 알려지지 않았고, 방사능도 알려지지 않았을 때이기 때문에 그가 아무리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였다고 해도 지구 연대에서 큰 오차가 있었을 것임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지구연대에 대한 자신의 예측에 대해 자신만만했다:
“그러므로 전체적으로 볼 때 가장 그럴 듯한 사실은 태양은 1억 년 (이상) 동안 지구를 비추지 않았을 것이며, 거의 확실한 것은 ... 5억 년 이상은 비추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몇몇 지질학자들이 추측한 것과 같다]. 미래에 대해서 우리가 말 할 수 있는 바는 지금 우리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에너지원들이 하나님의 피조세계라는 거대한 곳간에 예비되어 있지 않다면 지구에 사는 거주민들(inhabitants)은 생명에 필수적인 빛과 열을 수 백만 년 이상 향유할 수 없을 것이다.”
켈빈은 물리학자였지만 당시 영국 사회에서 워낙 유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가 제시한 지구의 나이는 물리학 영역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후 켈빈과 챔벌린을 포함한 다른 유명 지질학자들은 35년 이상 지구의 나이를 두고 논쟁했는데 이는 지질학자들이 관측되는 지상의 여러 지질학적 과정에 기초하여 추정한 지구연대에 비해 켈빈이 추정한 연대가 너무 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논쟁은 영국 물리학자 러더포드(Ernest Rutherford, 1871-1937)와 소디(Frederick Soddy, 1877-1956)가 처음으로 방사능 붕괴로 인해 발생된 열의 양을 측정하자 해결되었다. 러더포드와 소디는 자신들의 발견의 의미를 이렇게 말했다:
“우주물리학에서는 그것(방사능 붕괴로 인한 에너지)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태양에너지의 유지는 구성원소의 내부적 에너지가 이용가능하다는 것이 고려된다면, 즉 아원자 변화의 과정이 지속되고 있다면 어떤 근본적인 어려움도 제기되지 않는다.”
이어 지구와 운석에 포함된 방사성 우라늄(U), 토륨(Th), 포타슘(K)의 양을 측정해본 결과 지구 내부로부터 바깥으로 나오는 모든 열은 중력에너지나 용융된 마그마가 결정화되면서 방출하는 잠열(潛熱, latent heat)이 한 부분을 차지할지라도 주로 방사성 원소의 붕괴로 인한 것임이 밝혀졌다.
3. 잘못된 선입견의 결과
흥미롭게도 젊은지구론자인 반즈는 1970년대에 발표한 문헌에서 방사능에 관해 잘 몰랐을 때 발표된 켈빈의 계산 결과를 옹호하였다. 그는 비록 하딘-시몬스 대학(Hardin-Simmons University)으로부터 명예박사학위(Sc.D.)를 받았지만 학부와 석사과정에서는 정식으로 물리학을 전공했고, 후에 텍사스 주립대학 엘파소 분교(University of Texas at El Paso)에서 물리학 교수를 하면서 미국 창조과학협회(Creation Research Society)의 회장까지 지냈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켈빈의 지구연대를 받아들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몇몇 과학자들은 지구에서 방사능이 이 한계[지구 연대의 상한선]를 상향 조정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방사능]이 켈빈의 수치를 얼마나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분석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켈빈은 방사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는데 이는 그가 이[방사능]에 대해 여러 논문들을 썼다는 사실로부터 증명된다. 그에게는 그것[방사능]이 전혀 문제를 해결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실제로 측정한 열속 기울기(thermal flux gradient)와 지각 암석들의 열전도도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었으며 아직도 그가 지구의 나이는 2,400만 년을 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반즈의 주장은 첫 문장부터 틀렸다. 이미 그 당시에 지구의 열적 상태와 역사에 대한 수많은 문헌들이 발표되었고, 대부분의 기초 지질학 교과서들도 그 문제를 다루었기 때문에 켈빈이 제시한 연대가 방사능으로 인해 확장할 것을 분석한 과학자들이 없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반즈가 켈빈이 지구의 냉각속도로부터 지구 연대를 계산했을 때 이미 방사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주장한 것도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켈빈은 1899년에 지구의 냉각속도로부터 지구연대를 계산하는 마지막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는 러더포드와 소디가 방사능 붕괴로부터 발생하는 에너지를 발견하기 4년 전의 일이었다.
켈빈이 방사능에 관한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논문들은 지구 연대 계산과는 무관한 것들이었다. 반즈는 켈빈이 방사능 붕괴로 인한 열을 고려했고, 그리고 그 열이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결론지은 듯이 말하지만 켈빈은 개인적으로 지구 연대에 관한 자신의 가설이 원자 내에서 방출되는 엄청난 에너지의 발견으로 인해 틀렸음을 시인했다. 비록 켈빈이 공개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는 않았지만 지구의 냉각 속도로부터 지구 연대를 계산한 것이 바르지 않음을 깨달은 것은 분명하다. 켈빈은 자신이 논쟁에서 졌음을 인지하고 그 분야에 대한 자신의 연구를 포기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는 1907년에 죽을 때까지 자신의 에너지를 다른 문제를 연구하는 데 쏟았다.
사실 20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과학자들이나 철학자들에게 지구의 연대를 측정 혹은 추정하는 일은 흥미진진한 주제였다. 그리고 아마 그 주제에 있어서 켈빈보다 더 논쟁을 일으켰던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그 논쟁은 그 후 근 50여 년 간 지속되었으며, 그에 관한 단행본도 출간되었다. 켈빈의 계산은 과학사적 측면에서는 흥미로운 일이지만 이미 20세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그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은 잘 확인되었다.
놀랍게도 슬러셔(Harold S. Slusher)와 갬웰(T.P. Gamwell)은 이미 수많은 연구문헌들이 쏟아져 나온 후에도 방사성 원소의 붕괴로 인한 열이 지구 냉각에 기여하는 바를 고려하여 방사능을 열원으로 고려하더라도 지구 연대 계산은 젊게 나온다는 기막힌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는 이데올로기화 된 잘못된 선입견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지구의 초기 온도가 거주가능한 행성이 될 수 있는 정도의 온도였다면 냉각 시간은 짧았던 것으로 (수천 년 정도로) 보인다. 초기에 지구가 용융되어 있는 정도의 높은 온도였다고 해도 냉각 시간은 진화론자들이 추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짧다.”
달림플은 반즈(Thomas Barnes)를 비롯한 창조과학자들이 이 중요하고도 복잡한 문제를 다루는 것을 보면 “변명할 수 없을 정도로 순진했다”(inexcusably naive)고 말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여기서 “순진했다”(naive)는 말은 무지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그리고 그는 “그들이 지구 내부의 중요한 열원을 무시했으며, 방사성 원소의 깊이에 따른 분포를 부적절하게 선택했으며, 맨틀의 대류에 의해 열이 소실되는 것을 완전히 무시했다.”고 했다.
4. 현대적 관점
켈빈이 살았던 100여 년 전에 비해 오늘날 우리들은 지구에 관해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지구의 열원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얼마나 빨리 지구가 냉각되는지 등이다. 먼저 지구의 열원부터 생각해 보자.
첫째, 생각할 수 있는 열은 태초의 열(primordial heat)이다. 사실 지구에는 여러 중요한 열원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지구의 형성 후에 남은 태초의 열이다. 방사능이나 중력에너지, 니켈-철 지구핵의 분리 등은 지구 형성 후 1-2억 년까지도 지구가 거의 용융상태로 유지될 수 있는 정도의 열을 발생시켰으리라 추정된다. 더욱이 지구가 형성된 초기에는 지구가 운석들이 많이 분포된 공전궤도를 통과하면서 수많은 대형 운석들과 행성들이 지구에 충돌하였다. 이로 인해 지표면으로부터 100km 정도 깊이까지 마그마 바다가 형성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형성된 태초의 열의 많은 부분은 지금까지도 일부 지구에 남아있다.
둘째, 방사성 붕괴에 의한 열이다. 이는 지구 암석에 포함된 우라늄, 토륨, 포타슘 등 방사성 원소가 붕괴하면서 발생하는 열이다. 비록 우리가 지구 내부의 정확한 방사성 원소의 분포를 알 수는 없지만 지구 내부로부터 흘러나오는 열의 대부분 혹은 모두가 방사능 붕괴에 의한 것이라는 모델을 가정하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필요한 모든 열은 지표면으로부터 22km 깊이까지의 화강암 지각에 포함된 우라늄, 토륨, 포타슘이 붕괴하면서 발생시킬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방사능이 오늘날 지구 내부에서 열을 발생시키는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인 것은 분명하다. 방사성 원소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수함수적으로 붕괴하기 때문에 방사능 붕괴는 과거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열을 발생시켰을 것이다. 예를 들면 45억 년 전에는 우라늄, 토륨, 포타슘의 붕괴로 인한 열의 발생이 현재보다 여섯 배는 많았을 것이다.
셋째, 중력 에너지에 의한 열이다. 이는 태초의 열과 방사능 붕괴에 의한 열에 이어 냉각으로 인해 지구가 수축되면서, 그리고 지구의 핵이 자라면서 방출되는 중력 에너지도 지구의 열에 중요한 기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중력 에너지에 의한 열은 다른 열원에 비해 정량화 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
다음으로 지구에서 열이 발생하는 것과 동일하게 중요한 것은 바로 지구가 열을 잃는 메커니즘이다. 앞에서 켈빈이 지적한 것과 같이 열이 전달되는 데는 전도, 대류, 복사가 있지만 이 중 지구가 냉각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전도와 대류이다.
우선 전도는 원자나 분자 수준에서 운동에너지가 전달되는 것이다. 하지만 암석의 열전도도는 낮기 때문에 지구의 역사에서 전도는 열을 잃는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지구 내부에서 전도가 유일한 열전달 메커니즘이라고 한다면 45억 년 전에 지하 수백km 깊이에서 생성된 열은 이제야 지표면에 도달했을 것이다.
아마 지구에서 열을 잃는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은 대류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류는 열 에너지를 전달하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열을 공급하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대류도 빨리 일어난다. 맨틀에 있는 암석들은 비슷한 특성을 보인다. 더 많은 열이 공급될수록 맨틀은 점성이 점점 낮아지고 더 빠른 속도로 대류할 것이며, 따라서 더 많은 열이 지표면에 전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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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지구과학이나 지질학에서 지구의 맨틀이 대류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해저에 대한 심해 수심측량(bathymetry) 결과는 대륙이 이동하고, 해저가 확장되며, 나아가 대륙이 이동한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이론적인 계산으로도 맨틀의 대류는 가능하고 개연성이 있는 현상이다. 언뜻 보기에는 단단한 암석이 유체처럼 흐른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이론적으로나 실험실 실험을 통해서나 맨틀의 대류는 가능하고 실제로 일어난다. 물론 맨틀이 대류하는 것은 단순한 액체가 대류하는 것과는 메커니즘이 다르다. 현재 맨틀이 대류하는 속도는 연간 수 mm 정도이다.
지구에서 열의 발생과 전도, 대류를 통한 열손실의 대략적인 규모는 알려져 있다. 대략적인 총 지열 열속(geothermal heat flux)은 38x1012와트(W)인데, 이 중 63%인 24x1012W는 맨틀을 통해, 24%인 9x1012W는 대륙 암권(lithosphere)을 통해, 13%인 5x1012W는 외핵/맨틀 경계면 근처로부터 올라오는 뜨거운 물질의 기둥에 의해 소실된다.
비록 지역에 따른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지구 표면에서 단위면적당 열방출양은 대륙에서나 해양에서는 같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지구표면의 3/4을 차지하는 해양을 통해서는 지열의 3/4이, 1/4을 차지하는 대륙을 통해서는 지열의 1/4이 방출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해양을 통해 소실된 열은 맨틀의 대류를 통해 지표면으로 올라온 열이다. 전체 지구의 총 열소실의 약 30%는 마그마의 분출과 폭발을 통해 새로운 지각이 만들어지고 있는 해령(mid-oceanic rise)을 통해 일어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비록 전도가 해양 지각을 통해 열을 전달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하지만 맨틀 깊은 곳으로부터 열을 운반하는 지배적인 메커니즘은 대류이다. 반면에 대륙으로부터의 열손실은 주로 전도에 의해 일어난다. 대륙을 통해 소실되는 열의 약 2/3는 대륙 자체 내에 있는 방사성 원소의 붕괴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다. 나머지 1/3의 열은 맨틀의 대류에 의해 맨틀로부터 대륙 암권의 기저까지 운반되었고, 그곳으로부터는 전도에 의해 지표까지 열이 이동한다. 지열은 전도와 대류 두 메커니즘에 의해 운반되지만 전 지구를 통 털어보면 지구로부터 소실되는 열의 대부분은 해양을 통해서 소실되며, 이 때 맨틀의 대류 현상이 주요한 역할을 한다.
지구표면으로 흘러나오는 열의 지배적인 열원은 방사성 원소의 붕괴에 의한 것이라고 추정되지만 일부는 태초부터 존재하는 열이었다. 지구의 물리적인 요인과 열적 역사 등 여러 가지 요인을 고려할 때 지구는 대체로 1억 년에 5-6℃ 정도 식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구로부터 소실되는 열의 30-40%는 태초부터 있던 열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5. 젊은지구론자들의 문제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지구의 냉각속도로부터 지구의 나이를 계산하려는 뉴턴이나 뷔퐁이 시도 이래 수 세기 동안 우리는 지구에 관해 엄청난 지식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젊은지구론자들은 물리, 화학, 지사학 등을 통해 알려진 대부분의 과학적 사실들을 무시한 채 잘못된 가정 위에서 자의적으로 지구연대를 계산해왔다. 그렇다면 젊은지구론을 주장하는 슬러셔와 갬웰, 나아가 젊은지구론자들의 문제는 무엇인가? 달림플은 젊은지구론자들의 오류를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슬러셔와 갬웰은 지구가 열을 소실하는 유일한 메커니즘은 오직 전도 뿐이라는 잘못된 가정을 했기 때문이다. 저들은 대류 현상, 특히 열 소실의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인 맨틀의 대류에 의한 열 손실을 완전히 무시했다. 이러한 가정은 지구의 맨틀이 대류한다는 분명한 증거가 밝혀지기 전이라면 이해가 되지만 젊은지구론자들의 책과 논문은 대부분 1970년대 이후에 출간되었다. 이는 젊은지구론자들이 오래 전에 발표한 전문 학자들의 연구결과들을 전혀 읽지 않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했음을 보여준다.
둘째, 슬러셔와 갬웰은 지구 표면에 대륙과 해양이 있고, 이들은 각각 서로 다른 구성성분과 서로 다른 물리적 특성을 갖고 있으며, 서로 다른 방법으로 지구 판의 이동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지구연대를 계산하면서 대륙과 해양에서 열 발생과 열 손실 과정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
셋째, 슬러셔와 갬웰은 방사성 원소들이 지표면으로부터 깊이에 따라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방사성 원소들이 지표면으로부터 10km 까지만 집중되어 있다는 비현실적인 가정을 하였다. 그래서 지각의 냉각만을 생각했기 때문에 지구의 냉각기간에 근거한 지구 연대를 단지 몇 천 년이라고 주장한 것이었다. 만일 30-2,900km에 걸쳐 분포된 맨틀까지 고려했다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방사능 붕괴를 통해 지구에 열을 공급하는 우라늄, 토륨, 포타슘 등은 지각에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맨틀에도 밀도는 낮지만 이러한 원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맨틀에서는 이들 원소들의 밀도가 낮을지라도 맨틀의 질량 자체가 워낙 크기 때문에 열 발생도 엄청났을 것이 분명하다.
그림 7. 지구의 단면
결론적으로 지구의 냉각 속도나 지구의 열 생산과 열 소실만으로는 지구의 연대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 결국 지구의 절대연대는 다른 요인들에 의해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 방사성 연대가 가장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방사성 연대는 재현성도 가장 높고 다른 연대측정 결과들과도 잘 일치하고 있다.
IV. 켈빈의 태양 냉각속도 계산
흥미롭게도 켈빈은 지구의 냉각과 동일한 가정을 태양에도 적용하여 태양의 나이를 계산하였다. 그는 태양은 아마 1억 년을 넘지는 않았을 터이고, 5억 년보다는 확실히 젊었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태양의 중력에너지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 지에 대한 추정에 근거하여 연대를 결정하였다. 오늘날 우리들은 태양이 중력 붕괴가 아니라 핵융합에 의해 빛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지만 켈빈이 살던 시기에는 핵반응이란 자체가 알려져 있지 않았다.
켈빈은 일생동안 이런 확신을 갖고 살았다. 그는 지구의 나이는 물론 태양의 나이에 대해서도 그렇게 확신했다. 그는 35년 후에도 태양계의 나이, 즉 태양의 나이가 1억 년을 넘지 않을 거라는 자신의 확신을 재확인하기 위해 별도의 계산을 했다. 그는 태양이 어떻게 계속 그 많은 에너지를 그렇게 오랫동안 일정하게 방출할 수 있는가에 대해 세 가지 메커니즘을 제시했다.
첫째, 그는 태양이 문자 그대로 수축되고 있고, 이 때 태양의 중심부로 떨어지는 물체가 에너지를 방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태양이 처음 빛을 발하기 시작했을 때는 지금보다 매우 컸고, 그 이후 계속 줄어들면서 중력 에너지가 빛 에너지의 형태로 방출되어 지구를 비추고 따뜻하게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간단한 계산을 통해 태양은 워낙 크기 때문에 수천 년의 인류 역사를 통해서도 중력수축을 통해 크기가 줄어들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태양이 점점 수축되어 없어지기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그는 수천만 년의 세월이 소요될 것이라고 보았는데 이는 지구의 냉각속도로부터 계산한 지구의 나이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둘째, 그는 태양도 단순히 지구와 같이 뜨거운 상태에서 태어나 식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현재 태양 표면의 온도를 측정하고, 태양이 처음부터 그 온도를 계속 유지했다면 태양이 얼마나 오랫동안 빛을 발할 수 있는지 연대를 계산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그가 계산한 연대는 앞에서와 같이 수천만 년이었다.
셋째, 당시에 켈빈이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에너지원은 연소나 이와 비슷한 화학적 과정이었다. 두 개의 원자나 분자들이 결합(연소)하여 새로운 분자가 될 때 방출하는 에너지를 기준으로 할 때도 태양의 연대는 앞에서와 같이 수천만 년 정도라고 생각했다.
켈빈은 처음 태양의 연대를 계산하고 35년이 지난 1897년,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에너지원을 염두에 두고 다시 태양계의 연대를 결정했다. 이 때 그가 제시한 연대는 3000만 년이었다. 지질학이나 생물학에서는 진화를 위해 10억 년 단위의 연대가 꼭 필요하다고 아우성이었지만 켈빈은 한평생 물리학적 관점에서 태양계의 연대가 절대로 1억 년 이상 될 수 없다고 확신했다.
추정자 | 추정시기 | 지구와 태양의 추정 연대 (100만년) | 추정근거 |
Comte de Buffon | 1774년 | 0.075 | 지구냉각 |
Kelvin 경 | 1862년 | 20-400[98] | 지구냉각 |
S. Haughton | 1865년 | >1,280 | 지구냉각 |
Kelvin 경 | 1871년 | <100 | 지구냉각 |
P.G. Tait | 1869년 | 10-15 | 지구냉각 |
C. King | 1893년 | 24 | 지구냉각 |
Kelvin 경 | 1897년 | 20-40 | 지구냉각 |
G.F. Becker | 1908년 | 60 | 지구냉각 |
G.F. Becker | 1910년 | 55-70 | 지구냉각 |
? Suzuki | 1912년 | 20-60 | 지구냉각 |
A. Holmes | 1917년 | >1,314 | 지구냉각 |
H.L.F. von Helmholtz | 1856년 | 22 | 태양냉각 |
Kelvin 경 | 1862년 | 10-500 | 태양냉각 |
P.G. Tait | 1876년 | <20 | 태양냉각 |
S. Newcomber | 1892년 | 18 | 태양냉각 |
A, Ritter | 1899년 | 4.4-5.8 | 태양냉각 |
표 2. 지구와 태양의 냉각속도에 기초한 연대 추정
이 외에도 지구와 태양의 냉각속도에 기초하여 지구와 태양의 연대를 측정하려는 시도는 여러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사람들마다 다른 가정에 근거하여 계산했기 때문에 서로 다른 결과를 얻었다. 그러면 이러한 시도들의 의의는 무엇일까? 태양과 지구의 냉각속도로부터 태양과 지구의 연대를 추정하려는 시도는 성경의 계보에 기초한 1만 년 미만의 종래 창조연대로부터 과감하게 탈피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이다.
V. 다양한 연대측정
물론 지구와 태양의 나이를 측정하려고 시도한 삶들은 냉각속도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16-17세기, 근대과학이 출현하면서 지구의 나이를 측정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여러 과학자들 중에서 독일 수학자이자 천문학자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는 지구 연대에 대해 “과학적으로” 추정했던 최초의 과학자라고 할 수 있다. 1620년 경, 그는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지는 원지점(遠地點, apogee)이 변한다는 사실에 기초하여 지구의 나이가 5,993년이라고 추정하였다. 물론 현대 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케플러가 지구의 연대를 계산한 데이터나 모델은 틀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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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독일 천문학자 케플러(좌)와 카이로에서 프랑스 총영사를 지낸 드마이예
18세기 프랑스 외교관이자 자연사학자였던 드마이예(Benoît de Maillet, 1656-1738)는 내륙지방에서 바다조개들의 화석이 많이 발견되는 것을 보고 지구는 한 때 물로 덮여 있었다고 가정하였다. 그는 해변가에 있었던 자기 집 주변에서 해수면의 변화를 매년 꼼꼼히 기록한 후 해수면이 점차 내려가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알프스와 같은 높은 산에서도 조개화석들이 발견된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해수면이 알프스 꼭대기로부터 현재의 수면으로 하강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하여 지구가 적어도 20억 년 정도는 되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드마이예는 지구가 오래되었다는 이러한 생각은 곧 바로 가톨릭 교회와 갈등을 초래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생전에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지 않았고, 자신의 원고에서도 일체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대신 텔리아메드(Telliamed)라는 가상적인 인도 철학자와의 대화인 것처럼 숨겼다. 하지만 텔리아메드라는 철자를 거꾸로 하게 되면 곧 바로 드마이예라는 이름이 되기 때문에 원저자가 누구인지를 추적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었다. 드마이예는 화석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현대적인 이해를 하고 있었다.
물론 해수면이 하강한다는 그의 데이터는 믿을 수 없는 자료였고, 따라서 그의 연대도 믿을 바가 못 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동안 지구 나이가 수천 년 정도라고 생각한 데서 수십억 년으로 확장되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것은 현대 생물 진화론의 출현보다도 훨씬 전의 일이었기 때문에 오랜 연대는 진화론을 지지하기 위해 등장했다는 창조과학자들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
조수현상으로부터 지구의 나이를 추정하려는 시도도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달이 지구 주위를 공전하고 지구는 자전을 하면서 매일 두 차례씩의 밀물과 썰물이 생긴다. 그리고 조수로 인해 바닷물이 지구 표면과 마찰하기 때문에 지구의 자전속도는 점차 느려지고 달은 지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달은 지구에 더욱 가까이 있었고 지구의 자전속도는 빨랐을 것이다.
추정자 | 추정시기 | 지구의 추정 연대 (백만년) | 추정근거 |
G. Darwin | 1879년 | >54 | 조수마찰 |
G. Darwin | 1898년 | >56 | 조수마찰 |
Kelvin 경 | 1871년 | <1,000 | 조수효과 |
P.G. Tail | 1876년 | <10 | 조수효과 |
Kelvin 경 | 1897년 | <1,000 | 조수효과 |
표 3. 조수 운동에 의한 지구의 연대 추정
하지만 지구의 자전속도는 흔히 젊은 연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계산하듯이 일정한 율로 느려지지 않는다. 수십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달과 지구는 너무 가까워 중력이 강하게 작용하면 지구의 자전속도는 달의 공전속도와 동조하게(synchronized) 되는데 이렇게 될 때 지구의 하루와 달의 공전 주기는 47일이 된다고 본다. 이런 복잡한 메커니즘 때문에 지구의 자전속도가 느려지는 것이나 달이 지구로부터 멀어져가는 현재의 자료를 근거로 단순하게 지구와 달의 연대를 계산하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어진다.
VI. 결론
지금까지 방사성연대측정법이 탄생하기 전까지 제기되었던 주요한 몇몇 연대측정법에 대해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들 연대들은 방법마다, 그리고 측정한 사람마다 결과가 천차만별이었다. 이는 이런 방법들이 미지의 가정들을 근거로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태초에 지각이 정말로 현재의 지구 내부의 마그마와 같이 뜨거웠는가? 그런 지구가 식는 속도는 또한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등등이다. 결국 이런 방법들은 증명할 수 없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상대적인 연대도 나름대로 유용한 면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층을 이용한 상대연대측정은 절대연대의 신뢰도를 측정하는 가장 중요한 증거가 된다. 즉 절대연대측정을 통해 지층 B가 5,000만 년 되었고, 지층 A가 2,000만 년 되었다는 결과가 나왔는데 지층 B가 A보다 위에 있다고 한다면, 그리고 지층 A와 B의 순서가 뒤바뀐 분명한 증거가 없다면, 절대연대측정이 잘못되었거나, 데이터 분석이 잘못되었거나, 연대측정 방법이 잘못 적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비슷하게 만일 어떤 지층의 절대연대가 1억 년 되었는데 그 지층에 관입되어 형성된 화성암 암맥의 연대가 3억 7,000만 년으로 측정되었다면 뭔가 절대연대측정법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관입의 법칙에 의해 관입을 받은 암석은 관입된 암석보다 오래 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부정확한 절대연대나 상대연대도 현대 지질학이 등장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했지만 지질학자들은 부정확한 절대연대측정이나 지층의 상대적 연대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물리학자들의 절대연대는 지구의 초기상태나 냉각속도의 불확실성 때문에 정확도가 떨어졌고, 반면에 지질학에서 제시하는 지층과 화석을 기준으로 한 연대는 상대적인 연대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지질학자들은 좀 더 확실한 지구의 절대연대, 즉 지층과 암석이 형성된 정확한 연대를 알기를 원했다.
앞에서 제시한 이런 정도의 연대측정법으로는 지사학의 본격적인 등장을 기대할 수 없었다. 이때 신뢰할 수 있는 절대연대측정법이 등장하였으니 곧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한 연대측정이었다. 그 동안 지질학에서 사용되던 상대적인 연대측정은 절대적 연대측정의 기초가 되었지만 19세기 말에 발견된 방사능과 20세기에 들어서서 방사능을 이용한 지구와 암석의 연대측정법의 등장은 지질학 뿐 아니라 암석의 절대연대를 알아야 하는 여러 과학의 분야에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다.
양승훈/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