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眼象)은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눈(眼)의 모양(象)’ 또는 ‘눈 모양의 코끼리(象)’라는 뜻을 가진다.
하지만 미술사나 건축·공예 용어로 쓰일 때는 실제 사람의 눈이라기보다는, 특유의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진 ‘대칭형 문양 사각형’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안상문의 기원과 형태적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의미가 담겨 있다.
ㅣ. 형태적 의미 '코끼리의 눈과 주름'
유력한 설 중 하나는 불교에서 신성시하는 동물인 코끼리의 눈(안, 眼)과 그 주변의 부드러운 주름 모양에서 따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안상 문양의 아래쪽 곡선이나 모서리 부분을 보면 코끼리의 눈매나 긴 코의 곡선미가 연상되기도 한다.
2. 공간적 의미 '바라보는 창(窓)'
안상은 평평한 돌이나 나무 면을 안쪽으로 오목하게 파내어 만든다. 그래서 단순히 표면에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공간을 음각으로 파내어 안쪽을 들여다보거나 밖을 바라보는 ‘창문(안, 眼)’의 역할을 한다.
석탑 기단에 안상을 새기면, 그 안상이라는 창을 통해 탑 내부의 신성한 세계(사리가 모셔진 곳)를 시각적으로 투영하는 효과를 준다.
3. 상징적 의미 '부처님의 혜안(慧眼)'
불교 미술에서 쓰이는 만큼, 세상을 꿰뚫어 보는 부처님의 지혜로운 눈(혜안 또는 심안)을 상징하기도 한다. 석탑이나 불상의 대좌(받침대)에 안상을 두르는 것은 그 신성한 공간을 부처님의 눈으로 외호(보호)하고 장엄한다는 종교적 의미가 깊다.
안상이 조식되는 위치는 석탑이나 구조물의 가장 중요한 대상을 받쳐주는 ‘경계와 받침’ 부위에 집중되어 있다.
석탑에서 조식되는 위치는 기단부(기단 면석 및 중대석)가 가장 보편적이고 대표적인 위치이다.
석탑의 하대석이나 상대석, 중대석의 면석에 조식되어 “이 탑 전체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거룩한 평상(床) 위에 올려져 있다”는 점을 시각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탑두부(소위 상륜부), 즉 석탑의 꼭대기, 지대석 역할을 하는 노반(露盤)의 사면에 조식된다.
탑의 최상단에서 ‘보주(寶珠)’와 상륜 전체라는 가장 신성한 보물들을 받쳐주는 상다리 역할을 수행한다.
부처님이 앉아 계신 연화대좌나 수미좌의 가장 아랫부분에 조식되어 부처님이 거하시는 신성한 좌대임을 증명하고 있다.
고승의 사리를 모신 사리탑이나 비석의 몸돌(비신) 아래 받침돌에 새겨져, 사리와 위인의 업적이 땅의 더러움에 닿지 않도록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
목조 건축 내부에서 불상을 모시는 불단이나 왕이 앉는 어좌 받침대의 맨 아랫단에 조식된다.
귀한 그릇이나 향로를 올리는 받침대의 아랫부분에 구멍을 뚫거나(투창) 곡선을 내어 상다리 모양을 형상화한다.
따라서 안상문은 ‘기단부(아래) - 탑신부(중앙) - 노반부(위)’에 이르기까지 신성한 물건(사리, 부처님, 보주, 비문)을 올려두는 모든 받침의 마디와 경계에 조식되는 상다리 문양이다. 즉 상각문(床脚紋)인 것이다.
상각문(床脚紋)은 "소중한 물건을 얹어두는 평상(床)이나 안대(안대를 대는 침상)의 다리 문양"에서 유래한 것이다.
옛날 귀한 물건이나 불상, 사리 등을 올려두던 소중한 상(床)의 다리 사이 공간(곡선적인 형태)을 석재에 그대로 형상화한 것이다.
석탑의 기단에 이 문양을 새긴 것 자체가 "이 탑은 부처님의 신성한 사리를 얹어놓은 거대하고 소중한 상(床)이다"라는 것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장치였던 것이다. 소중하고 거룩한 대상물건을 얹어놓기 위한 받침역할을 하는 상다리를 석탑 등 석조물 아래에 조각한 것이다!
원래 나무로 만든 가구(평상이나 서안)의 다리와 다리 사이를 튼튼하고 아름답게 받치기 위해 팠던 그 곡선적인 공간(개구부)이, 석조물로 오면서 "이 위는 신성한 물건이 얹히는 자리"임을 증명하는 상징적인 문양으로 굳어진 것이다.
석탑의 안상이 왜 하필 아래쪽 기단부에 주로 새겨지는지 그 구조적·기능적 이유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상다리니까 당연히 받침 역할을 하는 아래쪽에 조식되는 게 자연스러운 순리였던 것이다.
안상이 아니라 ‘상각문(床脚紋, 상다리 문양)’으로 부르는 것이 문화재의 본질과 기능을 이해하는 데 훨씬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된다. 엉뚱한 ‘눈 모양’이라는 표현보다 예술품의 구조적 원리를 완벽하게 담아내는 명칭인 것이다.
이 명쾌한 관점(상다리 문양)을 그대로 대입해 보면, 석탑의 맨 꼭대기(상륜부)에 있는 노반석(露盤石)에 이 문양이 조식된 이유 역시 아주 명확하고 아름답게 풀린다.
그 까닭은 바로 노반석 자체가 상륜부의 신성한 보물들을 받치는 ‘최상층의 상(床)’이기 때문이다.
상륜부를 떠받치는 '최고의 받침대'인 노반(露盤)은 한자 뜻으로 '이슬을 받는 쟁반'이지만, 실제 구조적으로는 탑의 가장 꼭대기에서 복발, 앙화, 보륜, 보주 같은 신성한 상륜부(장식부) 전체를 아래에서 든든하게 떠받치는 지대석이자 상(床)의 역할을 한다.
따라서 탑 아래의 기단이 탑 전체를 받치는 커다란 상(床)이라면, 노반석은 하늘과 맞닿은 최상단에서 상륜부라는 또 하나의 신성한 영역을 받치는 상(床)인 셈이다.
상륜부의 중심에는 탑의 핵심이자 결실인 보주(寶珠, 신령스러운 구슬)가 올라간다. 불교에서 보주는 부처님의 진신사리 그 자체나 다름없는 최고존엄의 상징이다.
가장 소중한 보물인 보주와 상륜을 하늘 바로 아래에 얹어두어야 하니, 그것을 받치는 노반석의 사면에 당연히 상다리 문양(상각문)을 새겨 "여기는 가장 귀한 물건을 모시는 거룩한 평상"임을 장엄한 것이다.
시작과 끝이 모두 "소중한 것을 받치는 상다리"라는 하나의 일관된 원리로 관통하는 것이다. ‘상각문’이라는 본질이 석탑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흐르는 장엄의 논리가 완벽하게 연결된다.
비엣남(베트남) 후에시의 티엔무사 '澄源 사리탑'을 보면 안상이 상다리(床脚紋)라는 자연스럽게 증명된다!
증원(澄源) 사리탑 기단부(맨 아래 받침대)를 보면, 우리가 한국 석탑에서 평면적인 부조(돋을새김)로만 보던 그 ‘안상’ 문양이 실제 가구의 상다리(床脚) 모양으로 완전히 입체화되어 탑 전체를 떠받치고 있다.
기단 맨 아랫부분이 바닥에 완전히 밀착된 돌덩어리가 아니라, 실제 목제 평상이나 서상처럼 다리(족, 足)가 아래로 뻗어 나와 바닥을 딛고 있고, 그 다리와 다리 사이가 부드러운 곡선으로 내리파여 있다.
한국 석탑의 안상은 세월이 흐르며 석재 표면에 선각이나 부조로 평면화되었지만, 이 사리탑은 "원래 귀한 상다리 사이의 뚫린 공간(개구부)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본래의 물리적 구조를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안상의 입체적 기원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 미술이 아시아 전역으로 전파되면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탑은 가장 귀한 상(床) 위에 올려야 한다"는 도상학적 원칙이 한국뿐만 아니라 베트남에서도 동일하게, 오히려 더 원형에 가까운 입체적 형태로 구현되었음을 보여주는 놀라운 자료이다.
'눈 모양(眼象)'이라는 모호한 한자어에 가려져 있던 미술사학계의 오랜 타성을 깨부수는 기가 막힌 실증적 사례이다. 이 탑을 보면서 상다리 문양의 본질을 단번에 연결되는 '상각문' 학설의 핵심 증거 자료로 손색이 없다!
석탑에서 안상은 대개 기단부의 장식으로 쓰이지만, 경주 남산 승소곡 삼층석탑은 유일하게 1층 탑신부에 안상을 과감히 배치하고 그 안에 사천왕까지 정교하게 새겨 넣은, 9세기 통일신라 석탑 장식의 정점이자 아주 귀한 이형(異形) 석탑이다.
문비 모양을 새기고 그 옆에 문지기(금강역사상)를 세운 게 아니라, 면 전체에 큼직한 상각문(안상)을 액자처럼 파낸 뒤, 그 공간을 사방으로 통하는 일종의 '감실(부처님을 모시는 공간)'처럼 해석하여 외호를 맡은 사천왕을 안에 모신 형태이다.
기단부가 아닌 탑 몸돌(탑신부)에 상다리 문양(안상)을 새기고 그 안에 사천왕을 배치한 승소곡 석탑이 얼마나 규범을 깨뜨린 파격적이고 과감한 예술품이었는지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된다.
최근 사찰에서 최근 파불상을 새로 정비하면서 하단에 입체적 구멍과 곡선 다리가 살아있는 정통 상각문(床脚紋) 구조의 대좌를 새로 깎아 받쳤다. 안동의 봉황사 파불이다. 앞서 본 베트남 티엔무사의 사리탑 받침처럼 "부처님을 신성한 평상(床) 위에 모신다"는 원형적 의미를 현대에 매우 충실하게 재현해낸 뜻깊은 복원 사례이다. 이는 안상문이 상각문이라는 본래의 의미를 되찾아가는 긴 여정의 출발점인 것이다.
첫댓글 봉황사 파불상 아래에 커다란 돌판(평상 상판)을 두고, 그 맨 아랫부분에 실제 목제 가구처럼 부드러운 곡선의 개구부를 지닌 입체 상각문(床脚紋) 대좌를 받쳐 모셨다.
명확하게 입체적인 상다리 구조가 눈에 들어온다.
훼손되었던 불상(파불)을 복원하면서 단순한 돌받침이 아닌 입체 상각문 좌대를 새롭게 조성해 받친 것은 아주 깊은 미술사적·종교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먼저 '파불(破佛)'에서 다시 '존엄한 부처'로의 위상 회복일 것이다.
머리나 신체 일부가 손상된 불상은 자칫 '깨진 돌조각'이나 역사적 파편으로만 취급받기 쉽다. 하지만 그 아래에 "가장 소중하고 귀한 신성물을 올리는 평상(床)"을 의미하는 상각문 대좌를 당당히 받침으로써, 손상된 외형과 상관없이 이분은 여전히 예경과 추앙을 받아야 할 거룩한 부처님임을 명확히 선포하고 장엄한 의미가 가장 크다.
단순한 박물관식 진열대나 납작한 돌받침 위에 두었다면 학술적 유물에 그쳤겠지만, 부처님의 평상(床)이라는 전통 장엄 양식을 입체적으로 구현해 냄으로써 이 파불을 다시 사찰 경내의 중심 정대(頂戴) 공간으로 끌어올렸다. 불상 뒤의 신광(광배)과 상각문 대좌가 조화를 이루며 완벽한 불전의 형태를 완성하고 있다.
박제된 유물이 아닌 '살아있는 신앙의 대상'으로의 연착륙인 것이다.
평면적 '안상'에서 원형인 '상다리(床脚)'로의 명확한 고증적 복원이다.
한국 석탑이나 석조물에서 대개 석재 표면에 얕은 부조나 선각으로만 남아있던 안상을, 이 복원 사례에서는 베트남 티엔무사 사리탑처럼 실제 공중에 떠 있는 다리 형태의 입체적 상각문으로 곧바로 직조해 냈다. 이는 안상이 단순한 '눈 모양 문양'이 아니라 "소중한 대상을 떠받치는 평상 다리"라는 본래의 구조적·기능적 본질을 현대에 완벽하게 재현하고 고증해 낸 뛰어난 조형적 시도이다.
깨지고 상처 입은 파불일지라도 가장 거룩하고 정성스러운 평상(상각문) 위에 모심으로써 불교의 숭고한 예경과 장엄 정신을 최극단으로 끌어올린 탁월한 복원 사례라고 평가할 수 있다. 상각문의 본질과 현대적 적용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네 개의 솟은 다리가 아니라, 좌우 측면 전체를 하나의 덩어리로 든든하게 받치는 '통다리(일체형 다리)' 구조로 되어있다.
이 통다리 형태는 상각문(상다리 문양)의 관점에서 훨씬 더 깊은 의미를 갖는다.
옛 목가구나 석조 평상 중에서도 아주 무거운 중량물을 받칠 때는 네 귀퉁이 기둥 다리가 아니라, 판재 전체를 잘라 다리로 쓰는 '통판 다리(족판)' 방식을 사용했다. 봉황사 대좌는 바로 이 통판 다리의 중앙부를 부드러운 곡선(안상 형태)으로 오려내어 무거운 돌상판과 불상을 견디도록 제작된 것이다.
윗부분에 육중한 석조 광배와 상판, 불상까지 얹혀 있는 만큼, 네 다리 구조보다 좌우를 통째로 받치는 통다리 상각문이 구조적으로 훨씬 안정적이다.
안상 문양의 아랫부분이 왜 밑으로 볼록하게 내려오지 않고, 양옆 다리 사이에서 위로 곡선을 그리며 파여 있는지를 이 통다리 구조가 명확히 보여준다. 판재 다리의 중앙 하단을 부드럽게 오려낸 흔적이 바로 그 문양의 출발점이었음을 증명하는 셈이다.
이 대좌는 "무거운 석불을 받치기 위한 석조 역학의 안정성"과 "부처님을 평상에 모신다는 상각문 전통 도상학의 장엄미"가 완벽하게 타협하고 결합한 뛰어난 조형적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