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 그림자가 길어진 금빛공원의 오후. 세상을 사를 듯 맹렬히 타오르던 영산홍 무리도 그러져가고 뒤숭숭한 봄이 이울고 있다. 공원 건너편 병원 계단을 오른다. 부스스한 머리에 민낯의 거리낌도 없이 진료실 안으로 들어서는 나는 오늘의 의사가 부디 구원의 천사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몇 년 생이시죠?”
차트를 들여다보던 의사가 물었다. 힘없는 목소리로 생년을 말하자 그는 작은 눈을 크게 떴다.
“어어, 아니…? 그런데 왜 그렇게 맑지요?”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말이었다. 초면인 의사의 얼굴빛은 숱이 짙은 회백색(은갈대숲) 머리에 반사된 듯 유난히 깨끗해 보였다. 작은 눈빛은 온유하고 선량하게 웃는 입매에는 드물게 보이는 특유의 인자함이 흘렀다. 발달된 턱 선이 젊다고 하기엔 그의 머리가 너무도 눈부시고 아닌가 하기엔 양 볼의 탄력이 넘쳤다. 무엇보다도 입가에 번지는 엷은 웃음이 설명할 수 없는 신뢰를 자아내는 인물이었다.
절박한 심정으로 찾아온 나는 단박에 그를 미더워하는 자신의 판단부터 우선 믿기로 했다. 그 믿음을 발판으로 용기를 냈을 터.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의도된 바는 아니었다. 침울한 벽 속에 내면의 음습한 언어들이 출소하는 죄수처럼 순순히 풀어져 나왔으니. 철저히 가려졌던 농익은 고통이 처음으로 세상의 빛에 노출되었다. 꿈이듯 요절한 남편을 잃은 딸과 풀잎 같은 다섯 살 어린 것이 내가 부여안은 상처의 핵이었다. 가족들은 서로 아무도 위로하지 않았고 저마다의 슬픔에 입도되어 침잠했다. 형벌의 그 중심에 서 있는 나는 환청과 불면을 동반한 고도의 우울증과 악화되어가는 슬관절염 등의 동시다발 증상에 밤낮없이 시달렸다. 하늘 아래 위안은 없었다. 바닥없는 무기력의 늪에 빠져들어 잠들면 깨어나지 않기를 바랐으며 눈뜨면 증발하듯 사라지고 싶었다. 결국 나는 유도심문에 불어버린 용의자였다.
젊은 의사는 정신 영역이 육체적 통증에 미치는 감정의 신체화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러고는 어느 환자의 예로 나를 달래기 시작했다. 남편의 잔인한 학대로 혼자서 딸을 키운 어머니의 실제 사연이었다. 교사가 된 외동딸을 첫 발령지에서 화재로 잃고 참척의 절망에 처한 모진 운명의 여인이 수면으로 떠올랐다. 그런 사람도 살고 있어요. 그는 말했다. 소름이 돋았다. 세상엔 죽음보다 아픈 극한의 상처를 붙안고 살아가는 이가 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아픈 그녀의 존재로부터 얻어지는 부조화의 쓰디쓴 위안을 어쩌란 말인가. 울컥하는 심정을 가누기 어려웠다. 처음 본 의사 앞에서 설움에 북받치다니 웬일인가. 게다가 눈물 찍어낸 감정 뒤편에 묘한 쾌감이 가슴 밑바닥을 훑고 지나갔다. 억수장마에 산더미 같은 오물 덩어리가 속 시원히 쓸려간 기분이었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은갈대숲 터벅머리 의사는 단호하게 ‘즐겁게 살 것’을 처방했다. 그것이 수면제 없이 잠들 수 있는 방법이며 자유로운 보행을 돕는 첫째 조건이라는 것이었다. 그의 긍정의 에너지는 환청에 시달리는 우울증 환자에게 고스란히 전파되었다. 그가, 나는 괴롭히는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의 여유를 달라며 의사로서의 사명감을 보였을 때 나는 당장에 병을 물리치고 활보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진료실 밖 정원수가 눈에 들어온 건 그때였다. 검푸르러가는 목련 잎사귀가 보드라운 바람에 일렁였다. 버려졌던 삶의 의욕이 한순간 꿈틀거렸다.
그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은갈대숲 터벅머리 의사는, “그러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럭저럭 지내시다가 심할 때는 물리치료 한 번 받으러 오세요.”하고 말하던 명문대 출신00 정형외과 원장의 소극적 실무 태도와는 판이하고, “이것은 기분이 좋아지는 약입니다.”하던 무언의 자부심으로 뭉친 대학병원 정신과 전문의와도 확연히 구별되는 처방을 내렸다. 그가 고맙고 흡족했다. 나를 위한 가식 없는 인간적 조언이 내 안에 모종의 힘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후로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의사를 찾아갔다.
“아픈 하소연은 모두 저한테 하세요. 제가 다 들어드리겠습니다. 집에서는 재미있고 즐거운 얘기만 하세요. 아프다는 얘기는 가족들도 좋아하지 않는 법이니까요.”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도 그 밖엔 없었다. 그즈음 알게 된 다른 하나는, 내가 걸려 넘어지고 고전하는 운명적인 사건이나 심각한 스트레스를 누구에겐가 속 시원히 털어놓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들을 안으로만 끌어안고 살아온 가장행렬과도 같은 삶이란 시련을 극복할 의지보다는 세상과의 단절을 부추기는 어두운 단면만을 초례했다. 털어놓고 해소하며 극복하는 과정을 거부한 미련한 삶, 스스로 둘러친 젖빛 유리벽 안에는 상처도 상심도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균열되지 않은 행복 속에 육신을 구겨 넣는 가식의 삶이었음을 체득하며 쓸쓸히 웃었다. 오직 행복해 보이는 외양만을 중시한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젠가, 내가 쓰고 있는 글이 마음에 차지 않아 괴롭다는 말과 함께 가슴이 답답한 증상과 목안의 이물감을 호소했다. 그는 느닷없이 불행한 최상주의자들과 만족주의자들의 행복에 관해서 장황한 설명을 했다. 인간은 신이 아니므로 백 점짜리 삶을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전제로, 낙관하고 만족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 자기가 갈망하는 그 무언가를 추구하는 과정에서도 지나친 열정은 자기 학대하는 것이었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도 지나치게 몰두하여 애달리다. 보면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기어이 그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라고 했다. 그러하니 글을 쓰는 일에도 집착을 버리고 안 된다는 불만보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게 우선이라는 이야기였다. 표현용 감사가 아닌 진실에서 우러나오는 속 깊은 마음으로 이 세상 만 가지 일에 감사하라고 강조했다. 그렇게 하면 내 증상을 깨끗이 사라질 것이니 약은 없다고 하며 나를 돌려세웠다. 그는 나의 아둔한 몇 마디 힌트에도 내 심정을 정확하고 깊게 읽어냈으며 내가 지불하는 진료비로서는 어림도 없는 형이상학적 소득을 안겨준 셈이었다.
그는 음악과 자동차 경주를 좋아하고 유머가 넘쳤으며 한 여인의 센스 있는 남편이기도 했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그가 나를 제2 진료실 옆 다목적 골방으로 안내한 적이 있다. 그의 사적인 공간이었다. 어느 환자에게고 공개한 적이 없는 ‘비말의 방’이라는 단서도 달았다. 도서관을 방불케 하는 책으로 넘친 긴 방 한쪽에는 놀랍게도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그에게는 아내의 생일날 아내가 좋아하는 일본 노래를 선물한다는 낭만적인 꿈이 있었다. 아내에게 초특급 비밀로 부쳐진 그만의 은밀한 계획은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자 부러움이었다. 그의 반주로 ‘애니 송’을 열창했던 환자에게 그날의 기억은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다.
내 안의 아픔은 소통과 통풍의 시간을 딛고 시나브로 아물어갔다. 인생이라는 큰 그림 속에 자신의 삶을 정도껏 객관화 시키는 지혜를 배워나가며 힘을 얻은 결과이기도 했을 것이다. 한 배를 탄 식구들도 나의 변화에 호응해 서서히 슬픔의 정점을 넘어 평온을 찾아갔다. 주치의가 된 은갈대숲 터벅머리 의사와는 가족에 가까운 임의로운 사이로 발전했다. 그는 신뢰가 바탕이 된 인품으로 환자의 정신세계까지를 독려하며 약보다는 희망과 용기를 처방한 보기 드문 의사였다. 우울증을 박차고 나와 평정심을 회복한 것도 첫 대면의 순간에 믿음을 준 젊은 한의사 덕이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격려하고 고단한 일상을 위로하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구원의 천사였던 것이다.
얼마 전, 그는 병원을 리모델링하여 답답하던 실내를 소통의 공간으로 터놓았다. 진료실 내부의 공간은 좁히고 책상과 의자의 높이를 낮추었으며 환자를 우대하는 고객의 공간을 미적 안목으로 넓혀 놓았다. 병원을 찾는 이들은 보다 아늑한 카페 분위기를 찾아 그곳에 커피나 한잔 하러 갈까 보다. 가을이 오면 벚나무 단풍나무가 꽃보다 화려한 터널을 이루는 금빛 공원 그 옆, 내가 좋아하는 병원에는 오늘도 은갈대숲 터벅머리에 피아노를 치는 유쾌한 한의사(韓醫師)가 있다.
(원지현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