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김상용(金尙鎔) 시인이 1934년2월에 '문학'2호에 발표한 시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국어책에 나왔던 시로도 기억된다.
나는 작년 년말에 주민등록을 시골로 옮겼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런지 모르겠지만
내가 태어나 자란 어릴 때의 고향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냈으면 하는 바램에서다.
6.25 사변으로 잿더미가 된 까막골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아버지 어머니와
오손도손 뭣 모르고 자랐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더 이상 고향땅에서 살 데가 못된다며
부모님은 세간살이를 지고 이고서 나와 동생들을 데리고 고향을 등지고 생판 낯설은 마산으로 떠났다.
아무런 준비없이 시작한 도회지 생활은 무수한 배고픔과 눈물과 피와 땀의 둠벙이었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었던 고향땅을 60평생을 지난 후에야 이제사 돌아가려한다.
아버지 어머니 체취가 배여 있는 그 땅에 가서 땅을 갈아 엎어 고추도 심고 가지도 심어련다.
초가 삼칸이 섰던 그 자리엔 조그만 농막이라도 지어서 남으로 창을 내고 싶다.
텃밭에 심을 고추씨는 며칠 전에 경북 농진청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씨앗을 신청해 놓았다.
강냉이도 심어 알이 영글면 꺾어다 가마솥에 쪄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날 때 친구들을 불러 함께 먹어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