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때 군인들이 아버지가 다니던 포항의 고등학교에 장병 모집하러 왔다.
아버지는 연설을 듣고 친구에게 책가방을 맡기고 그 길로 자원입대했다.
집에 가서 홀어머니께 군대 간다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아 친구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기차로 대구에 가서 입대해 직업군인이 된 것이다.
전쟁으로 고교생에게 군인이 된 아버지는 결혼하고 자녀가 넷일때 군인 신분으로 야간 대학에 다녔다.
나는 아버지가 사준 동화책을 읽고 밤늦게 퇴근한 아버지가 저녁 식사할 떄 책 이야기를 해드렸다.
아버지는 귀 기울여 들어주며 밀크캐러멜이나 과자를 상으로 주곤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던 나는 책에서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아버지에게 물었다.
백설공주에서 '계모'라는 말이나와 '계모가 뭐예요?' 물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새로 들어온 엄마'라는 설명을 듣고 그떄 처음으로 엄마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가끔 아버지를 따라 기차를 타고 경주 할머니 댁에 가 몇 달 동안 지내기도 했다.
아버지와 여행을 자주 해서인지 나는 엄마보다 아버지와 더 마음이 통했다.
아버지 친구가 울릉도 초등학교 교장으로 있을 때 아버지를 따라 울릉도 여행도 했다.
8시간이 넘는 긴시간, 여객선을 타고 고래 뗴를 구경하며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아버지는 꿈이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두 살때 전염병으로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얼굴보차 모르는 상상 속의 아버지가 너무나 그립고 보고 싶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근무했다는 경상북도 선산 군청에 찾아가 몇백 년 된 느티나무를 쓰다듬으며
'이 나무는 우리 아버지를 알고 있겠지' 하는 생각에 많이 우셨다고 했다.
고3 때 무엇이든 먹기만 하면 토해 밥을 먹을 수 없던 적이 있었다.
아버지와 병원에 가봤지만, 아무 이상이 없다는 말만 들었다.
세번쨰로 간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이 학생 공부 못하지요? 고3 스트레스, 이른바 고3병입니다'라고 했다.
내가 공부를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가 없어 의사가 돌팦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공부 못해도 도니다.
대학 떨어져도 도니다.
네가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속상하고 죄ㅣ송한 마음에 펑펑 울었다.
그날부터 책상 앞에 '아버지'라고 써 붙이고 공부를시작했다.
'그래! 현재 내 성적은 낮지마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자.
찬구들이 1시간 걸려 플었다면 나는 3.4시간 걸려서라도 풀어보자.
한 걸음 한 걸음씩 천천히 올라가자' 다짐했다.
마음의 안정을 찾고 열심히 곤ㅇ부하자 반에서 38등이던 내가 3등까지 올라갔다.
대학 졸업 후 결혼하여 큰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갔을 때 다시 공부하고 싶었다.
대학 때 역사 교육을 전공했지만 10년이나 손을 놓아 다시 공부를 해야 교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둘째 아이를 업고 대구에서 서울까지 대학 때 지도교수를 찾아갔다.
'남편이 서울에 근무하게 되면 대학원에 가고 싶어요.
추천서를 써 주십시요' 하자 '졸업하고 10년이 넘었는데 무슨 공부야?
아이 키우기 힘들고 살림하기 싫어서 대학원 오려고 하는구나?' 하셨다.
몇 년 후 다시 아이들을 데리고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가 지도교수님을 찾아뵈었다.
교수님은 몇 년 전 일을 기억하시고 추천서를 써주셨다.
그런데 시험 치기 1주일 전 남편의 사업이 부도가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받아 직원들의 월급을 정리해 주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데 나도 치업해서 돈을 벌어야 하지 않을까?
대학원 학비는 어떻게 마련할 까?
입학시험은 치르지 말고 포기할까?'
아버지께 의논드리자 '너는 할 수 있어.
일단 입학시험을 치르는 게 좋겠다'고 격려해 주었다.
네가입학시험을 치르지 않는다면 쇼구님도 내진학 의지가 여갛다고 생각하실 것 같았다.
학비도 없고 학교에 다닐 여비도 없었지만 아버지 응원에 힘입어 일단 시험을 치르기로 했다.
한 학기 동안 등록금은 친구들이 십시일반 모아서, 한 번은 시댁 형님이, 또 한 번은 아버지가 내주셔서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열심히 공부해 장학금도 탔다.
대학원 졸업 후 고등학교 역사 교사로 30년간 근무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5년 전 병자상사를 받고 얼굴에 홍조를 띤 채 환하게 빛나는 얼굴로 말했다.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고 엄마 잘 모셔라.
네가 대학에 합격했을 때 참으로 기뻤다.
그동안 고마웠다' 아버지는 한 달 후 집에서 잠심을 들고 저녁때 하늘나라로 가셨다.
항상 용기를 주신 아버지! 고맙습니다. 허영숙
여름방학이면 동생들과 기차 타고 경주 할머니 댁에 가 서천강에서 물놀이하고 김유신 장군의 둥근 봉분을 떼굴떼굴
구르곤 했던 허영숙은 소아마비로 초등학교 때 다리 수술을 받았는데 종로2가 병원에서 인왕산 중턱 집까지 업고 다니고,
비 오는 날은 버스정류장까지 따라와 젖지 않은 운동화로 갈아신고 학교에 가게 해준 어머니가 하늘나라 가실 때
성모송과 성가를 계속 불러드리며 두려움 없이 가시도록 꼭 곁을 지켜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