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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5 - 우피치 미술관에서 비너스의 탄생을 보고는 피렌체 야경에 빠지다!
코시모 메디치 1세가 개보수한 피렌체 베키오 궁전 Palazzo Vecchio 2층 “500년 홀”은
벽화가 있으니 1563년 조르조 바사리가 궁전 벽에“마르치아노 전투”를 그렸는데
벽 뒤의 원래 벽에 레오나르도 다빈치 가“앙기아리 전투”벽화를 그렸음을 세라치니
박사는“찾으라, 그러면 발견하게 될 것이다 Cerca Trova”라는 깃발을 보고 찾았답니다?
세라치니 박사는 구멍을 통해서 내시경과 초음파 및 자외선 장비를 동원해 베키오
궁전의 숨겨진 벽에서 검출된 안료에서 발견된 망간과 철은“모나리자” 같은
다빈치의 그림에서만 볼 수 있는 소재라고 주장했는데.... 벽이 이중으로 세워진
이유는 바사리가 다빈치에 대한 존경의 뜻에서 작품을 보호하려 했기 때문이라나요?
1440년 피렌체, 베네치아와 교황령 연합군이 밀라노 군대 를 물리친 전쟁에서 승리를 기념
하기 위해 1503년 다빈치에게 "앙기아리 전투" 를 제작해 줄 것을 요청했고 다빈치는
1년간 작업하다 새로운 유화기법이 실패해 그만두고 밀라노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으니
이제까지는 말 탄 전사들이 모습이 그려진 "다빈치의 스케치" 만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피렌체공화국은 1500년대 초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에게 베키오 궁전
내에 “500년의 방” 양쪽 벽에 각각 그림을 그리도록 했는데.....
미켈란젤로는 피사에 대승한 “카시나 전투”를 주제로 받았으나
교황의 부름을 받고 로마로 떠나면서 두 사람의 맞대결은 무산됐다고 전해집니다.
시뇨리아 광장을 떠나면서 되돌아 보니 피렌체는 1532년에 메디치가의
세습 체제가 확립되어 토스카나 공국의 수도가 되었고, 메디치가
는 은행업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유럽 국왕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메디치가는 재력을 배경으로 민중을 조종하며 건축과 예술을 자신들의 매스미디어로 이용
하면서 피렌체의 정권을 잡았는데 코시모 일 베키오는 최고시민이라는 가면 뒤에
숨었고 또한 코시모 는 그리스 플라톤의 숭배자가 되어 아카데미 를 되살렸으며 피렌체
대학은 700년간 교회의 박해로 사라졌던 이교도의 언어 그리스어 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것이 로마 성 베드로 성당의 라파엘 방에“아테네 학파”의 그림이 그려진 이유
라는데... 이런 일로 코시모 는 인문주의 운동(르네상스)의 주도자 가 되었으며
오스만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2세의 허가를 받아 동방에도 사람들을 보내어 수집한
아랍어로 된 옛 그리스 문헌들은 손자 이름을 딴“로렌초 도서관”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피렌체와 한국의 첫 인연은 임진왜란 때 납치된 10만여명의 조선인 중에 나가사키 노예시장
에서 포르투갈령이었던 마카오로 팔려간 조선인 들이 있었는데... 메디치가의 집사인
피렌체의 상인 프란체스코 카르레티 가 한국 소년 다섯 명을 마카오에서 흑인 노예의
7분지 1에 해당하는 헐값으로 사서는 인도의 포르투갈 식민 도시인 고아 로 데리고 갔습니다.
고아에서 함께 여행중이던 아버지가 죽자 인생무상을 느껴 4명은 풀어주고 그는 5명
중 한 명만을 여기 피렌체 로 데려왔으니 이 아이가 안토니오 꼬레아 로....
서양 "꼬레아성(姓) 의 시조" 가 되었으니 현재 이탈리아 남부 칼리브리아주
카탄자로 인근 알비 Albi 시와 또 시칠리아섬의 콜레오네 에 후손들이 살고 있습니다.
1608년에 네델란드 화가 피터 루벤스 가 코레오네 인을 그렸는데 제목이 A man
in Corean Costume 으로 잡혀온지 10년이 흐른 이때 까지도 한복 을 입고
있는 모습을 그렸으니.... 그림은 1983년 런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드로잉 부문 최고가인 6억5천만원에 미국 LA 폴 게티 미술관이 낙찰을 받았습니다!
1992년 11월에 알비 Albi 시장 듀란테 와 한국-이탈리아 협회장 안토니오 코레아 씨가 저
그림 을 들고 서울에 까지 와서 할아버지 를 찾겠다고 정부에 청원을 넣어 우리나라
문화재청장 장경호씨가 현지를 직접 방문하기도한 일이 있다고 하는데... 2017년 9월
26일 알비시 꼬레아 마을 에서 박경화씨등 6명의 한국화가가 참여한 미술전 이 열렸습니다.
또 시칠리아섬 팔레르모 남쪽에 콜레오네 Corlene 에는 몇년전 택시를 대절해 방문한 적이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1930년 미국으로 이민을 갔으니 수산시장 이권 을 두고 다투면서
마피아가 성장 하니 영화 대부에 나오는 돈비네 콜레오네와 마이클 콜레오네 가 저 마을
사람으로... 이탈리아 이민자 중에 변호사가 된 사람중 50% 가 저 작은 마을 출신 이라네요?
그러고는 다시 골목길을 걸어 한 불록 우피치 미술관 에 이르니 줄이 3군데 서 있는데
한국에서 미리 민박집에 송금해서 받은 표 를 들고는..... 어느 줄인지
기웃거리는데, 당일 표를 사려고 하는 줄은 몇시간을 기다려야 할지 모르니
미리 예매한 것인데 입장 시간이 20분정도 남았기로 계단에 앉아 사람 구경을 합니다.
관광객들의 캐리커처 를 그려주는 거리 화가들 이 많아 구경하고 있어도 심심하지는
않겠네요? 얼굴과 옷이 모두 흰색으로 갈릴레이 분장을 한 사람을 스쳐 지나
계단에 앉은 사람들이 박장 대소하며 배꼽을 잡는 곳 이 있으니 바로 "삐에로" 입니다.
이 녀석이 지나가는 여행자 뒤를 쫓아 가며 별별 흉내 를 다 내더니 일본 여자 단체
관광객들이 쓴 모자 를 벗겨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씌우는데... 순식간에 10명을
넘어서니 일본 여자들을 비롯해 대소동 이 일어납니다? 동전 을 던져 주었더니
울 마눌 옆으로 와서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보고 얼른 사진을 찍으랍니다?
예전에 네델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뒤따라 오며 손가락으로 내 뒷꼭지 를 만지려던 삐에로
에게 내가 벼락같이 뒤돌아 서며 두 손을 치켜들고 어흥! 표효를 했더니 놀라 자빠지던
녀석이 생각나 웃음이 나오는데 레스토랑의 길가에 의자에서 맥주를 마시던 관광객들이
우와!!! 고함을 지르며 박수를 치는지라 맥주를 한잔 하고 싶었는데 쑥스러워 지나쳤다는?
시뇨리아 광장 의 베키오 궁전에 인접한 우피치 미술관 Galleria degli Uffizi 은 15세기
초반 지오반니 메디치 이래 옛 메디치가의 개인 컬렉션 을 보관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코시모 1세 가 1560년에 궁전으로 건축한 우피치 미술관은 아르노 강에 면해 있는데
다리 폰테 베키오 Ponte Vecchio 가 2층으로 된건 유사시 도피로 로 설계된 것이라 하네요?
유럽에서 당일 현장에서 바로 입장하기가 어려워 사전에 예약을 해야 하는
곳은 밀라노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소장한
산타마리아델라 그라치에 교회와 여기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 이 있습니다.
하루 전날까지 예약을 받는 데 055-294883, 2347941 에 전화를 하여 국적,
날짜와 시간을 말하고 예약번호 를 받는게 일반적 입니다.
또는 호텔 (민박집)에 도착해 체크인시 예약을 부탁 하는데... 예전에는 입장
시간 10분 전까지 예약자 전용창구에서 표를 교부 받았지만 지금은 미리 수령합니다.
만일 예약 안하고 오면... 아침 부터 줄 서서 오후 2시에 입장한 사람을 예전에 보았는데
우린 한국에서 민박집에 돈을 송금한 탓으로 오늘 민박집에서 표를 받아 시간이
되어 줄을 서서 바로 입장을 하여 4층까지 올라가는데 사진촬영 금지 가 못내 아쉽습니다!
이런 저런 그림을 구경하다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방에서 드디어
보티첼리 의 그림인 “봄”을 보니 예전에 왔을때
2시간이나 줄을 서고도..... 입장을 포기했던 아픔이 보상을 받습니다!
숲속에 비너스 를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서풍의 신 제피로스가
부푼 입으로 바람을 불며 아내인 요정 클로리스를
잡으려 하는데 옆에는 꽃의 여신 플로리스 가 장미를 뿌립니다.
왼쪽에는 막대로 이슬을 터는 신들의 사자 헤르메스 와 엷은 옷을 걸친
미, 순결, 사랑의 여신 들이 서 있고 오른쪽 옆에는
온몸을 꽃으로 장식한 봄의 여신 과 그 뒤로 꽃의 여신이 바람의신
에게 떠밀려서 나타나고.... 큐피드는 화살을 세 여신에게 겨누고 있습니다.
그 옆에 보티첼리의 다른 작품인 “비너스의 탄생” 이 걸려 있는데 보티첼리의
최대의 걸작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상징 하는 그림이라고 합니다.
1485년에 메디치가의 로렌초를 위해 그렸다는데, 우라노스의 거세된
생시기가 바다에 떨어져 비너스가 탄생 했다는 그리스 신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비너스 는 푸른바다 거품으로 부터 태어나 진주 조개를 타고 바다에 서 있는데....
바람의 신 제피로스가 바람을 일으켜 그녀를 해안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봄의 여신 플로라 가 꽃을 뿌리고 오른쪽에 펼쳐진 키프로스 섬의
해안에서는 계절의 여신 호라이 가 붉은색 망토를 들고 비너스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저 10등신 비너스 는 당시 피렌체 최고의 미인 시모네타 를 모델로
했다는데..... 비너스가 탄생 한 곳이 키프로스 이면
제3차 십자군 때에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 1세 가 정복한 곳이네요!
오래 전에 영국 왕자 리차드와 약혼한 프랑스 공주 가 영국에 오자 늙은 부왕
헨리 2세 가 당나라 현종 처럼 먼저 건드리니..... 후일
리차드는 반란 을 일으켜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어 3차 십자군 에 출정합니다.
사자왕 리차드는 마르세유에서 배로 시칠리아 메시나에 도착했는데 뒤쫓아온 어머니
엘레오노르가 결혼하라며 데려온 아라곤의 공주 베렝가리아 를 데리고
출정했는데 배가 풍랑으로 키프로스 섬에 표착 합니다. 키프로스왕 두카스는
비싼 몸값 을 예상하고 공주 일행을 체포하자 열받은 리차드 가 공격해
점령하니 예루살렘왕 뤼지냥등이 방문한 자리에서 결혼식을 올렸던 미(美)의 섬 이라!
그런데 봄(프리마베라) 과 비너스의 탄생 두 그림은 메디치가의 방계인 로렌치노
가 소유하고 있었는데.... 본가의 서자가 에스파냐의 도움으로
알렉산드로 대공에 올라 실정을 하자 로렌치노는 대공을 살해하고 도주 를 합니다.
그의 6촌 되는 검은 부대의 조반니의 아들 코시모가 코시모 1세 대공이 되면서 몰수하여
전하다가 마지막 후손이 피렌체시에 기증 했다고 합니다. 다음 방에서는
1432년에 파올로 우첼로가 그린“산 로마노 전투” 그림을 보는데 십자군 전쟁
의 와중인 13세기에 상업상의 이권 다툼을 하던 시에나가 산 로마노를 기습 해 옵니다.
소수의 수비병을 거느린 니콜로 다 톨렌티노 는 병력의 열세에도 불구
하고 적진을 향해 돌격하는등 감투정신을 발휘해 버텨서
피렌체 미셀라토의 지원군이 도착해서 반격 하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러고는 바커스며 성가족등의 그림을 지나 누드화의 시초라고 불리우는 우르비노의
비너스 가 하얀 융단 위에 한껏 요염한 자태를 뽐내고 누워 있어 숨이 막히네요!
발치에는 개가 웅크려 잠자고 있고 옆에는 두 하녀가 보이는데 이 그림은 신화가
아니고 티치아노가 베네치아 귀족 여성이 몸치장을 기다리는 모습 을 그린 작품 입니다.
메디치 가문 은 도나텔로, 보티첼리, 라파엘로, 기베르니, 브루넬레스키, 첼리니,
바자리 등 당대의 저명한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그들에게 작품을
의뢰하였르니... 특히 로렌조 데 메디치 는 수집한 고대 미술품들을 젊은
작가들에게 개방하여 연구의 장 을 제공했는데, 그중 한 명이 미켈란젤로 입니다!
몇년전에 이탈리아 문화 유산 위원회는 여기 우피치 미술관 에
전시하기 위해..... 피렌체 시민 15만명의 서명을
받아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에“모나리자” 반환을 요구했습니다.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가 1503년 피렌체 상인 지오콘도의 아내 리사 를 모델로
그렸는데 1516년 프랑스의 프랑수아 왕의 초청을 받아 갈 때 가져갔다는데...
그런데 루브르의 모나리자 그림이 1911년에 도난되어 세상을 놀래게 했는데,
수사 결과 루브르에서 일하던 이탈리아인의 피렌체 집 에서 발견되어 회수 했다나요?
4층 우피치 미술관을 내려오니 3층은 태피스트리를 전시하고 있고
2층은 개방하지 않는데 1층 쇼비니어 숍 에서
촬영을 못한 아쉬움으로.... 그림들이 인쇄된 엽서를 몇장 삽니다.
우피치 미술관 밖으로 나와 아르노 강에 놓인 10개의 다리중 가장
오래된 다리 폰테 베키오 Ponte Vecchio 를 구경
하는데 다리 위에 골동품 과 금은세공업 가게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이 다리에서 9살의 단테가 8살의 베아트리체 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 에 빠졌다고 하며
또 공무원(외교관) 이었던 마키아벨리 가 건너 다녔던 다리이기도 합니다.
베아트리체의 모델이 된 폴코 포르티나리의 딸 비체 는 은행가 시모네 드
바르디에게 시집가는데 10년후 이 다리에서 19세가 된 단테와 우연히 마주쳤다고 합니다.
불륜이 될수 밖에 없는 사랑은 6년후인 ,290년에 베아트리체가 죽으니
단테는 낙심하고 방황하는 데, 5년후에 아버지는 예전에
약혼자로 정해진 마네트 도나티의 딸 젬마와 결혼시키는데, 혹은 단테와
젬마의 결혼이 1286년이고 베아트리체는 다음해에 결혼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단테에게 베아트리체는 운명의 여인이었기에 “돈나(여주인)” 로 불렀는데 후일 "신곡"
에서 그녀를 자신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여인으로 묘사하기에 이르니 즉 베아트리체를
"사랑의 지성을 가진 여인" 으로 표했했던 것인데 이때까지는 "사랑" 이라고
하면 하나님의 사랑만이 사랑 이고 인간의 사랑은 욕망 이라고 생각되던 중세 였음에....
피렌체 연인 들은 반지를 주고 받는 것으로는 모자라 베키오 다리를 찾아서 단테의 로맨스
를 생각하며 첼리니 흉상아래에 자물통 을 채우고 열쇠는 아르노강에 던지는 것이네요?
그러고는 아르노 강변을 걸어 산타 크로체 성당 Chiesa di Santa Croce 에 도착
하는데 13세기에 색체 대리석으로 지은 프란체스코 파 상당으로 고딕양식의 걸작입니다!
길이가 140미터에 이르는 성당에는 프레스코 벽화와 미켈란젤로,
갈릴레이, 마키아벨리, 로시니의 무덤 이 있으며 단테의
동상도 있다지만.... 이미 시간이 늦어 문을 닫은게 아쉽습니다!
“이제 겨우 예술에 입문했는데 죽음을 맞이하다니!”라고 고백 했다는 미켈란 젤로의 무대
이며 일흔의 갈릴레오가 로마 교황청에 소환될 때 마차를 내주고 보호했던 피렌체 입니다.
피렌체에서 나고 자랐지만 미움을 받고 쫓겨났던 단테, 그에게 사형 선고했던 피렌체는
그의 무덤을 되찾기 위해 이제는 무덤이 있는 라벤나 시민들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네요?
영화 “전망좋은 방”과 ”냉정과 열정 사이“ 가 만들어진
피렌체의 골목을 걷다가 젤라테리아에서
아이스크림의 이탈리아식 표현인 젤라토 를 사서는 맛있게 먹습니다.
종이화폐, 국수 파스타, 석탄 과 더불어 마르코폴로 가 1295년에 중국에서 가져온 것이
“셔벗 만드는 기술”로 이탈리아 아이스 크림“젤라토의 원조”라고 하네요!
그러고는 우리 부부와 함께 일주일간 스위스와 북이탈리아를 거쳐
피렌체 까지 함께 여행한 처남 부부가 헤어져 로마 로 간다기에 그만 전송을 합니다.
이어 버스를 타고는 아르노 강 Fiume Arno 을 건너 언덕길을 올라 미켈란젤로 광장
Piazzale Michelangelo 에 내려 자리를 잡고는 피렌체 시내를 내려다 봅니다.
이윽고 석양이 지며 강변에 불타는 황혼 을 바라보는 데.....
이내 어두워지면서 시내 유명 유적과 아르노
강변의 가로등이며 거리에 불이 들어와 야경을 구경합니다.
밤이 되었기로 이제 피렌체 구경은 끝났고 내일 아침에는 일찍
기차로 오르비에토를 거쳐 페루자로 떠나야 하기에
그만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밤 인사를 합니다! 부오나 세라!!!
언덕을 내려와 그라치에 다리 Ponte Grazie 로 아르노 강을 건너 공화국 광장과
스트로치 궁전 을 지나서 S.M.N. 역 근처에 있는 민박집 으로 돌아옵니다.
여주인은 안보이지만 마침 일주일에 한번 삼겹살 파티 를 하는 날이라 남녀 학생
들이 삼겹살을 굽고 있는 식탁에 앉아 염치좋게 밥 까지 얻어 먹고는 잠자리에 듭니다.
즐거운 유럽여행! 함께 나누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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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길잡이★유럽 배낭여행
(http://cafe.daum.net/bpgu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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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언제 가도 좋은 도시......
볼거리가 넘쳐나는 고풍스럽고
오래된 역사 도시 피렌체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