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좋아하는 과목은 국어였지만 국어시간을 마냥 설리는 마음으로 기다릴 순 없었다.
교과서 속 지문을 낭독해야 할 차례가 되면 어찌나 떨리는지 가슴 속이 심하게 요둉쳤다.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춰 보라는 것도 아니고 단지 글을 소리 내 읽으라는 것인데 왜 그리 긴장이 되었을 까.
내 목소리에 모두 주목하는 상황이 내성적인 성격인 내게 큰 부담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더 이상 소리 내 책을 읽을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학창 시정보다 더 많이 소리 내 글을 읽고 있는 요즘이다.
수시로 책을 들고 쪼르르 달려오는 24개월된 딸아이 때문이다.
기술이 좋아져 책에 갖다 대면 자동으로 글자를 읽어주는 '세이팬'이라는 것도 있지만
엄마의 따스한 음성으로 들려주고 싶은 욕심에 오디오북 낭독 원데이클래스를 찾았다.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민트보이스 아카데미'(서울 서초구 논현로 127, 대룡빌딩 3층, 전문 성우 준비 및 일반인을 위한
오디오북 네레이터 정규 수업, 원데이클래스 02-572-5953)는 주로 성우를 꿈꾸는 지망생들을 교육하지만
일반인 대상으로 원데이클래스와 취미반을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오늘의 선생님은 KTX 안내방송으로 친숙한 목소리의 주인공, 고구인 성우다.
우선 낭독할 텍스트를 정해야 했다.
마침 가방 속에 있던 '샘터' 10월호에서 제일 마음에 와닿았던 '세상 가장 예쁜 동그라미'라는 글을 골랐다.
아이에게 예쁜 소리를 들려주고 싶은 내 마음과 같았다.
'글을 골랐으니 일단 눈으로만 읽어보세요.'
낭독을 위해서는 충분한 가독이 밑바탕 되어야 한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다시 차근차근 눈으로 글을 담았다.
그런 다음 소리 내 읽어 내려갔다.
조용한 스튜다오 안에 울려 퍼지는 내 목소리가 낯설게 느껴졌다.
분명 눈으로 읽을 때는 막히는 부분이 없었는데 짧은 글임에도 버벅대고 발음이 뭉개졌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저는 이 글을 보지 않았어요.
오직 기자님 목소리로만 전해 들어요.
그런데 너무 빨라서 맥락과 단어를 이해할 새가 없어요.'
사실 선생님의 지적대로 뒤의 문장들이 해치워야 할 과제처럼 여겨져 조급해지고 눈으로 다음 문장을 좇느라
읽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글을 몇 줄 읽었을 뿐인데 내 속을 간파당한 느낌이었다.
'느려도 괜찮아, 틀려도 괜찮아'를 되뇌며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두 번째 낭독에 앞서서는 구체적인 조언들이 이어졌다.
어색할 수 있는 무어체를 구어체로 바꿔볼 것.
예를 들면 어미 '다'를 , 전하는 말인 '대'로 바꿔 연습해보는 식이다.
또 어디서 띄어 읽어야 할지 표시해두는 것도 필요했다.
띄어쓴 곳에서 모두 쉴 필요는 없다.
우리가 말할 때를 생각해보면 한 문장에서 한두 번이나 아예 쉬지 않는 경우도 있다.
낭독은 말하는 듯한 자연스러움이 중요하다.
조언을 염두에 두고 두 번쨰 낭독을 마쳤더니 한결 나아졌다.
그럼에도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이번에는 감정이 문제였다.
글의 화자는 다정한 엄마인데 나는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던 것이다.
'낭독도 연기예요.
아이에게 예쁜 것만 주고 싶은 엄마인데 왜 이리 굳어있어요? 그러면 목소리도 딱딱해져요.'
뒤이어 보여준 선생님의 시범.
처음 보는 텍스트를 읽으면서도 미혼의 성우는 어느새 인자한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상기하며 드디어 녹음 부스에 들어갔다.
마이크 앞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얼마 후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큐' 사인에 맞춰 한 문장 한 문장 읽어 내려갔다.
이미 몇 차례 읽어본 글이라서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는지 부스 안의 조용한 울림이 묘한 안정감을 안겨줬다.
이내 긴장이 누그러지며 편하게 녹음을 끝냈다.
바로 녹음본을 확인했다.
역시나 아직은 부족했다.
내 특유의 버릇이 여실히 드러났다.
문장의 끝을 올리는 마무리가 듣는 사람에게는 어색하게 들리는 모양이었다.
'보통 예쁜 척한다고 하죠?
상냥해 보이려고 문장의 끝을 올리는 분들이 있는데 이 글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어요.
엄마의 마음이면 충분해요.
마지막은 그 마음만 생각하며 읽어볼게요.'
목소리에는 마음이 그대로 투영된다.
그 마음을 담아 한 문장 한 문장 앍어갔다.
종이 위 활자들 사이로 아이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혼자였던 부스 안에서 나는 어느새 아이와 함께였다.
이어폰 너머로 들려오는 내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거울을 보는 듯 우리 둘의 다정한 표정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 어떤 비결보다 확실한 낭독의 기법은 마음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김윤미 에디터
*초보자를 위한 낭독 팁
1. 최대한 천천히 말한다.
목소리로만 내용이 전달되기 때문에 듣는 사람이 이해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2. 공백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를 적절하게 끊어 읽어주면 내용이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하지만 띄워쓰기를 짘 ㄹ 필요는 없다.
한 문장당 한두 번이 적당하다.
4. '틀리지 않아야지' 하고 다짐하면 오히려 더 싨하게 도니다.
전문가가 아니니 틀려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편하게 가져야 낭독도 매끄러워진다.